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예외적 존재로 구별하고,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보기 좋게 포장 ⊙ 거짓말의 유혹이 축적…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밀어붙이자’는 심리 ⊙ 잘못에 대한 강한 부정은 주위에 ‘최소한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심어 줘
고위공직자도 사람이니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공직자를 성직자나 도덕군자 중에서 뽑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바라는 윤리적 기대치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높다는 게 사회통념이다. 심리학자들은 거짓말이, 관계를 좋게 하는 선한 거짓말이든 아니든, 주변 사람에게 ‘감정의 얼룩’을 남긴다고 지적한다. 한번 얼룩이 생기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이 얼룩은 관계를 서서히 식혀 결국엔 서로를 무너뜨린다. 게다가 고위공직자의 거짓말은 더 고약하다. 그들의 헌신을 기대했던 국민의 마음을 얼룩지게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이라는 무력감(無力感)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고, 양심의 기준을 저잣거리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고위공직자의 거짓말은 그래서 사회에 치명적이다. 상담심리 전문가인 정은미(鄭殷美)씨는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을 예외적 존재로 구별하려 한다”며 “자신을 ‘평균 이상’이고 예외자로 인식(착각)하며 자신의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보기 좋게 포장하려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오류는 지적하지만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는 식이죠. 남보다 잘났고 성공했다는, 그래서 자아를 보존하는(ego-preserving) 생각 때문에 자신의 편견, 비합리적이거나 부정적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죠. 심한 경우 상상 가능한 나쁜 행위를 저질렀으면서도 여전히 착하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사실 정치인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은 언제나 거짓말의 유혹과 대면(對面)하는 존재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는 이기적(利己的)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겉으론 친절하고 이타적(利他的)으로 행동하며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려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공익(公益)’이라는 가치 속에 은밀히 숨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기적이며 이타적인 양가감정(兩價感情)은 윤리의식을 점점 무디게 만든다. 정씨는 “남들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언제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모든 것을 감출 수 없고, 마음 어느 한 곳에서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구멍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공직자들, “평균 이상, 예외적 존재”라고 생각
장남 전재국씨는 지난 9월 10일 2분간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미납추징금(1672억원)의 완납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 자녀·친척의 재산형성과 비자금과의 관련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완납의사를 밝히면서도 “예금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던 10년 전(2003년 4월) 발언을 번복하거나 해명하진 않았다. 물론 당시 발언은 그 시점에 예금통장에 그만큼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가진 돈이 29만원밖에 없다’로 들려 비난을 자초했다. 이래서 국민들은 전 전 대통령의 ‘예금 29만원’ 발언을 현대사에 ‘가장 빼어난’ 거짓말로 기록할지 모른다. 반면 지난 9월 4일 남겨뒀던 추징금(230억원)을 모두 갚은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한결 마음이 홀가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과거의 거짓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95년 10월 당시 민주당 박계동(朴啓東) 의원을 통해 거액의 비자금설이 제기됐을 때 그는 펄쩍 뛰며 “세계에서 가장 잘 참는 나도 이제는 못 참겠다”며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었다. “그 비자금의 주인이 누구인지 우리가 알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차명계좌에 입금된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일부임이 확인됐다. 그는 “당시 이현우 경호실장에게 들었다”며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 전 실장이 검찰에 나가 “비자금 조성은 대통령이 직접 했고, 나는 은행 심부름만 했다”고 진술하면서 거짓말이 재차 들통 났다. 추징금을 모두 내고 두 전직 대통령이 ‘빈털터리’가 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직도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 은닉에 대한 실체적 고백은 없었다. 과거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이 8000억~1조원에 이르는 뇌물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것저것 썼다고 하지만 2000억원대의 추징 뇌물이 모두를 상쇄하는 것은 아닐 터다.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는 한국인의 윤리관에 심한 멍에를 지웠다. 모든 고위공직자를 믿을 수 없고 불쾌하며 음흉한 존재로 만들었고, 대통령의 자질과 도덕성이 양립(兩立)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한국고충문제해결연구소 김태완(金胎完) 소장은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대화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을 했어요. 어떤 대화 상대자가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하자, 실험 참가자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상대에게 불쾌한 감정을 가졌다고 해요. 그런데 속았던 사람을 속였던 사람과 다시 대화를 하게 했더니, 속았던 사람의 거짓말 횟수가 더 늘어났다는 겁니다.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을 안 하거나, 할 마음이 없는 이들까지도 거짓말을 하게 만듭니다. 결백하다고 주장하던 고위공직자의 거짓말이 들통 날 경우 사회에 미칠 해악(害惡)이 큽니다.” 親盧, 우월의 착각에 빠지다
그러나 ‘사초(史草) 폐기’ 의혹과 관련, 검찰은 이지원이 청와대에서 봉하마을로 넘어가기 전에 삭제가 이뤄졌음을 분명히 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이지원에서 이관작업을 하기 위해 먼저 ‘셧다운’(시스템을 폐쇄하는 조치)을 했다”며 “(삭제 등이) 전부 청와대에서 이뤄졌고 그 상태에서 복제해 봉하로 가져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문 의원 간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친노(親盧武鉉)그룹의 도덕성은 이미 여러차례 타격을 입었다.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든 권력적 수단을 다 포기한 상태에서 도덕적 신뢰 하나만이 밑천”이라고 했지만 안희정·이광재·최도술·여택수·정윤재·이강철·정윤재씨 등 친노 인사들 상당수가 범죄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도덕성이 자랑이라던 친노그룹의 비극은 국민들에게 진보세력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왔다. 그들의 양심은 왜 몰락했을까.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자들은 우월의 착각(illusions of superiority)에 친노들이 빠졌기 때문으로 본다. 기존 사회질서나 가치를 다 부정하면서도 자신의 집단만은 도덕적이라고 믿는 식이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던 노 대통령과 친노들이 2003년 말 집단탈당해 열린우리당을 만든 것도 그런 신구(新舊) 민주화 세력 간의 우월의식 때문이다. 친노가 떠난 민주당에는 결국 호남 인사만 남게 됐었다. 심지어 형님·동생 하는 친노끼리는 ‘과도하게’ 관대하다. 진보 좌파의 오리발은 정평이 나 있다.(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후보자 매수혐의로 1심,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선의(善意)’와 ‘도덕적 무죄’를 주장한다.) 검은 돈을 수수해도 ‘양심에 따라 조직과 선거를 위해 받아서 썼다’고 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정적(政敵)에게는 ‘과도하게’ 비판적이다. 이들은 과장된 우월감과 통제감에 빠져 자신들의 말과 행위, 연대(連帶)가 어떤 식으로든 사회정의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일 뿐이다. 주사위를 던질 때 사람들은 높은 숫자를 원하면 세게 던지고, 낮은 숫자를 원하면 부드럽게 던지는 경향이 있다. 결과가 그렇게 나오지 않아도 ‘주사위 숫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착각이 친노의 몰락을 앞당겼다. 자기정당화와 편향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는 덧붙이고, 불편한 사실은 지워 버린다. 사실에 자신의 결백을 돋보이게 하도록 손질을 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거짓과 진실 사이가 불투명해지고 자기정당화의 성(城)은 견고해진다. 친노들은 강금원·박연차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한결같이 “문제가 없는 정상거래”, “형과 아우 사이에 돈이 오간 것”, “사업자금을 빌린 것”이라고 항변했다. 자기정당화의 행위는 책임회피의 대표적 기제다. 잘못이 있다면 그 과오를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고 전가한다. 불가피하게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해도 구경꾼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자기정당화와 같은 심리적 왜곡을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confirmations bias)’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신념(거짓말까지도)을 유지하거나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증거(사실)를 비틀거나 왜곡, 기각,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박 전 차관은 작년 5월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로비가 제기된 뒤 대검에 출석하면서 “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서울시 공무원에게 청탁 전화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며칠 뒤 박 전 차관의 변호인은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1억6000만원을 받은 부분과 산업단지 승인 관련 1억원을 수수한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알선이나 청탁 목적으로 받은 것은 아니라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돈을 줬다는 이와 받지 않았다는 양측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법정에서도 굽히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동수(金東洙)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고위공직자들은 잘못을 감추려고 진상을 끝까지 부정하는 경향이 있어요. 강한 부정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심어 줍니다. 뇌물사건의 특성상 증거는 없고 정황과 진술만 존재한다는 점도 작용하지요. 들통 난 뒤에도 맹목적으로 여전히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 사이에서 그들은 언제나 영웅이기 때문이죠.”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꾸미는 말은 여러 수식어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더 많은 거짓말을 동원해야 한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의 저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자아고갈(ego depletion)’과 ‘어차피 이렇게 된 것(What the hell) 효과’로 거짓말의 전염현상을 설명한다. 끝까지 부인하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심리 거짓말을 하기 위해선 또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기에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는 프로이트가 말한 ‘도덕적 자아’ 내지 ‘초자아(超自我·super ego)’와 관련이 깊다. 거짓말의 욕망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면 ‘자아고갈’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거짓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는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밀어붙이자’는 심리도 작용한다. 서강대 심리학과 김인자 명예교수는 “자기 실수를 시인하는 데는 정직을 전제한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며 “겸손을 택한 후에는 통제감이 증대되어 힘(에너지)의 충족으로 오히려 평온을 경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직과 겸손만이 고갈된 자아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처음 살아보는 오늘》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했다. 〈… 미국의 한 작은 마을 수퍼마켓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한 소년이 수퍼마켓 바닥에 떨어져 있던 10센트짜리 동전을 보고 슬쩍 그것을 밟고 주변을 살펴 둘러본 다음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주워서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그 소년은 장성했고 시장 후보로 출마, 주민들 집을 방문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그가 한 집을 방문했다. 그 집의 주인 노신사는 절대로 그를 뽑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어렸을 때 수퍼에서 동전을 집어 가는 것을 자기가 보았다는 노신사는 “동전 한 닢에 대해 정직하지 못한 당신에게 어떻게 시 살림을 맡기겠느냐”였다. 그 후보는 당신 말이 맞다며 울면서 후보를 즉시 사퇴했다. …> 김 교수는 “겸손이라는 행동을 마음으로 자주 연습하면 ‘큰 정직’도 쉽게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겸손도 매일 연습하면 우리의 행동체계 안에 대안으로 저장하게 돼 위기가 생겼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겸손이 정직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출처] 고위공직자들의 어이없는 거짓말|작성자 bruga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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