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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한문학회 2008.12 37집
한시.시경
艶情詩의 면모와 미적 특질
-고려시대의 시를 중심으로-
河政承*
目 次
1. 문제제기
2. 염정시의 史的 전개과정과 문학사적 의미
3. 염정시의 표현기법과 美意識
4. 결어
1. 문제제기
사랑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고정된 이정표다
(세익스피어, 「사랑과 세월」 중에서)
세익스피어의 이 유명한 사랑의 시에도 나타나 있듯이, 사랑은 그 어떤 외물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정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에 빠져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황홀한 기쁨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다. 인류가 남겨놓은 문학작품 중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랑이 될 것이다. 이는 물론 비단 문학의 영역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모든 예술의 전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시에는 이러한 사랑의 황홀한 기쁨과 지독한 슬픔을 다룬 것들이 더더욱 많다. 단지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역시, 사랑의 아픔이나 고뇌 그리고 기쁨을 노래한 시들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며 영원한 현재형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 학계에서는 특별히 이러한 사랑을 주제로 한 漢詩를 ‘艶情詩’․‘愛情詩’․‘香奩體詩’ 등으로 부르며,1] 한시의 중요한 한 갈래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2]
한시사를 살펴보면 사랑을 노래한 시들은, 남성화자의 시와 여성화자의 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남성화자의 시는 작자가 대부분 남성이지만, 여성화자의 시는 작자가 남성인 경우와 여성인 경우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남성작가에 의해 지어진 여성화자 시의 경우에도, 話者가 시에 나타난 여주인공 자신인 경우와 작가의 객관적 시점에 의한 묘사의 경우로 또 나눌 수 있다.3] 사실 여성작가에 의한 여성화자시와 남성작가에 의한 여성화자시는 여성화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즉 여성화자의 존재론적 기반에 대한 인식의 차이인데, 남성작가들은 대부분 여성의 고난이나 연정을 형상화하면서도 매우 전형적이고 유형적인 여성화자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물론 시인의 여성의 삶에 대한 인식이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지극히 사적이고 편협하며 수동적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4]
본고에서는 고려시대의 시를 중심으로, 사랑을 노래한 남성화자와 여성화자의 염정시를 비교 검토해 봄으로써, 초창기 한국한시사에서 염정시의 출발과 전개과정 및 그것이 한시사에서 갖는 문학적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아울러 염정시만의 독특한 표현기법과 미의식을 고찰해 보면서, 특히 남성화자 시와 여성화자 시의 차이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해 보기로 하겠다. 본고에서 특별히 고려시대의 한시로 논의를 국한한 것은, 조선조 염정시까지 모두 다 다루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져서 자칫 논지의 전개가 범범해지거나 또는 주마간산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의 분석에 있어서 필요할 경우에는 조선조의 시는 물론 중국시나 국문시가 등도 함께 거론하며 살펴보기로 하겠다.
1]한시사에서 염정시나 애정시는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을 읊은 시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는데, 두 용어 사이의 차이점은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중국 문학사에서 ‘염정시’라는 용어로 처음 시를 쓴 사람은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初唐의 저명한 시인 駱賓王이다. 그는 王勃․楊炯․盧照鄰과 함께 ‘初唐四傑’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시에 뛰어났다. 그의 문집에 보면 ‘艶情’이라는 제목의 시가 보이는데, “곽씨를 대신해서 노조린에게 답한다”라고 되어있다.(『駱丞集』, 권2) 이후에도 ‘艶情’이라는 제목을 단 시는 많이 나타나는데, 예컨대 청나라의 문인 彭孫遹의 문집(『松桂堂全集』, 권38)이라던가 黃之雋의 문집(『香屑集』, 권6), 그리고 寧孫黙이 청나라의 詞를 모아 편찬한 詞集인 『十五家詞』등에 등장하는 ‘艶情詩’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우리 문학사에서는 뿌리깊은 儒家的 문학관 때문인지 ‘艶情’ 또는 ‘艶情詩’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다. 17세기의 문인 崔錫恒이 晩唐의 시인 李商隱의 시를 평가하며 “艶情에서 感發되어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損窩遺稿』, 권12, 「題朱長孺玉溪集序」)라고 한 언급이나, 또는 18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東谿 趙龜命이 明나라의 문인 袁宏道를 평가하며 “대개 艶情의 글이 많다”(『東谿集』, 권7, 「書花陣綺言袁中郞序後」) 라는 정도가 필자가 찾을 수 있었던 한국한시비평사에서의 ‘염정’에 대한 언급들이다. 그리고 ‘애정시’라는 용어는 ‘염정시’에 비해 더더욱 찾기 힘든데, 이것은 아마도 ‘애정시’라는 용어가 근대에 접어들어 주로 서구의 시문학에 등장하는 사랑의 노래들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애정시’라는 용어가 중국고전문학사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명나라의 저명한 문장가 王世貞의 동생으로, 형만큼이나 문명을 떨쳤던 王世懋는 그의 문집 『秇圃纈餘』에서 “소년배들이 愛情詩를 매우 좋아한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자료 중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들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있었지만, ‘애정시’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염정시’나 ‘애정시’에 비해 ‘香奩體’ 또는 ‘香奩體詩’는 문학사에 비교적 많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의 제 2장에서 상술하기로 하겠다. 사실 ‘향렴체’는 원래 곱게 단장하고 옷을 꾸며 입은 여인들의 생활과 감정을 읊은 시를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염정시나 애정시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시로 향렴체 시까지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소위 향렴체로 불려지는 시들의 상당수가 여인의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여인들의 삶과 일상생활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향렴체 시에 등장하는 여성화자, 또는 남성화자에 의해 소개되는 여성 주인공은 상당 부분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여인네들의 삶을 노래한 향렴체 시 역시 필연적으로 사랑노래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에 염정시․애정시와 함께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2]필자가 조사한 염정시를 다룬 대표적인 논문과 저서는 다음과 같다. 이혜순, 「여성화자 시의 한시전통」, 『한국한문학연구』특집호, 한국한문학회, 1996; 전경원, 「고려시대 한시의 여성 형상에 대한 연구」, 건국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박영민, 「사대부 한시에 나타난 여성정감의 사적 전개와 미적 특질」, 고려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민병수, 「한국한시와 애정」, 『한국한문학산고』, 태학사, 2001; 이종묵, 「애정한시의 전통과 미학」, 『국문학연구』5호, 2001; 안대회, 「18세기 여성화자시 창작의 활성화와 그 문학사적 의의」,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4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박영민, 『한국한시와 여성인식의 구도』, 소명출판, 2003; 장준영, 「한악 향렴시 소고」, 『중국학연구』27호, 중국학연구회, 2004.
3]남성 작가가 지은 여성화자 시의 분류와 분석은 이혜순의 앞의 논문에서 자세히 다뤄져 있다.
4]박영민, 「여성화자의 유형과 존재론적 의미-고려시대 한시를 중심으로」,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4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95~96쪽 참조.
2. 염정시의 史的 전개과정과 문학사적 의미
중국문학사에서 남녀간의 사랑을 읊은 노래는 이미 『詩經』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詩經』에 나타난 사랑노래는 대체로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미혼 남녀의 연정을 노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간의 친밀하고 따뜻한 정을 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이들 노래는 고대 중국인의 순박한 서정을 읊조린 것으로, 그 속에는 중국문학사에서 사랑의 정서를 표현해내는 原風景과 중국인이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詩化한 문학적 원형이 나타나 있다. 5] 사랑을 노래했던 『詩經』의 전통은 중국 詩歌史에서 그대로 계승되어 漢나라와 六朝의 민요집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晩唐의 韓偓에 이르면 香奩體라는 새로운 형태의 詩體가 만들어지게 된다. 6] 향렴체 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다소 길지만, 한악이 쓴『香奩集』自序를 살펴보자.
5]장징 지음, 임수빈 옮김, 『근대 중국과 연애의 발견』, 소나무, 2007, 32쪽 참조.
6]香奩體란 주로 여자들의 신변과 관계된 제재를 詩化한 것으로, 예컨대 여성이 곱게 옷 입은 모습이나 예쁘게 화장한 모습 따위를 시의 소재로 등장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후에는 의미가 더욱 확산되어 분칠한 여인들이 읊은 사랑의 노래, 또는 남성이 지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여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중국 한시사에서 이러한 경향의 시를 지칭하는 말로 ‘향렴’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唐의 시인 한악으로 그는 자신의 시집의 명칭을 「香奩集」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향렴체 시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러 편의 시를 쓰기도 하였다. 중국비평사에서 ‘향렴체’시에 주목하여 주요한 詩體의 하나로 처음 언급한 사람은 宋의 비평가 嚴羽이다. 그는 자신의 시화집 『滄浪詩話』에서 ‘향렴체’를 언급하며, “향렴체는 한악의 시로, 주로 옷입은 모양새 또는 화장을 곱게 분칠한 모습을 노래한 시어로 쓴 것이다. 향렴집에 실려 전한다[香奩體: 韓偓之詩, 皆裾裙脂粉之語. 有香奩集]” 라고 하였다. (嚴羽, 『滄浪詩話』, 「詩體」 참조)
"내가 章句에 빠진 것이 참으로 여러 해가 되었다. 진실로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情을 잊을 수 없는 것은 하늘이 부여한 바이기 때문이다. 庚辰 辛巳年으로부터 辛丑 庚子年에 이르기까지 지은 歌詩가 천 수를 넘었다. 그동안 아름답고 고와 마음에 들었던 것 역시 수백 편이어서 왕왕 사대부들의 입에 오르내리거나 악공들의 음악에 맞추고, 하얗게 칠한 담이나 산초열매 섞어서 바른 벽에 기울어진 작은 글씨로 써두거나 몰래 노래한 시들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큰 도적이 관문 안으로 들어오면서 책상자가 모두 없어진데다 옮겨 다니면서 거처도 일정치 않고 풀 더미에서 삶을 도모하였으니, 어찌 다시 음풍할 생각을 했겠는가? 때로 하늘 끝에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거나, 피난처에서 친구를 만나 취하여 읊을 틈이 날 때면, 이따금 내 시도 언급되었다. 그로부터 모아서 다시 백 수를 얻었으며, 차마 버리지 못하고 때때로 기록해 엮었다.
저 멀리로 宮體를 생각해보면 감히 庾信을 칭하지는 못하고, (당시의) 문장을 공격하더라도 도리어 『玉臺新詠』의 문체를 꾸짖을 뿐이니, 어찌 반드시 徐陵이 지은 서문만 어여쁘다 할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마음을 받드는 모습을 얻어 다행히 이를 가는 부끄러움은 없었다.
뒷골목이나 靑樓에서는 쌀겨나 쭉정이를 맛보지 않았고, 침실의 수놓은 문에서는 비로소 풍류를 준비하였다. 오색으로 아름다운 영지를 씹어 맛보니 향기는 아홉 구멍에서 우러나오고, 三危의 상서로운 이슬을 삼키니 봄날은 일곱 감정에서 꿈틀거린다. 만약 그 바르지 못함을 책망할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좋은 점으로써 허물을 덮어버리기를 바란다. 한림학사승지상서호부시랑지제고 한악이 서문을 쓰다. " 7]
7]韓偓, 『香奩集』(『韓內翰別集』附), 卷首, 「香奩集自序」,
“香奩集偓自序曰: ‘余溺章句, 信有年矣. 誠知非丈夫所為, 不能忘情, 天所賦也. 自庚辰辛巳之際, 迄辛丑庚子之間, 所著歌詩, 不啻千首. 其間以綺麗得意者附亦數百篇, 徃徃在士大夫之口, 或樂工配入聲律, 粉牆椒壁, 斜行小字, 竊咏者不可勝計.
大盜入關, 緗帙都墜, 遷徙不常厥居, 求生草莽之中, 豈復以吟諷為意? 或天涯逢舊識, 或避地遇故人, 醉咏之暇, 時及拙唱, 自爾鳩輯, 復得百篇, 不忍棄捐, 隨時編録.
遐思宫體, 未敢稱庾信, 攻文却誚玉臺, 何必倩徐陵作序? 麤得捧心之態, 幸無折齒之慚, 栁巷青樓, 未嘗糠粃, 金閨繡户, 始預風流. 咀五色之靈芝, 香生九竅, 咽三危之瑞露, 春動七情. 如有責其不經, 亦望以功掩過.’ 翰林學士承㫖行尚書户部侍郎知制誥韓偓序.”
이 글에서 한악(842-923)은 『향렴집』의 시들이 庚辰年에서 辛丑年 사이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서기로 계산하면 860년에서 881년이니 19세에서 40세 사이, 그러니까 인생에서 가장 혈기 왕성하고 의욕적인 젊은 시절에 지어진 셈이다. 시인은 서두에서 향렴체의 시를 쓰는 것은 대장부가 할 일은 아니지만, 하늘이 부여해준 정을 잊을 수 없어서 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남성으로서 여성의 신변잡기와 감정을 읊조리는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눈여겨볼 말은 “하늘이 부여해준 情”이다. 즉 남자로서 여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또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그야말로 天賦的인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향렴체 시나 염정시의 존재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위 인용문의 세 번째 단락을 보면, 한악은 향렴체 시를 지으면서 사람들이 멀리 六朝 시대 庾信의 宮體나 徐陵의 玉臺體 등과 비교할까봐 굉장히 신경쓰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宮體詩는 6세기 전반 梁나라 때 昭明太子, 簡文帝 등의 왕족들이 중심이 되어 소위 ‘궁정문학’ 활동을 하면서 생산된 시로서 궁체의 ‘宮’은 궁정문학을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여성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옥대체는 梁․陳 교체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대표적인 궁체시의 작가인 陳나라 徐陵이 편찬한 詩選集인 『玉臺新詠』에 실린 시와 후대에 이를 모방한 시들에 대한 명칭이다. ‘여성들이 부르는 새로운 노래’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여성들의 생활정감과 관련된 시들만 모았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이로보면 향렴체를 궁체시나 옥대체와 비슷한 것으로 보거나, 또는 향렴체의 연원을 궁체나 옥대체로 보는 것도 일면 타당한 의견이라 여겨지기도 한다.8] 하지만, 향렴체가 여성의 정감과 여성의 사랑을 다룬 詩體로 후대 詞나 曲의 창작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반면에,9] 옥대체는 남녀간의 아름다운 애정이나 여성의 고민을 진지하게 토로한 것은 드물고 대체로 경박하고 가벼운 사랑이나 色情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중국문학사의 일반적 견해이다. 위 인용문에서 한악이 서릉의 옥대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향렴체를 옥대체와는 구별하려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사랑노래의 전통이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중국 한시사의 주류를 차지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남녀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시인들로 하여금 염정시의 창작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수천 년을 이어온 儒家思想의 영향 10] 이외에도 사랑에 대한 중국인의 전통적인 인식과 태도,11] 그리고, 부끄러움과 수줍음, 드러내지 않는 숨김을 매력으로 여기는 중국민족 특유의 민족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8] 우리 문학사에서 향렴체를 옥대체와 가깝게 본 사실은, 일례로 18세기 조선 최고의 염정시 작가들인 李安中, 李鈺, 金鑢 등의 시에서 보이는 여성정감의 한시들을, 옥대체의 ‘玉臺’와 향렴체의 ‘香奩’을 따서 ‘玉臺香奩體’라고 지칭했던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9]물론 향렴체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다. 가령, “만당시대의 시풍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것은 한악의 『향렴집』에 나오는 여인의 말이다”(楊海明 저, 송용준․유종목 역, 『唐宋詞史』, 신아사, 1995)라는 견해는 향렴체의 한시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말이다. 또 “향렴체는 詞의 단초를 열었으며, 詞集인 『花間集』은 『향렴집』의 장단구 형식이다”(양해명, 앞의 책)라는 견해 등은 향렴체 시가 宋詞의 태동과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으로 모두 향렴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이다.
반면에 “향렴집의 시들은 모두 평이하고 淺近한 시어를 써서 남녀간의 각종 사사로운 감정을 서술한 것으로 字句를 다듬은 실력 또한 언급할 만한 것이 못 된다”(張興武, 『五代作家的人格與詩格』, 인민문학출판사, 2000, 212쪽) 등과 같은 매우 부정적인 평가도 공존한다.
10]가령 일찍이 孔子가 『詩經』의 시를 평가하면서 말한 “樂而不淫, 哀而不傷”의 경지, 즉 ‘溫柔敦厚’한 시의 품격은 이후로 특히 儒家에서 시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전범으로 인식되었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퇴계나 율곡 등의 성리학자들은 ‘溫柔敦厚’하고 ‘沖澹蕭散’한 품격을 지닌 시들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남녀간의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염정시나 애정시들이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창작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11]사랑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서양인들과 가장 다른 점은, 가령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서양인들은 그 사랑을 모든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중국인들은 사랑을 그렇게 절대적이고 높은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다시말해 사랑이란 삶에 있어서 하나의 필수적이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지만 그 사랑이 모든 가치나 제도, 규범 등을 덮어버리거나 초월할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에 대한 사항은 劉若愚 저, 이장우 역, 『중국시학』, 명문당, 1994, 111~112쪽 참조.
어찌됐던 중국의 염정시나 애정시등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시들은, 연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긴장감, 사랑하는 이에 대한 동경, 짝사랑의 고민, 참사랑에 대한 환희와 기쁨, 배신에 대한 분노, 이별에 대한 원한과 쓰라림, 마지막 사별 등등 인간이 사랑에 빠지면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랑의 국면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의 염정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국시에 나타나는 사랑의 양상은 때로는 심각하고, 때로는 가볍기도 하며, 부드럽기도 하고, 열정적일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지극히 선정적이기도 하지만, 소위 말하는 정신적이고 推想的이며 관념적인 플라토닉(Platonic)한 사랑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12]
한악이 창도한 향렴체 시는 여성화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표현하거나 또는 남녀의 연애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꺼려했던 그동안의 전통적인 시문학 전통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와 주제를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나름대로의 미적 세계를 열었다고 할 수 있겠다.13] 사실 한악의 향렴체 시는 그동안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의 기쁨과 절절한 아픔을 말하고는 싶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인색했던 시작법 전통에 얽매여 감히 용기를 내서 써보지 못했던 후대의 시인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한시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晩唐에 이르면 한악뿐만 아니라 유미적이고 개성적인 시를 즐겨 썼던 대표적인 시인들인 杜牧이나 李商隱, 溫庭筠에게서도 염정시가 지어졌고, 기타 다른 시인들도 염정시를 짓게 되었다. 따라서 사랑을 노래하는 염정시․애정시․향렴체의 시들은 만당시대 시창작에 있어서 하나의 주요한 특징이었다고 볼 수 있다. 14] 또한 한악의 향렴체 시를 비롯한 晩唐 시대의 염정시 창작은, 그 다음 세대인 송나라나 원나라에서 지어진 남녀의 애정을 주제로 하는 詞와 曲의 창작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12]劉若愚 저, 이장우 역, 앞의 책, 112~113쪽 참조.
13]장준영, 앞의 논문, 52쪽 참조.
14]만당시대에 유행했던 염정시․애정시․향렴체 시에 관한 전반적인 논의는 文航生의 「晩唐艶詩槪述」(四川師範學院, 1996)을 참조할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노래한 시들은 보통 ‘염정시’나 ‘애정시’라는 말보다는 ‘향렴체’라는 용어가 훨씬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15] 또 굳이 ‘향렴체’라는 말을 시의 전면에 표방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읊은 시들은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지어져왔다.
한국한문학사에서 ‘향렴’ 또는 ‘향렴체’를 말한 것은 꽤 여럿 보이는데,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조선전기의 시인 梅月堂 金時習이 ‘향렴체’라는 제목으로 쓴 네 수의 시16]가 ‘향렴체’를 표방한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 후 명종 때의 문인 權應仁이 지은 『松溪漫錄』에도 頤庵 宋寅이 청주 땅의 한 기생에게 지어준 시를 소개하며 “향렴체가 매우 사랑스럽다”17]라는 詩評이 등장하고 있다.
穆陵盛世의 대표적 문인 石洲 權韠 역시 향렴체를 본받아 시를 지었고,18] 허균의 형 許筬도 두 수의 향렴체 시를 남겼다.19] 재미있는 점은 허성이 향렴체 시를 지으면서 “戱作”이라고 한 점이다. 이 말은 허성이 활동하던 16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많은 시인들이 향렴체를 비롯한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을 창작하는 데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0] 허성의 동생으로 조선조 최고의 시비평가 중 한 사람인 허균도 그의 詩話集 『鶴山樵談』에서 梅窓 李誠胤의 시를 소개하며, “그의 시는 溫庭筠과 李商隱을 숭상하여 그들의 시풍을 터득하였다. 그가 지은 香奩體란 시는 다음과 같다.”21] 라고 하면서 이성윤의 시에 대한 소개와 시평을 통해 향렴체 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허균의 평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성윤이 향렴체 시를 쓰게 된 동기에 관한 언급이다. 허균은 이성윤이 晩唐의 온정균과 이상은의 시풍을 터득하고 쓴 시가 향렴체라고 했다. 즉 조선조 시인들이 쓴 향렴체 시의 연원을 온정균과 이상은에게 두고 있는 것이다. 허균의 이러한 언급은 만당의 한시사에서 艶情風의 시를 즐겨 쓴 대표적 인물이 온정균과 이상은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한국 염정시의 전개에 있어서 특별히 이상은과 온정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음을22] 시사해 주는 매우 중요한 발언으로 여겨진다.
15]우리 문학사에서 ‘애정시’를 표방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고, ‘염정시’를 사용한 경우는 앞의 주1)에서 서술한 것을 참조하기 바람.
16]金時習, 『梅月堂集』, 권15, 「香奩體 詠花」.
17]權應仁, 『松溪漫錄』, 권상. “其得香奩體可愛.”
18]權韠, 『石洲集』, 권7, 「效香奩體」.
19]許筬, 『岳麓集』, 권1 「次南岡香奩體」; 許筬, 『岳麓集』, 권1, 「用前韻 戲作香奩體」.
20]이와 관련하여, 18세기 이전의 여성한시는 사랑의 욕구와 표현을 기피하는 관습적인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戱作’이나 ‘擬古’라는 이름을 빌려 사랑을 노래한 반면에, 18세기에 들어와서는 좀 더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작가의 개성을 살린 사랑노래들이 출현했다는 안대회 교수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대한 사항은 안대회, 「18세기 여성화자시 창작의 활성화와 그 문학사적 의의」(『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4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129~130쪽을 참조할 것.
21] 許筠, 『鶴山樵談』(『惺所覆瓿藁』, 권26에 수록), “宗室錦山守誠胤字景實, 學於仲氏, 詩尙溫李, 得啼其裁. 其香奩體曰.” 참조.
22]이상은과 온정균이 한국염정시의 사적 전개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음은, 17세기 전반기에 향렴체를 즐겨지었던 문인인 高用厚가 이상은의 詩句만을 모아서 集句詩 형태로 향렴체 시를 썼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 대한 사항은 高用厚, 「香奩體 集商隱句」, 『晴沙集』, 권1 참조.
이외에도 소위 三唐詩人의 한 사람인 玉峯 白光勳도 향렴체 시를 남겼고, 23] 또한 17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高用厚는 여러 벗들이 지은 향렴체에 차운하여 시를 남긴다고 했으니,24] 당시 이미 많은 시인들에게 향렴체가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芝峰類說』의 저자로 유명한 李睟光 역시 향렴체의 시를 지었고, 25] 조선후기 한문학 사대가 중의 한 명인 象村 申欽도 ‘향렴체’라고 제목을 단 시를 4수나 짓기도 하였다. 26]
그리고 역시 한문학 사대가 중의 또다른 한 명인 澤堂 李植도 한악의 ‘향렴체’에 대한 중국비평사에서의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모두 소개하고 있다.27] 18세기에 들어와서는 향렴체가 여러 문인들에게 유행처럼 급속도로 번지게 되었는데, 이는 茶山 丁若鏞의 다음 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3]白光勳, 『玉峯詩集』, 권상, 「用前韻 效香奩體」.
24] 高用厚, 『晴沙集』, 권1, 「次友生香奩體韻」.
25]李睟光, 『芝峰先生集』, 권3, 「效香奩體」.
26]申欽, 『象村集』, 권18, 「香奩體 爲人作 四首」.
27]李植, 『澤堂先生別集』, 권13, 「娼妓」, 참조.
" 松谷老人은 당시 文苑의 宗匠이었으니 감히 경솔하게 의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科詩는 고시와 흡사하고 고시는 과시와 흡사하니 진실로 하나의 의문점입니다.
근래에 韓檢詳 어른을 통해 그의 詩稿를 얻었습니다. 그 분의 근체시 여러 작품은 對偶가 情切하여 『尤西堂集』(淸의 문인 尤侗의 문집-역자 주)과 흡사했으나 그 瀏亮하고 悠遠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면 王維ㆍ韋應物 등 諸家들의 시처럼 깊고 깊어서 다할 수 없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실망하여 한탄했습니다.
우서당의 ‘論語詩’는 바로 香奩體인데 문인의 교활함은 너무나 심합니다. 그가 경전을 操弄하고자 하였으니 참으로 斯文의 亂賊입니다." 28]
28]丁若鏞, 『與猶堂全書』, 第1集, 권18, 「上海左書」,
“松谷老人, 當時文苑宗匠, 不敢輕議, 然其科詩似古詩, 古詩似科詩, 誠一疑案.
近從韓檢詳丈, 得其詩稿, 其近體諸作, 對偶精切, 恰似尤西堂集, 欲求其瀏亮悠遠, 淵然有不盡之意, 如王韋諸家者, 蓋絶無焉. 爲之惋悵移時也.
尤西堂論語詩, 直是香奩豔體, 甚哉文人狡獪, 乃欲操弄經傳, 眞斯文之賊也.”
위 인용문은 정약용이 집안의 어른뻘이 되는 당대의 저명한 문인 海左 丁範祖에게 올린 편지글이다. 이 글에서 논의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첫머리에 등장하는 松谷老人인데, 그는 17세기에서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저명한 문인 李瑞雨(1633-1709)로 松谷은 바로 이서우의 호이다. 그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당대에 詩文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글씨로도 유명했던 인물이다. 다산은 위 글에서 이서우의 시집을 보니 對偶등 시의 형식적인 측면은 매우 뛰어나 마치 淸나라의 시인 尤侗과도 방불했으나, 시의 의미를 보면 깊고 심원한 맛이 전혀 없어서 매우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통이 지은 ‘論語詩’를 거론하며, 이 詩體는 바로 향렴체인데 경전을 가지고 조롱했으니 사문난적과 다름없다고 하였다.
물론 여기에서 다산이 직접적으로 비판을 가한 것은 청의 문인 우통과 그가 지은 香奩體詩지만, 사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우통의 향렴체와 같은 詩風의 시를 쓰는 이서우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산 본인이 활동하던 18세기의 동시대 시인들에 대한 경고이자 비판이기도 했다. 그만큼 17세기를 거쳐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향렴체를 비롯한 艶情風의 한시가 유행했던 것이다.
동시대의 또 다른 문인 李德懋도 그의 저서 『靑莊館全書』에서 중국의 여러 詩體를 소개하는 글에 한악과 향렴체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서, 향렴체에 대한 당대 문인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시사해준다. 29]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향렴체를 비롯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염정의 시들은 鮮初의 김시습 이후에 꾸준히 계속해서 창작되어지다가, 드디어 18세기에 이르면 문단의 하나의 큰 유행으로 번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30] 그리고 향렴체를 비롯한 한국 염정시의 사적 전개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중국의 시인은 晩唐의 李商隱, 溫庭筠, 韓偓이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29]李德懋,『靑莊館全書』, 권24, 「詩觀小傳」, 참조.
30]18세기에 향렴체를 비롯한 염정시가 절정의 유행에 이르렀던 사실은 위의 정약용의 글 외에도, 18세기 조선 최고의 염정시 작가들인 李安中, 李鈺, 金鑢 등이 지은 시가 유행하고 급기야 이들의 詩體를 통칭하여 ‘玉臺香奩體’라고 지칭했던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옥대향렴체’에 대한 사항은 앞의 주8)을 참조할 것.
안대회 교수는 18세기는 여성화자시가 유행하고 폭넓게 창작된 시기였다고 말한다. 18세기의 여성화자시는 현실적 사랑을 노래하고 작가의 개성을 표현함으로써 역동적인 문학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의 애정시는 기존의 시에 비해 애정표현이 매우 대담해졌고 성의식을 드러내거나 애증의 표현이 잘 드러났다는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이상 18세기 여성화자시에 관한 사항은 안대회, 앞의 논문, 127~128쪽을 참조할 것.
3. 염정시의 표현기법과 美意識
염정시의 문학적 매력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시인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동일한 사랑의 황홀함이나 쓰라림 등을 경험케 해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일종의 감정이입 효과이다. 더구나 간결함과 고도로 정제된 압축미가 생명인 한시를 통해서, 해도 해도 다 못할 사랑의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을 읊조리는 것은 얼핏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사랑노래는 서구의 연애시나 현대시보다 오히려 한시가 더 매력적이고 절절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짧은 노래에 한없이 긴 여운이 담겨서 미학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염정시의 작가는 크게 남성과 여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경우 지금 전해지는 여류시인으로는 眞德女王․薛瑤․學者女․權貴妃․德介․小水人․動人紅․于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31] 더구나 이들이 남긴 시마저도 각 시인마다 한두 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염정시를 논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남성시인의 시를 가지고 살펴볼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남성작가 시의 경우에도 남성화자의 시와 여성화자의 시로 나누어지는데, 고려시대 염정시의 경우에는 여성화자의 시가 남성화자 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양을 차지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남성화자와 여성화자의 변화에 따라 視點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시적화자의 차이가 시점의 차이가 된다. 필자가 따져본 바로는 남성화자의 시는 대체로 3인칭 시점으로 기술되고, 여성화자의 시는 1인칭 시점으로 기술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소설에서 말하는 視點 32]을 빌려서 좀 더 세분화 해보면, 남성화자의 시는 3인칭시점 중에서도 시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심적 상태와 모든 정황을 話者(narrator)가 다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여성화자의 시는 대체로 화자가 시의 내용[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서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설로 치면 ‘1인칭 주인공 시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고려시대의 염정시를 그 내용적인 면에서 나누어보면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분류가 된다.
첫째, 남녀간의 만남과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시이다. 이러한 종류의 시들에는 사랑의 설레임과 그 황홀한 기쁨이 잘 드러나는데, 염정시의 가장 중요한 본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사랑하는 님에게 일이 생겨 불가피한 이별을 한 상태에서 오는 고통과 님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 시들이다. 시적화자가 노래하는 님은 남편인 경우와 애인인 경우로 나뉘고, 님과 이별한 원인은 주로 공무나 전쟁으로 인해 님을 군대에 보낸 것이 많다.
셋째, 사랑하는 님에게 버림을 받고 그 아픔과 실연의 상처를 드러낸 시들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작품군에 속하는 시들의 경우, 화자가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31]이상의 고려시대 여류시인과 그들의 시는 김지용 편역, 『한국역대여류한시문선』상․하(명문당, 2005)와 김지용 역, 『한국의 여류한시』(여강출판사, 1991)를 참조할 것.
32]주지하다시피 소설을 분석함에 있어서 소설 속의 인물 및 사건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위치와 각도를 ‘시점’이라고 한다. 시점은 보통 서술자가 누구냐에 따라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나뉘고, 또 그 서술자의 역할에 따라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으로 나뉘게 된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소설에서의 시점은 등장인물의 성격형성과 이야기 전개의 흐름 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1) 황홀한 사랑의 기쁨
사랑에 빠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 사랑에 빠진 사람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같이 행복해진다. 다음 시는 그런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알 같은데 牡丹含露眞珠顆
어여쁜 색시 꺾어들고 창가를 지나다가 美人折得窓前過
빙긋이 웃으면서 신랑에게 묻기를 含笑問檀郞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花强妾貌强
신랑이 일부러 장난치느라 檀郞故相戱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오” 强道花枝好
신부는 꽃이 예쁘다는 말에 뾰로통해서 美人妬花勝
꽃가지를 밟아 짓뭉개고 말하기를 踏破花枝道
“꽃이 저보다 예쁘시거든 花若勝於妾
오늘밤은 꽃과 함께 주무시지요” 33] 今宵花同宿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3인칭으로 등장하며 철저하게 관찰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34] 시에서 서술되고 있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내용은 어느 젊은 부부간의 사랑의 모습이다. 예쁜 새색시가 탐스런 모란꽃을 꺾더니 남편에게 자기와 꽃 중에 누가 더 예쁘냐고 질문을 던진다. 남편은 장난치느라 꽃이 더 예쁘다고 말한다. 그러자 젊은 신부는 뾰로통해져서 들고 있던 꽃을 밟아버리더니 꽃이 자기보다 더 예쁘면 오늘 밤은 꽃과 함께 자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젊은 부부의 장난스런 일상의 대화지만, 그 속엔 상대방을 사랑하고 아끼고 또 의지하려는 예쁜 마음이 담겨있다. 더구나 시의 마지막 부분에 새색시가 들고 있던 모란꽃을 밟으며 뾰로통해져서 하는 말은 참으로 애교가 넘치고 귀여우며 신랑을 향한 모든 사랑이 표현되어 있다. 세상 그 어떤 남자가 이런 말을 듣고도, 그 부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시냇가 언덕 위에 수양버들 늘어져 있고 浣沙溪上傍垂楊
백마 탄 님 손잡고 속마음 터놓았네 執手論心白馬郞
처마에 쏟아지는 석 달 장맛비라도 縱有連簷三月雨
손끝에 남은 향기 어이 씻으리 35] 指頭何忍洗余香
위의 시는 이제현이 민간에서 불려지던 노래를 한시로 옮겨서 지은 ‘소악부’ 11수 가운데 그 일부이다. 인용시의 시적화자는 시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성 자신이다. 이 시는 『고려사』 ‘악지’ 에도 실려 전하는데, 「제위보」로 되어있다. 36]
어느 화창한 봄날, 수양버들 늘어선 아름다운 시냇가 언덕 위에서 두 남녀가 만난다. 시적화자인 여성이 만난 남자는 ‘白馬郞’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아마도 상당히 높은 신분의 자제였던 것 같다. 두 남녀는 서로의 손을 한참 동안이나 붙잡고 있다. 여자는 이미 남자에게 자기의 마음과 정을 다 주었고 사랑의 속마음까지 터놓는다. 이 시에서 더욱 애틋한 점은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난 뒤의 여인의 반응이다. 그녀는 남자와 잡았던 손끝에 감도는 감촉과 남은 향기는 세찬 장맛비라도 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다음 시에는 아직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만날 사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알 수 없는 시름이 그려져 있다.
33] 李奎報, 『大東詩選』, 권1, 「折花行」.
34] 앞에서 언급한 소설의 시점으로 보자면, 3인칭의 작가 관찰자 시점 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35]李齊賢, 『益齋亂藁』, 권4, 「小樂府」.
36] 「제위보」에 소개되어 있는 이 노래의 사연은 위 인용시와는 사뭇 다르다. 『고려사』에서는 어떤 부인이 죄를 짓고서 제위보에 가서 노역을 하다가 어떤 남자에게 손목을 잡히고 그 부끄러움을 씻을 길이 없어 이 노래를 지어 스스로를 원망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현의 인용시와 「제위보」의 내용이 다른 것은 다분히 원 노래를 한역하는 과정에서 시인(이제현)의 의도적인 목적에 기인한 것이다.
강남 아가씨 머리에 꽃 꽂고 江南女兒花揷頭
친구들 불러 아름다운 물가에서 놀다가 笑呼伴侶游芳洲
노 저어 돌아오는데 해는 지려하고 蕩漿歸來日欲暮
원앙은 쌍쌍이 나는데 시름은 그지없네 37] 鴛鴦雙飛無限愁
위 시의 서술자는 남성화자로, 하루 동안 강남 아가씨가 노니는 모습과 그 사이에 일어난 심경의 변화를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소설의 시점으로 말하면 3인칭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날도 좋은 어느날, 강남의 아가씨들이 모여서 저마다 머리에 꽃을 꽂고 물놀이에 나섰다.
제 1구와 2구는 인생에서 가장 활기차고 발랄한 시기의 청춘들이 모여서 서로 깔깔대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통해서, 시의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밝고 명랑하다. 하지만 제 4구에 이르면 시의 분위기가 급격히 전환되는데, 이는 곧 강남 아가씨의 심경변화와 관련이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덧 해는 벌써 산으로 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아가씨는 정답게 노니는 한 쌍의 원앙을 목격한다. 명랑 쾌활하던 아가씨는 이내 곧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아직 만나지 못한 님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기대, 막연한 불안감 등이 얽히고 설켜서 만감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희구하는 젊은 청춘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심경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뛰어난 수작이다. 이 시는 젊은 시절, 자기의 심정을 자기자신도 몰랐던, 또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어딘가에 있을 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설레임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우리들 모두의 자화상인 것이다.
37] 鄭夢周, 『圃隱先生文集』, 권1, 「江南曲」.
(2) 이별의 고통과 님에 대한 그리움
고려시대의 염정시에는 사랑하는 님을 군대로 떠나 보내고 쓴 것들이 유난히 많다. 요즈음도 애인을 군대에 보내는 여성의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할텐데, 그 시절이야 지금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한 조건이었을 것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님께서 수자리로 먼 길을 떠나시니 公子遠行役
말 안장에 붉은 광채 눈부시구나 鞍馬光翁赩
초췌한 옥루의 이 몸은 憔悴玉樓妾
눈물을 참으며 흘리지 않지요 忍淚不敎滴
그리운 마음 잊을 길 없고 念之不可忘
날아가려 해도 날개가 없네요 奮飛無羽翼
새벽 종 왜 이리 늦게 울리는지 寒鍾鳴苦遲
언제나 먼동이 터오려나 38] 何時東方白
이 시는 「古風」이란 제목의 7수의 연작시 중 일부이다. 시에 등장하는 님[남자]은 아마도 수자리를 서기 위해 멀리 戰場으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 떠날 때의 님의 모습은 화려한 말안장에 보무도 당당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님은 돌아오지 않고, 기다림에 지친 여자는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 간다. 그만 님에 대한 그리움을 접고 잊어 보려고도 하지만 잊을 수도 없다. 님이 계신 전장으로 가고 싶지만 갈 방도도 마땅치 않다. 매일 매일 잠 못 드는 밤은 계속되고, 여인은 불면의 고통 속에서 먼동이 터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다음 시에는 군대에 간 남편을 걱정하는 부인의 마음이 더욱 자세히 그려져 있다.
숨겨 놓은 명주를 다듬질하여 擣擣閨中練
마름질하고 꿰매니 서리와 흰 눈 같구나 裁縫如霜雪
편지를 함께 봉해 변방에 부치오니 緘題寄邊庭
그 속에 눈물이 피맺혀 있다오 中有淚成血
여자는 한 번 시집을 가면 婦人得所歸
끝까지 오직 절개를 지킬 뿐이니 終始惟一節
어찌 나의 운명 이렇게 박명도 하여 云胡妾薄命
그대와 길이 이별해 있는 것인가 39] 與君長相別
인용시는 「擬戍婦擣衣詞」란 제목의 다섯 수의 연작시 중 네 번째 작품이다. 詩題에도 나타나 있듯이, 이 시의 화자는 멀리 남편을 변방 군대에 보내고 남편에게 보낼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는 여인이다. 여인은 추위에 변변찮은 옷도 없이 고생하고 있을 군대 간 남편을 생각하며 고이 간직해둔 비단을 꺼내 정성껏 남편의 옷을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 사랑과 그리움으로 뒤범벅된 눈물로 써내려간 편지도 함께 봉한다. 제 5구와 6구에는 이 여인의 결혼관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여자는 한 번 시집을 가면 끝까지 절개를 지켜 한 남편만 섬겨야 된다는 것이다. 40]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남자와 재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남들처럼 평범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박한 운명이 야속하기만 하다. 연작시 중 다음에 소개할 다섯 번째 작품을 보면 이 여인이 나약한 여성이 아니라 현숙하면서도 지혜로운, 그리고 忍苦의 세월을 견딜 줄 아는 강철같은 여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럭기럭 구름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들아 嗈嗈雲閒雁
날며 우는 소리가 어찌 그리 슬프냐 飛鳴亦何哀
어찌 한 통의 편지가 없게냐마는 豈無一書札
부치려다 다시 망설인다 欲寄復徘徊
원컨대 맡은 일에 노력하소서 願言各努力
천첩은 생각일랑 하지 마소서 賤妾不足懷
님께서 진실로 충성을 다한다면 君亮執精忠
첩은 마땅히 규방에서 죽으리라 41] 妾當死中閨
예부터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를 듣고 여인은 군대에 간 남편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망설이고 만다. 왜냐하면 혹여라도 자기의 편지를 받고 전장에 간 남편이 공무에 지장을 받지나 않을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여인은 남편과 남편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여인은 “원컨대 맡은 일에 노력하시고 천첩일랑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면서 님께서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면, 자기는 규방에서 죽어가도 여한이 없다고 다짐한다. 군대에 간 남편에게 가정을 생각하지 말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라는 부탁인 것이다.42]
참으로 고금에 보기 힘든 사려깊고 현숙한 여성인 것 같다. 어찌 이 여인이라고 그 끝없는 기다림이 힘들지 않겠으며 또 외롭지 않겠는가마는, 자기보다 전장에서 고생할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38]李齊賢, 『益齋亂藁』, 권3, 「古風」.
39]偰遜, 『東文選』권5, 「擬戍婦擣衣詞」.
40]님에 대한 절개와 신의를 다짐하는 시로는 李齊賢의 다음 「小樂府」(『益齋亂藁』, 권4)가 대표적이다.
“바윗돌에 구슬이 떨어져 깨진다 해도/꿰미줄만은 끊어지지 않으리라/
님과 천추의 이별을 하였으나/한 점 단심이야 변함이 있으랴
(縱然巖石落珠璣/纓縷固應無斷時/
與郞千載相離別/一點丹心何改移)”
사실 이 시는 이제현이 고려가요 「서경별곡」을 한역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려시대의 노래인 「정석가」와도 일치한다. 「정석가」의 해당부분과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롭다. 「정석가」는 다음과 같다.
“구슬이 바위에 디신들/깃힛딴 그츠리잇가/즈믄 해를 외오곰 녀신들/신잇딴 그츠리잇가”
41]偰遜, 『東文選』권5, 「擬戍婦擣衣詞」.
42]나라의 부름을 받고 떠나갔으니 비록 기다림은 괴롭지만 님이 국가에 공을 세우고 돌아올 때까지 견디겠다는 이와 같은 종류의 시는 다른 시인의 작품에도 보인다. 가령, 崔承老의 「代人寄遠」(『東文選』권19) 같은 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참고로 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는 수레 한 번 작별한 뒤 해가 격하였네/다락에 기대어 바라보고자 오르기에 몇 번이나 수고로웠나/
상사의 괴로움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원하지 않네, 공 없이 빨리 돌아오는 것을
(一別征車隔歲來/幾勞登覩倚樓臺/
雖然有此相思苦/不願無功便早廻)”
①
한번 이별한 뒤로는 오랫동안 소식 뜸하니 一別年多消息稀
변방의 안위를 그 누가 알리요 塞垣存歿有誰知
오늘 아침 비로소 겨울옷을 부치는데 今朝始寄寒衣去
떠나실 때 뱃속에 있던 아이를 눈물로 보냅니다 泣送歸時在腹兒
②
회문시 다 짜보니 비단글자 산뜻한데 織罷回文錦字新
먼데 계신 님께 부치려니 부칠 길 없네 題封寄遠恨無因
뭇사람 중에 혹시나 요동가는 손님 있나 해서 衆中恐有遼東客
날마다 나룻터에 나가 행인들에게 물어 본다오 43] 每向津頭問路人
①의 시는 남편을 저 멀리 요동 땅으로 보내고 나서 유복자를 키우며, 기다림과 근심으로 나날을 보내는 여인의 시이다. 이 시 역시 위에서 보았던 시와 마찬가지로 전장의 남편에게 옷을 부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옷을 남편에게 가져다주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 떠날 때 배속에 있던 유복자인 것이다.
제 4구에서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를 눈물로 보낸다”고 했는데, 유복자를 통해 겨울옷을 지어서 남편에게 보내는 여인의 심정은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②의 시에는 남편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비단에 回文詩를 수놓아 44] 부치려 해도 부칠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혹시라도 요동으로 가는 길손이 있을까하여 아내는 매일같이 나룻터에 나가서 행인을 찾는다. 그야말로 남편을 향한 아내의 눈물겨운 정성과 사랑이 독자의 심금을 울릴 정도이다. 圃隱의 시인으로서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다음 시에는 서울로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여인의 심정이 잘 그려져 있다.
문에 기대어 석양을 바라보니 倚戶望斜陽
정녕 외딴 마을의 나무에 걸려있구나 正在孤村樹
눈물 젖은 눈은 침침한데 새는 멀리 날아가니 淚眼昏昏鳥遠飛
서울이 어디인지 비로소 알겠구나 京國知何處
한 번 이별한 것이 천 년 같은데 一別似千秋
이 한스러움 누구를 의지하여 말할까 此恨憑誰語
온 산을 향하여 눈을 크게 떠봐도 또다시 첩첩산중뿐 極目千山又萬山
그 어디가 님께서 돌아오는 길인가 45] 底是郞歸路
이 시의 제목 「卜算子」는 宋詞의 詞牌중 하나로, 쉽게 말하면 노래의 곡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목을 통해 시인이 宋詞의 형식을 빌려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시적화자 역시 떠나간 님을 기다리는 여인이다.
여인은 님이 떠나간 뒤에 저물녘이면 매일같이 집앞에 나와 동구밖을 바라본다. 이 시는 시작부터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데, 집앞에 나와 문에 기대어 하염없이 저 멀리 바라보고 있는 여인과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면서 나무에 걸려있는 저녁 해, 외딴 마을 등이 시각적 조화를 이루며 시의 意象을 더욱 침통하게 만들어 준다. 눈물 젖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던 여인은 마침 저 멀리로 날아가는 새를 목격한다. 그제야 님이 떠난 곳이 새도 쉽게 날아갈 수 없는 먼 서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제 5구의 “한 번한 이별이 천 년같다”는 말은 그만큼 이별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님이 과연 돌아오기나 할 지, 또 온다면 그 때는 언제인지, 여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불안하고 걱정이다.
마지막 7~8구,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첩첩산중뿐이니 그 어디가 님이 돌아오는 길인가라는 독백은 불안하고 걱정스런 여인의 그러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사실 분명히 산에 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길은 보이지 않고 오직 꽉 막힌 산만 보일 뿐이다. 그만큼 여인은 지금 이별의 고통과 끝없는 기다림으로 지쳐 있는 것이다.
43]鄭夢周, 『圃隱先生文集』, 권1, 「征婦怨 二絶」.
44]여기에서 회문시란 晉나라 여인 蘇若蘭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 竇滔를 위해 비단에 별자리 문양을 그려 넣고 가로 세로 각각 29자를 수놓아 모두 841자를 새겼다는 ‘回文璇璣圖織錦詩’의 고사를 말한다.
이 시는 가로로 읽어도, 세로로 읽어도, 또 회전하여 돌리며 읽어도 되는데, 남편을 향한 아내의 정성과 애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45]金九容, 『惕若齋先生學吟集』, 권하, 「卜算子」.
뜰 앞에 한 잎 떨어지고 庭前一葉落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 床下百蟲悲
홀홀히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 忽忽不可止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悠悠何所之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 片心山盡處
외로운 꿈, 달 밝을 때 孤夢月明時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 南浦春波綠
훗날의 기약을 그대는 잊지 마소서 46] 君休負後期
이 시에는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며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여인의 애틋한 심정이 그려져 있다. 님은 낙엽지고 온갖 벌레 울어대는 가을에 떠났다. 야속한 것은 떠나갈 때의 님의 태도이다. 님은 여인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갑작스레, 그리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제 3구와 4구의 “忽忽”과 “悠悠”는 님을 향한 여인의 섭섭함과 원망이 표현된 말이다. 여인이 마지막 7-8구에서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훗날의 기약을 잊지 마소서”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렇게 떠난 님은 다음해 봄이 되면 돌아온다고 한 것 같다. 인용시는 정지상의 작품인데 같은 제목으로 된 칠언절구의 시 역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만고의 절창으로 유명하다.
이 시를 읽다보면 예전에 유행했던 대중가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이 시에도 나타나 있다시피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연인들의 이별 장면에는 보통 남자가 떠나가고 여자는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많은 이별 중에는 여자가 떠나 간 경우도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남성화자가 주인공이 되어 떠나간 여인을 기다리고 가슴 아파하는 한시는 찾기 힘든 것인가? 48] 그것은 아마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樂而不淫, 哀而不傷”이란 말에 나타나 있듯이 시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유가적 관점, 그리고 본인의 사랑 이야기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에 대해 생소했던 그간의 문학적 전통이나 관습에 기인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남성 시인이 자기의 사랑 이야기를 여성화자의 입을 빌려서가 아닌,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남성화자의 목소리로, 자기가 직접 고백하는 시가 우리 漢詩史에 드물다는 것은 분명 염정한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학적 결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6]鄭知常, 『東文選』, 권9, 「送人」.
47]칠언절구 「送人」 시는 다음과 같다.
“비 갠 긴 언덕엔 풀빛이 푸르른데/남포에서 님 보내니 슬픈 노래 울려나네/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를거나/해마다 이별 눈물 강물에 더하는 것을.”
위 인용시와 칠언절구 시는 제목도 같고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내용도 비슷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위 오언율시가 1인칭의 여성화자의 목소리로 서술되고 있는 것에 반해 칠언절구는 3인칭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가진 남성화자가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본문에서도 기술했지만, 3인칭 관찰자의 남성화자 시에 비해 1인칭 주인공의 여성화자 시가 훨씬 더 애틋하고 아픈 사랑의 감정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시를 비교해 읽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된다.
48]한시에 비해 서구의 시나 현대시에서는 실연을 당한 남자의 상처, 또는 여인을 기다리는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의 모습을 그린 시들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들 시의 대부분은 1인칭 주인공 남성화자의 독백으로 기술되어 있다. 필자가 논문을 집필하는 도중에 읽은 현대시 중에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지독한 아픔을 그린 시가 있다. 이 짧은 시에 나타난 시인의 기다림은 너무나 간절하다. 아니 어찌보면 목숨을 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읽는 이도 함께 눈물이 난다. 필자가 너무 감동적으로 읽은 작품이기에 참고로 소개해 보기로 한다. 본문의 한시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가/나는 알게 되었지/이미 네가/투명인간이 되어/곁에 서 있다는 것을/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 한다” (강윤후, 『다시 쓸쓸한 날에』, 「성북역」, 문학과지성사, 1995)
(3) 사랑의 배반과 失戀의 상처
염정시 중에는 사랑하는 이의 배반과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내용이 상당수 있다. 이들 시는 대개 여성화자가 서술자로 등장하며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음 시를 보자.
그대에게 동심결 맺어 주었더니 贈君同心結
내게는 합환선을 주네 貽我合歡扇
그대 마음 끝내는 달라져서 君心竟不同
좋아하고 싫어함 천만 번 변하네 好惡千萬變
내 즐거움 또한 이루지 못해 我歡亦未成
야위도록 밤낮으로 그리워하네 憔悴日夜戀
날 버리는 그대 원망하지 않으리 棄捐不怨君
새 사람은 매우 어여쁠테니 新人多婉孌
그러나 그 어여쁨 얼마나 갈까 婉孌能幾時
세월은 화살보다 빨리 간다네 光陰疾於箭
어찌 알리요, 꽃 같은 저 사람도 焉知如花人
이처럼 얼굴에 주름이 생길 줄을 49] 亦有斯皺面
처음 만났을 때 여인은 자신의 사랑의 징표로 청실과 홍실로 엮어 만든 同心結을 님에게 주었다. 동심결은 말 그대로 마음을 같이하자는 매듭인 것이다. 이에 님도 여인에게 합환선을 주며 자기의 사랑을 맹세했다. 합환선 역시 부챗살을 가운데 두고 양쪽을 같은 크기의 종이로 마주 붙여 떨어지지 않게 만든 부채로서, 변함없는 사랑의 징표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했던 뜨거운 사랑이었건만 세월과 함께 님의 마음도 유수처럼 흘러가 버리고 만다. 님은 젊고 예쁜 아가씨를 만나 매정하게 떠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인은 님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사랑은 너무나 지독하여 얼굴이 초췌해지도록 밤낮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떠난 님을 결코 원망하지도 않는다.
세월 앞에 쭈글쭈글해진 자신보다도 젊은 여자가 훨씬 더 어여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세월을 빗겨갈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님이 만난 젊은 여자도 언젠가는 자기처럼 늙고 주름살 가득할 것이라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그 위안 속에는 떠난 님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평생의 사랑을 배반한 님이지만,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여인의 말을 통해 그녀가 견뎌냈을 아픔과 고독이 더 크게 다가온다. 다음 시에는 버림받은 여인의 괴로움이 직설화법으로 매우 잘 묘사되어 있다.
49] 李達衷, 『東文選』, 권5, 「閨情」.
애달프다 꾀꼬리 우는 봄날 腸斷啼鶯春
떨어진 꽃 빨갛게 땅을 덮었네 落花紅簇地
향긋한 이불에 새벽 잠은 외롭기만 香衾曉枕孤
옥 같은 볼에 두 줄기 눈물 흐른다 玉臉雙流淚
낭군의 약속 구름처럼 얄팍하니 郞信薄如雲
나의 심정 강물처럼 흔들리네 妾情搖似水
긴긴 날을 누구와 함께 지내며 長日度與誰
수심겨운 눈썹 풀어 본단 말인가 50] 皺却愁眉翠
어느 봄날, 꾀꼬리는 울고 붉은 꽃잎은 땅에 떨어져 흩어져 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이라면 이 모든 것이 아름답고 흥겹게 보이겠지만, 버림받은 여인에게는 새 울음소리, 꽃잎 하나도 서럽고 애달프다.
그녀는 아마도 지난밤을 꼬박 새우듯 뒤척였던 것 같다. 님과 함께 덮던 향기로운 이불도 이제는 차디찬 거적 덮개에 불과하다. 새벽까지 그녀는 잠 못 이루고 울고 있다. 굳게 맹세했던 님의 사랑의 약속은 이제 저 하늘 얇은 구름처럼 믿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도 흐르는 강물처럼 덩달아 요동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겪어야할 불면의 밤들과 외로움을 생각하니 수심에 찬 눈썹은 풀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깝고 처량한 실연의 노래이다. 특히나 님에게 버림받고 잠 못 이루는 여인의 괴롭고도 불안한 심정을 “나의 심정 강물처럼 흔들리네”라고 묘사한 대목은 실연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이 시의 압권이자 백미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 시는 詩題에 回文詩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따라서 거꾸로 읽어도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데, 거꾸로 읽는 시 역시 원시와 마찬가지로 애달픈 사랑의 노래이다. 51]
50]李奎報, 『東國李相國集』, 권10, 「美人怨」.
51]이 시를 거꾸로 읽으면 원시의 마지막 구 마지막 글자인 “翠眉愁却皺”로 시작하여 원시의 첫 구 “腸斷啼鶯春”을 뒤집은 “春鶯啼斷腸”으로 끝나게 된다. 참고삼아 회문시의 번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눈썹은 근심겨워 찌푸려 있고/누구와 함께 긴 날을 보낸단 말인가/강물은 내 마음처럼 일렁이고/구름은 믿음 없는 님의 마음과 같네/눈물은 옥같은 두 뺨에 흐르고/외로운 베개 새벽 이불만 향기롭구나/땅 가득히 붉은 꽃은 떨어지고/봄 꾀고리 울음소리에 애간장만 끊어지네”
다음 시는 한평생을 기생으로 살다 늙어버린 어느 老妓의 이야기이다.
찬 등불 아래 외로이 잠드니 눈물은 마르지 않고 寒燈孤枕淚無窮
비단 휘장에 은병풍도 지난 꿈속의 일이었도다 錦帳銀屛昨夢中
色으로 사람을 섬기면 끝내 버림을 받으리니 以色事人終鬼棄
비단 부채 가지고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말지어다 52] 莫將紈扇怨西風
인용시의 서술자는 3인칭의 남성화자이다. 소설로 치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화자는 늙은 기생의 외로운 삶의 모습을 묘사하고, 그 원인에 대한 진단과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평생을 기생으로 살아온 이 여인은 이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 차가운 가을이건만 날마다 외롭게 잠이 들고, 그 외로움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방에 놓인 아름다운 비단 휘장과 값비싼 은병풍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랑하는 님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 여인도 젊은 시절에는 꽃다운 아름다움으로 많은 남자의 주목과 사랑을 독차지 했을 것이다. 만약 인기 없던 기생이었다면 이런 슬픔과 외로움을 토로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날의 인기와 명성은 이제 한갓 추억일 뿐, 老妓의 말년은 고독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이 시의 화자는 이에 대해 제 3구에서 “色으로 사람을 섬기면 끝내 버림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비단 부채 가지고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말”라고 더욱 강력한 어조로 단죄한다. 주지하다시피 ‘가을부채[秋扇]’는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가을부채’처럼 아무도 찾지 않고 버림받은 노기의 처량한 삶은, 色으로 사람을 대했던 노기 본인이 자초한 것이니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교훈적 어조의 남성화자 시는 같은 남성시인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성화자 시에 비해서 ‘연정’이라는 동일한 모티브에 대해 남성화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하겠다.53]
52]鄭樞, 『圓齋先生文稿』, 권상, 「老妓」.
53]사랑에 대한 남성화자 시와 여성화자 시의 차이와 그 거리에 대한 것은 박영민, 『한국 한시와 여성 인식의 구도』(소명출판, 2003), 49~50쪽을 참조할 것.
4. 결어
본고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염정시의 전개과정과 그 문학사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 또 염정시의 표현기법과 특유의 미적 특질을 고려 시대의 시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지금 전해지는 염정시는 시적화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크게 남성화자 시와 여성화자 시로 나뉘어 진다. 또 여성화자 시의 경우에도 남성작가의 시와 여성작가의 시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염정시라 하더라도 남성화자 시와 여성화자 시 사이에는 시의 내용이나 그 서술기법에 있어서 묘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본고에서는 이같은 두 가지 경향의 시를 서로 분석하여 비교해 보았다.
한국과 중국의 한시사에서 ‘염정시’․‘애정시’․‘향렴체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했던 사랑의 노래는, 그 기원을 따져보면 중국의 경우에는 이미 ?시경?에서부터 존재해 왔고, 우리의 경우에도 「황조가」등의 고대가요에 그 모습이 보인다. 그만큼 사랑을 노래한 시들의 전통은 길고 오래된 것이다. 이 점은 서양문학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선조들은 전통적으로 유학적 교양을 갖춘 사대부로서 남녀간의 진솔한 사랑을 읊조리는 시를 쓰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다. 이 점은 기본적으로 고려조나 조선조 모두 동일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시인이 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사대부 시인들 중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본능적이고 아름다운 인간 본연의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노래한 시인들이 문학사에 계속적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고려시대의 경우에는 심지어 민간에서 불려지는 남녀의 사랑 노래를 한시로 번역하여 옮기는 일까지 있었다.
실로 남녀간의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대명제는 수천 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아마도 앞으로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사랑을 노래한 시만큼 인간의 삶을 절실하고 애절하게 다룬 것은 없을 것이다. 염정시는 때로는 사랑의 한없는 기쁨을, 또 때로는 사랑의 처절한 고통을 노래한다. 사랑은 꿀처럼 우리의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기도 하고, 날 선 검처럼 긴장과 공포를 주기도 하며, 가시처럼 후벼 파서 상처를 덧내기도 한다. 염정시는 이처럼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며, 또 때로는 삶을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독자들은 시인의 언어를 통해 이미 마음속으로 간접적인 사랑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염정시의 미학적 매력이자, 다른 장르의 시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문학적 효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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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08.11.26
심사시작일 2008.12.1
심사완료일 2008.12.4
A study on the aspect and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Yeomjungsi
Ha, Jung-Seung
Love is the eternal and the most common theme of literary works in all ages and countries. Chinese poetry about love is called ‘Yeomjungsi(艶情詩)’․‘Aejungsi(愛情詩)’․‘Hyangyeomchesi(香奩體詩)’ in Chinese and Korean academic world .
The origin of love song is ?the Book of Odes? in China, while it is the ancient songs like a 'Hwangjoga' in Korea. The tradition of Chinese poetry about love is as much long and old. If we look at the history of Chinese poetry, the speaker is divided into two parts, man and womam.
The writer of chinese poetry written by male speaker is man. But the writer of Chinese poetry written by female speaker is man or woman. And chinese poetry written by female speaker is divided into two types. one type is that the speaker is the heroine of the poem, the other type is that the speaker has a objective point of view.
In fact, our ancestor as a man of noble birth scorned singing about true love between male and female. Fortunately, however, not all poets thought so. Some poets from noble birth recognized love between male and female as intrinsic feelings of human. Even a part of poets translated popular songs about love into Chinese poetry in Goryeo periods
In this scipt, I examined the significance of a literary history of ‘Yeomjungsi(艶情詩)’․‘Yeomjungsi(艶情詩)’ written in Goryeo periods is to be classified into three types; poetry about pleasure of love, poetry about agony of farewell, poetry about betrayal. I considered the techniques of expression and aesthetic characteristics in these poetry.
No poetry doesn't sing about life more heartily and sadly than a love song. ‘Yeomjungsi(艶情詩)’ makes the people a present of laughter and tears through showing various aspect of love. Readers indirectly experiences love affair via poetry. This is aesthetic attractiveness and literary benefit of ‘Yeomjungsi(艶情詩)’
Keyword : Yeomjungsi(艶情詩), Aejungsi(愛情詩), Hyangyeomche(香奩體), Gungche(宮體), Okdaeche(玉臺體), love song, poem about love, male speaker, female speaker, a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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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漢文學 第37輯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粉牆椒壁 분장초벽 : 궁녀와 후비(后妃)
牆 담 장 : 궁녀(宮女)
椒 산초나무 초 : 서자(庶子: 본부인이 아닌 딴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들)
椒房之親 : 后妃(후비) 親庭(친정)의 핏줄. 椒房(초방)이란 椒壁(초벽)을 두른 后妃(후비)의 房(방)이므로 후비를 나타냄. 출전 後漢書(후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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