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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신해철이라는 큰 이름음악의 파편들

긴 긴 시간 2014. 11. 3. 17:12

신해철이라는 큰 이름음악의 파편들

2014/10/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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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 가수들은 다들 이 싱숭생숭해지는 계절에 불쑥 떠나버렸다. 유재하가 그랬고 거짓말처럼 꼭 삼 년 만에 김현식이 그랬다. 신해철 역시 또 그렇게 믿기지 않게 받아들일 수 없게 가버렸다. 두 달 전에 문득 그가 생각났었다. 점점 소홀해지고 있는 페이스북에 마지막 올렸던 글이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가사였다.

 

막연히 나만의 길을 걷겠다 결심했던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노래,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문득 생각이 난다. 심오할 것도 별로 없는 그 시절 똑같은 그 가사가, 같은 결심으로 다른 현실을 사는 오늘에도 많이 와닿는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참 많이 불렀던 노래다. 마음속으로도 부르고, 홀로 걷는 길에도 부르고, 방구석에 쳐박혀서도 부르고.. 아마 내가 외워서 소화(?)하는 유일한 랩이 아닐까도 싶다. 어릴땐 어린 마음에 좋아했던 가사인데, 세상을 조금은 겪어본 지금도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 가사이다. 세상도 나도 참 변한 것도 없다. 세월이 꽤 흘렀는데.

 

신해철은 등장부터 특별했다. 그의 가사는 순수시도 체계적인 철학도 아니었지만, 삶 속에 녹아 있는 치열한 인생의 고민들이 녹아 덤덤하게 흐르고 있었다. 무한궤도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나타나서, 우리 앞의 생이 끝날 때를 노래하며 등장한 그가 떠났다. 누구나 나고 죽는 거지만, 그 소식을 듣고 참 슬프고 맥빠지는 하루다. 그가 해줬던 수많은 위로와 격려가 한꺼번에 그립게 밀려온다. 그의 쓸쓸함은 뭔가 달랐다. 무엇보다 척하는 가식이 없었다. 멋을 위한 고독과 허무로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의 고민들은 바로 우리의 고민들이었다. 그걸 그는 줄곧 노래하고 있었다.

 

거리에 서면, 길 위에서, 50년 후의 내 모습, 외로움의 거리, 집으로 가는 길, 영원히, 껍질의 파괴, 이중인격자, Dreamer, 나는 남들과 다르다, 불멸에 관하여, 절망에 관하여, 먼 훗날 언젠가, Hero 등의 주옥같은 가사들은 그만이 줄 수 있는 노래였다. 그의 고민과 성찰은 단발적이지 않았고 나는 영원히 그의 팬으로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던져준 노랫말들은 서태지가 이룬 음악적 전복 이상이었다. 그는 노래하는 패러다임이 다른 가수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남들과 닮아 가는 동안 꿈은 우리 곁을 떠나네

- 영원히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속에 묻어 버릴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것을 알아도 꿈은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제는 쉽게 살라고도 말하지 힘겹게 고개 젓네 난 기억하고 있다고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또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 Dreamer

갈 곳도 해야 할 것도 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그러다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내 목을 졸라오는 올가미 처럼 그 시간이 온다

내 초라한 삶의 이유를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 절망에 관하여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거친 욕망들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져 갈텐데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시간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는 없으니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 불멸에 관하여

 

그의 모든 노랫말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어릴적 느낌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 큰 울림으로. 떠나버린 그가 안타깝고 불쑥 그립다. 쉽사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우리의 기억 속에라도 되살아주길 바라본다. 다시 내게 힘을 주기를 바라본다.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내게, 그 시절에서 그리 멀리 오지도 못한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