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의 정체성 혼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성서, 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 전례, 성인들과 신앙 모범의 역사 등 여러 가지 전통을 ‘다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현대 세계에서 다시 교회를 세우는 길이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제3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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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석 교수 ⓒ문양효숙 기자 |
7월 9일 오후 7시, 서울 당산동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민경석 교수(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된 원인들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민 교수는 "그리스도교가 주류 사회로부터 전면적인 비판과 공격을 받고 있다”며 “이는 교회가 보수적인 집단, 희망 없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행동에 있어서 '과제'와 '주체'를 생각할 때 '주체'의 문제가 더 크다고 말하면서, 주체인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적해 있는 세상의 많은 과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 행동의 주체다. 과제가 아무리 많다 한들 나설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행동 주체를 어떻게 교육하고 의식화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주체는 교회다. 교회 자체가 불확실성에 놓여있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정체성이 무엇인지 방황할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과제 리스트를 만든다고 해도 공허할 뿐이다. 그리스도교 자체의 정체성의 확립이 행위 주체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교회론'이 문제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톨릭 정체성의 부실' … 신자마저도 가톨릭 본질 몰라"
이런 의미에서 민 교수는 오늘날 가장 주목해야 할 신학적 이슈는 '교회의 정체성 붕괴'라며 그 붕괴의 원인으로 각 교파 내부의 문제들, 계몽주의 사조 이후 서구 문화의 세속화, 제도 교회의 상대화, 문화적 허무주 등 4가지를 들었다.
민 교수는 <뉴욕타임즈> 종교 특파원 페터 슈타인펠스(Peter Steinfels)가 2003년에 출간한 <표류하는 사람들―미국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위기>를 인용해 가톨릭교회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지적했다. 슈타인펠스에 의하면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한 서로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분열, 성직자들의 성추행 스캔들,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과 대학에서의 가톨릭 정체성의 붕괴, 주일 미사 참석자의 현저한 감소, 성차별적 언어와 여성의 사제서품을 포함한 성(性)과 관련된 한계,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가진 지도력의 부재 등의 문제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다. 민 교수는 이런 문제의 핵심에 '가톨릭적 정체성의 부실'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자 자신이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잘 모른다. 노틀담, 조지타운 같은 가톨릭 학교 학생들에게 물었을 때, 학생들이 '나는 가톨릭 신자다. 나는 가톨릭 신자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나는 가톨릭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막연한 의미에서 형식적으로 복음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체적인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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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박문수 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민경석 교수,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문양효숙 기자 |
민 교수가 두 번째 원인으로 제시한 '계몽주의 사조 이후 서구 문화의 세속화'란 유물론, 무신론, 실존주의 등 계몽주의의 반종교적인 경향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인터넷 등 대중매체를 타고 신속하게 대중화된 현상을 말한다. 그는 "교회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그 여파로 지성인들에게 제한됐던 교회에 대한 비판이 대중화되었고 교회는 그야말로 '전면적인 공격'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창조론, 영혼에 대한 문제가 과학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성서 연구에도 역사비평과 같은 새로운 사조가 나타났으며, 역사적 연구를 통해 이단과 정통의 차이는 권력의 유무밖에는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교회 권위가 순수성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 교수는 "그러나 모든 것들이 권력의 유산으로 해석될 때,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남는 것, 즉 해체시킨 후 남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오염된 것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세 번째 원인으로 '제도 교회의 상대화'를 언급했다. 이는 교회의 정체성 자체가 절대적이지 않고 특별한 변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인간의 정체성이 교회에만 의존하지 않게 됐음을 뜻한다. 민 교수는 "이제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마음이나 정신이 힘들 때는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으면 된다. 또한, 지역과 국가의 복지제도가 있다"며 "교회가 할 일은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물었다. 그는 "사제와 목사들은 많은 가치가 혼재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 하다"고 비판하며 "이제는 교회가 우리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게 아니다. 정체성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제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 정체성 상실의 가장 큰 요인으로 '문화적 허무주의의 세계화'를 들었다. 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객관적 진리는 없으며 상대적'이라는 허무주의는 "모든 것을 다원화, 상대화시킴으로써 헌신에 대한 의지를 약화시키고 판단력 자체를 흐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지적(知的) 공격과는 다른 측면을 갖는데, 지적 공격은 내용이 확실하기 때문에 반박과 수용이라는 대응이 가능하지만 허무주의는 형체가 뚜렷하지 않아서 감수성을 떨어뜨린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므로 모든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인간의 지평 자체를 바꾸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절대적인 진리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진리에서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내기 위한 제3차 바티칸 공의회 열어야"
이어서 민 교수는 붕괴된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방법으로 '전통의 현대적 부활'을 제안했다. 뿌리가 없는 삶은 없으니 미래의 희망을 말하려면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제3차 바티칸 공의회'를 제안했다. 그는 "한번은 소란해져야 다시 앞날을 지시해주는 전통이 무엇인가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회의 위기를 부각시키고 함께 논의하며 정체성을 재확립하자는 것"이라며 "공의회는 전 교회를 참여시키는 이벤트며, 보편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의 문제가 포괄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에 공의회만이 이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가톨릭에서 보면 정체성의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편 그리스도교가 정말 자기 정체성의 종교인가 묻게 된다"면서 "오히려 그리스도교에서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라고 표현한 '타자성'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김 실장은 "민중신학은 그리스도가 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저 높은 곳에 있는 한 분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낮은 사람들이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볼 때 그리스도교가 과연 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종교인가?" 하고 덧붙였다.
또한, 김 실장은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데 정체성, 자기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 행동에 대한 미시 이론에서는 생각하는 것, 의지를 갖는 것이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내적으로 갈등하는 사람이 더 행동적인 데 반해,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는 나이 많고 지식을 쌓은 사람들은 덜 행동적이라는 것"인데 "주체, 정체성을 강조할 때 행동이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 교수는 "물론 행동에 갈등 의식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는 정체성이란 개인 특유의 것이 아닌 공동체적 정체성이다. 개인적으로 교회 안에 살아있는 전통을 현대성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가 관심"이라고 답했다. 또한, 민 교수는 새로움이 전통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저 새로운 종교일 뿐이라며 '역사에 대한 개방성'과 '전통'을 동시에 강조하고, 신학도 '교회에 수용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게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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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효숙 기자 |
"제도 교회가 자기 비움 실현해야 … 그것 자체가 좋은 전통 될 수 있어"
강연에 참석한 오강남 교수는 "모든 종교가 심층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앞으로의 종교는 제도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핵심이 될 것"이라며 "덴마크 같은 나라가 신 없이도 예수의 정신에 더 가깝게 잘 산다. 정체성이 더 흔들려서 제도가 사라지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은가" 물었다.
이에 대해 민 교수는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고도 영적으로 사는 게 신흥 종교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영적인 요소는 전통 속에도 많이 존재한다. 그 정수를 많이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신자 교육에 있어서 심층적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제도 교회를 통해서도 영적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 제도 없이 마음만 있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면서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참석자가 "소금이 반죽에 들어가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있으면 빵이 맛이 없다. 정체성 없음이 정체성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자, 민 교수는 "제도 교회도 자기 비움을 실현해야 한다. 그것 자체가 좋은 전통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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