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대교구에서 운영하는 <가톨릭신문>의 전임사장이었던 이창영 신부의 ‘공금횡령’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창영 신부 측에서는 검찰조사 결과 ‘무혐의’ 처리되었다고 주장하고, 인권연대 측에서는 횡령사실이 분명하며, 검찰과 대구대교구의 타협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진상조사를 다시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성직자에 의한 공금횡령이나 유용 문제가 <가톨릭신문>에만 한정된 사건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가톨릭교회 재정 의혹 사건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지난 2009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주교좌인 임동성당에서도 엇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임동성당의 주임신부와 사무장의 '본당회계, 출납부정' 의혹 사건이다. 당시 임동성당은 지난 2002년과 2006년에 걸쳐 각기 8억, 12억 상당의 개보수 및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면서 회계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2007년 새로 부임한 후임 신부를 통해 제기되었다. 당시 교구장과 교구청은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후임 사제는 곧바로 공인회계사를 통해 임동성당 자체 감사를 실시해 비리를 들춰냈는데, 당시 사무장은 2007년 8월 인수인계 당시 통장만 남겨두고 모든 통장을 파기한 상태였으며,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관련 파일도 삭제했다고 한다.
사목협의회가 2009년 전임 사제와 사무장을 경찰에 고발했으며, 경찰조사 과정에서 나중에 발견된 통장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교구청 보조금 등이 본당 사제의 개인통장으로 입금되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입출금 내역이 본당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채 공사대금으로 나가는 바람에 그 내역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금액이 유실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입건하기를 주저했으며, 교구장은 당시 교구청 관리국장으로 있던 전임 신부를 두둔하고 나섰다.
이 당시 광주대교구청 측은 후임 신부와 사목협의회 측에 서한을 보내 “교회 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을 사이버공간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까지 드러냈으며, 급기야는 전 사무장을 형사고발함으로써 교구장의 권위와 교회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며 고소취하를 종용하였고, 당시 교구장이었던 최창무 주교는 전임 사제와 후임 사제에게 ‘휴양조치’를 내리고 내용상 ‘직무정지’를 명령했다.
<가톨릭신문>과 임동성당 사건에서 일차적인 문제가 되어 고발당한 이들은 사장과 총무팀장, 본당 주임사제와 사무장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비슷하다. 본당 및 교회기관에서 재정문제로 의혹이 빚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은 ‘교회권력’의 일부를 쥐고 있는 성직자와 재정담당자 사이의 교감이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교구의 크고 작은 본당에서도 빈발하고 있으나, 사건의 규모가 크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 때문에 드러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서울대교구 어느 본당의 경우에, 본당 신축 과정에서 교구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장부상 기록된 비용의 일부가 통장 잔고와 맞지 않아 본당사제를 추궁해 보니, 본당 사제가 공금을 빼돌려 주식과 펀드에 투자해 차액을 챙기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다행히 투자비용의 손실이 적어서 원금을 회수할 수 있었으나, 해당 사제는 교구에서 ‘정직’ 조치를 받았다.
공공성 의식 희박한 성직자, 교회 재정 관리 능력이 있나?
이번 <가톨릭신문> 사태도 본질에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창영 신부가 비록 공적 자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부금 등으로 유입된 공적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았으며, 또 이에 대한 의식 자체가 희박했던 것은 천주교회 안의 그릇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자금 유입 경로를 보면, 사장 신부가 끌어들인 기부자의 기부금이 <가톨릭신문>의 통장으로 직접 입금되지 않고 교구청 관리국 통장을 경유한 것은, 비영리법인인 종교단체의 면세 특권을 활용하면서, 정작 영리법인인 신문사의 변칙적 ‘탈세’ 가능성까지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칙이 용인되는 까닭은 교구와 교구 사업체에 대한 엄밀한 구분 의식이 교회당국자에게 희박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4일 OBS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구교구청 관계자가 공금횡령 사건 기자회견과 관련해 “자체 조사결과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리며 “교구 입장에서 봤을 때는 교구청이나 신문사나 교구의 재산이기 때문에 저기서 쓰든 저쪽에서 쓰든 상관없다”고 답변했듯이, 공공성에 대한 관념이 부족한 것이 교회 현실이다.
이창영 신부는 비록 교구장과 사전에 상의했다고는 하지만, 신문사로 유입된 공적 자금을 필요에 따라서 때로는 교구를 위해, 때로는 본당을 위해, 때로는 신문사를 위해 전용했음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공적 자금의 합법적인 지출내역을 확보하기 위해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것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목적이 떳떳하면 과정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영리법인의 책임자로서 사회적 합의와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교회의 무질서한 관행’을 드러낼 뿐이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존재해야 한다’는 복음적 명령은 부와 권력을 탐하는 세상적 가치에 교회가 침식되는 것을 경고하는 말인데, 교회 당국자들이 이를 잘못 알아듣고, 법질서 바깥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추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런 점에서 비록 이창영 신부의 공금 유용이 검찰 수사 결과처럼 ‘개인착복이 아니기에 무혐의 처리’되었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모든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대구대교구는 충분한 반성능력이 있는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주교시노드 문헌인 <세계정의에 관하여>에서 “교회가 정의를 증거해야 한다면, 교회는 먼저 사람들 앞에서 감히 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눈에 정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교회 안에서의 행동규범, 교회재산, 그 생활양식 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38항)고 선포했다. 그렇기에 대구대교구가 검찰의 ‘무혐의’ 처리를 근거로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편법을 수행한 교회가 법적 기구인 검찰의 판단에 의존해 무고함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구대교구가 ‘법적 혐의’를 벗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구 자신이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이런 성찰이 결여된 상태에서 결백을 주장한다는 것은 김희수 변호사의 말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처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법적으로 결백하다면, 하느님 앞에서도, 시민들 앞에서도, 심지어 선의의 기부자들 앞에서도 과연 충분히 결백한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일례로 이창영 신부가 전인재 씨를 통해 690만원 상당의 가짜 영수증을 만들고, 여기서 발생한 금액을 당시 암투병 하던 교구장 최영수 대주교의 영명축일을 맞이해 산삼을 사드리기 위해 사목지원비 명목으로 유용했다고 하는데, 소속 사제로서 평소 존경하던 대주교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하지만, 공적 자금을 사장 신부의 자의적 판단으로 유용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이는 최 대주교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이 빚어낸 넌센스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교구이든 <가톨릭신문>이든 ‘하나인 교회’ 안의 지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인체로서 분명한 구분이 있음에도 ‘사제적 신원’이 그 구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특권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러한 교회 내 사업장의 관행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언론기관과 병원 등 교회 사업장에서 사제가 아닌 ‘전문경영인’의 도입이 절실하다. 그게 교회 체질상 어렵고, 교회의 기득권 박탈처럼 여겨져 아쉬움이 남는다면, 적어도 독립적인 ‘재정위원회’ 등의 시스템을 통해 공적 자금이 사장 신부 개인의 독단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투명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세계 가톨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문제와 바티칸은행을 둘러싼 잡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상식적인 교회 내적 사안이 언제까지나 비밀에 붙여질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라도, 비록 의도가 선하더라도 <가톨릭신문>이 겪고 있는 똑같은 상황을 교회가 반복하지 않으려면 전격적인 체질변화가 요청된다.
비근한 예로, 서울대교구의 어느 사제의 경우에, 본당 예산편성과 모든 재정의 집행은 본당사목협의회의 재정분과에서 관리하도록 일임하고, 사제는 본당 재정문제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사제 고유직무인 성사집행과 사목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사제 서품식 때 바닥에 엎드려 ‘이미 세상을 여의고 하느님과 언약을 맺은’ 사제로서 아쉬울 것도 없이 속 편하게 사제생활을 하고 있다. 어차피 본당 사제는 임기를 마치면 언제든지 본당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임 사제가 떠나면 본당살림은 여전히 본당신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본당에서 신자는 상수(常數)이고 사제는 변수(變數)다. 그러므로 본당재정에 대한 평신도 위임처럼 손쉽고 아름다운 선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문제를 포함한 교회기관의 모든 결정권을 성직자가 독점하는 것은 “사제만이 교회의 사람”이라는 오래 묵은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선언을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한다.
교회기관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인가?
마침 오는 6월 15일은 ‘사제 성화의 날’이다. 교황(敎皇)마저도 ‘교회의 황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신을 ‘종 중의 종’이라는 서명으로 겸양을 드러내고 있는데, 사제들이 ‘주인’으로 행세하려는 태도는 ‘사제 신원’과 거리가 멀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엄청난 발언을 서슴치 않고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사제들이 없지 않지만, 복음서에서 예수가 보여준 표양은 오히려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주는’ 섬기는 자의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대구대교구 횡령 의혹의 한 축에 있는 이성도 신부 역시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재임한 2년 남짓한 그 짧은 기간동안 자의든 타의든 신문사를 떠나가게 된 무려 8명이나 되는 부하 직원들과 기자들의 ‘원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인재 씨의 경우에는 이창영 신부가 연루된 횡령사건과 관련해 해고시켰지만, 다른 이들의 경우엔 사실상 뚜렷한 명분조차 갖추지 못한 채 해고되거나 사직을 강요당한 정황이 드러났다.
설령 이성도 신부 입장에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직원들이 사장신부를 모함했기 때문에 해고시켰든지, 아니면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든지, 정작 신문사를 떠나야 했던 이들이 대체로 ‘억울하다’고 여기고 있다면, 당시에 내린 자신의 판단과 처신을 다시 성찰해 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적어도 신문사의 최고책임자로서 신문사 직원들과 기자들의 일치를 도모하는데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이성도 신부는 “나와 뜻이 다르면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을 직원들에게 자주 했고, 이를 빌미로 많은 직원들과 기자들이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인재 씨의 경우에는 교회기관의 ‘평신도’로서 자금 유용과정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해고에 항의하며 작성한 진술에 따르면 “총무팀장으로서 당시 사장 신부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물론 당시 전인재 씨는 “모든 게 교회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여겼으며, 사장 신부와 교구장 주교의 상의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이 일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전인재 씨가 사장 신부의 뜻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교회기관에 생계를 걸고 있는 직원으로서 사장 신부의 명령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기관에서는 사제인 사장에 맞서 평신도인 직원 및 기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할만한 구조가 없다. 있다면, 노동조합일 텐데, 사실상 <가톨릭신문>뿐 아니라 교회 대부분의 기관에서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의 특수성 때문이라 하고, 직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선교사’라는 명분을 들이대고 있지만, 결국 교회기관의 직원들은 ‘선량한 사제’가 책임있는 자리에 앉기를 기도하며, ‘불량한 사제’가 책임자로 있는 동안에는 ‘선교 아닌 생계’를 위해 인내심을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천주교중앙협의회(CCK)와 <평화방송> 조차도 노동조합의 기능은 유실된 지 오래 되었다. 비신자들도 근무하고 있는 병원 사업장을 제외하면 교구청 및 어느 교회기관에서도 노동조합을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선한 목자’의 재량에 온전히 맡겨져 있다. 본당사무장의 처지는 더욱 안타까운 실정이다. 사제들이 본당을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에 근무하던 사무장들은 언제든지 해직의 위기에 몰릴 수 있으며, 본당을 옮길 때마다 전임 사무장을 내치고 자신이 임명하거나 예전 본당에서부터 있던 사무장을 데리고 다니는 사제들이 있고 보면, 본당사무장의 문제는 고용불안뿐 아니라 교회 재정의 자의적 남용의 온상이다.
한편 사제들의 추천을 통해 입사하는 직원들이 대다수인 교회기관의 현실 속에서 직원들이 더욱 사제들의 판단에 결박되고, 순종을 요구받게 됨으로써, 자율성 안에서 가능한 창조력이 노력이 생기지 않고, 직원들의 생기없는 ‘무탈한’ 일상이 지속될 뿐이다. 천주교중앙협의회처럼 퇴근시간이 빠른 것이 직원들에게는 그나마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이런 기관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여백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대구대교구는 납득할만한 조치와 상처입은 이들의 치유에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호소하자면, 대구대교구의 아버지다운 엄정한 진실규명과 어머니다운 품을 기대한다. 성찰과 배려 없이 <가톨릭신문>을 둘러싼 파문이 진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겨레 신문>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통해 ‘실체적 진실’의 많은 부분이 드러났지만, 정작 당사자인 대구대교구와 <가톨릭신문>에서는 ‘사실무근 주장’ 이상의 입장표명이 없었다. 이는 교회가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로 세상을 마주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좀더 겸손한 자세로 교회 자신이 정의로운지 살펴야 한다.
이번 <가톨릭신문> 공금유용(일부에서는 여전히 ‘횡령’임을 주장하고 있다) 사건은 세상에서 고립된 교회 안에서 관행화된 성직주의의 폐해가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해당 사제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공적자금이 유용되고 귀한 인력이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사회적 합의’는 무시되고, 결과적으로 ‘교회 안의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어쩌면 이창영 신부와 이성도 신부조차도 한국교회의 무질서한 관행과 성직주의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사건 진행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사제로서의 양심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와 하느님 백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사랑하자고, 좀더 정의와 공평이 자리잡은 교회로 가자고 꾀한 노력들조차 잘못된 관행으로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창영 신부는 여전히 대구에서 가장 유력한 매체인 <매일신문>의 사장직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교회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성도 신부를 ‘휴양’ 처리한 것은 대구대교구의 과도한 조치로 여겨진다. 인사권자인 교구장 주교의 입장에서 교구장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 문제’를 세상에 알린 ‘죄’가 크다고는 하지만, 교회도 사회의 일부로서 재정운영에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결과적으로 교회쇄신을 위해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한 이성도 신부를 ‘어버이다운’ 심정으로 품어 안아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해고와 복직을 반복하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어렵게 가슴앓이를 하며 회사에 남아있던 모든 직원들이 그동안 상처를 입었으며, 여전히 그 상처 가운데 힘들어 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신문>이 언론사라고 말할 때, 언론사에서는 상수가 ‘기자’이고 변수가 ‘사장’이다. 그러므로 기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언론사 운영진의 당연한 의무이며, 마찬가지로 편집권 독립 문제와 관련해 정당한 사장신부의 합리적인 인사권 집행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장신부의 취향에 따라 편집국장과 취재부장 등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면, 인사권을 통한 편집권 침해는 다반사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쟁점 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 이성도 신부의 ‘휴양조치’와 잇단 인사과정에서 이성도 신부가 임명한 기존의 취재팀장과 기획취재팀장에 대한 ‘불이익’ 논란은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어야 한다.
<가톨릭신문> 관계자는 박영호 현 취재부장의 요청으로 직제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 취재팀장과 기획취재팀장의 자리가 사라졌으며, 박영호 현 취재부장은 2008년 미국 유학시 약속한 대로 취재부장으로 임명했을 뿐, 횡령사건과 관련해 일부 기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준 인사는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 설명만으로 2012년 1월에 단행된 인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실제 박영호 취재부장은 논란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이창영 신부가 임명한 사람이고, 유학 후 원직복귀 약속조차 구두로 진행된 것이었기에, 사장도 바뀌고 언론사 사정도 바뀌는 현실 속에서 기존의 취재팀장 및 기획취재팀장과 충분한 협의 없이 그들을 평기자로 인사발령 내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인사권자인 사장 신부의 결정이겠지만, 이런 정황으로 보아 여전히 ‘보복성 불이익’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인사과정의 진위여부를 떠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자들에 대한 납득할만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수차례 사장신부가 바뀌는 과정에서, <가톨릭신문사>의 많은 직원들과 기자들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할 때, <가톨릭신문>이 정작 ‘교회의 지체’임을 주장하려면, 못난 자식도 끌어안고 잘난 자식도 다독거리며 가는 어버이다운 품을 보여주어야 한다. 흠결 많은 이 세상에서 흠결 많은 교회가 흠결 많은 직원들과 더불어 이승을 건너가는 순례자로서, 교회는 마땅히 받아 안아야 할 십자가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좀더 투명하게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청하는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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