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억압의 어제와 오늘 여자는 왜?
저자: 서진영
출판사: 도서출판 동녘
(저자 소개)
* 서진영
1960 년생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현재 자유 기고가.
(변증법적 유물론 입문), (동녘) 등을 번역하였다.
(책을 내면서)
여성 문제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다른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아주 당연한 듯이 당당하게 말한다. 여성 문제를 다룬 책은 '가장 잘
안 팔리는 책'으로 정평이 나있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심지어는 여성들 자신에 의해서도 여성 문제는 외면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 문제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직업과 가정, 사랑과 성, 남녀 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 등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그
근원에서 만난다. 여성 문제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둘러싸고 생기는 만큼 인간의
삶을 뿌리채 뒤흔드는 심각한 고통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곧 인간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무관심이며, 어머니, 아내, 딸과
같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런 무관심은 인간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가 우선하는 우리 사회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물질에 의해 자신이 배당하는 자가
당착에 빠져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물질이 그 자체로서 선으로
간주되었던 적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문자 그대로 자본, 곧 돈이 주인인
사회이다. 돈은 다른 모든 인간적인 가치와 덕성에 우선하는 현대의 신이 되었다.
돈은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었으며, 거꾸로 인간 자신이 돈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인간은 돈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 도덕, 사랑, 심지어
생명까지.
여성은 이렇게 물질이 우선하는 사회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낳고 지킬 의무를 운명으로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여성 문제는 물질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생명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의 일차적인 담당자라는
사실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여성의 지위는 그 사회의 도덕적, 정신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며, 그 사회가 얼마나 인간적인 사회인가를 재는 척도이다.
여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 사회의
가치에 가장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여성적인 가치를
얼마나 실현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 여성들이 무시당하고,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 물질이 인간보다 숭상되고 부와 명예, 권력이 생명, 인격,
인간적인 삶보다 우선시되는 우리 사회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차별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자본가와 바빠서 여성 문제 같은 것에는 신경쓸
새가 없는 사회 운동가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여성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또한 낡은 시대의 유산이 우리 사회에까지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이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공적인 세계로부터 배제되었다. 여성들은
무대의 뒤에만 속해 있었다. 공적인 세계에서는 마치 여성은 없는 것처럼 가정되었다.
여자들이 공적인 일에 참여하고 직업을 갖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겨지던
시대에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여성과 관련된 것은 사적인 것,
숨겨야 하는 것,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처럼 생각되었다.
여자들이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맞부딪친 저항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편견과 불신과 오해, 비난, 위협, 조소를 받았다. 그것은 여성
문제가 그만큼 인류 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이 발상의 전환은 아직도 많은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다.
남성들은 그것이 무언가 자신의 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고
여성들은 아직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여성 해방을 과제로 부여하고 있으며, 그것도 소수의 과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로 부여하고 있다. 누구도 그 책임과
무관할 수 없다. 나는 잘 모른다는 말 속에서도 여성 억압의 현실은 재생산되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를 가슴이 저리는 느낌 없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여성 중에도 지금 이 순간 여성 문제로 고뇌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사랑스런 딸들에게 어떤 길을 마련해
놓고 있을까? 그들의 말고 티없는 영혼이 받을 상처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앞길에 놓인 가시들을 치우는 대신 아들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딸들이 떼어 놓는 걸음걸음 마다 가시에 찔리는 것을 보면서도 무감각하지는
않은가? 혹은 한 술 더 떠서 그들의 발에서 붉게 배어나오는 피를 보고 그 빛깔을
찬탄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가장 큰 병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여성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어머니께 바치기 위해 썼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이 책을 어머니께 바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나의 불효에 대한 어떤 변명도 되지 못하고, 어머니의 한 많은 삶에
대한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지금까지 살아서 책을 쓴
것이나 이 책을 쓰는 것이 내게 요구한 숱한 어려움(나의 천학비재 때문이었지만)을
견딘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마땅히 어머니께 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몫이다. 그러나 이 책을 어머니의 몫이라고 하기에는 꺼려지는 것이 많다.
어머니의 삶의 천만분의 일도 다 담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책은 오히려 어머니께
누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못난 자식의 보잘 것 없는
선물을 기꺼워하시겠지만.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나는 그저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 책을 어머니께 바치기로 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언니에게 감사를
전한다. 언니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걱정만
끼쳐드렸던 아버지와 못난 언니를 둔 죄로 고생이 많았던 동생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귀여운 조카들에게도.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잘못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 책의 집필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 준 이호균 선배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 이
책의 출판을 결정해 주신 동녘 출판사 사장님과 좀더 읽기 좋은 책으로 만드느라
애쓰신 편집부의 강선미씨를 비롯한 여러분들과 책이 빨리 나오도록 도와준 한솔
기획의 여러분들, 그리고 바쁜 중에도 초교를 봐준 충남대 강사 이건정에게 감사를
전한다.
1991. 3. 7.
서진영
제1부 하늘에서 땅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가 불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것은 그들이
생각한 우주에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밑에 있는 것처럼 불변하는 법칙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성의 지위 변화는 여성의 예속이 특정한 시대와 사회적 조건들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낳았다. 문명 이전의 인류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의 지위가 시대와 사회마다 다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여성의 지위를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요인들은 어떤 것인가? 그런 요인들은 인류
역사의 다른 요인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남녀간의 불평등은 계급적 불평등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여성 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일 뿐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여성 억압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연구는 인간의 본성과
여성 문제의 본질에 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으며, 나아가 여성 해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실천적 과제와 결부되어 있다. 여성 억압의 기원은 여성 문제에 관한
이론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이며, 여성 문제에 관한 모든 이론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여성 억압이 처음 생겨난 때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제1장 원시 사회의 여성
1. 풍요의 여신
원시 시대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매우 불완전하다. 더욱이 인류 최초의 조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 최초의 인류와 진화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거의 대부분은 최근 30 년 동안에 이룩된 것이다.
1950 년대까지 사람들은 인류가 약 1백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59 년 거의 25 년 동안 아프리카의 들판을 헤맨 끝에 세계
최초의 인류라고 생각되는 화석을 발견한 루이스 리키와 매리 루키 부부는 이 화석이
200 만 년 전 것임을 밝혔다. 그후 다시 매리 리키는 350 만 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신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 분자생물학자인 빈센트 살리치 박사는
혈액 단백질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인류가 약 4,5백만 년 전에 침팬지와 인간의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분리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류가 출현한 것은 최소한 2백만 년에서 4,5백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인류가 문명 시대에 들어간 것은 가장 빠른 지역에서도 약 5천 년 내지 일만 년 전
정도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의 99--99.9%가 원시 시대였다.
이 아득한 옛날의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시기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인류의 발전을 선도하였다. 프래드글래인박사는 2백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신 그레사일과 150 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신 로버스트의 이빨
화석이 갈린 모양을 분석하여 그들이 과일이나 나뭇잎 등 채식을 했다고 주장했다.
억센 앞발도, 날카로운 송곳니도 없는 유인원은 최초에는 다른 동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의 두뇌는 아직 원숭이의 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최초로 사냥을 한 인류로 알려진 것은 호모 일렉투스다. 사냥에 적합한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비로소 인류는 숲 속에서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나아가 다른 동물을
지배하게 되었다.
원시 시대를 연구하는 데에는 화석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현존하는 원시 사회를 연구함으로써 옛날의 원시 사회를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이 사회들을 통해 원시 시대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 이 사회들의
대부분은 수렵과 채집을 하고 있으며 원시 농경 사회도 있다. 현존하는 원시 사회는
전체 원시 시대에서 보면 완전히 후기의 사회이다. 뿐만 아니라 문명 사회와의 접촉을
통해 변모된 것도 많고, 단지 몇몇 부족의 생활이 과연 전체 원시 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각각의 특수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신화나 전설을 분석하여 원시 시대의 삶을 추적했다. 신화와 전설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각색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통해 순수한 원시 시대의 상을
추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작업들을 통해서 우리는 원시
시대에 대해 말해 주는 몇 가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지식은 무엇보다도 우선, 문명 사회에 비해 현저히 평등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생산력의 발전 수준이 매우 낮아서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생산물, 즉 잉여 생산물을 생산하지 못했다. 모든 사회
성원들이 그때그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할 가능성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생산 도구들도 보잘 것 없었고
생산물도 적었기 때문에 각자의 소유물 역시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생산력이 낮은 사회의 생산 관계는 공산적 관계였다. 즉 모든 사회 성원들이
공동으로 일하여 그 성과를 공동으로 분배했다. 기록 영화 『부시맨』은 남자들은
공동으로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채집을 하여 어른부터 아이까지 골고루 제 몫을
분배받아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의 조직은 기본적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혈연적 조직이었다. 생산을 둘러싼 인간 관계가 혈연 관계로부터 독립될 정도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혈연적인 관계 내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어떠했으며, 그것을 규정한 요인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현존 원시 부족들에서 여성의 지위는 다양하다. 그것은 자연 조건,
노동 방식, 가족의 형태, 전쟁의 빈도 등에 달려 있다.
먼저 중요한 요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전쟁이다. 인간의 두뇌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동물과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 자기의 동료 이외에는
무서운 적이 사라지게 되었다.
먹을 것, 혹은 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위한 각 집단간의 투쟁이 벌어졌다. 직접적인
인류 내부의 살생 투쟁이 생존의 조건의 하나가 되었다. 공동체 내부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협조적이었던 이 단계에서 전쟁은 주로 부족과 부족 사이처럼
서로 다른 공동체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전쟁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수록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개인이나 집단의 위치가 강화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엘빈
토플러가 말했듯이 폭력은 경제적 요인, 지식 등과 함께 지금까지 역사에서 권력의
주요한 기반의 하나였다. 전쟁은 통상적으로 남자의 일이었고 전쟁이 생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수록 남자들의 지위가 높았다.
자연 환경도 수렵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자연 조건이
나쁜 곳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자연 조건이 성별
분업과 생산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식물이 거의 살 수 없는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남자들의 사냥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에스키모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낮았던 반면, 먹을 것을 구하기가 보다 쉽고
여자들이 거기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숲지대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훨씬 나았다.
또한 종교와 같은 문화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원시 사회에서 여성들이
주술사나 제사장, 주술로 병을 고치는 의사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성은 영적인 세계, 천계, 초월적인 힘의 중재자였다. 이런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높은 존경을 받았고 부락의 일에 대해 많은 권한을 가졌다.
또 하나의, 그리고 보다 중심적이고 주도적이며 다른 요소를 규정하는 요인은
노동의 발달과 그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었다.
노동이 발전함에 따라서 최초로 나타난 분업은 성별 분업이었다. 예를 들면 사냥이
먹을 것을 구하는 주요한 방법의 하나가 되자 이는 주로 남자의 일이 되었다. 거프는
175개 현존 수렵 채집 사회의 97%에서 사냥은 남자의 일로 한정되어 있다고
말했다.(주1) 이는 사냥을 위해서는 며칠씩 들판을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부시맨에 관한 관찰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남자들은 독화살로 기린을 쏜 후, 기린이
기진해서 쓰러질 때까지 사나흘 동안을 기린을 쫓아 들판을 헤맨다. 여자들은 아이를
돌봐야 했으므로 사냥은 당연히 주로 남자의 일이 되었다. 여자들은 집 주위에서 채집
활동을 했다. 그녀들은 수백 가지 식물의 다양한 이용법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지식이 여성들로 하여금 원시 농경을 시작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노동 분업은 남녀의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즉 그 사회의
주요한 산업을 맡은 쪽이 주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현존 원시 사회를 보면
그 사회의 생계 유지를 채집에 의존할수록 여성의 지위와 권리가 높았고, 사냥에
의존할수록 남자들의 권리가 강했다.(주2)
수렵이 도구와 생산력의 발달을 주도한 중요한 산업이었던 많은 초기 수렵 사회에서
여성들은 부차적인 위치에 있었다.(주3) 그러나 종속 정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대개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렵 사회라 하더라도 대개 채집 노동이 식량
조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원시 부족들을 연구한 결과,
고기는 수렵 사회의 경우에도 총 음식물의 20--40%정도만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콩,
이파리, 뿌리, 호두, 버섯 등의 식물로 충당하였다.(주4) 특히 사냥을 할 수 없는
건기에는 식량의 대부분을 여자들이 조달했다.
어느 곳에서나 가족의 생계는 떠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남편이나 아들보다는 집에
머물러 있는 여자들의 노고에 더욱 의존하고 있었다. 남자들이 짐승들을 고되게
쫓아다니다가 빈손으로 스스로 배를 곯으며 집으로 찾아드는 것은 실제로
원시인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성귀는 남자들뿐 아니라 나머지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식품이었다.
원시 농경의 발달과 함께 여성의 지위는 보다 높아졌다. 원시 농경을 발명하고
주도한 것이 채집을 맡았던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존 원시 사회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서도 나타나는데, "여성이 평등하거나 남성보다 약간 우세한 여성
중심적 사회는 초기 수렵 사회보다 초기 정착 사회에서 상당수 발견"된다는
것이다.(주5)
여성들이 원시 농업을 창안하고 주도했으며 따라서 생산 노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연구 보고들에서도 나타난다.
여성들은 식물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곡괭이와 같은 도구를 발명하였다. 호주의
센트럴 빅토리아의 원주민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쓰여진 보고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즉 그 지역에서는 여자와 어린이들이 고구마와 같은 식물의 뿌리를 캐내기
위해서 막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막대기는 불로 달구어 단단하게 만들고, 그 끝을
뾰족하게 간 것이었다. 이렇게 뿌리를 캐기 위해 땅을 파헤친 것은 농경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사냥한 짐승을 가축으로 사육하는 법과
씨를 뿌려서 작물을 거두는 원시 농경 기술까지도 발명해 내었다.
원시 농경을 여성들이 주도했다는 것은 신화나 제사 의식에도 반영되어 있다.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농경과 관련된 여러 제사 의식에서 제사장으로 주역을 맡았으며,
신격화되기도 했다. 그리스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와 세메즈라든지 독일 풍요의 여신
프리카 등이 그 예이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농업 신으로서 신모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주6)
주몽이 부여에서 위태롭게 되어 남으로 망명할 적에 신모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가라고 싸주었으나 이별하는 슬픔에 그 보리 종자를 잊어버렸던 것을 신모는 사자인
비둘기로 하여금 주몽에게 보냈다.
원시 농경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생산에서의 역할과 여성의 지위와의 상관
관계를 잘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노동을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주요한 산업의 담당자인가, 생산력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생산 노동에서의 중심적인 역할은 단순히 여성들이 양적으로 많은 노동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그 사회의 노동 중에서 중심이 되는 산업과 분야를
담당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생산이
갖는 의미만으로 여성의 지위를 설명할 수 없다면서 그 이유로 만약 그것만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19세기의 노동자나 농민의 생활과 사회적 지위가
훨씬 나아져야만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첫째로 무계급 사회인 원시사회와
계급 사회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계급 사회는 소유를 통해 자신은 노동하지
않고 타인을 착취할 수 있으므로, 소유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로
19세기 노동자나 농민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았던 것은 여성들이 양적,
시간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 사회의 부차적인 산업과 노동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에서의 역할이 여성의 지위에 규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생산에서의 역할만이 여성의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자연
조건, 가족의 형태, 전쟁의 빈도와 폭력의 필요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총화로서 인류
발생 초기부터 발달해 온 문화 등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 많으며, 그
때문에 각 사회의 여성들의 삶이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요소들 중에서 생산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다른 요소들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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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시 시대의 가족
1) 가족, 자연의 요구
원시 시대의 여성의 지위를 결정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가족의 형태이다. 원시
시대의 가족은 최초의, 유일한 사회 조직이었다. 가족도 다른 사회 조직처럼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그러나 최초의 가족이 어떤 모습이었을까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매우 적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어느 정도 고등한 동물에서는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동물들이 얼마간 지속적인 가족을 형성하는 가장 일차적이고 보편적인
요인은 임신한(혹은 부화중인) 암컷과 새끼의 부양이다. 동물들은 각기 고유한 종족
번식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자연에 적응해 온 오랜 기간에 걸쳐
본능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정적이다. 암수가 짝을 짓는
형태나 새끼를 부양하는 방법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암컷의 임신(혹은
부화) 기간이 길고 새끼를 적게 낳을수록, 그리고 새끼가 태어나서 자립할 때까지의
기간이 길고 태어난 후에 배워야 하는 것이 많을수록 가족 관계는 지속적이고
가족간의 정서적 유대 관계도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보다 고등한
동물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원숭이는 새끼를 오랫동안 키우면서 먹이를
얻는 법, 위험을 피하는 법 등을 가르친다. 고등 포유류에서는 대개 수컷이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우리는 대부분의 포유류들에서뿐 아니라 조류나 어떤 종류의
파충류, 양서류, 심지어 곤충들에서조차도 눈물겨운 모성애와 부성애를 확인할 수
있다. 또 가족의 형태나 지속성은 먹이를 취하는 방식, 생존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주7) 예를 들면 호랑이의 경우 새끼를 낳은 직후부터 암컷이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주로 혼자서 사냥을 한다는 사실은 암컷만이 새끼를 돌보고 수컷은 혼자서
살아가는 그들의 생존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맹수의 먹이가 되는 보다
약한 초식 동물들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 새끼를 공동으로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물의 가족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가족 역시 인간이라는
종이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즉 가족의 가장 기본적이고
흔들릴 수 없는 기초는 남성과 여성이 합하여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고, 자식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물질적, 정신적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임신 기간과 산후 회복 기간이 길고, 적은 수의
자식을 낳으며, 자식의 성장기가 길고, 또한 아무리 단순한 인간 사회라도 언어, 전통,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많은 노력가 노동(점점
많아지는)이 필요하며 이 노동은 가족간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과 생활에는 감정적 유대와 상호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요컨대 자식의 성장과
성인의 생활에 필요한 상호 협력과 의존이 인간 가족의 지속성과 단일성, 강력한
감정적 유대의 궁극적인 기초이다.
물론, 남녀의 결합은 종의 번식을 위한 의식적인 의도에서라기보다는 자연적인
충동에서 비롯된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의 목적이 곧장 자녀의 출산은 아니다. 오히려
보다 많은 경우 자녀의 출산은 결혼의 결과이며, 때로는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에게 이 부산물을 어쩌면 결혼 자체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도록
함으로써 역으로 결혼을 지속하도록 만들었다.
2) 가족의 옛 모습
요컨대 가족은 한편으로는 종족 보존의 본능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녀를 기르고
생활하기 위한 남녀의 협업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은 각각의 사회와 역사적
시기에 있어 이에 합당한 형태를 향해 발전해 왔다. 그 과정은 일률적이지 않다. 자연
조건, 노동 방식, 문화적 요인들이 가족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현존 원시 사회에서나,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 사회들에서나 가족의 모습은 실로
천차 만별이다. 원시 사회의 가족의 형태는 군혼과 단혼, 모계제와 부계제, 모처제와
부처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현존 원시 사회를 볼 때 수렵^5,23^ 채집 사회의 가족 구성은 절반 이상이 남편,
아내, 자녀들로 구성된 소규모의 핵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주8) 대규모의
가족은 농경이 발달된 이후에 비로소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가족이 자년 양육을 위한 부부의 협력에 기초해 있으며, 그 원초적인 형태가
집단혼보다는 단혼에 보다 가깝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노동 방식의 변화가 가족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단혼을 현재의 일부일처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인간의 가족은
매우 원시적인 상태로부터 발전해 왔다. 초기의 인류에게는 성교에서 어떤 금기가
없었을 것이다. 즉 처음에는 형제 자매간의 성교는 물론, 부모와 자식간의 성교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성서를 보면
형제 자매간의 결혼은 다반사이고 아버지와 딸의 성교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근친혼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불과 수백 년 전의 일이다.
신라 시대 왕실의 경우, 기록이 확실한 53건의 결혼 중 13건이 부계 혈족혼, 즉
근친혼이었는데, 신분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원시
시대의 관행이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 시대에도 광종, 덕종, 문종의
왕비는 그들의 친 여동생이었으며 경종, 성종, 예종의 왕비는 그들의 종자매였다. 고려
왕실의 기록에 나타난 왕비 51 명 중에서 동성혼이 22 명이나 된다. 기록되어
전해오는 것은 이러한 왕실의 혼인 뿐이지만, 근친혼의 풍습이 왕실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을 것임은 명백하다. 근친혼을 금지한 것은 고려 11 대 문종 때부터(1080
년경)이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근친 상간은 조선조에까지도 답습되어, 근친혼을 곤장
80--100 대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주9)
이런 원시 상태로부터 근친혼에 대한 금기가 발달해 왔다. 이는 한편으로는
근친혼의 유해한 우생학적 결과를 막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와 자식, 부부와
형제 자매의 관계가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생겨났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혼동은 가족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또 단혼과 함께 여러 가지 형태의 집단혼을 발견할 수 있다. 단혼은 부부의 성적
자유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결혼은 보다 쉽게 해체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푸에블로 서쪽에 거주하는 호피(Hopi)족의 경우, 부부 관계는 쉽게 해체될 수
있고 이혼율이 약 34%였다고 한다.(주10)
이때의 남녀 관계가 자유로왔다는 것은 부족 국가가 출현한 이후에도 전해 내려온
원시 시대의 유습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제사
의식에서 보존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와 부여의 백성들은 10월의 제천 행사 때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무리를 이루어 연일 먹고 마시며 노래와 춤으로 밤을 지새웠으며, 이
기간은 "귀천이 없는 절기"로서 이 기간 중 남녀간에 생긴 애정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주11) 신라에서도 제천 행사 때에는 남녀가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즐겼다. 고구려인들은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곧 결혼을
하였으며, 이러한 풍속은 이미 유교 윤리를 익힌 중국인들의 눈에 음란하게 보일
정도였다.
또한 고려 시대에도 자유로운 남녀 관계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많이 남아 있었다.
중국 송나라 서경이 고려 사회를 보고 쓴 '고려도경'에는 남녀가 구별없이 시냇가에서
옷을 벗고 목욕하며, 결혼하는 데 있어서 "가볍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고 놀라고
있다. 고려 시대의 종교 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에서도 뭇 남녀가 집단적으로 자리를
같이하여 즐기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 유교를 숭상한 양반들에 의해 '남녀 상열지사'라고 매도당한 고려
시대의 고려 장가는 자유로운 남녀 관계를 전해준다.
얼음위에 댓잎자리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얼음위에 댓잎자리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정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하략)(주12)
(전략)
삼장사에 불공드리러 갔더니
그 절 주지스님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거들랑
조그만 상좌중아 네말이라 하리라
더러듕성 다리러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위 다로로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울창한 곳 없거니
(하략)(주13)
원시 사회의 초기부터 부부와 자식으로 구성된 단혼 가족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리라는 가정은 기존의 모계제나 부계제 가족에 대한 상과는 맞지 않는다.
모계제와 부계제의 문제에 대해 로위는 순수하게 모계적이거나 순수하게 부계적인
사회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를 전혀 계산에 넣지 않는 모계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계제와 부계제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로위는 가족은 모계와 부계 양계적 원칙으로, 동족
조직은 단계적 친척 관계로 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가족 단위는 언제나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의 자식들로 구성된 반면, 친족 조직은 모계나 부계 어느 한 편으로
되었다는 것이다.(주14) 여기서 모계냐 부계냐는 가족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 상속이 모계를 따르는가 부계를 따르는가를 규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친족 제도가 모계냐 부계냐를 결정한 주요한 요인은 그 사회의 주요한
산업과 그 담당자가 어느 쪽이냐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물려주어야 할 기술과 전통,
사회적 유산 혹은 귀중품이나 도구 등 재산의 소유자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모계냐
부계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머덕의 '민족지'에 따르면 약 862개의 원시 사회 중 모계제
사회는 약 100개 정도인데, 이는 원예 농경의 형태를 갖는 호미 경작 사회이고,
부계제는 대개 잉여물이 생기는 농경이나 가축 사육 사회라고 한다.(주15) 원시
농경의 담당자가 주로 여성이었고, 농경, 목축의 담당자가 주로 남성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는 식량 조달에서 남녀의 위치와 상속의 관계를 드러내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원시 시대에 부계가 발달하는 주요한 요소는 식량을 획득하는 데서 남자가
차지하는 위치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역시 그 자식과 강력한
유대로 묶였다.
그러나 또한 앞의 예로부터 모계제가 좀더 원시 시대 초기의 가족 형태이고,
부계제는 보다 후기의 형태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는
단계는 원시 시대가 문명으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원시 농경보다 후기이다. 또한
부계는 부부 관계가 보다 안정적이고 단혼이 보다 확립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부계는 모계 가족보다는 좀더 후기에 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원시 시대의
대부분의 경우에 여성들이 식량 획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모계 가족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모계 씨족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러한 모계 씨족의 존재는 현존하는 원시 부족의 경우 외에도 여러 나라의 신화와
전설, 단어의 어원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대개의 건국 신화나 영웅 설화를 보면
그 어머니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 명백하지만 아버지는 여자가 길을 가다 알을 주워
먹고 자식을 낳았다든지 하는 식으로 명백하지 않으며,(주16) 부권이 확립된 후세에
와서야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식으로 덧붙여진 경우가 많다.
또 단군 신화의 '웅녀'이야기, 성명의 성자가 여자가 낳았다는 뜻을 가졌다는 사실,
중국의 고대 성씨에 여자 변을 가진 성씨가 많다는 것 등등이 모계 씨족의 존재를
말해준다. 유태인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관습상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성이 같아선
안된다.(주17)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신라 상대의 석씨와 김씨 제왕이 박씨인 혁거세의 제사를
지낸 것은 혁거세가 그들의 외조나 외조의 외조가 되기 때문이었으며, 신라 하대의
박씨왕이 김씨왕의 제사를 행한 것도 같은 이유였는데, 이는 모계의 유습이다. 이러한
모계의 유습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까지 남아 있었으며 거의 완전히 부계로 바뀐
것은 조선 시대 후기에 와서였다.
3) 장가 오는 남자
노동에서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과 함께 가족이 여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모계제로 인해
여자는 동일한 씨족에 속하고 남자는 다양한 다른 씨족으로 흩어진다는 사실은 원시
시대의 여성 우위의 현시적 기초였다. 즉 모계 씨족의 족외혼 규칙에 의해 남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이 태어난 씨족을 떠나 다른 씨족으로 옮겨 갔다.
성경을 보면 창세기 2장 24절에 "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또 리빙스턴은 '남아프리카에서의 전도 여행과 탐험'에서
여성들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토인 부족의 생활을 전해주고 있다.(주18)
특히 잠베이의 바론다인들은 여성들이 평의회를 열며 결혼한 남자는 자신의 부락을
떠나 아내의 부락으로 옮겨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는 장모에게 평생 동안 나무를
공급할 의무를 진다. 만일 이혼하면 자식은 어머니의 소유로 남는다. 그 대신에
여자는 남자를 부양한다. 몇몇 부부의 경우이긴 하지만 남자는 결코 반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리빙스턴은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여자를 노엽게 한 남자에게는
굶기는 벌을 내렸다. 또한 당시 대우혼이 행해지던 이러쿼이 세네아카족 내에서
수년간 선교 활동을 한 A.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여성들은 다른 씨족의 남자를 남편으로 맞아들였다. 모든 물건은 공유였으나 너무
게을러서 자기 몫의 일을 하지 못하는 남편이나 애인은 가련하게도 여기서
제외되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자식과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때고 명령
한마디면 봇짐을 싸고 나가야만 했다. 그가 이 명령에 거역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거역하고서는 배겨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씨족으로 돌아가든가(대개의
경우 그랬지만)다른 씨족에서 새로운 혼인 상대를 찾아야 했다. 여성은 씨족 내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최대의 권력자였다. 여성들은 필요할 때는 족장을 파면하여 일반
졸병으로 만드는 일까지도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할 수 있었다.(주19)
이런 모계 사회의 유풍은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의 데릴사위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해모수와 유화 아씨가 야합하는 대목을 보면 "서민은
서민과 결혼하나 남자가 반드시 여자의 부모에게 가서 폐백을 드리고 사위됨을 재걸
삼걸 한 위에 그 부모의 허락을 얻어 결혼하며, 그 결혼한 뒤에는 남자가 여자의
부모를 위하여 그 집에 머슴이 되어 3 년의 고역을 다하고 딴 살림을 차리어 자유의
가정이 되는 것인고로"(주20)라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 여전히 모계 씨족 사회의 결혼
풍속이 잔존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풍속은 조선 전기까지도 약간의
모습을 달리하면서 꾸준히 유지되었다. 즉 고려 시대까지는 결혼한 딸과 사위와
외손자를 포함하는 가족, 사위의 입장에서 보면 장인, 장모를 포함하는 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장가간다는 말도 '장인,장모의 집으로 간다'는 뜻이다.(주21)
이러한 제도는 조선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유명 무실하게 되었는데, 그 명맥만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즉 혼례시 신랑이 신부집으로 초행을 하여 3일을 지내고 함께
시집으로 가는 풍습이 그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문이나 지역에 따라서는
석달이나 때로는 해를 넘겨 '달묵이', '해묵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주22)
현존하는 원시 사회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원시 농경 사회는 모계제이며,
대부분의 모계제나 원예 농경 사회에서는 모처제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주23) 원시 사회의 모계제는 여성의 생산 노동에서의 위치와 함께 원시
시대 여성의 높은 지위를 결정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4)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원시 사회의 여성의 지위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여성의 모성이
존중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생산과 가족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의 반영이며, 또한
당시의 평등한 생산 관계의 반영이다. 즉, 생산이 다른 사람을 최대한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삶 그 자체를 위해서 행해졌기 때문에 모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동을 강요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출산은 언제나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로서 그것에 관한 많은 전통적 관례가 있으며
흔히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원시 사회는 모성이 법과 관습에 의해 보호되고 신성한
대상으로 간주되며, 그녀 자신은 자신의 처지에 긍지와 행복을 느끼는 이상이
실현되는 사회였다. 말리토프스키에 따르면 멜라네시아의 여자들은 한결같이 자식에
대한 열렬한 갈망을 보여주며,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이러한 그녀의 느낌을
지지하고 그녀의 성향을 조장하는 동시에 관습과 관례에 의해 그것을 이상화한다.
관습에 의해 임신부는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되며, 이는 원주민의 실제적 행동과 감정
속에서 완전히 현실화되어 있는 이상이다.
많은 원시 사회에서 월경 중이거나 출산을 맞은 여성들을 공동체 전체가 보호하고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부락내에 산옥을 두어 월경 중인 여자, 임산부들이 들어갔다.
월경 중인 여자는 8--9일, 산부는 50여일 정도를 여기서 지냈다. 이런 풍습은 모자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책임과 출산의 공동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월경과 출산을
존중하여 여자가 성장하여 '월경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씨족신의 축복을 받는
사건으로 여겼다. 몇 년전 일본의 오끼노시마에서 행해진 풍속 조사에서, 첫 월경을 한
딸을 집안과 마을에서 축복하는 행사가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주24) 월경을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우며 불결하게 여기게 된 것은 문명 사회 이후의 일이다.(주25)
문명 사회는 임신 역시 부끄럽고 사적인 일로 치부한다. 임신한 여성의 모습은 보기
흉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20세기 초 한 독일의 신사는 여자에게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주지 말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의회의
연단에 선 임신부를 상상해 보는 것이 좋다. 얼마나 '비미학적' 인가."(주26)
그러나 인류 최초의 미술품에 속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문명 사회와는 상반된
원시인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의 하나인 이 여인상은 풍만한
젖가슴과 불룩한 배를 한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생명의
생산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숭배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태어난 아이에 대한 공동체의 공동 책임이라는 의식과 이를 강조하는 문화적
양식들도 발전했다. 일본의 민간 전승에는 '치오야'라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부락
내의 임산부의 동년배, 즉 같은 연령층의 여성이 태어난 아기에게 첫 젖을 먹이는
것을 말한다. 태어난 아기가 그 생모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속하는
것임을 표현하는 풍속이다. 출산과 수유 뿐만 아니라 양육도 공동화되어 있었다.
일례로, 일본에는 지금의 탁아소와 같은 전문 양육 시설이 있었다. 또한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집회소 제도와 상호 교육제가 있어서
여자 어린이와 남자 어린이는 각각 집회소에 들어가 각종 상호 훈련을 하고
어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함께 성인식을 치르고 어른 집단에
낄 수 있었다.(주27)
5) 아버지, 성실한 보모
대개의 원시 사회에서는 남성 역시 임신한 여성의 부양에서 양육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역?을 공유하고 있었다. 현대 유럽의 부계 사회와 멜라네시아의 원시
모계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비교 분석한 말리노프스키의 연구에 의하면 현대의
부계 사회보다 원시 모계 사회에서 아버지와 자식들이 훨씬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었다.(주28) 현대의 부계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권리가 확고한 데 반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매우 소원하다. 이에 비해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모계 사회에서의 아버지는 그 반대였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멜라네시아의 아버지들은 가장도 아니요, 그의 혈통을 자식에게 전승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생계의 공급자도 또한 아니다. 멜라네시아에서의 '아버지의 위치'는
순수한 사회적 관계다. 이런 관계에서 아버지가 맡은 역할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자식에 대한 그의 의무일 뿐이다. 아버지는 '아이를 팔로 받기 위해' 존재한다.
트로브리안드의 전형적인 아버지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보모다. 그는 어린 아이가 아직
유아일 때에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보모이고, 그가 아동이 되면 그들과 놀기도 하고
업어주기도 하며 그들의 기호에 맞는 재미있는 오락이나 일을 가르쳐 준다. 사회적
전통은 이러한 일들을 아버지의 소명으로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아버지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의무를 열심히, 그리고 기꺼이 수행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말리노프스키는 "일반적인 남성에 있어서 그들이 자식에 대하여
애정적이고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명백하다"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자식에 대한 아무런 특권이나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는
그러한 것들을 획득하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특권이 없음으로해서 그는
아버지로서의 본능을 자유스럽게 따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게 대한 남편의 공동 책임이라는 의식은 이를 강조하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들을 만들어냈다. 그 중 유명한 것으로 원시인들 사이에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쿠바드'라는 풍속이 있다. 이는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그 남편이 '공동
책임'이라는 강력한 의식에서 같이 진통하고 같이 앓아 눕는 풍속을 말한다. 기록 영화
'몬도가네'를 보면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가까운 곳에 있는 물 속에 들어가 진통의
괴로움을 같이 앓으며 고행하는 아프리카인의 모습이 나온다. 이런 풍속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메리카, 인도, 중국, 우리나라 등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인도에서
남편은 아내가 진통을 시작하면 여자의 옷인 '사리'로 바꿔 입고 머릿수건을 동여맨
채, 산실에 같이 누워 진통하는 흉내를 내는 습속이 있었다. 중국의 운남성이나
지주성에서도 남편은 한 달 내지는 40일간 산부와 함께 누워 산욕의 괴로움을
같이한다. 유럽의 피레네 산맥 지방에서도 이런 풍속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세계 공통적인 풍습이 발견된다. 평안도 박천 지방에서는
'지붕지랄'이라 하여,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은 그 산실의 지붕위에 올라가
용마루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또한 '상투잡이'라는 풍속도 이와 같은
것이다. 산모는 아이를 낳을 때 삼신 끈을 붙잡고 힘을 주며 아이를 낳았는데, 이 삼신
끈으로 남편의 상투를 이용한 것이다.
남편은 산실의 문 밖에서 문기둥에 버티어 서서 창호지를 찢고 산실 안으로 상투를
처박는다. 산모는 이 상투를 쥐고 서서 힘을 쓴다. 필사의 안간힘일 것이니 오죽
아팠을 것인가. 혹 상투가 짧거나 늙어서 약해졌을 때는 '상투빌이'라 하여 가발로 된
상투를 빌어다가 야물게 턱을 걸고 산모로 하여금 붙들게 한다.
이 상투 삼신승 풍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민요도 전해져 오고 있다.(주29)
우습세라 우습세라
젊은 각시 아날때는
제 남편의 상투쥐고
울콩불콩 낳는다고
또한 상투빌이에 관한 민요도 있다.
이집저집 다니면서
상투 상투 빌려 주소
아 낳으면 은공 갚아
천년만년 잊지않고
그 은공을 갚겠다고
앞길 바빠 뒷길 바빠
마루 위에 앉아서는
상투꽁지 길게 매고
문창구무 한구멍에
들이들이 밀었단다.
각시각시 상투 쥐고
이,이,힘 쓰면서
애를 쓰며 당기더니
상투머리 쑥 빠지자
당콩 같은 빨간 애기
말똥 말똥 빠져났네.
이런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의 출산 후의 어떤 부담을
공유하게 하거나 최소한 그녀를 동정하는 행위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사회적
장치들이 모든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쿠바드는 물론 현대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히 불합리한 관습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깊은 의미와 필수적인 기능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사람이 결합하여 인간 가족을 이룬다는 것을 강조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도덕적으로 매우 친밀하게 만들며 전통적인 관습과 규범을 통해
남성으로 하여금 자식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아이가 아버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쿠바드는 또한 출산이라는 창조 행위에 동참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열렬한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직접적으로 아이와 결부되어 있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자식을
낳는 과정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 원시 사회의 아버지들은 쿠바드를 통해 창조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아이와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고, 태어나고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명백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쿠바드는 또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도 문명 사회와는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이브가
죄의 대가로 출산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성경 구절이 상징하듯이 문명 사회에서는
출산의 고통이 여성의 저주받은 표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쿠바드는 출산의 고통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모든 위대한 것의 창조에 따르는 필수적인 고통으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들은 자신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임신출산에서 겪는 고통은 그들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있기까지 그 어머니의 무한한 노고가 어려있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6) 우주 창생의 어머니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생산 노동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함께 당시의 지배적인 사회
조직인 친족 집단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원시 공산제 여성의 지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은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존경을 받았다.
여성이 가족 단체의 지휘자이며 선도자였다. 따라서 또 여자는 집안에서나 가족의
일과 종족의 일에서도 높은 존경을 받았다. 여자는 싸움의 중재자이며 재판관이고
또한 사제로서 예배의 일까지 맡았다.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 속에는 무엇인가 신성한 성질, 예언자적 성질이 숨어 있다고 독일 사람들은
믿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여성의 충고를 존중하고 그녀의 의견을 듣고 따른다."(주30)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이 제사를 주관하였으며, 무속 신앙에 나오는 산신, 삼신, 풍신,
용신, 태양신 등과 신라의 일급 호국신인 나림, 혈예, 골화의 3산의 신도 여성이었다.
또 삼신 할머니, 청실홍실 할머니 등의 이야기는 원시 시대에 씨족 내의 대소사에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전해준다. 제주도에 전해오는 한 민담은 당신
사람들이 여성을 우주 창생의 어머니로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옛날 선분대 할망이라는 키 큰 할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키가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쳤다 한다 이 거파는
'성산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소섬을 빨래돌 삼아' 빨래를 하고 치마 자락에다 흙을
담아 나르다가 흙이 새어 오늘의 소화산을 이루기도 하고 육지에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주먹으로 봉우리를 쳐서 움푹 패이게 하거나 오줌을 누어 흙이 떠내려 가 섬을
만들기도 하는 등 우주 창생의 어머니였다.(주31)
이런 설화들은 모계 사회의 지도자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친근감 있는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 모계 사회의 모권은 가부장제 사회의 부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폭력이나 강제, 부에 기초하지 않은 자연적인 권위를 가진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태내에서 여성의 억압과 착취를 가져오는 새로운
힘이 생겨나고 있었다.
(주)
1. k.gough,the origin of the family, 정현백, (새로쓰는 여성의 역사, 원시고대편)
여성사 연구회, '여성2' 창작사, 1988, 페이지 269에서 재인용.
2. 정현백, 위의 책, P. 265.
3. K.GOUGH, 앞의 책, 정현백, 앞의 글, P. 269에서 재인용
4. 정현백, 앞의 글, P. 267
5. 정현백, 앞의 글, P. 276
6. 김철준, '동명왕편에 보이는 신모의 성격', '한국고대사연구', 지식산업사, 1975,
P.37
7. 예를 들면 사막 ?의 암껏은 한 낮의 사막의 열기를 참으면서 알을 품으며,
수컷은 부화된 새끼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80킬로나 떨어진 곳가지 날아가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무릅쓰고 앞 가슴털에 물을 담아와서 개끼들에게 먹인다.
조류에서는 새끼를 기르기 위한 암수의 협력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어떤 새들은
알을 번갈아 품으며, 어떤 새들은 암컷이 알으 품는 동안 수컷이 암컷에게 먹이를
가져다 준다. 또 아프리카 청개구리는 암컷이 낳은 알을 수컷이 지킨다.
8. 정현백, 앞의 글, P. 263
9. 김용숙, '한국 여속사', 민음사, 1989, P. 27, PP. 60--61.
10. 정현백, 앞의 글, P. 272에서 재인용.
11. '북사' 고구려진, 한명숙, '조선시대 유교적 여성관의 원리론적 고찰',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 학위 존문, 1986, P. 48에서 재인용.
12. 만전춘별사 의역, 고정희, '한국여성문학의 흐름', '또하나의 문화 제 2호',
평민사, 1986, P.100에서 재인용.
13. 쌍화점 의역, 위의 책, P. 101
14. lowie,priitive society, 말라노프스키, 한완상 역, '미개 사회의 성과 억압',
세계사상전집 20, 삼성출판사, 1981, p. 125에서 재인용.
15. george peter murdock, ethnographic atlas, 1967, 정현백, 앞의 글에서
재인용.
16. '흠정 만주원류고'에 나온 청조 발상사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맏이
은고륜, 둘째 정고륜, 막내 불고륜의 세 선녀가 있어 장백산의 천지에서 목욕하더니
신작이 붉은 열매를 물고 와서 막내 선녀의 옷 위에 놓으매 선녀가 그것을 먹고
잉태하여 아기를 낳고 이름을 포고리옹순이라 부르니 이 분이 만주 청횡계의
시조니라."
17. 아우구스트 베벨, 선병렬 역, '여성과 사회', 한밭, 1983.
18. 같은책
19. 모간, 최달곤, 정동호 공역, '고대 사회', 현암사, 1978.
20. 신채호, '조선 상고사 상', 삼성 미술문화재단, 1977.
21. 최재석, '한국 가족 제도사 연구' 일지사, 1983.
22. 박혜인, '전통적 혼례의식에 나타난 한국 가족의 성격', '여성문제연구'.
23. 정현백 앞의 글
24. 묵자 책 29 참조
25. 구약 성경에 보면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출산한 여성까지도
부정하다고 하였다. "여인이 피를 흘리는데 그것이 월경인 경우에는 7일간 부정하다.
그 여인에게 닿은 사람은 저녁 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 여인이 불결한 기간
중에 누웠던 잠자리는 부정하다. 그 여인의 잠자리에 닿은 사람은 옷을 빨아입고
목욕을 해야 한다. 그래도 저녁 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 여인이 않았던 자리나
않았던 것 위에 있는 물건에 닿은 사람도 저녁 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나 앉았던 것 위에 있는 물건에 닿은 사람도 저녁 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 여자와 한 자리에 든 남자는 그 여인의 불결이 묻었으므로 7일간
부정한다. 그 남자가 누웠던 잠자리도 부정하다.(구약성서 레위기 15장 19--24절)
야훼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여자가 아이를 배어 사내ㅔ 아이를 낳았을 때는
월경하는 동안부정하듯이 한 주간 부정하다. 그리고 여인은 30일 하고 3일간 피로
더러워진 몸이 깨끗하게 되기까지 성소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계집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두 주간 월경하는 동안 부정하듯이 부정하다. 그리고 피로 더러워진 몸이
깨0끗하게 되기까지 66일간 집에 있어야 한다.(레위기 12장 1--6절)."
26. 베벨, 앞의 책, p.300.
27. 묵자 책 31쪽 참조
28. 말리노프스키, 앞의 책. pp. 31--37 참조
29. 이규태, '이규태 걸작 선집',pp.204--206.
30. 베벨, 앞의 책, p.30.
31. 이부영, '한국 민담 속의 여성 원형상', 김열규 외, '여성의 전통상', 민음사,
1985. pp.80--82.
제2장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1. 생산력의 발전과 잉여 생산물의 발생
여성의 지위 변화는 새로운 생산력과 분업의 발달에 따라 일어났다. 원시 시대
말기에 이르자 원시 농경과 수렵 대신 본격적인 농업과 목축이 주요한 산업이 되었다.
농업과 목축의 발전은 생산력을 엄청나게 발달시켰으며, 이러한 생산력의 발전은 낮은
생산력에 기초하여 느리게 발전하고 있던 원시 사회를 뒤흔들어 버렸다.
그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잉여 생산물 이 생겼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시
시대에는 한 사람이 자신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낮은 생산력과 적은 사?거 부가 당시의 평등한 생산 관계, 가족 관계의 토대였다.
그러나 이제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이는 공동으로 분배되지 않고 그것을 생산한
가족에게 돌아갔다.
구세계(유럽: 역주)에서는 가축을 길들이고 사육함으로써 전대미문의 부의 원천이
생겨났고, 전혀 새로운 사회 관계가 발생하였다. 미개의 낮은 단계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정적인 재산은 대개 집, 옷, 조잡한 장신구, 쪽배, 무기, 단순한 종류의
가재 도구 등 음식물을 획득하고 조리하는 도구들이었다. 식량은 그날그날 새로
획득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말, 낙타, 나귀, 소, 양, 염소, 돼지 등을 사육하게 된
유목 민족들(인도의 5개 강 유역, 갠지스강 유역과 당시에는 물이 풍부했던
옥수스강,약사르테르강 유역 초원의 아리아인들,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 유역의
셈인)들은 그저 조금만 보살펴 주고 지켜 주기만 하면 계속 번식하면서 우유와 고기
등의 식량을 가장 풍부하게 공급해 주는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종전의 식량 조달
수단은 이제 중요성을 잃었다. 이전에는 필수적이었던 사냥이 이제는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새로운 부는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물론 처음에는 씨족의
재산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축의 사유화는 가축 사육이 시작된 초기부터
발생하였을 것이다.(주1)
잉여 생산물이 가족의 사유 재산이 되자, 이는 두 가지 면에서 불평등을 낳았다. 즉
가족 관계와 생산 관게 양면에서 불평등이 발생하였다.
1) 남성의 반역
우선 가족 내의 불평등, 즉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불평등이 생겨났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인해 잉여 생산물이 남성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가축들과 새로운 부가 생기면서 가족에 있어서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생활 필수품을 획득하는 것은 항상적으로 남성의 일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남성이 이
획득 수단을 생산하고 소유했다. 가축은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수단이었다.
남성들은 짐승들을 잡아 길들이고 돌보는 일을 했다. 그리하여 가축이 그의 소유가
되었고, 가축과 교환한 상품과 노^36^예도 그의 소유가 되었다. 이제 생활 필수품의
생산에서 나오는 모든 잉여는 남성의 차지가 되었다. 여성도 그 생활 필수품을 함께
사용하였지만 아무 재산도 가질 수 없었다. '난폭한' 사냥꾼과 전사는 가정 안에서는
여성 다음 가는 지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다 온순한' 목자는 자기의 부를
믿고 스스로 첫째 지위로 돌진하여 여성을 둘째 지위로 밀어내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불평할 수 없었다. 가족 내의 분업이 남녀간의 재산 분배를 규정하였다. 즉 여성의
가내 노동은 더 이상 남성의 생활 필수품 획득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없게 되었다.
후자가 전부이고 전자는 보잘 것 없는 덤이었다.(주2)
새로운 생산력(분업)의 발전과 함께 성별 분업이 재편되었다. 새로 중심적인 산업이
된 농업과 목축을 남성이 주로 맡고 여성은 육아 등 가내 서비스 노동과 요리, 옷감
짜기와 의복 짓기 등을 주로 맡았다. 이제 여성은 노동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요리, 빨래, 청소 등의 가내 노동은 인간이 수렵이나 채집을 통해 얻은 자연 산물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보다 적합하게 변화시키는 노동으로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발전을 촉진하였다. 요리, 육아,
질병 치료 등의 노동이 분화 발전함으로써 인간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보다 빨리, 잘 적응하게 되었으며, 인간이 생산 노동에서 이룩한 발전을
축적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전에도 가내 노동이 조금씩 행해졌지만, 주요한 분업으로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농업의 발달에 의해 물자가 풍부해지고 모든 사람이 이를 해야 할 필요가
줄어듦에 따라 가내 노동이 본격적으로 분화되어 하나의 독립적인 노동 분야가
되었고, 여성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여기에 쏟게 되었다.
농업 노동과 가내 노동 사이의 성별 분업은 여성이 채집이나 원시 농경을 담당하던
분업과는 달리,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그것은 양자의 다음과 같은 차이 때문이다.
농업 노동이 당시 생산력의 발전에 직접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데 비해 가내
서비스 노동은 생산 노동의 발전에 의해 규정되며, 부차적인 위치를 갖는다. 가내
서비스 노동은 생산 노동의 성과를 이용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생산 노동의
발전에 의해 규정된다. 예를 들어 요리 기술의 발달은 생산되는 음식물의 종류와 양,
동력의 발달 등 생산 도구의 발달에 달려 있다. 가내 서비스 노동의 발달 역시
생산력의 중요한 일부인 인간 자신의 발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생산 노동의 발달을
촉진하지만 양자의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농업 등 생산 노동의 발달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생산 노동이 잉여 생산물을 낳는 데 비해 가내 서비스
노동은 잉여 생산물을 낳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내 서비스 노동은 가족의 소비를 위한
노동이므로 가족의 소비에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필요가 없다. 농경과 목축을 통해
소비하고도 남는 곡식과 가축이 점점 더 증가하는데 비해 가내 서비스 노동에서는
아무런 잉여 생산물도 생길 수 없다. 또 당시 여성들이 옷감 짜는 법을 개발하고 의복
만들기를 했지만, 이것 역시 당시에는 농산물에 비해 중요한 부의 원천이 되지 못했다.
성별 분업이 농업 노동과 가내 노동의 분업으로 변화함에 따라 생산 노동에서
발생한 잉여는 그것을 담당한 남성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이에 반해 가내 노동을
담당한 여성들은 소유로부터 배제되어 남성에게 종속되었다. 잉여 생산물과 사유
재산이 발생한 이 단계에 이르러 분업이 그 안에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던 분배의
불평등이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모든 모순을 그 안에 포함하고 가족 내의 자연 발생적 분업 및 사회가 각기
대립적 가족으로 분열되는 데 기초하고 있는 분업은, 분업임과 동시에 분배, 그것도
노동과 그 생산물의 양적 및 질적으로 '불평등한' 분배이며, 그에 따른 소유이기도
하다. 이 소유의 싹 혹은 최초의 형태는 처와 자식이 남편의 노^36^예로 되어 있는
가족 내에 의존한다. 이런 가족 내의 잠재적 노^36^예 상태는 아직 매우 조야하기는
하지만, 최초의 소유 형태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조차도 소유는 그것을 타인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력이라고 부르는 근대 경제학자의 정의와 완전히 일치한다. 결국
분업과 사적 소유는 동일한 표현이다. 곧, 똑같은 것이 한편에서는 활동에 관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활동의 산물에 관해서 언표된 것이다.(주3)
원시 시대의 분업은 잠재적으로 불평등한 분배를 내포하는 것이지만, 아직 불평등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잉여 생산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고 그것을 누가 가질 것이냐가 문제가 되는 순간, 분업은 소유의 불평등을 낳는
기초로서 현실화되었다.
생산 노동에서 여성이 부차적인 위치에 놓이고, 이로 인해 재산의 소유에서
배제되자, 여성은 가족 내에서 남성에게 종속되었다. 남성은 사유 재산에 기초해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자기 자식에게 상속시키기 위해
기존의 모계제 사회를 전복시키고 부계제를 확립했다.
모계 씨족에서 재산은 모계를 따라 상속되어 남자가 죽으면 그의 가축이 그의 형제
자매(그의 어머니의 자식들)와 그의 자매의 자녀, 또는 이모의 자녀들에게 상속되었다.
그들의 친자식은 아버지쪽 씨족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상속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가 증대함에 따라 남성들은 강화된 지위를 이용하여 전통적인 상속 제도를
폐지하였다.
이렇게 하여 새로이 확립된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은 당시 발생하고 있던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과도적인 형태다. 가부장제 가족의 주된 특징은 자유민과
비자유민이 가장의 권력 아래 가족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족 형태의
완성된 유형은 로마의 가족이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 패밀리(family)는 가내
노^36^예를 뜻하는 파뮬러스(famulus), 한 사람에게 종속된 노^36^예 전체를 뜻하는
파밀리아(familia)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로마인들은 한 명의 우두머리 남자가
아내와 자녀 그리고 다수의 노^36^예들을 다스리고, 이들 전체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가졌던 새로운 사회 조직을 가리키기 위해 이 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주4)
우리나라에서도 대체로 고대 부족 국가 성립기에 지배층을 중심으로 하여 부계 계승이
확립되었으며, 이는 사유 재산과 계급의 형성에 따른 모계의 전복과 가부장제의
성립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반역이 계급 발생 이후의 어떠한 반역보다도 쉬웠으며, 이 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여성들이 사유 재산의 소유자가 아니었고 지배 계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이미 그 수중에 지배를 위한 물적 기초인 사유 재산을
집중하고 있었으며, 이에 반해 여성들은 보잘 것 없는 가내 도구와 껍데기만 남은
옛날의 권위밖에 가진 게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노도에서의 남성의 우위가 가족
내에서의 우위를 가져옴으로써 엥겔스가 말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일어났다.
2) 계급의 발생
잉여 생산물의 사유화는 가족 내의 불평등뿐 아니라 가족들간의 불평등을 낳았다.
잉여 생산물이 개별 가족에게 사유화되자 한편으로는 개별 가족들 사이에 빈부의
차이가 생겨날 가능성이,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노^36^예로 만들어 착취할
가능성이 생겨났다. 인간이 자기가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생활 자료 이상을 생산하지
못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할 수가 없었다. 그때에는 전쟁에 의해 포로가
생겨도 그들을 살해하거나 아니면 동등한 종족의 성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상황은 변했다. 한편으로는 부채 노^36^예가 생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복 전쟁의 포로가 노^36^예로 이용되었다. 노^36^예는 가축과 함께 부의
원천이었으며, 노^36^예 역시 개별 가족의 소유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평등한 생산 관계는 무너지고, 한편에는 토지를 비롯한 부를 소유하고
노에를 부리는 지배자들과 다른 한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소유자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노^36^예들로 계급적 분화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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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족의 변화
1) 경제적인 것이 지배하는 시대
생산 관계가 평등한 관계로부터 계급 관계로 변함에 따라 가족은 이제 단순히
종족의 번식을 위한 관계가 아니라, 재산 상속을 통해 계급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사유 재산은 가족을 통한 상속을 전제하지 않고는 애당초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 가족이나 친족은 더 이상 유일한 사회 조직이나 중심적인 조직이 아니게
되었다. 분업과 교환이 발전하고, 정복 전쟁이 부를 확대하는 수단이 되자 공동체의
단위는 지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 원리는 혈연이 아니라 경제적 단위로서 포괄될
수 있는 지연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은 이러한 경제적 원리에 입각한 사회에
종속되었다.
이는 가족 관계가 생산 관계에 종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족 관계는 사유 재산과
계급적 지배의 유지라는 목적에 종속되어 한편으로는 지배자를,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 대중을 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가족 관계의 내용도
변화했다. 즉 남녀간의 애정과 부모 자식간의 혈연 관계라는 가장 지연적이고
인간적인 관계가 사유 재산과 계급의 유지라는 경제적 목적에 종속되었다. 이는 가족
내에 경제적 이해 관계의 모순과 대립을 심었다. 결혼에 있어서 경제적 목적이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성애를 우선하게 되었으며, 계급 관게의 유지라는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애정을 추구하는 자는 지배 계급과 그들의 도구인 국가 기관에 의해 가혹한
처분을 받았다.
여성의 세계사적인 패배, 여성의 남성에의 종속은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생산물에
지배되는 시대, 인간 관계가 경제적 관계에 종속되고, 인간의 본성이 인간으로부터
소외되는 시대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었다.
2) 결혼과 애정의 분리
가족 관계가 경제적 관계에 종속된 것은 지배 계급의 가족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지배자들의 가족은 사유 재산의 상속과 계급적 특권의 세습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고대와 봉건 시대와 같은 신분 사회에서 신분은 혈통에 따라 계승되었다.
따라서 가족은 지배 계급으로서의 순수한 혈통의 유지와,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였다. 첫째로 혼인이
철저한 계급 결혼이 되었으며, 둘째로 이 혼인 관계 속에서 남성과 여성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에 놓였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대우혼에서는 혼인은 당사자의 자유 의사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부부 중 어느 쪽이라도 혼인을 취소하고자 하면 언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변했다. 결혼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은 신분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이었다. 애정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전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신분의 유지가 결혼의 목적으로 확립됨에 따라 결혼과 애정의
분리는 점점 더 강고해졌으며, 결혼은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서가 아니라, 신분과
지위, 재산을 물려줄 가부장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었다. 결혼과 애정이 분리되자
양자가 서로 모순될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이 가능성은 많은 경우에 현실로 되었다.
결혼은 자연스러운 감정에 기초한 두 사람의 인간적 관계의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정의 절멸, 인간적 관계의 배제를 전제로 해서만 성립하는 하나의
강제가 되었다. 결혼은 애정의 실현이 아니라 애정의 무덤이 되었으며, 지배 계급은 그
무덤 위에서 신분적, 경제적 특권의 유지라는 강고한 집을 지었다. 결혼과 애정의
분리는 점점 더 심화되어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수치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결혼은 인간의 본성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억압이 되었다.
이런 가족 안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도구의 역할은 가문의 혈통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구로서의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합당한 신분의 출신일 것과 그 남편의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이러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서 지배 계급의 남성들은 아내에게 정절을 강요했다.
결혼이 애정에 기초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정절 역시 강제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 아내의 정절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배 계급의 남성들은 그 최선의 방식인 애정
대신 그 최악의 방식인 감금과 격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남성의 지배를 확립하는 수단이었지만, 그 지배가 확립되면
될수록 그 대가는 남성에게도 돌아갔다. 남성들 역시 애정 없는 결혼으로 가정 생활의
행복을 잃었으며, 그들 역시 가문 계승의 도구가 되었다.(주5)
3) 축첩과 매춘
결혼이 애정과 분리되자, 자연히 결혼 이외의 방법으로 애정을 구하려는 욕구가
생겨났다. 축첩과 매춘은 결혼에서 충족될 수 없는 자연적인 애정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생겨났다. 빚을 못갚아 채무 노^36^예가 된 집안의 여성이나 포로가 된
노^36^예 여성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소외된 관계의 다른 한편이 온전한 것일
수는 없었다. 한편에서 여성을 도구로 만든 남성이 다른 한편에서 여성을 인간으로
대할 수는 없었다. 어느 쪽이든 여성은 도구 이상이 아니었으며, 어느 곳에서도 남성은
사랑을 구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은 자기에게 돌아간다.
남성들은 여성을 도구로 삼은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애정 없는 성의 결과는 남성들
자신이 성의 노^36^예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지배 계급의 남성들의 성적인 타락과
비인간화가 얼마나 극심했는가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나타난다.
(중국 동진 시대의) 왕개, 석숭 등은 첩도 아니고 노비도 아닌 미녀들을 양성하여
노래와 음악으로 소일의 즐거움을 삼았다. 왕개는 술을 마실 때 기생이 피리를 잘못
불어 음이 틀리거나 또 기생이 술을 권해도 손님이 다 마시지 않으면 그 기생을 때려
죽였고, 석숭은 항상 수십 명의 애첩을 거느리고 온갖 호사로운 유희를 다하였다. 매일
저녁 상아 침대 위에 사향가루를 뿌려 놓고 첩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게 하여 자국이
나지 않는 사람에게 진주 백 개의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밥을 굶겨 체중을
줄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소에 수천 명의 미녀를 기르며 그 중에서 수십
명을 골라 온갖 금과 보석으로 패물을 만들어 차게 하고 각각 다른 향을 갖게 하여
춤추고 말을 할 때마다 색과 향이 바람을 따라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그 기생들은
조금만 색이 쇠하면 사랑을 받지 못했다.(주6)
경제적 관계가 인간을 지배하자 인간은 그 모든 방면에서 소외되었다. 그는
노동에서뿐 아니라,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도 소외되었다. 사랑, 종족의 번식, 성은
각각 분리되었으며, 사랑은 어디에서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분리시키자 인간은 그 자신이 사랑과 종족의 번식과 성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노^36^예가 되었으며, 그 각각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인간적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을 비인간화해 갔다.
4) 부모와 자식
지배 계급의 가부장적 가족은 부모 자식의 관계에도 모순을 심었다. 부모 자식의
관계가 사유 재산과 지위의 상속이라는 목적에 종속되자, 아버지의 일방적인 우위와
자식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종이라는 관계가 생겼다. 아버지는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식에 대한 차별도 생겨났다. 맏아들과 나머지 자식들, 아들과 딸이
엄격히 차별되었다. 맏아들과 나머지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므로 가부장제 가족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 뿐 아니라 형제간의 관계조차도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왜곡되었다. 재산과 지위 상속을 둘러싼 관계가 가족을 지배함에
따라 가족 관계는 평등 대신 위계 구조에 의해 지배된다. 맨꼭대기에 아버지가, 그
다음에 장남이 그리고 맨 밑에는 며느리가 자리잡은 구조. 이것이 전형적인 가부장제
가족 구조다.
이러한 가족 안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평등한 위계 구조 속에
집어넣어진다. 그는 하나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아들이나 딸로서, 맏아들이나
지차로서 태어난다. 가족은 불평등을 체험하고 무의식의 근저까지 이를 체화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기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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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별 분업과 여성 억압
이상에서 여성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요인을 살펴보았다. 한 사회의 여성의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다른 요소들을 결정하는 가장 궁극적인
요소는 노동에서의 역할이며, 곧 분업과 소유에서의 위치다. 앞에서 말했듯이 분업은
분배를 내포하고 있으며, 곧 특수 이익과 일반 이익이 모순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노동의 분업과 더불어 고립된 개인, 혹은 개별 가족의 이익과 상호 교통하는 모든
개인이 가진 공동 이익 사이의 모순도 아울러 주어진다. 더구나 이 공동 이익은 단지
관념상의 '일반 이익'(Allgemeines)으로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노동을 분배하는 개인들의 상호 의존 관계로서 현실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 곧 인간이 자연 발생적인 사회에
머무르는 한, 다시 말해서 특수 이익과 공동 이익 사이에 균열이 존재함으로써 활동이
자유 의지에 의해서 분배되지 않고 자연 발생적으로 분배되는 한, 인간 자신의 행동은
그에 대립하는 낯선 힘으로서, 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구속한다는 사실의 최초의 실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노동이 분화되자 각 개인은
하나의 일정한 배타적 영역을 갖게 되고, 이 영역이 그에게 강요되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주7)
이상은 성별 분업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남녀간의 성별 분업은 당시의 생산력의
발전 단계에서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출현했지만, 이는 전체의 이익과 여성의
이익 간의 모순을 내포한 것이었다. 성별 분업에 따라 남성이 농업 노동을, 여성이
가사 서비스 노동을 담당하자, 남성은 가사 노동에서, 여성은 생산 노동에서 소외되고,
각각의 배타적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인간 자신이 분업화된 노동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성별 분업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성별 분업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연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자연을 변화시켜온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이며,
다른 분업과 함께 생산력을 더욱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성별 분업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해결책으로서 등장했다. 생존의 조건이 척박한 현실에서
거칠고 힘든 노동과 전쟁을 남자들이 수행함으로써 여성들의 모성을 보호하는 것이
최초의 분업에서는 오히려 주요한 측면이었다. 여성들이 모성이라는 큰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분업은 당연하고도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것이다. 이는
곧 여성이 존중되고 생명이 보호되었다는 표시다. 이것은 후에 여성 억압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흔히 고되고 과중한 노동을 한 것과 비교되는 것이다.
성별 분업의 필연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또한 여성 해방의 필연성, 다시 말해서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단계에서 성별 분업이 재규정될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여성 억압의 기원에 대해 흔히 성별
분업과 사유 재산을 분리하여 어느 한편만을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분업과 소유는 뗄레야 뗄 수 없게 관련되어 있으며, 양자가 결합해서 여성
억압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 여성 억압의 원인을 사유 재산의 발생과 분리된 성별
분업에서 찾는 것은 여성 해방 운동을 생산 관계, 소유 관계의 변혁과 분리시키는
개량주의로 인도한다. 또한 '성별 분업이 아닌' 사유 재산의 발생에서 억압의 기원을
찾는 것은 소유 관계의 변혁, 계급의 폐지로 여성 문제가 해결된다는 계급 환원론에
빠진다. 어느 것도 여성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생산
관계의 변혁과 성별 분업의 폐지(여성의 생산 노동에의 동등한 참여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는 여성 해방을 위한 불가분의 전제이다.
또 한 가지는 성별 분업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유 재산이
아니라' 성별 분업이 여성 억압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의 이론적
귀결을 갖는데, 하나는 성별 분업이 순전히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념적인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성별
분업이 특정한 생산력의 발전 단계의 산물이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력은 여성을 대거 생산 노동에
종사하게 하여 성별 분업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사실은
성별 분업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관념적 요인이나 생물학적인 요인(여성이
아이를 낳아 젖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임을 말해준다. 물론 성별
분업은 농업과 목축, 혹은 농업과 공업과 같은 다른 사회적 분업들과는 달리 보다
직접적으로 인간의 자연적인 조건에 의존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성별 분업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발전해 온 최초의 시기에 최초의 분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조건에 의존한다는 것은 분업의 발전이 인간의 자연적 조건을 매개로
하였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 자연 조건을 매개로 한다는 것과 자연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자연 조건을 매개로 하는 것은 당시의 생산력의
발전 정도에 합당하게 자연에 적응하고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며, 이러한 적응과 이용
방식은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성별 분업이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를 낳았다.
(주)
1. 엥겔스, 김대웅 역, '가족의 기원', 아침, 1985, p. 60.
2. 위의 책, pp. 143--144.
3. 마르크스, 엥겔스, 김대웅 역, '독일 이데올로기1', 도서출판 두레, 1989, pp.
73--74
4. 엥겔스, 앞의 책, p. 62.
5. 얼마 전에 상영된 영화 '씨받이'는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는다는 목적을 위해서
씨받이와 본부인은 물론이고 남편조차도 얼마나 비인간화되고, 소외되며,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6. 묵자 책 44쪽 참조.
7. 마르크스, 엥겔스, 앞의 책, p.74.
제3장 고대와 중세 사회의 여성
"여성의 지위가 생산 양식과 노동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달려 있다는 것은 원시 시대
이후의 역사적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1. 고대 사회
같은 고대 사회라 하더라도 여성의 지위는 지역과 사회, 계급, 계층에 따라 다르며,
같은 사회도 시기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또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만
하더라도 결코 정체된 동일한 사회가 아니었다. 로마 시대의 초기에는 강력한
가부장제가 있었지만, 후의 제정 로마 시대 전성기에 이르자 가부장권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러므로 고대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의 여성의 지위에 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역사
책들은 여성의 생활, 특히 하층 여성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전해 주는 바가 아주 적다.
여기서의 목적은 여성의 지위 변화를 역사 발전의 전형적인 발전 단계 속에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노^36^예제의 전형인 고전 고대, 즉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황금기(BC450--350)와 고대 로마 제국 전성기(50--150)의
여성들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자.
1) 지배 계급의 여성
지배 계급은 그 전 시대에 대해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이를 수행하는 한에서만
한 시대의 지배 계급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고대 노^36^예제 사회의 노^36^예주들
역시(그들의 착취가 아무리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원시 사회에 대해서 부와
생산력의 증대를 대표한다. 근대의 부르주아 계급 역시 중세 신분제 사회를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므로
지배 계급에게는 이러한 자신들의 역사적 소명에 적합한 지배 계급의 자질과 덕목이
있다. 이러한 덕목은 그 지배 계급의 성장 초기에 특히 두드러진다.
노^36^예제 사회의 지배 계급인 자유민과 귀족은 사유 재산의 발전과 이에 기초한
생산력의 발전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들은 재산 소유에 기초하여 권리를 행사했고,
사회를 통치했으며 법, 국가 체제, 행정을 발달시켰다.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는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아테네의 민주 정치가 꽃 피었던 페리클레스
시대(BC443--429)에 18세 이상의 남자 시민은 모두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일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장군과 같은 특별한 지위를 제외한 모든 공무원은 지망자 중에서
추첨하여 임명했으며 무산 자유민의 취임을 가능케 하기 위해 일당을 지급했다. 극을
보려는 사람에게는 국가가 입장료를 주었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 국가의 모든 일에
대하여 직접 토론하고 결정했다. 그리스 로마의 자유민에 대해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인으로서의 그리스, 로마인은 스스로 제정한 법을 따랐고 스스로 임명한
공직자에게 복종했으며, 스스로 결정한 전쟁을 치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재산과
정열, 목숨을 바쳤다. 개인적 가정적 생활은 물론 공공 생활에 있어서 각자는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사는 자유인이었다. 조국이란 관념은 각자가 추구해 마지 않던 보이지
않는 고도의 실체였는데 이것에 의해 각자는 고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위와
무기력의 계기 속에서만 그들은 순수하게 자기 중심적 욕구가 자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 공화주의적 정치 문화야말로 각 개인에게 대단한 독립성을
부여하고 어느 누구도 한 개인에게 송두리채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없게 만드는
민주주의의 정신인 것이다.(주1)
다시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자유인은 사유 재산의 발달이 가져온 개인의 발달과
인격과 개성, 자율의 신장을 체현한다. 인격의 성장은 그의 경제적 자립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제적 자립은 사회에 대한 그의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내포하는
것이었다.
지배 계급의 덕성은 그것이 다른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다른 한면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졌다. 이 한계는 지배 계급의 기생성과 부패가 증대하고,
사회와 역사 속에서 그들의 역할이 반동적인 것이 될 때 확실히 드러난다. 이에 반해
역사는 피지배 계급들 사이에서 새로운 덕성을 발전시키는데, 그것은 그들이
생산자이며, 노동을 담당한다는 사실에서, 그리하여 결국은 새로운 생산력의 담당자가
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
그러나 지배 계급의 여성들은 이 모든 것에서 제외되었다. 크세노폰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소마쿠스의 신부는 가능한 한 적게 보고 가능한 한 적게 듣고 가능한 한 적게
알게하기 위해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 그녀는 모직 옷을 짜는 일밖에 몰랐으며
이는 노^36^예에게 기대되는 바와 같았다.(주2)
아테네의 소녀들 중에는 읽고 쓰기를 배우는 소녀들은 많았지만 소년들처럼 더 높은
교육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크세노폰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아내보다도 더 당신이 함께 토론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아내들이 교육을 적게 받는 것을 그들이 너무 어릴 때 결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통계는 없지만 그들은 대개 법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연령인 14세
가량에 결혼해야 했을 것이다. 반면 남자들은 30세 가량에 결혼했다. 이렇게 여자들은
일찍 결혼하게 한 것은 그들의 정조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한 조처였다.(주3) 아테네
여자들은 거의 유폐된 생활을 했다.
소녀들은 실잣기, 옷감짜기, 바느질을 배우며, 기껏해야 읽고 쓰는 것을 조금 배울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마치 감금당한 것처럼 오직 여자들 하고만 교제를 할 수
있었다. 규방은 2층이나 집 뒤쪽의 격리된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남자, 특히 낯선
남자는 그곳에 쉽게 갈 수 없었다. 여자들은 남자가 집을 방문하면 규방으로 가
있어야 했다. 여성들은 여자 노^36^예를 데리고서만 외출할 수 있었으며, 집안에서는
따로 정해진 보초에 의해 감시를 받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간통자를 위협하기 위해
개를 기르고 있노라고 말했으며 유리피데스는 아내를 '오이쿠레마', 즉 가정을
돌보는 하나의 물건이라고 불렀다. 여성은 아이를 낳는 일을 제외하면 식모의
우두머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체육 경기와 공적인 업무를 갖고 있었으나
여성은 이로부터 배제되었다.(주4)
아테네 여성들의 처지는 다른 고대 사회의 여성들보다 더 가혹했다. 이는 아테네가
전사 공동체였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서술을 보면 이 당시 역사 책에서 여성들이 왜 그다지도 중요하지 못한 역할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투키디데스는 어머니, 아내, 딸, 여자 친구에 대해
최소한만을 할애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언급의 대부분은 패배자의 아내가 노^36^예로
팔렸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과부는 싸우고 있는 공동체의 불건강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당시의 많은 위대한 극은 전쟁에서 죽은 남자의 아내가
노^36^예가 되는 얘기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 공동체, 가족, 개인의 운명은 그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달려 있다. 이기면 새로운
땅과 노^36^예를 얻지만 지면 노^36^예가 되는 것이다. 또 당시 아테네는 물질적으로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생존의 조건이 극한적이고 전쟁이 잦은 사회의 여성의 지위는
생존 조건이 보다 좋고 평화적인 사회의 여성의 지위보다 낮다. 이런 사회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전쟁 영웅의 역사며, 남성의 역사인 것이다.
사면이 사막과 바다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외적의 위협이 거의 없는 비옥한
나일강 유역에 자리잡은 고대 이집트의 여성들은 좀더 자유로왔다. 그들은 집안에
갖혀 있지 않았고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가져가고 이혼할 때 자신의 생계 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 또 남편이 전재산을 저당잡힐 경우 부인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면 그 부인은
채권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들은 항상 부인에게 먼저 동의를
구해야 했다.
또 여성들이 그리스에서보다 많은 자유를 누린 것으로 흔히 비교되는 제정 로마
시대는 전쟁이 뜸해지고 물자가 풍부하며 지배층이 사치와 타락에 물들어 사회
전반에서 이미 해체의 조짐이 나타나던 시기이다. 가부장의 해체는 이러한 사회
질서의 전반적인 해체의 한 현상이었다.
칼코피노의 연구에 따르면 헤드리안 시대의 로마의 기혼 여성들은 후견인이 필요
없었고, 아버지는 딸의 의사에 반해서 결혼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들은 체육 경기를
보러 갈 수 있었고 파티에 참석했다. 로마의 기혼 여성들은 자신의 지참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이태리 안에서 그녀의 동의 없이 이를 관리할 수 없었으며 그녀가
묵인했더라도 그것을 저당집힐 수 없었다. 칼코피노는 제정 로마 시대 여성들이
당시의(1940 년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것보다 더 낫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동등한 자립을 누렸다고 주장했다.(주6) 이에 반해 시몬느 드 보봐르는 "단지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해방되어 있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그들의 힘을
사용할 어떤 구체적인 기회도 제공받지 못했고 이들의 경제적 자유는 어떤 정치적
힘도 낳지 못했으므로 추상적인 것일 뿐이었기 때문"(주7)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 여성들의 처지가 아테네 여성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은 아니다.
종속과 억압의 정도와 방식은 다양하지만, 고대 노^36^예제 사회의 지배 계급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부차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은 공통된 사실이다. 그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직업적 활동과 정치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정치와 행정, 수공업에서 남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스의 자유민들에게
있어서는 남편이 아내가 밖에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 전형적인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가난한 여자들은 일하러 나가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런 태도는
공통된 것이었다. 여자들의 직업은 아주 제한된 것이었다. 일터와 작업장에는 거의
남자들뿐이었다. 로마 제국 시대의 수천 개의 비문 중에서 돈을 번 여성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 명의 서기, 3 명의 사무원, 1 명의 속기사 그리고 18 명의 남자
교사에 비해 2 명의 여자 교사, 51 명의 남자 의사에 비해 4 명의 여자 의사가 있었을
뿐이다.(주8)
물론, 노^36^예제의 초기에는 남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자들도 노동을 했다. 특히
자급자족적인 성격이 강했던 아테네에서 길쌈과 바느질, 수놓기 등의 일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이었다. 그러나 재산 소유와 전쟁 수행 능력, 정신 노동에 기초한 지배 계급
내에서 여성의 노동이 갖는 의미는 미미했으며, 많은 경우 여성을 가정에 가두어 놓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주9)
노^36^예제의 후기, 특히 제정 로마 시대에는 귀족 남자들이 그러했듯이 여자들도
노동에서 면제되었다. 이들은 스포츠에 몰두하듯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음악,
문학, 과학, 법률, 철학에 쏟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직업으로서는 아니었다.
그들은 직업을 갖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로 생각했다. 공적인 임무조차 없는
여성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몸치장과 상점 출입, 운동 경기의 관람,
연회에의 참석 등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쳤다.
지배 계급의 여성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재산의 소유자가 아니었고, 따라서 공적인
모든 업무와 권리는 물론, 의무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지배 계급의 일원이었지만
노^36^예와 같았으며, 그러면서도 노^36^예와 달리 노동을 할 의무조차 갖지 않았다.
그들은 자식을 낳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완전히 기생적이고 비생산적일 것을
강요당했다. 지배 계급 여성들은 자유민에게 주어진 자율과 자치권을 갖지 못한
노^36^예였으며, 근로를 알지 못하는 지배 계급이었다. 그들이 사회에 대해 수행하는
역할은 적자를 낳는 것뿐이고, 그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성은 정숙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실, 그들이 달리 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정숙의 가장 큰
적이었으며, 그러므로 결국 정숙조차도 그들의 미덕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 피지배 계급의 여성
노^36^예 여성들이 자유민이나 귀족 여성들과 판이한 삶을 살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노^36^예 남성들과도 다른 위치에 있었다. 로마 제국 시대의
경우를 보면 여성 노^36^예들의 직업의 종류는 남성 노^36^예보다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스의 남자 포로들 중에는 학자, 역사가, 시인 그리고 가치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황제나 중요한 로마 가문의 남자 노^36^예들은 특권과 경제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그 가문의 묘지에 묻혔는데, 당시 어떤
묘지에 묻히는가는 모든 로마인들의 관심사였다. 그러므로 황제의 노^36^예와
결혼하는 자유민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여성들에게는 교육이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포로가 된 여성들의 대부분은 산파, 배우,
창녀였다. 대개의 여성들은 전통적인 가사 기능 외의 다른 기술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자유민일 때와 마찬가지로 노^36^예가 되어서도 방적, 방직, 의복 제조, 수선을
했으며 유모, 보모, 부엌 조수 그리고 가사 대부분을 맡았다. 부유한 로마 가정의 여자
노^36^예들은 옷 정리하는 노^36^예, 미용사, 머리 손질하는 노^36^예, 거울 들고 있는
노^36^예, 맛사지사, 책 읽는 노^36^예, 오락 노^36^예, 산파, 병원 조수로 일했다.
부유한 로마 가정에서 태어난 노^36^예는 약간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여자들은 그들의 가사 책임 외에 언제든지 성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었다. 주인은
그의 모든 여자 노^36^예에게 접근했다. 여자 노^36^예는 또한 집안에 있는 남자
노^36^예와 주인의 허락 아래 성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카토는 이들의 성 관계를
허락해 주고 남자 노^36^예로부터 고정된 수수료를 받았다. 또 여자 노^36^예의
주인들은 성 매매에 가담함으로써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여자 노^36^예들은
매음굴, 여관, 공중 목욕탕에서 창녀로 일했다. 버려진 여아나 부모에 의해 팔린
딸들이 이런 거래를 위해 길러졌다.
고대 로마의 노^36^예들은 자기의 저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의
몸값을 치르고 해방될 수 있었다. 여자 노^36^예들은 주로 가사 일에
고용되었으므로(주인이 아끼는 침실 시중을 드는 노^36^예는 선물을 받기도 하고,
여주인의 하녀는 그녀의 정부들로부터 팁을 받기는 했지만)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남자 노^36^예들보다 팁을 모을 기회가 적었다. 그러나 한편 여자 노^36^예는 나이를
먹고 매력이 줄어듦에 따라 가치가 점점 줄어드는 데 반해 높은 교육을 받은 남자
노^36^예의 값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높아졌다. 그래서 남자 노^36^예는 자기 몸값을
치루기가 점점 더 힘들어 지는데 비해 여자 노^36^예는 점점 쉬워져 남자
노^36^예보다 자유를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이 역시 여자 노^36^예의 지위가 높았다는 증거라기보다는 낮았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노^36^예들 사이에서도 여자 노^36^예는 영향력이 없고 천하고 가난했다.
3) 결혼과 가족
고대의 가족과 결혼은 계급적 위치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생산
관계의 변화가 인간의 가장 자연적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 시기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혼율이 매우 높았다.(주10) 이전에는 이혼이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으나 이제는 유행병처럼 되었다. 57세의 키케로는 30 년의 결혼
생활 끝에 아무 부끄럼없이 그의 아이들의 어머니를 버렸다. 젊고 부유한
퍼블리리아를 아내로 삼아 자신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
테렌시아는 이 불행을 딛고 다시 두 번이나 결혼했다. 그리고 100세에 죽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혼을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이혼시 남편이 아내의 지참금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가족적 감정의
붕괴를 촉진했다. 지참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게
집착했지만, 이렇게 천박한 계산으로부터는 어떠한 고귀한 것도 생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결혼의 존엄성을 점점 더 훼손하면서 단지 아내에게 싫증난 남편이
더 많은 지참금을 가진 다른 여자를 사로잡았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결혼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이혼을 제기한 것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들도 "남편을 버렸으며 그들을 쇠회초리로 지배한 뒤 아무 망설임없이 남편을
버렸다." "그녀는 자기 남편을 지배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녀는 그녀의 왕국을
비우고 신부의 베일이 닳도록 이 집에서 다른 집으로 날아다녔다. 이리하여
그녀의 남편의 숫자는 늘어갔다. 다섯 번의 가을을 맞는 동안 8 명의 남편이 있었다.
이는 그녀의 무덤에 기념할 만한 것이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여자도
결혼을 깨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가장 유명한 숙녀들이 연도를
집정관의 이름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남편들의 이름에 따라서 계산하는 습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혼하기 위해 이혼하며 이혼하기 위해 재혼한다."
게다가 이 시기 로마 귀족 중에는 아이가 없는 가정이 많았다. 부패와 타락과 몰락의
징표가 가족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노^36^예는 로마에서 공식적인 결혼을 할 자격이 없었다. 단지 두 명의
노^36^예가 동거(컨투버니움)로 알려진 비공식적인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
노^36^예의 수가 여자 노^36^예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여자 노^36^예의 많은
수가 귀족 남자들의 노리개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자 노^36^예들이 결혼할 수
있는 기회는 상당히 적었다.
로마 가정은 여자 노^36^예보다 훨씬 더 많은 남자 노^36^예를 부렸다. 로마 제국의
노^36^예와 자유민의 아이들 중에서 그 비율은 60% 이상이 남성이며, 성인 중에서
남자의 비율은 훨씬 더 높았다. 리비아와 볼루시의 노^36^예와 자유민에 대한 수잔
트레기어리의 연구는 이 비율이 대개 여자 1명 당 남자3명 꼴이며, 여주인 소유의
가정에서 남자 주인의 경우보다 여자 노^36^예의 비율이 약간 높은 정도임을
보여준다.(주11) 로마 후기 대부분의 라티푼디움에서는 노^36^예 출신의 노^36^예
관리인 1명과 그의 부인이 나머지 남자 노^36^예들(중간 규모의 농장의 경우 약
12--13 명)과 함께 하나의 생활 단위를 이루었다 한다.(주12) 남자 아기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해방되거나 죽으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대로 갖고 있었지만 남아도는
여자 아이들은 여러 방식으로 처분되었다. 일부는 작은 가정에 가정부로 팔려가고,
많은 수는 매음굴에 팔려갔다. 다른 일부는 아마도 죽게 버려지거나 노^36^예 상인이
주워갔다. 또 일부는 주인이 자기 소유가 될 아이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고 남자
노^36^예에게 결혼 파트너로 주었다.
그 중 일부는 남자 노^36^예가 자기 돈으로 샀다. 남자 노^36^예가 그의 아내를
사면 그녀는 그 남편의 개인 노^36^예가 되며, 엄격히 말하면 그의 다른 모든
소유물처럼 그의 주인에게 속하지만, 다른 집에 팔려가는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은
좀더 적었다.
노^36^예들의 결혼은 법적 효력이 없었다. 이들의 아이는 사생아로 간주되었으며
여자들은 간통죄로 고소될 수 없었다. 그러나 노^36^예 자신들에게 이 결혼은
강고했으며 비문에는 부부가 각각을 아내와 남편으로 적어 놓고 있다. 주인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노^36^예들 간에 가족을 장려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기를
높이고 주인의 소유가 되는 노^36^예 아이를 낳으며 이들을 자기 집에서 노^36^예로
부리거나 처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36^예의 결혼은 안정성이 없었다. 부부나 아이들은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깨진 결혼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무덤의 비문은 주거의 변화나 부부의 어느 한편이나 양쪽 모두가 해방되는 것과
상관없이 노^36^예들의 결혼이 오래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변덕에 의해
좌우되는 삶 속에서 노^36^예들은 결혼이 안정적이기를 바랐다.(주13)
파머로이는 하층 계급 사이에서의 결혼의 주요한 동기는 애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류 계급 사이에서의 성공적인 결혼과 이혼을 고무한 정치적 동맹은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하층 계급 사이에서 이혼이 자주 일어났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부 묘비는 이들 사이에 결혼이 오래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며, 한 번만 결혼한
여자를 칭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노^36^예들이 가족을 이룰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노^36^예제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이것은 생산 관계가 가족
관계를 규정한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노^36^예제 착취 관계는 종족의 번식을
부정할 정도로 가족 관계를 종속시켰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가족, 종족의 번식의
부정이야말로 노^36^예제 사회를 붕괴시킨 주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즉 노^36^예의
공급을 자연적인 번식이 아니라 정복 전쟁에 의존한 것은 노^36^예제의 지주인 동시에
그 한계였던 것이다.
이 한계는 정복 전쟁이 한계에 부딪침으로써 드러났다. 노^36^예제의 말기에는 로마
주위의 모든 지역이 거의 정복되어 포로를 잡기 위해서는 멀리까지 나가서 전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용이 너무나 많이 들었고 설사 승리하여 포로를
잡아오더라도 별로 이익이 남지 않게 되었다. 노^36^예는 점점 귀해지고 값이 올랐다.
노^36^예 공급의 한계는 노^36^예 노동의 낮은 생산성과 함께 노^36^예제를
붕괴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다. 노^36^예의 값이 점점 비싸지는 데 비해 노^36^예들은
자유로운 농민들이 똑같은 땅에서 생산해 내는 것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게다가 노^36^예는 틈만 나면 도망을 갔으므로 감독 노동이 점점 더
많이 필요했다. 이러한 낮은 생산성은 노^36^예들이 결혼을 못해 사기가 떨어지고
노동할 의욕을 갖지 못한다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노^36^예제가 한계에
부딪치자 노^36^예 소유자들은 거의 몰락한 과거의 농민, 즉 시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고 농사를 짓게 하여 그 일부를 대가로 받는다든지, 작은 집을 짓고 남녀
노^36^예를 같이 살게 하여 노^36^예의 가족 생활을 인정하면서 노동 용구와 가축을
소유하게 하고 일정한 토지를 맡겨 농사를 짓게 하고 생산물의 일부를 가져가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봉건제의 시초이다. 그 후의 착취 사회는 피지배
계급이 가족을 이루어 종족 번식을 보장하는 것을 그 재생산의 주요한 축으로 삼았다.
또한 부족하긴 하지만 드러난 자료들은 애정에 기초한 결혼이 지배자들
사이에서보다 피지배자들 사이에서 보존되고 발달해 왔음을 보여준다.
노^36^예 남성과 노^36^예 여성의 관계를 보면 노^36^예 남성이 같은 처지의
노^36^예 여성에 대해 지배 계급에서와 같이 억압자로서 군림하지는 못했으리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노^36^예들은 결혼조차 할 수 없었으니 가부장적
권리는 있을 수도 없었다. 단지 남자 노^36^예들은 농업과 같은 주요한 산업을
담당하고 여러 가지 지적인 노동에 종사할 수 있었음에 반해 여자 노^36^예들은 주로
가내 노동과 매춘부로 이용당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피지배 계급 사이에서
남녀간의 불평등을 낳을 가능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노^36^예들 사이에서는 이
가능성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 가능성은 봉건 시대에 이르러 현실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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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세 사회
1) 지배 계급의 여성
(1) 노동, 경쟁적인 숙녀들
중세 시대의 여성의 지위에 관한 고전적 저술을 남긴 아이린 파워는 법률이나
이데올로기만으로는 실제 여성의 지위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그녀는
중세의 독립적인 여성들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주14)
중세 시대를 통하여 생활의 사회적 물질적 조건, 끊임없는 전쟁 그리고 무엇보다도
느린 교통으로 인해 여성들이 부재중인 그들의 남편을 대신하여 엄청난 책임을 맡아야
했다. 중세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가정의 영역이 아주 넓었다. 그녀의 주인이
군사적 원정이나 순례, 혹은 궁정에 가거나 사업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자연적으로
영지의 지도자는 그녀였으며 장원을 경영하는 것도 그녀였다. 유럽은 하루 종일
매사냥이나 잡담, 물레잣기, 장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지를 경영하고
소송에서 싸우고 심지어 부재중인 주인 대신 포위 공격을 견뎌내는 경쟁적인 숙녀들로
가득찼다. 유럽의 귀족들이 십자군 원정을 갔을 때 고국에서 농사를 감독하고
소작인을 방문하고 다음 공격을 위해 돈을 저축하면서 그들의 사업을 경영한 것은
아내들이었다.
그러나 숙녀가 그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은 단지 남편이 없을 때 같은
예외적인 경우만은 아니었다. 중세 시대에 있어서, 그리고 산업 혁명 이전의 모든
시대에 있어서 가사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었다. 가족 규모가 크고 손님이
잦고 오늘날 공장에서 만들어져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집에서 준비해야
했던 시대에는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것만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버터와 치즈,
맥주, 양초, 겨울에 먹을 고기, 린넨 등을 마련해야 했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을
감독하고 시장이나 가까운 마을에서 필요한 포도주나 식료품 등 장원 안에서 만들 수
없는 것들을 구입해야 했다.
주부는 또 가족의 건강과 질병을 돌보아야 했다. 중세에는 생활이 아직 전문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의사를 찾기가 어려웠고 따라서 비상시에 장원에서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은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여성이 직업적인 의사가
되는 데에는 제한이 있었다. 여자들은 직업적인 훈련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의사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은 여성들이 있었다.
요컨대 부인들은 단순히 주부일 뿐 아니라 남편의 부재시에 아마추어 군인이자
집안의 남자가 되어야 했으며 숙련된 의사가 없을 때 아마추어 의사가 되어야 했다.
그녀는 또한 아마추어 농부 이상이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농장 주부의 복잡한
의무들로 인해 그녀가 장원 경제의 모든 측면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드 피상의 훌륭한 부인은 노동자들을 선발할 줄 알아야 하고 상이한 작물의
재배 시기와 상이한 토양에 적합한 곡물, 가축 돌보기, 농장 생산물의 가장 좋은
시장을 알아야 했다. 튼튼한 옷을 입고 그녀는 옥수수 밭과 목장, 숲을 감독하기 위해
밭이랑과 어린 잡목숲을 쿵쾅거리며 오르내렸다.
그리하여 아이린 파워는 중세의 기사도라는 귀족적 이상과 교회의 여성적인 순종의
이상은 실로 이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일상적 삶 속의 보통의 중세 여성들은 남자
위에 서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들 아래 엎드려 복종하지도 않는 "결혼한 친구"로
대접받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우리는 요즘도 여성들이 법이나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열등한 존재로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남편보다 유능하거나 혹은 대등한 동료로서 가정을 이끌어
가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중세의 가정이 현재의 가정보다 훨씬 더 영역이
넓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가정과 직업 세계의 분리는 오히려 최근의 자본주의적 현상이며,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분리도 그렇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시골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가정을 공동의 영역으로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직업이 남자를 가정에서 빼내기 시작했을 때, 가정은 여성 전유물이
되었다. 그 결과, 가정은 빅토리아 시대에는 점차 가혹한 상업 문명에 있어서 도덕적
가치의 최후의 보루로, 심할 정도로 감상화되어 이상적인 것으로 되었다. 남편을
가정에서 분리시킨 것은 이 시대의 특징이 되고 있는 남녀 역할의 분극화를
촉진시켰고, 또 동시에 성별의 정형화(남성은 강하고 능동적이며, 여성은 약하고
수동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를 초래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세익스피어, 디포,
필딩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이전에는 성별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관계에
박힌 정형화된 인물들이 없었다.(주15)
실제로 세익스피어의 소설들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정형화하지도 않고, 여자를
비하하는 일도 없다. 이는 특히 여자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가 여장을 했을 때 각자 그
역할을 아주 훌륭히 하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남장을 한
여자들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오샤처럼 흔히 남자보다도 더 분별이 있고,
명석하며 기지가 있다. 바람둥이 남자 귀족을 혼내주는 쾌활하고 기지에 찬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과 같은 여성들도 등장한다. 이런 것은 여성들이 활달하고 남자와 큰
격의가 없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런 여성들 가운데에서 엘레아노어와 같은 여걸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중세에 진정으로 여성들이 남자의 대등한 친구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이 아무리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하더라도 여자들은 봉건
경제의 부차적인 담당자였다. 그녀는 그를 '대신해서' 관리감독을 하는 것이지 그녀
자신이 주 담당자인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가 자기 땅과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혼한 동안 이는 남편의 관리하에 있었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을 이것저것
많이 한다는 거소가 지위가 높다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사회의
보다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 혹은 권력의 기반과의 관계이다. 봉건 사회의 권력의
기반은 주로 군사적 능력에 있었다. 또 지배 계급은 특히 정신 노동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교육을 적게 받았고 공직에 종사할 기회가
없었다. 중세에 가정이라는 영역이 아무리 넓었다 하더라도 역시 여성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성들은 정치에서는 거의 소외되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남편이 공무에
바쁘거나 수 년 간 과거 공부만 하거나, 선비로서 체통을 지키고 책만 보고 있는 동안
머슴과 소작인을 부리고 때로는 직접 길쌈과 농사 일을 하면서 가산을 관리하고
가정을 돌본 많은 양반 여성들이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들이 실제적인 의미에서
보다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존중되는 이유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표시였다.
교육은 공직과 권력에 접근하는 주요 통로였지만, 이들은 그에 필요한 교육을 거의
전혀 받지 못했다. 여자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복종의 도를 가르치는 "내훈", "여자
소학", "여계서"가 고작이었으며, "여자는 무식한 것이 오히려 덕"이고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면 피해가 무궁하리라"했다(주16) (그건 사실이다. 그들이 더 이상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재산권의 제약, 공적 영역에서의 소외, 교육 기회의 제한 그리고 당시의 정신 생활을
크게 지배했던 기독교, 유교, 이슬람교 등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억압을 받고 불평등한 처지에 놓였다.
(2) 가족, 사오촌과도 친친마라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배 계급의 결혼과 가족이란 화려한 껍데기에 싸인 빈약한
알맹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귀족층 사이에서의 결혼은 흔히 재산과 재산끼리의 결혼, 위신과 위신끼리의
결혼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결혼 생활이 아무리 애정이 없고 불행한
것일지라도 러시아인들의 민사 문제를 관장하고 있던 러시아 정교회의 요지부동의
규정 때문에 이혼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혼 불가의 숭고한 원칙의 이면에는
매춘이 있었고 귀족 남성들이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여성 농노들이 있었다.
남성들에게는 온갖 성적 방종이 허용되더라도 여성들은 결혼 생활의 온갖 위선과
허위를 감수한 채 살아야 하는 이중적 성 도덕이 판을 칠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다.(주17)
이러한 모순은 허위에 찬 결혼 생활을 거부하고 사랑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은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마는 귀족 여성, 안나 까레니나의 비극 속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애정이 결혼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가 아닐 경우, 애정은 흔히 결혼
밖으로 흘러 나간다. 유럽에서는 이것이 궁정식 사랑, 기사와 귀부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애송되고, 간통이 공공연히 행해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실로 온갖 수단 방법이 다 강구되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 양반 여성들의 경우에는 매우 엄격히 가정에 격리되었으며
정절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하도록 강요당했다. 양반가에는 안채와 사랑채가 구분되어
여자들은 깊숙한 안채에 머물러 바깥 출입이 극히 제한되었다. 다만 피치 못할 경우에
한하여 외출시에는 반드시 하인과 동행하고, 밤이면 불을 밝히고, 얼굴을 가려야 했다.
이런 규제가 얼마나 엄격했는지는 집에 불이 났는데도 하인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타
죽은 여자가 열녀전에 올랐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또 여성이 정절을 잃을 일체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엄격한 내외법이 발달했다.
사오촌이라도 10세 후에는 한 자리에 친친말고, 남매간이라도 잡되히 회화마라
의복도 밖의 사람이 보게 말고. 아해 손(어린 아이 손님)이라도 (남자와는)
한자리에 앉지 말고, 아는 사람을 보아도 너무 익히 보지 말고, 손을 엿보지
말며 등등.(주18)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양반집 과부의 재가마저 금지되었다. 즉 성종 때 "재가한
부녀의 자손과 첩의 자식은 문과, 생원, 진사과 시험에 과거 응시를 할 수 없다"는
'재가녀 자손 금고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과부의 재가를 통한 혈통 관계의 문란을
막으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정절을 잃은 부녀와 간통한 남자를 모두
교수형에 처하는 법, 재가한 여자의 가장에 대한 처벌, 재가한 여자의 아버지에 대한
파직 조치, 재가한 여자를 아내로 삼은 자에 대한 징계 등이 행해졌다.
이에 따라 선조 때는 과부인 어머니가 종과 간음했다고 하여 가문을 위해 어머니를
살해한 자식이 있었으며, 과부가 음행했다는 풍문을 듣고 그 친형을 비롯한 친척들이
합세하여 그녀를 포박, 돌을 안겨 강물에 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절은 자기의 아들을 낳아 혈통을 보존하여 재산과 지위를 상속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을 때만 그 도구로서 할 일을 다한 것이었다.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에는 그나마 아내로서의 지위마저 박탈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소박을 맞거나, 첩이나 씨받이를 들이거나, 씨내림을 당해야 했다.
씨받이는 본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경우를 위해 아들을 낳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을 말한다. 그들은 대개 천한 신분이거나 가난한 과부였으며, 목숨을 잇기
위해 아이를 대신 낳아 주는 일을 했다. 그나마도 딸을 낳으면 거의 대가도 받을 수
없었다.
반대로 남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에도 여성은 수난을 당했다. 일제 시대의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함양의 가문 높은 김씨 종가에 시집 온 박소사란 여인이 시집온 지 15년만에 아들을
낳고 첫 이레가 지난 날 목을 매어 죽었다. 그 곡절인즉 남편이 아이를 낳을 수
없음을 알고 있던 시부모와 남편이 가계를 잇기 위해 음모를 꾸며 "가계를 잇는다는
것은 부도의 대강이므로 욕된 일이라도 참아야 하느니라"라는 타이름과 함께 떠돌이
옹기 장수를 박소사의 규방에 들여보냈다. 이 종가의 며느리는 위조된 종손을
낳아주고 자살하였던 것이다.(주19)
유교 문화권에서 특히 심했던 여성에 대한 이런 야만적인 박해로 인해 지배 계급의
여성들조차도 한 맺힌 삶을 살아야 했다. 봉건 사회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여자들에게 깊은 한을 안겨 주었다.
2) 피지배 계급의 여성
(1) 노동, 예속적인 파트너
봉건제의 특징은 자급 자족적이라는 데 있다. 장원 혹은 촌락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 자족적인 세계였다.
농노는 가족 단위로 토지를 보유하고, 경작하고, 생활하였다. 봉건 경제의 자급
자족적인 성격은 가족 단위에서도 나타난다. 농민 가족은 자기 가족이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생산했다. 식량과 의복, 신발, 비누와 양초 등등, 소금이나 철
정도만이 다른 곳에서부터 들어 왔고, 물레방아나 대장간 정도가 가정과 분리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주로 교환을 위해 행해지고, 교환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만이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이에 비해 봉건 사회에서는 생산의 주된 목적이 자급
자족, 가족의 생활 유지에 있었다. 따라서 농업 노동과 요리, 빨래 등의 노동은 둘다
사용 가치를 위한 노동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과 같은
차이를 낳지 않는다. 또한 가정이 생산의 단위였다는 사실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통합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남편의 부재나 사망시에 그의 아내나
미망인은 남편의 대리자가 되는 경우가 흔했다. 때로는 남편이 있을 때에도 남편의
권리를 함께 누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은 1459 년 펜전스의 어부인 존 깁스와 존
고프 사이에 작성된 도제살이 계약서이다.
고프는 자신의 마스터이자 상전인 깁스와 그의 부인 아그네스에 대하여 충실하게 잘
봉사하며 깁스와 그의 부인 아그네스는 그들의 도제 존 고프가 그들이 알고
있는 고기잡이 기술을 최상의 방법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그를 가르치고, 훈육하고
전수하고 일깨워야 한다. 앞서 말한 수업 기간이 끝나면 어떤 사취가 없는 한, 존
고프는 존 깁스와 아그네스로부터 20실링의 화폐를 받을 것이다.(주20)
더구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가 가장 절박한 것이었을
정도로 먹고 살기조차 힘드는 상황에서 농노가 잉여 생산물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이는 가족 내의 노동 분업이 재산 소유에 의한 지배 복종으로까지 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가족 단위에서 본다면 남편과 아내는 생활을 위해 함께 일하여 가까스로
살아가는 협력자였다. 14세기의 시 '쟁기꾼 피어스'는 농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한 가난한 사내가 쟁기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투는 개어리라는
천으로 만든 것이었어요. 두건은 해져 구멍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머리털이 솟아
나왔습니다. 땅을 밟을 때는 두꺼운 밑창 단 낡은 구두의 벌어진 틈새로 발가락이
삐져 나왔고 양말을 신었지만 복사뼈까지 드러났더군요. 쟁기를 뒤따를 때에 온몸은
진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긴 막대를 쥐고 옆에 따라 걷고 있었지요. 비바람을 막기 위해
키질하는 널판을 두르고 있더군요. 그녀는 맨발로 얼음 섞인 땅 위를 걸었는데 피가
흘렀습니다. 이랑 끝에는 작은 빵 그릇과 그 옆에 누더기를 걸친 소년이 있었고, 건너
편에 두 살쯤 먹은 갓난아이 둘이 누워 있었어요. 그애들은 다같이 노래를 불렀는데,
들을수록 애처로웠답니다.(주21)
다시 말해서 농민 여성과 남성은 다같이 영주에 예속되어 있고, 영주와 가족을 위해
함께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농노들 사이에서도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토지의 보유권이 남성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봉건 시대 농노는 노^36^예들과 달리 생산 수단에 대한 일정 정도의 권리가 있었다.
농노는 토지의 점유권, 경작권이 있었다. 토지의 경작권은 경작의 기본 단위인
가족에게 주어졌지만, 주로 농업 노동의 주요 담당자인 남성 농노들이 가족을
대표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토지의 보유권, 경작권은 아들에게 상속되었다. 아들이
없을 경우에 한해서 딸들도 상속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딸보다는 오히려 양자가
상속을 받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봉건 시대에 있어서도 여성들은 주로 가내 노동을, 남성들은
농업 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농노 가족 내에서 남편,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리의
토대가 되었다. 물론 여성들도 농업 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성별 분업이 행해진
위에서의 추가적인 노동이었으며, 농업 노동의 주된 담당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쟁기질이야말로 봉건 농민의 기본적이고 가장 널리 요구되는 기술이었고, 쟁기꾼은
중세 전시대를 통하여 거의 노동자의 원형으로 여겨졌다. 쟁기잡이란 오랜 세대 동안
영국인들에게는 어른, 즉 성년 남자의 일거리를 의미하는 말이었다.(주22)
봉건 시대 중국 여성에 대해 엘리자베스 크롤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남쪽 지방에서는 농촌 여인들이 바쁜 철에 들에 나와 노동을 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은 농사짓는 전체 과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없었다. 20세기 초에 조사를
했던 버크는 전농업 노동에서 여성은 16.4%만을 공급했음을 알아냈다.(주23)
또한 강남식씨가 우리나라의 60대 여성 농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내가 시집오기 전에는 여자들이 밭일이나 했지 논 근처나 나갔남", "왜정 말부터
여자들도 모내기했다"(주24)고 하여 자본주의화가 되기 전에는 여성들이 농업
노동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했음을 전해준다.
당시는 생산력의 발전 수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요리와 빨래, 육아
등에만도 많은 시간을 바쳐야 했다. "5리 물을 길어다가 십리 방아찧어다가" 밥을
하고, 시냇가에서 잿물로 빨래를 해야 했으며, 피임술이 발달되지 않아 일생의 많은
시간을 임신과 출산, 수유, 양육에 바쳐야 했다.
여성들은 베짜기 등의 방직, 방적 노동을 했으며, 직기를 소유했다. 그러나 이는
농민 가족 내의 부업적인 수공업이었다. 독립된 수공업자의 경우 가족 단위로 일했다.
이들 가족의 여성들 역시 수공업 노동을 했다. 당시의 수공업이 가내 수공업이고,
가정과 작업장이 동일하며, 가족이 생산의 단위였다는 사정에서 볼 때 이는 당연했다.
가정과 작업장은 동일하였다. 가족은 남편과 아내, 자식들, 도제, 직인, 하녀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확대 가족이었다. 직포공이 베틀 앞에 앉아서 일하는 동안 아내와
자식들은 양털을 소모하고 실을 뽑았다. 실잣기란 특히 소녀들이 도맡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는 실잣는 여자(spinster)라고 알려질 정도였다.(주25)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남편이 주로 수공업 노동을 하고, 여성들은 육아와 요리를
비롯한 가내 노동에 덧붙여 남편의 보조자로서 일했다. 남편은 장인, 즉 고용주이자
사업주였고, 가족원들은 그 옆에서 예비 작업, 보조 작업, 마무리 작업을 하여 그를
돕는 보조자들이었다. 이 가부장적 가족이 '중세 노동 세계의 중심'이었고 아내는
남편의 '예속적인 파트너'였다.
도시의 경우에도 여성들에게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길드는 여성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했다. 어떤 길드는 여성을 거부했으며, 조합원들이 여성 임금 노동을
고용하는 것을 금지한 길드도 있었다. 여성들은 도제를 훈련시키거나 도제로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서도 규제를 받았다. 도시의 자치권과 경제적 권리들이 주로 길드를
통해 행사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제한은 여성의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가내 노동, 직조를 담당하고 때로 농업 노동이나 수공업 노동의 일부분까지
해야 하는 여성들의 노동 시간이 남성보다 더 길고 더 혹사당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주26)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놓였으며, 가족
내에서 남성들에게 종속되었다.
(2) 가족, 나 하나는 썩는 새요.
노^36^예들은 가족을 갖지 못했다. 따라서 가부장적 억압도 없었음에 반해 농노는
가족과 아울러 가부장적 관계도 가지게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광범위한
피지배 민중들 사이에서 가부장적 억압을 찾아볼 수 있다. 가족 내의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요소는 부계제와 부거제였다. 토지의 보유권, 경작권이
남자들에게 주어지고, 남자들을 중심으로 상속됨에 따라 피지배 계급 사이에서도
부계제와 부거제가 일반화되었다. 지배 계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남자의
집으로 '시집가게'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를 중심으로 한 경작권과 부거제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 완전히
확립된 것은 조선 시대 중기에 이르러서였다. 그것은 지방의 모든 백성들의 생활을
통제할 정도의 권력의 중앙 집중화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와서 국가가 양반 관리들에게 토지의 수조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권력이 집중화됨에 따라 전국의 토지 대장이 만들어지고, 남자를 중심으로
전국의 가구 대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가는 것이
천도에 어긋난다며 국가가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잘 시행이 안되었으며,
토지 제도를 비롯한 국가의 제도가 정비되고 양반 사회가 정착한 중기 이후에야
비로소 일반에 시행되었다. 중종5년에는 성균관 생원 이경 등은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드는 것의 부당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며 이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사니 면목이 서지 않고 남편이 아내에게 기대어
사니 고용인과 비슷하여 아내의 집에서 호구를 한 즉 아내가 시부모 섬기는 것을 알지
못하고 심성이 오만해져 남편이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부부의 도가 무너진다.(주27)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여성들의 지위는 크게
하락하였다.
농업 노동에서의 중심적인 위치에 토대한 남성의 경작권과 부거제는 농노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리와 농노 여성들의 무권리의 기반이었다. 그리하여 지구상의 대부분의
곳에서 봉건 시대 여성들은 중노동과 시집살이, 삼종지도의 한맺힌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자기 집을 떠나 시집을 간 여성들은 가부장적 가족에서 최하위에
놓였다. 뿐만 아니라 결혼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분에 따라 부모의 의사대로
이루어졌으므로 결혼이 여성에게 의미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핍박과 고통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산도 설고 물도 선 곳에
누를 보고 내 여기 왔나
기와집이 열다섯 길인들
구경하러 내 왔더냐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가는 외기러기
동남갓을 향해가나 동서산을 향해가나
우리집골 가거들랑 이내말을 전해주소
우리어미 묻거들랑 옷을벗고 우드라소
우리아베 묻거들랑 신을 벗고 우드라소
(전략)
아홉쪽 반베치마 눈물받아 다썩었네
외나무다리 어렵다해도 시아버지 더어렵더라
시아버지 호령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시아재는 뾰죽새요 시누하나는 할미새요
남편하나 미련새요 자식하나 우는새요
나하나는 썩는새요
시집가서 사흘만에 불같이도 더운날에
사래길고 장친밭에 지질이도 지슨밭에
질걸이도 굳은밭을 한골매고 돌아보고
두골매고 돌아봐도 아무네도 아니와서
삼세골을 매다보니 점심참이 늦어가서
집이라고 찾아가니 대문곁에 눕던재가
요쥔네야 요쥔네야 그걸사 일이라고
점심참 대어오나 마당곁에 들어서니
큰머슴이 내다보고 그걸사 일이라고
점심참 대어오나 정지라고 들어가니
여수같은 시누이가 이성님아 저성님아
그걸사 일이라고 점심참 대어오나
이내방에 들어가서 행글행글 행농안에
쓰던 자루 석자내고 모시석자 끈을 달고
자루석자 바랑집고 임아임아 나는 간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중이 되어 나는 간다.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밥먹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고, 하다못해 개까지도
시집붙이라고 곱게 보지 않는 시집살이에 정붙일 곳이라곤 없어 차라리 중이라도 되고
싶었던 여성들의 심정이 나타나 있다.
(3) 저항, 여인 군대
이런 억압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봉건 시대의 농민 봉기에 여성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에서 보이는 여성들의 맹활약과 남녀평등의 요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들은 태평천국의 전투 능력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그들은 여성만의 독립된
군대로 조직되어 상제 홍수전의 누이인 홍성교의 지휘를 받았다. 그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들과 대항하는 제국 군대의 사기는 꺼져 버리고 말았다 한다.
남경을 수도로 정할 때까지 각각 2,500 명의 병사를 가진 40여 개의 여인 군대가
있었다.(주28)
여성들의 용맹과 활약은 최근까지 민중들 사이에 민요로 전해온다.
배과부는 젊었네
마을에서 멀리 떠났지
태평천국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처음에는 보통 병사들의 막사에 있었지만 창과 총을 너무도 잘 써서
천공자 그분께 칭찬을 받았지
그녀는 태평 여자 사령관까지 올라갔네
눈이 좋기로 유명해서
3리밖까지 밝히 볼 수 있었고
적이 숨어들어올 땐 언제나
기다렸다가 총을 쏘았지
아, 배과부 배과부는
한 번 쏠 때마다 하나씩 쓰러뜨렸지(주29)
이런 여성들의 맹활약은 태평천국의 남녀 평등의 강령에 반영되었다. 태평천국은
토지 재분배, 재산 공유와 함께 성의 평등을 강령으로 삼았다. 매매혼을 금지하고 자유
결혼, 일방적 정조관의 폐지, 개가 허용, 창기 금지 등을 실시했고, 여성들에게도
과거에 응시할 권리를 주어 여승상도 있었으며, 상제의 조정에서 참모장과 대신에
이르는 모든 공직을 맡도록 허용하였다. 태평천국은 실패로 끝났고, 그나마도
태평천국의 지도자들 자체가 봉건적 관념을 극복하지 못했었지만 태평천국의 난으로
타오른 여성들의 해방의 의지와 열망은 봉건적 여성 억압을 타파하는 힘으로 살아
이어졌다.
3)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억압받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이데올로기는 억압적인 현실을 합리화하여 자발적으로 이에 따르게 함으로써
억압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억압이 심화될수록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도
정교해지고 고도화되었다.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는 한편으로는 일상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지극히 세세한
일들까지를 성차별적으로 규정하여 남녀 차별적 의식을 고정관념으로 만들고 남녀
차별을 생활화, 습관화하는 역할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녀 차별 원리를 철학,
종교와 결부하여 우주의 근본 법칙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물론 이런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얼마나 받아들여졌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 생활의 많은 부분들은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았다. 그러나 남녀 차별 이데올로기는 핵심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크게 강조되었고,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주요한
관념으로 되었다.
일상 생활을 규제하는 남녀 차별적 이데올로기는 한마디로 '남녀 유별'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첫째, 남자의 지배와 여자의 복종, 남자의 우월성과 여자의
열등성에 대한 규정, 둘째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 셋째 여성과 남성의 성격과 기질에
대한 규정, 넷째 여성에 국한된 정절 이데올로기 등이다.
첫째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로 대표된다. 집안의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어야 하며 여자는 어떤 경우에도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거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면 가부장적 가족은 망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적 가족이 망하는 것을 가족 일반이 망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리하여 남성의 이익, 아니 가부장의 이익을 모든 가족원의 이익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 가부장적 가족 안에서 암탉은 울지도 못해야 했다.
시부모와 지아비가 혹 그릇 알으시고 꾸중하시거든 잔말하여 어지러히
발명말고 여자가 비록 총명한 지혜가 있다 할지라도 먼저 설치지 말고 남편을
보좌함이 가하다.(주30)
사나이란 것은 어진 이도 있으며 슬기로운 이도 있으며 미련한 이도 있으며 착한
이도 있으며 병든 이도 있으며 횡악한 이도 있나니 여자의 일신이 사람을 만난 즉
일생이 괴롭고 서름이 무궁하더라도 배필이 된 후는 죽도록 지성으로
도울지어다.(주31)
어른 앞에서 발벗지 말고, 말은 온화히 하고, 눈들어 살피지 말고, 기지개 켜지
말고, 트림 말고, 하품 말고, 재채기 말고, 가려운 데 긁지 말고.(주32)
둘째로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는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바깥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축약될 수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성별
분업을 반영한 것이면서, 성별 분업이 단순히 노동상의 분업이 아니라 남녀의 의식
세계와 전생활상의 분업으로까지 굳어지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무능한 남자는 아홉 주를 돌아다닐 수 있지만 유능한 여자는 부뚜막 근처에 머물
뿐이다.
문에 기대 서있는 소년들이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드로가 같이
가슴에는 4 대양을 품고
수만리 풍진을 품고.
그녀는 자라자 자기 방에 숨겨졌네
행여 면전에서 남자를 볼까 두려워서(주33)
세 번째 남녀의 기질과 성격에 관한 이데올로기는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약하다"는
것이다.
음양이 성이 다르고 남녀가 행적이 다르니 양은 굳셈으로써 덕을 삼고 음은
부드러움으로써 용을 삼으며 남자는 굳셈으로써 귀함을 삼고 계집은 약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삼나니 그러므로 남자는 가죽띠를 띠고 여자는 실띠를 띠고 멘다.
아들은 이리 같아도 오히려 약할까 걱정하며 딸은 쥐 같아도 오히려 범같을까
저어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약자로서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며, 노동과 활동 영역의
차이가 요구하고, 또 거기서 생겨나는 성격과 기질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
이데올로기는 역으로 남녀의 타고난 성격과 기질상의 차이로부터 역할과 지위의
차이가 생겼다는 생각을 불어 넣어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와 남성의 독재를
합리화했다.
남녀의 엄격한 성별 분업과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봉건 시대의 여성과 남성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남자거나 여자로서만 존재할 수 있게 했다. 공적인
영역은 그 담당자들에게 지혜와 용기, 지도력과 강인함, 냉철한 이성을 요구했으며,
사적인 영역은 세심한 배려, 헌신성과 희생성, 인내와 풍부한 감성을 요구했다. 남자와
여자의 엄격한 성별 분업은 남자와 여자가 이러한 성품 중 어느 한 쪽만을 가지도록
강요했다. 여자가 활달하고 지혜와 용기를 갖추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여자답지 못한'
결함이 되었으며, 남자가 부드러운 감성과 세심한 배려, 헌신적인 성품을 갖는 것 역시
'사내답지 못한' 것으로 금기시되었다.
이렇듯 인간의 전체적인 본성에서 서로 분리된 덕성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덕성일
수 없다. 즉 남성의 강함은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 지배자의 이기심, 권위주의, 자기
중심성,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 냉혹성을 이면으로 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성의
헌신성과 부드러움은 복종과 의존의 노^36^예 근성을 다른 한편으로 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의 덕성, 강함과 부드러움, 지도력과 타인에 대한 헌신성, 이성과 감성이
전체로서 통일될 때만, 이 덕성의 다른 한면,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복될 수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 지배와 복종의 관계에서 해방될 것을 필요로 한다.
넷째로 정절 이데올로기는 봉건 사회에 전형적인 여성 억압 이데올로기다. 앞에서
말했듯이 정절은 신분이 세습되는 봉건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신분은 기본적으로
혈통에 의해 구분되고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분적 질서가 엄격해지고 위계가
다양해질수록 정절에 대한 요구는 한층 더 강화되었으며, 지배 계급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까지 확산되었다. 특히 양반의 수가 늘어나 양반들 사이에 토지와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 격화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양반의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
양반들 사이에 서열을 매기는 수단으로 여자의 정절이 이용되었다. 이에 따라 정절에
대한 강조도 도를 넘어서게 되었다.
개가하는 것은 정절을 잃는 것을 뜻하니 이는 인지상정에 앞서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가난하여 의지할 데가 없는 여자라 해도 개가를 해서는 안된다.
굶어 죽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지만 정절을 잃는 것은 지극히 큰 일이다.(주34)
이렇듯 정절 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점점 확산되어 여성들의 의식을 지배하였으며,
이는 다시 거꾸로 여성들의 행동을 규정했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 피난가던 부녀가
나루터에서 사공이 배에 오르도록 손을 잡아주자 외간 남자의 손에 손목을 잡힌 것은
곧 정절을 잃은 것이라 하여 강물에 투신자살했다는 기록까지 전해온다.
남녀 차별의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행동 규범에 그치지 않고 봉건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종교 속에서 우주의 법칙으로까지 승화되어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예를 들어 유태교에서는 인간이 원죄를 짓게 만든 것은 여자이며, 이로인해 여자는
평생 동안 남편의 종이 되어야 하고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기독교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교리를 계승하였다. 사도 바울은 남녀 차별의 논리를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에 비추어 설파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듯이 남편은 아내의 주인입니다.(주35)
남자는 신의 형상이고 신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주36)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주37)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주38)
서양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본성에 관한 한, 여자는 결함이 있는 사생아이다. 왜냐하면 남자의 종자에
있는 활동적인 힘은 남성을 따라 완전히 유사하게 생성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성은 활동적인 힘의 결함, 혹은 어떤 물질적인 배열의 잘못, 혹은
심지어는 습기찬 남풍과 같은 어떤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생겨난다. 다른 한편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에 관한 한, 여자는 사생아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일을 하도록
지시된 자연의 의도에 포함된 것이다. 자연의 일반적 의도는 자연의 일반적인
창조자인 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창조함에 있어서 신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를 만들었다.
복종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36^예의 복종으로 이를 통해 우월자가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피지배자를 이용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복종은 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종류의 복종은 경제적, 혹은 시민적 복종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에 의해
우월자는 복종하는 자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의 복종자들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복종은 죄 이전부터 존재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족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들보다 현명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다면 질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복종에 의해 여자는 자연적으로 남자에게 복종한다.
왜냐하면 남자에게 있어서 이성의 분별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주39)
인도의 '마누 법전'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불명예의 근원은 여자이다. 불화의 근원은 여자이다. 때문에 여자를 피해야 한다.
여자는 선천적으로 늘 남자를 유혹하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친족의
여자라도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동석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 동양의 여러 나라들에서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이르는
동안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한 유교에서도 나타난다. 유교는 남존여비의 원리를
우주의 법칙이라 가르치고 있으며, 유교 자체의 핵심적인 원리로 삼았다. 남존 여비의
원리는 계급 지배의 이데올로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하늘은 양이다. 지극히 건전해서 그 위치가 위에 있으므로 아버지의 도리에
해당한다. 땅은 음이다. 지극히 순해서 그 위치가 아래에 처하므로 어머니의 도리에
해당한다.(주40)
남편은 하늘이다. 하늘은 도망할 수 없으며 남편은 위배할 수 없다. 행동이 신에
위배되면 하늘은 벌을 내린다. 예의에 잘못이 있으면 남편은 박대한다. 때문에
남편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듯 충신이 임금을 섬기듯 해야
한다.(주41)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여 여자보다 먼저 행동하는 것은 강한 것이 유순한 것보다
먼저 움직이는 도리이니 이는 하늘이 땅보다 먼저 움직이며 임금이 창도하여 신하가
거기에 따르는 것과 같다.(주42)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맞지 아니한다.(주43)
아내가 남편을 따름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의리로써 해야 하나니, 임금이 비록
포악하고 우매하여도 신하로서의 의로 행하고 충성을 극진히 하고 죽음으로써 그
의리를 지켜야 하듯이, 남편이 비록 험악하고 어리석으며 망녕된 행동을 할지라도
아내는 더욱 그 공경을 다하고 그 정절을 지켜야 한다.(주44)
여성이 남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은 임금에게 충성해야 하는 것과 같고
이를 어기는 것은 인륜에 위배되며 나아가 음이 양을 따르는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는 음양의 법칙처럼 영원 불변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항의한다면 이는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것이고 우주의
법칙을 깬 것이 된다. 노^36^예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순순히 자발적으로 노^36^예가
되는 자만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고 우주―사실은 봉건 사회―와 신의 섭리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비인간만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고 인간이 되려는 자는
비인간으로 단죄된다. 여성은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만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귀먹고
눈멀고 말 못하는 세월을 보냄으로써만, 자아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만 여성들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를 이기면 소박이라는 형벌을 당했으며 이는 곧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것, 존재가 부정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봉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남녀가 평등한 시절을 알지 못하였으며 태어난
순간부터 남녀 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라났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남녀는 왕과 신하, 양반과 상민이 그러하듯이 남녀는 처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이 영원 불변하는 우주의 법칙이라고 믿게 되었다.
(주)
1. hegel, early theological writings, t. m. knox 역, chicago, 1948, pp.
154--155, 슬로모 아비네리, 김장전 역, '헤겔의 정치 사상', 한벗, 1981, pp.42--43
2. 묵자 책 51쪽 참조
3. w. k.lacey, 위의 글, susan groag bell, 위의 책, p.26.
4. 엥겔스, 앞의 책, p.72.
5. 앞의 책
6. 묵자 책 53쪽 참조
7. susan groag bell, 앞의 책, pp. 48--49.
8. jerome caropino, 앞의 글, p.67
9. 유리시우즈의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가 남편이 표류하던 20 년 동안 구혼자들을
물리치느라 양탄자를 쌌다 풀렀다 하며 세월을 죽일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길쌈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0. jerome caropino, 앞의 책, susan groag bell, 앞의 책, p. 49--69 참조.
11. 묵자 책 58 참조.
12. 차전환, '기원전 2세기 전반 로마의 농장 경영, 카토의 농업론을 중심으로',
서울대 석사 학위 논문, 1986, p40--45, 정현백, 앞의 글에서 재인용.
13. s.b.pomeroy, 앞의 책, p. 204.
14. 묵자 책 61 참조.
15. 줄리아 프레윗 브라운, 박오복, 이경순 역, '19세기 영국 사회와 소설', 열음사,
1990, p. 115.
16. 이퇴계, '규중요람'
17. 한정숙, '혁명, 그리고 여성해방' 여성사연구회 편, '여성2' p30.
18. 이익, '성호사설'
19. 이규태, '이규태 걸작 선집 7' 311--312
20. 헤리슨, 이영석 역 '영국 민중사', 소나무, 1989, pp58--59
21. 위의 책 p.43
22. 위의 책, p31--32
23. 엘리자베스 크롤, 김미경, 이연주 역, '중국여성해방운동', 사계절, 1985, p.27
24. 강남식, '한국 여성 농업 노동자 계급에 관한 일연구', 이화여대 석사 학위논문,
1984.
25. j.f.c. 헤리슨, 이영석 역, '영국민중사', 소나무, 1989, p.58
26. 당시 프랑스 여성에 대한 한 영국인 여행자의 보고에 따르면 "여성들은 허리가
굽고, 우마보다도, 대부분의 남자보다도 더 혹사당하고 있다." 여성편집위원회, '여성2'
p 9.
27. 묵자책 73쪽 참조.
28. 엘리자베스 크롤, 앞의 책, pp.48--49
29. 위의 책, P. 49
30. 안시열, 정음사, 1946. 이런 논리는 역설적으로 실제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음을 반영한다.
31. 묵자책 78쪽 참조
32. 위의 책
33. 엘리자베스 크롤, 앞의 책, p.22
34. 주자, 근사록
35. 신약성서, 에베소서.
36. 신약성서, 고린도 전서.
37. 신약성서, 디모데 전서 2: 11
38. 신약성서, 고린도 전서 14: 34: --35.
39. 묵자책 82쪽 참조.
40. 한명숙, '조선 시대 유교적 여성관의 원리론적 고찰',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 1985, pp.12--13에서 재인용.
41. 위의 논문, p.41에서 재인용
42. 명론 '소학'
43. 위의 책.
44. 주자가훈, '부녀의 규범.
제2부 땅에서 하늘의 절반으로
자본주의는 여성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백여년간 우리 사회의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나타난 많은 변화들 가운데서도 여성의 삶과 지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손꼽힐 정도로 두드러진 것이다.
여성들은 가정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회적 노동과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성들에 대한 법적인 차별은 철폐되고 있다. 축첩과 봉건적인 혼인
제도는 폐지되었다. 흔히 "요즘 여자들 살기 좋아졌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듯이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옛날에는 남녀 불평등과 차별이 자연 법칙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흔히
우주와 신의 법칙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거의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녀 평등이 법칙이 되었다. 각국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 평등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으며, 누구도 이 대의에 공공연히 반대를 표명할 수는 없게 되었다. 여성 국회 의원,
여성 법관, 여성 장관이 늘어나고 있고, 장관의 절반 이상이 여자거나 여성이 국방부
장관이 된 나라도 있다. 여성들 중에는 학자, 화가, 시인, 음악가로서 이전 같으면
묻혀버렸을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고, 노동자로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고 있다. 사회 활동 중에서 여자는 할 수
없고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졌다. 여성들은 이제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유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남녀 차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에서도 헌법 전문에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했으며, 헌법 제 11조 1 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또 제36조 1 항에는 가족 제도에 대한 민주주의적 제도 보장과 혼인의 자유,
양성의 평등을 규정했다. 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까지
신설되었다. 최근에는 가족법도 개정되었으며, 남녀 평등에 관한 법도 제정되었다.
이런 법률들은 그 의도와 실제가 어찌되었든 간에 아무리 비민주적인 정부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시대가
변했으며, 역사가 피할 수 없이 남녀 평등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일이다. 일단 깨어나기 시작한 여성들을 뒤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억압이 생겨나 오히려 여성들을
더욱더 심각한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가져온 모든
진보가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끌어들이면서 가사 노동의 부담을 철폐하지 않았으며, 일부일처제를
확립하면서 매춘 역시 하나의 사회 제도로 만들었다. 가정의 역할이 축소됨에 따라
가정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노동에서의 확고한 위치
역시 아직 자리잡히지 않았다. 남녀 평등의 대의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전래의 관념을 타파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성 문제의 복잡성과 상호 모순되는 현상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시기임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여성
억압은 붕괴되고 새로운 남녀 관계를 위한 광범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자본주의가 남녀 평등을 위한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남녀
평등의 진전은 오히려 자본주의 자체에 의해 제한되고 왜곡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순적이고 과도기적인 성격은 여성의 고통을 더욱 가증시킨다.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이런 과도기적인 성격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여성의 지위는 궁극적으로 노동과 가족에서의 위치에 의해
규저오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과 가족에서 여성의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여기서의 주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급적 위치에 따라 여성들이 놓인 처지와 안고 있는 문제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먼저 계급적 위치에 따라 자본주의가 미친 상이한 영향을 지적하고, 다음으로 주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노동과 가족에서 여성들이 놓인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1장 계급적 지위와 여성 문제
1. 자본가 계급 여성, 황금빛 예속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전래의 성별 분업을 타파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성별 분업이 자본가 계급에 있어서는 아직
완강하게 지켜지고 있다. 노동자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40%에 달하는 반면, 자본가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단지 1.4%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서관모의 연구에 따르면 1985 년 현재 우리나라 경제 활동 인구 중 자본가 계급은
1.4%인 22 만 명에 불과한데, 그 중 여성 자본가는 전체 자본가의 1.4%로 겨우 2천
명에 지나지 않는다.(주1)
사유 재산의 소유와 상속이 가족 관계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자본가의
가족이야말로 여성이 아직도 고전적인 역할, 즉 상속자를 낳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부일처제 가족이다. 자본가의 아내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일은 미래의 상속자를 낳아서 잘 키우는 일이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미래의
상속자를 낳아 기르는 것인 한, 여성이 사회 활동으로부터 배제되거나 최소한 남편의
보조자, 혹은 부차적인 담당자에 그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자본가 계급에게 있어서는
성별 분업이 더욱더 확고해졌다.
봉건제 사회의 가족이 하나의 생산 단위였던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은
단지 소비의 단위이다. 자본가 계급의 여성들은 법적으로는 남성과 평등해졌지만,
실제로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봉건 시대보다도 더 좁은 영역에 갇히게 되었다. 봉건
시대 영주의 아내들은 남편 대신 장원의 경영을 맡아보고, 가신을 거느리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가족과 생산이 완전히 분리됨에 따라 자본가
가족 내에서는 남편의 일과 아내의 일도 보다 더 확연히 구분되었다. 또한 봉건 시대
귀족의 지위는 귀속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토지는 신분과 함께 세습되는 영속적인
권리였다. 그러나 자본가의 지위는 끊임없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다.
사유 재산권은 신분과의 결합이나 농민의 하급 소유권 따위를 떼어버리고 완전히
배타적인 권리로 완성되었지만, 그대신 그것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빈둥거리고 사냥이나 다니는 것으로 소일할 수도 있었던
귀족에 비하면 오늘날의 지배 계급인 자본가들은 비교할 수 없이 바빠졌다.
자본가로서 성공하는 것은 거의 전적인 시간과 정력을 투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여자들은 일차적으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가 남편을 가진 여성이 자식을 돌보는 대신 구태여 험한 일에 뛰어들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가족을 단위로 생각할 때 이러한 성별 분업은 가족이 살아가는 하나의 합리적인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을 놓고 보면 이런 분업이 불평등의 기초가 된다.
자본가인 남편이 많은 부를 쌓아올릴 수 있는 반면, 임신, 출산, 육아 등에 전념하고
있는 그 아내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자본가 계급 내에서 법적인
평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생산과
가족, 사회적 활동과 사적 생활의 분리가 진행될수록 부르주아 가족의 여성은 드높은
담에 둘러싸인 성에 갖힌 꼴이 되었다. 단지 그 담이 황금 벽돌로 되어 있다는 것으로
인해 이들의 예속이 잿빛이 아니라 황금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엥겔스는 부르주아
가족의 눈부신 광휘에 숨겨진 본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
적어도 유산 계급에 있어서는 남편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어떠한 법률상의 특권이 없더라도 그에게는 지배자의 지위가
부여된다. 가족 내에서 남편은 부르주아지이며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이다." 부르주아
가족의 이러한 황금빛 지배 예속은 다음과 같이 찬미되고 있다.
흔들림 없는 지혜를 가지고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주인인 그가 모든 것을 다스린다.
지켜주는 자, 이끌어가는 자, 그리고 심판하는 자, 그는 부귀영화를 쌓아올린다.
그 밑에서, 이름난 철학자인 마틴 터퍼의 말을 빌면 "가정의 선량한 천사인 어머니,
아내, 여주인"이 훨훨 날개치고 다녔다.(주2)
자본가의 아내들은 착취한 부에 기생해서 산다는 점에서 노동자 계급과는 정반대의
사회적 위치에 놓여있다. 그러나 가족 내에서는 재산의 소유자인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다. 즉 이들은 이중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 이들은 남편을 통해서
지배자의 권리의 일부에 참여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이들은 자기 자신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남편이 획득한 이윤에 기생해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사치와 낭비, 비생산성의 분야에서 명예 학위를 얻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족
내에서 이들은 피지배자의 위치에서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 특권과 부유한 생활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편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는 권리 역시 제약되고
불안정하다. 이들이 누리는 가장 큰 권리라고 해야 소비 생활의 담당자로서의
권리인데,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기 빠듯한 노동자들과는 달리 자본가에게 있어
소비(노동자들이 일생 동안 뼈빠지게 일해도 도저히 한 번에 만져볼 수 없는 엄청난
돈을 단순히 사치와 방탕에 써버리는 자본가들의 어마어마한 소비)는 그의 부 전체에
비해 아주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의 지위는 단지 혼인을 통해서 유지되는데 혼인은 자본주의와 함께 매우
약화되었다. 자본주의는 세습적인 신분 제도와 결별함으로써 결혼의 자유뿐 아니라
이혼의 자유도 그 법전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남성이
우월한 지위를 갖는 사회에서는 보다 흔히 남성의 권리로 변한다. 물론 아직은 지배
계급들이 겉만 번지르르한 명예를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는 경우가 피지배
계급의 경우에서 보다 많긴 하지만, 법률과 강력한 관습에 의해 보장되던 봉건 시대
안방마님의 자리에 비해 현대의 '사모님'의 자리는 매우 불안정해졌다.
이런 상황으로부터 이들의 여성 운동의 목표와 방향이 나온다. 그것은 기존의 체제
내에서 남자들의 권리를 같이 누리는 것이다. 재산 상속권의 평등과 국가 기관에의
평등한 참여가 이들의 핵심적인 요구이다. 서구와 우리나라의 부르주아 여성 운동이
참정권 운동과 가족법 개정 운동으로 전개되어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그나마 남성의 영역에 뛰어들어 개척을 하고 있는 2천
명의 여성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이 개척자로서 온갖 편견과 불이익과 차별과
역경과 맞서 싸워왔으며, 이를 이겨내왔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천여만 명 중에서 2천 명이 누리고 있는 남녀 평등의
권리가 나머지 1천 999 만 8천 명 여성들의 고통과 억압 상태를 상쇄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성공한 여성들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이들의 성공이 대다수의
상대적 빈곤과 소외를 이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존재는 인구의 대다수를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는
노동자로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이들 대다수 여성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는
남녀 평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본가로서, 이 사회의
지배자로서, (그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층 계급 여성들을 억압하는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부르주아 여성 운동,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모든 여성에게 공통된 이해 관계"가 갖는 한계다. 게다가 자본가의 아내들은 대개
자본가 계급의 딸들로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부동산 투기나 증권 투기
등 지하 경제 활동에 손대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로 그 방면에서도 이미 확고한
명성을 구축했다. 이들은 자본가로서 성공하기에 (같은 조건의 남자들에 비하면)
장애가 많지만, 다른 계급과 계층에 비하면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노동자 계급
여성들에게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이들은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더욱이 사회 활동의 법적인
자유 (특히 국가 기관의 고위직에의 진출 보장과 일정 비율의 할당 등)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이들의 문제는 점점 더 부차적인 것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사모님'의 지위에 안주하는 자기 자신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정권 획득과
가족법 개정 이후의 서구의 부르주아 여성 운동이 여성들 자신을 향한 '자기 개발'의
호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여성 해방에 있어서 부르주아 계급
여성의 역할이 이미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역할은 노동자 계급 여성의
어깨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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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동자 계급 여성, 진퇴 양난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자본가 계급 여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자본가 계급 가족의 가장 중요한 구성 원리는 재산을 지키고 상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가족의 가장 중요한 구성 원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는 노동 분업과 이에 기초한 생산 수단의
소유에 달려 있다. 봉건 사회에서 농노 남성은 주요한 생산 수단인 토지에 대한
점유권을 가졌으며 이는 남성을 중심으로 상속되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농민은
토지를 빼앗기고 무산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여성 지배의 기초도 잃어버렸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나성과 여성을 똑같은 무산자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똑같이 노동자로
만듬으로써 적어도 노동자 계급에 있어서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에 절반쯤
종지부를 찍었다.
자본가 계급과는 달리 사실 오늘날 노동자의 아내는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가 없다.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성들 자신도 나가서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남자들과 함께 사회의 짐을
떠맡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 여성이 노동자 계급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8 년
현재 33.7%이고, 여성 경제 활동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8.4%다.(주3)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는 1960 년대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여성 노동자의 증가율은
남성 노동자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됨으로써 가정 안과 밖을 축으로 한 노동
분업도 붕괴되었다. 남존 여비라는 '우주의 법칙'은 적어도 노동자 계급에게는 잘 안
통하게 되었다. 성별 분업을 결정적으로 붕괴시키고 여성을 대거 사회적 노동에
참여시킨 것은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가져온 가장 중요한 진보이며, 다른 모든 진보의
기초이다. 여성들이 새로 떠맡은 짐이야말로, 그들이 가정과 사회에 대해 가지는
권리의 기초이다. 여성들은 생산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생산의 주인이 되고, 사회와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된다. 여성이 생산력의 주요한 담당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수천 년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여성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를 해방이 아니라, 자본에의 예속으로 만든다. 여성은
가정에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은 보다 완강한 적에게 예속되기 위해서였다.
여성들은 노동자로서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위치가 다시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가정 내에서의 지위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사회적 노동에서나 가정에서나 모순에 처하게
된다. 이런 모순은 다음과 같은 말에 요약되어 있다.
월요일 아침 그때부터 시작하는 일주간을 생각하고 나는 가정에 있는 여자들을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일요일 저녁 하루의 청소를 끝낸 후에는 나는 그녀들을
동정한다.(주4)
직업을 갖든 가정에 머물든 그것은 자유지만, 그 자유는 진퇴 양난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여성 노동자를 진퇴 양난에 몰아넣는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의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자.
(주)
1. 서관모, '한국 사회 계급 구성의 사회 통계적 연구' , 김진규 외, '산업사회 연구',
한울, 1986. 이 중 개인 기업주가 1천 300 명, 고급 관리자가 600 명이고, 고급
공무원은 통계에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이다. 2천만 여성 중에서 2천명, 이
0.1%의 여성들만이 그나마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남녀 평 등의 실질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 극소수의 성공한 여성들은 흔히 요즘은 여자도 능력만 있으면 출세할 수
있다는 증거로 거론되며, 우리 사회의 남녀 평 등의 표징이 되고 있지만, 역으로
성공한 여성은 극히 적다는 지표가 되고 있기도 하다.
2. e. j. 홉스봄, 정도영 옮김,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83, p.389.
3. 노동부, '노동 통계 연감', 1989.
4. 클로디 블로이엘, 김주영 역, '하늘의 절반' 동녘, 1985, p.23.
제2장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과 여성
1. 사회적 노동
자본주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여성을 사회의 주요한 생산 부문에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가정을 벗어나 사회적 노동에
참여한다. 오늘날 여성들이 진출하지 않은 노동 분야는 거의 하나도 없다. 미국에서는
1980 년 현재 노동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42.5%에 이르렀다. 이는 1950
년의 29.6%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이며,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여성들은 사회적 노동에서 각종 차별과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차별의 실상과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살펴보자.
1) 고용 차별,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1979 년에 채택된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조약 제 11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1. 당사국은 남녀 평등의 기반 위에 동등한 권리를 보호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용
분야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도록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특히,
#1 모든 인간의 불가침의 권리로서의 노동할 권리.
#2 동일한 채용 기준의 적용을 포함한 동일 고용 기회를 보장받을 권리.
#3 직업과 고용의 자유로운 선택권, 승진, 직장 안정 및 업무에 관련된 모든 혜택과
조건을 누릴 권리, 그리고 견습, 고등 직업 훈련 및 재훈련을 포함한 직업 훈련 및
재훈련을 받을 권리(중략).
2. 당사국은 결혼 또는 모성을 이유로 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며 여성의
노동에 대한 유효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1 임신 또는 출산 휴가를 이유로 한 해고 및 혼인 여부를 근거로 한 해고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하략).
우리나라도 1985 년 1월 26일 이 조약의 정식 가입국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갖는다"(제 32조 1 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 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
32조 4 항)고 규정했다. 최근에는 모집과 채용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과, 교육,
배치, 승진, 정년, 퇴직, 해고에 있어서 남녀 차별 금지를 규정한 남녀 고용 평등법을
제정하고 뒤이어 개정까지 했다.
그러나 여성의 현실 조항은 법 조항과는 완전히 반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제 1조,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여성의 노동할 권리", 제 2조, "여성을 고용
차별할 자본의 불가침의 권리", 기타 등등. 여성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고,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대부분 결혼 퇴직제로 인해 평생 동안 다닐 수 없으며,
기혼 여성의 대개의 일자리는 단순, 하위직뿐으로 평생 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일자리가 없다.
1985 년 현재 우리나라의 남성 노동자는 459 만 8천 명인데 비해 여성 노동자는
224 만 1천 명으로 남성 노동자 수의 약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일자리가 없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다. 1980 년 미국 남성의 노동력 참가율은 77%인데 비해 여성의 노동력
참가율은 51.2%이다. 물론 여성의 참가율은 1950 년의 33.9%로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비해 남성의 비율은 1951 년 86.5%에서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노동력 참가율의 차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위치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여성의 고용 기회는 남성보다
제한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몸뚱이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여성들에게는 이 기회마저 제한되어
있다. 여성들은 자기 힘으로 생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경제적인 독립은 인격적
독립의 토대다.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의 인격적 독립이란 허구에
불과하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예속되는 가장 일차적인 요인이다.
여성에게 일할 기회가 제한된다는 것은 여성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실현하고, 사회적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실현할 권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전면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생산의
사회화는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발전의 토대다. 그런데 여성은 낡은 사적인
영역에 갇혀 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이 된다.
* 결혼 퇴직
여성이 고용에서 겪는 또 하나의 문제는 결혼, 모성과 관련한 차별이다. 남성
노동자에게는 결혼이 직업 경력에서 안정성을 높이는 이유가 되지만(남자 노동자는
결혼할 경우, 가족 수당, 사원 주택, 자녀 학자금 등의 혜택을 받는다) 여성
노동자에게는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유가 된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다니는 이 회사에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고 저 또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전문직으로 입사를 했기 때문에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어떤 특별한 불이익을 당하리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이사님이 부르시더니 회사 방침상 결혼하고
계속 다닐 수는 없다. 사표를 내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주1)
결혼 퇴직제는 생산직, 사무직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남성 노동자의
경우에는 미혼자와 기혼자의 비율이 약 4 대 6인데 비해 여성의 경우에는 약 7 대
3이다. 아직도 여성은 미혼기에 일시적으로 취업하는 일시적인 노동력으로 취급되고
있다. 최근 들어 기혼 여성 노동자의 고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계속해서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 퇴직하여 임신과 출산, 수유기를 지난
여성들이 재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결혼
전의 직업 경력은 인정되지 않으며 그 대부분이 시간제나 일용제 등 임시직으로
일한다.
모성 책임과 결혼 퇴직제로 인해 여성의 노동력 참가율은 위와 같은 모양이 된다.
노동자의 경우, 결혼 전과 후의 비율이 더욱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 남자에 한함
여성 노동자는 점점 증가하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단순직과 하위직에 고정된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의 98%는 비직급의 최하위 말단 노동자다. 이런 직업이 아예
'여성직'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전문 기술직, 관리직에는 여성이 거의 없다. 우선 아예 채용을 하지 않는다. 전문
기술직이나 사무직, 관리직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의 구직 광고를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1985 년 『서울 신문』의 채용 광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녀 구분 없이
채용한 경우는 15.7%에 불과하고 남성만 채용한 경우가 60.0%, 남녀를 구분해서
채용한 경우가 22.9%였다. 최근에는 채용광고에서의 남녀 차별을 금지한 남녀 고용
평등법으로 인해 이런 광고는 많이 줄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용 차별 자체가
준 것은 아니다. 신문의 공채 광고에 명백히 남성만 모집한다고 하지 않은 경우에도
여학생이 입사 지원서를 받으러 가면 여성에게는 지원서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다.
추천을 통해 채용하는 경우에도 여성은 제외되기가 일쑤다. 1989 년 10월 25일자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A대학의 전산학과로 코오롱 그룹에서 추천 원서가 3장
왔는데, 그 과의 한 여학생의 성적이 3위 내여서 회사로 문의한 결과 '만약 여학생이
추천서를 받아오면 원서를 받기야 하겠지만 면접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답해와 그
추천장은 모두 남학생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을 아예 채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직종에 채용한 경우에도 승진을
시키지 않으며, 그에 필요한 교육, 훈련도 하지 않고, 직무의 배치에서도 차별을
함으로써 하위직에 고정시킨다. 그리하여 여성은 같은 직종 내에서도 단순 반복적인
작업에 배치되어 자기 개발의 기회와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다.
사무직 여성의 경우 승진이나 승급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거의 없는
편이^36^예요. 자기와 같이 입사한 남자들은 대리, 과장, 부장이 되구 월급도 1.5배,
2배, 3배로 늘어가는데 여직원들은 아무런 발전이 없으니까 결혼이나 생각하구
그래요. 단체 협약이나 사규에는 여직원에게도 승급 기회를 주고, 또 결혼해서도 다니
수 있게끔 명문화되어 있지만 사실상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어요. 예를 들어 저희
같은 경우, 신입 사원으로 입사할 때 같은 고졸이라도 남자는 5급이구 여자는 6급으로
시작해요. 똑같은 일을 하고, 어떤 면에서 여자가 더 많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입사 후 3, 4 년이 지나야 5급이 되는데 거기다가 인사 고가를 책정한다는 건
분명 성차별이라구요.(주2)
은행의 경우 똑같이 시험을 거쳐 행원으로 입사해도 여성에게는 대부, 당좌 등 비중
있고 능력이 판가름나는 일은 시키지 않고, 주로 수납 업무만 맡긴다. 대부 업무를
배울 기회를 한번도 안주고 갑자기 상사가 대부 주임을 맡겠느냐고 물어서 여성이
자신없다고 하면 그 일을 남성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다.
타자, 복사 등 온갖 잡다한 일을 여성들이 해야 하는 것도 '성공적인 직업인'이 될
수 없게 하는 큰 이유이다. 대구 은행 인사부 과장 배정순 씨는 여성은 낮 시간 내내
잡다한 일을 하다 보면 주된 일은 퇴근 시간을 넘겨서까지 해야 되며, 이것이 오히려
무능한 여성으로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주3)
승진을 안시키는 것은 사실상 그만 두라는 압력과도 같다. 거기다가 여성의
승진에는 성차별적인 편견에서 오는 어려움까지 있다.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1급 공무원이 된 주양자 국립 의료원 원장의 이야기는
여성의 승진에 따른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녀는 보통 남자의 경우 부장이 되고 나서 1
년이나 2 년, 길어야 3 년이면 원장 또는 보사부 차관으로 승진되는 데 비해 무려 9
년 동안을 부장으로 지내야 하는 고초를 겪었다. 여러 번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다는 그녀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고통은 12 년 전에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 남자
과장들로부터 "앉아서 오줌을 누는 부장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한다.(주4) 여성의 사회적 노동을 가로막는 복병은 별별 무기를 다 갖고 있다.
한 은행의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승진 제도에 대해 매우
합리적이라고 답한 경우는 0.7%,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답한 경우는 17.4%에
불과하고 다소 비합리적,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답한 것이 각각 56.0%, 16.1%로
72.1%의 여성들이 불만을 표시했다.(주5)
기업의 사내 교육에서도 여성에 대해서는 참여 기회를 제한하고, 교육 내용도
차별을 둔다. 여성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자 직원의 교육 프로그램은 '직무 능력
향상', '배치 전환', '자격 취득' 등 업무 관련 교육이 83.2%이며, 그 내용도 문서
작성과 관리, 원가 계산, 마케팅 등 중심 업무와 관리 능력을 높이는 내용인데, 여직원
대상 프로그램은 '전화 공손히 받는 법', '바람직한 몸가짐', '말하는 법' 등 기본 예절
교육이 교육 내용의 21%나 차지하고 업무 교육도 보조 업무를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에 대한 교육 제한이 두드러져, 대리에서 부장급까지의
'중간 관리자 교육은 절반 이상(50.8%)이 남성만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주6)
그리하여 전문 기술직에서 여성의 비율은 1983 년 현재 27.4%인데, 그나마도 그
대부분은 교사와 간호원으로, 그 중 하위 집단을 구성하고 있고 행정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남자 노동자의 23.4%가 중간 관리층 이상인데 비해 여성은
중간 관리층 이상이 2.5%에 불과하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는 단순 사무직이
대부분으로 사무원 감독자의 1.6%만이 여성이다. 남자 사무직 노동자의 38.3%가
사무원 감독자인데 비해 여성 사무직 노동자 29만 2천 88명 중 감독자는 1.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경리, 출납원이 40.2%, 속기사, 타자원, 카드 및 테이프 천공원이
8.0%, 교통 안내원이 6.6%, 전화 및 전신기 조작원이 5.5%, 기타 잡직이 37.9%이다.
요컨대 사무직의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은 단순 노동에 종사한다. 앞의 은행
여직원의 업무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면 많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대답한 여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대체로 창의력을 요구하는 업무는 5.7%, 반복적
단순 업무가 75.2%, 수준 이하의 업무가 5.4%였다. 이것이 여성 노동자 중에서
비교적 나은 위치에 있는 사무직 여성의 처지다.
생산직의 경우는 더 심하다. 여성은 같은 생산직 중에서도 단순 조립 가공 공정에
대량 배치되므로 기술 축적을 통해 기술공, 기술자로서 승진, 승급할 기회가 극히
제한된다. 특히 일정 기간마다의 담당 부서의 변경, 소위 배치 전환은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경우 대부분 정기적인 배치 전환을
받지 못하고 계속 한 가지 업무만 하게 되어 업무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어
향후 감독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산직 여성은
견습공으로 출발하여, 장기 근속으로 조장까지는 승급될 수 있으나 반장 이상은 거의
남자만이 할 수 있다. 다음 표는 한 전자 회사의 직급별 성별 구성이다. 남녀의
위계적인 성별 분업이 얼마나 철저하고, 여성이 단순 하위직에 얼마나 절망적으로
고정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주7)
생산직 여성의 경우, 기술을 익힐 기회는 거의 전무하며, 똑같은 노동을 몇 년이고
계속하게 되어 있다. 다음 사례는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보여준다.
지금 16 년 째 일하고 있지만 해마다 호봉 차만 생길 뿐 절대로 승진은 안돼요.
남자들은 간혹 공원에서 준사원, 사원으로 되는 경우가 있지만 생산직 여사원은 아예
그 길이 막혀 있어요. 이것이 가장 큰 문제^36^예요. 한 직장에서 10 년 이상
일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승진이 안되니까 작년에는 간신히 싸워서 근속 수당을
따냈죠. 회사측은 승진 문제에 대해 '시청 청소부가 10 년을 일해도 청소부 아니냐'는
식으로 나와요(S제약 37세의 기혼 여성 노동자).(주8)
그런데 고용과 승진, 교육과 훈련의 순위에서는 언제나 꼴지 차지지만 여성에게
우선 순위가 돌아가는 것도 있다. 해고에서는 언제나 1순위다.
ㄱ씨가 다니던 회사는 종업원 규모 300 명 정도의 수출용 자켓을 만드는
의류회사였는데, 회사가 약간의 경영상의 어려움에 봉착하자 가장 먼저 취한 조처가
바로 사내 탁아방의 폐쇄 조치였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기와 같이 아이를 사내
탁아방에 맡기고 일하던 15 명의 기혼 여성 노동자에 대해 해고 통보와 유사한 것으로
그들 15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당장 아이를 맡길 다른 기관을 찾지 못해 결국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주9)
* 고용 차별의 이유
여성이 고용에서 이렇게 차별을 받는 것은 어째서인가? 1984 년 한국 경영자
총협회가 전국 상용 근로자 100인 이상의 1,000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는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여성 근로자를
기피하는 이유로, 짧은 재직 기간 때문에 기술 축적이 어렵다는 응답이 31.5%, 야간
연장 근로의 법적 제한 때문이 24.5%, 유급 출산 휴가에 따른 비용 부담이 17.4%,
별도의 복리 후생 시설 부담이 13.6%, 생리 휴가로 인한 노무 관리 번잡이
12.9%였다.
여기서 둘째, 셋째, 넷째는 모두 여성 노동자의 모성과 관련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의 변명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모성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과 여성 노동자 스스로가 결혼 후 퇴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성과 관련한 비용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자본의 이윤 추구의
논리가 여성 차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여성의 재직 기간을 짧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두번째 요인은 첫번째 원인과 맞물려 있다.
모성은 인간 사회와 역사가 존속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고, 이를 위해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이며 사회에 대한 공헌이다. 다른 한편
여성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인 존재를 실현하고,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 즉
여성의 인간적 삶, 나아가서는 사회와 인간 자신의 인간화를 위해서는 모성이 인간적
조건으로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성이 모성과 노동을 양립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역사상 유례 없이 노동과 모성을 모순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생산자가 생산 수단과 결합하여 자급 자족을 위해 생산하던 봉건
사회에서는 여성을 모성을 이유로 해서 생산에서 배제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행해졌다.
모성을 이유로 해서 여성을 노동에서 배제시키는 것, 이것은 노동력이 상품화된
사회의 특유한 현상이며,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주도하는 것은 자본이며, 자본이 생산을 하는 목적은
오직 더 만은 자본을 얻는 거, 즉 이윤 추구에 있다. 노동력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자본가가 이를 구입할 경우에만 노동자는 노동을 할 수 있다. 자본가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관심은 보다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력을 최대한 싸게 사서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에서 볼 때 여성 노동자의 모성은 단지 여성 노동력
상품의 값을 비싸게 만들고, 사용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함일 뿐이다. 노동 강도, 노동
시간과 작업 조건 등에서 제한을 받을 뿐 아니라, 출산 휴가를 지급해야하고, 그 동안
다른 임시 직원을 고용해야 하며, 나아가 탁아소까지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에게 여성 노동자의 모성은 마치 신체의 허약이나 장애와 같은 결함으로 보이며,
노동력 상품의 사용 가치를 저하시키는 흠이 된다. 따라서 자본에게는 여성의 모성
기능이 차별 근거가 되고, 질병과도 같은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본이 계속
대체할 수 있는 미혼 여성 노동자나 남성 노동자를 구할 수 잇는 한, 기혼 여성
노동력의 고용은 낭비로만 여겨진다.
그리하여 기혼 여성 노동자는 보다 부적당한 노동력으로서 차별을 받는다. 자본이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노동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유해한 작업 환경을 강요하려
하는 한, 즉 자본이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서 최대한으로 노동력을 부리는 데 일차적인
관심이 있는 한, 노동력이 단지 하나의 상품인 한(이는 자본에게 본래적인
것인데)여성의 모성 기능은 차별의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본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한 것이지, 자선 사업을 하려고 투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은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게 일할 조건을 마련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반대로
여성을 보다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자본이 주도하는 생산의
목적은 여성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이 아니다. 여성 노동자는 자본에게 단지 하나의
상품이다. 자본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값이 싼 노동력 상품으로서이다.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지게 되면 이 매력은 싹 사라진다. 임신하여 배가 부른
여성이 직장 상사로부터 보기 싫다는 눈초리를 받는 것은 단순히 미학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이 아이를 배고 낳고 젖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차별의 근거로 만드는 생산 과정의
성격이라는 사실이다. 모성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은 "생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전도된 생산 관계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를 모성 때문에 차별하는 것은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금전적 가치가 인간적 가치에 우선하고, 인간 자신마저 그의
상품가치로 환산되고 생명이 돈보다 경시되는 자본주의적인 상품 생산의 본성이
모성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된, 여성의 재직 기간이 짧아서 기술 축적이 어렵다는
응답도 기본적으로 자기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여성 노동자가 결혼 후 계속해서 일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자본은 이를
기를 쓰고 말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하려 한다. 취업을 원하는 여성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E대 여학생의 경우 85 년 현재 96.5%가 취업을
희망했으며, 평생 직업을 갖겠다는 비율도 79.5%나 되었다. 생산직 여성의 경우에도
결혼 후 계속 일하겠다는 비율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들에게
공식^5,23^ 비공식의 압력을 넣어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모성 보호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한편에서 여성이 결혼하면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스스로"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강제와 강요에
의한 것이다. 노총이 1988 년 조직 여성 근로자 7천 91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 후 계속 일하겠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21.8%에 불과한 반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그 두 배인 42.3%나 되었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개발원이 1983 년 서울 경인 지역 영세
업체(50인 미만) 생산직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자 하는 이유로 첫번째가 일이 지겨워서가 38.0%, 두번째가
결혼했으므로 가사에 전념해야 한다가 35.0%이며, 세번째가 장래성이 없기 때문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등이 16.3%로 나타났다.(주10) 즉, 첫번째와 세번째를
합하면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어서 그만두겠다는 경우가 51.3%이다.
또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1990 년 7월, 서울의 전문직 사무직 여성 450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녀 양육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려 한 적이
있다는 사람이 전체의 80.6%를 차지했다.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 위탁
문제(31.8%)와 가사 부담(17.8%)이었다. 우리 사회의 실정에서는 아무리 직업 의식이
강한 여성이라 해도 한번쯤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컨대 여성이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는 것은 첫번째가 노동이 지겹기 때문이고,
두번째가 가사 노동의 부담 때문에 결혼 후 계속 직장을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자의 본분은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회 규범도 크게 작용한다.
여성 노동자에게 특히 노동이 지겨운 것은 자본이 재직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여성에게는 기술 축적을 시켜주지 않아 노동에서 발전을 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로 우너인과 결과로 맞물려 있으며 그 고리의 출발은 자본 측에 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자기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기이다.
가정 책임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 가사 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의 이윤 추구와 관련해서만 이루어진다. 자본의 이윤 추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곧 개별 가정에서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뜻이고, 자본가가 이를 맡을 경우, 노동력
재생산비를 높이는 것, 즉 임금 상승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은 이를 최대한 회피하며 결과는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남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은 성별 분업을 해체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고정시킴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다. 자본은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최대화하는
수단으로 분업을 고정화시킨다. 성별 분업은 이러한 분업 체게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성별 분업은 인위적인 차별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고, 자본가의
책임이 아니라 여성의 책임인 듯이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분업은 임금을 최대한 절약하는 방안이다. 단순, 육체 노동자와 숙련, 정신 노동자를
엄격히 구분, 고정시키는 것은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절약하는 방안이다. 이는 우선,
교육과 훈련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로 임금 격차를
통해 전체 임금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본은 분업을 고정시키고,
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을 두기 위해 노동자들의 모든 차이를 이용한다. 국적, 인종,
나이, 학력, 성별 등등. 성별은 자본에 의해 가장 널리, 가장 쉽게 포착되는 차이이다.
이 분업으로 인해 여성은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자본은 여성을 미숙련
노동에 아주 싼 값으로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일생 동안
일한다면, 여성을 지금과 같이 미숙련 노동에 고정적으로 부릴 수 없다. 여성에게
남성과 마찬가지의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하고 동등한 직책과 임금을 부여한다면 노동자
계급 전체로 보아 노동력 재생산비, 즉 임금이 훨씬 증가할 것이다.
또 성별 분업을 고정시킴으로써 자본은 남녀 모두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착취할 수
있다.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가정 책임을 면제하는 대신 생산 과정에서 가정 책임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을 시킨다. 앞에서 여성 노동자를
기피하는 이유가 야근 연장 근로의 제한 때문이라는 응답이 24.5%나 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열악한 근로 조건과 과도한 노동 강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한 산업 부문, 혹은 직업, 직무의 노동자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사실, 그들이
가정 노동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는 대신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사실이
이들 남성 노동자의 과도한 노동, 유해한 노동 조건을 유지시키는 수단이 된다.
다른 한편 여성 노동자에게는 여자의 본분은 살림살이이고, 사회적 노동은
임시적이거나 과외 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저임금, 낮은 지위, 단순 노동에 국한시키고
단기간에 걸쳐 여성의 노동력을 거의 고갈 상태에 이를 정도로 가혹하게 착취하는
수단이 된다.
이중으로 소외된 노동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노동할 권리를 향유하기는커녕, 오히려
결혼과 함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고통을 참고 견디도록
강요당한다. 자본은 여성에게 발전 가능성 없는 노동을 떠맡기면서, 결혼을 산업 재해
보상처럼 이용한다. 여성 노동자에게 결혼은 소외된 노동으로부터의 탈출구고, 인간
조건의 회복이고, 고통스러운 인내에 대한 보상이다 .그런데 자본은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이 생활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기혼 여성들은 다시 일자리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여성들을 자본은 시간제, 일용제로 더 열악한 조건으로
고용한다.
기혼 여성 노동에 대한 연구는 기혼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배치되는 작업이 단순
미숙련 노동, 기계화가 덜 된 공정의 손작업(대개 노동 강도가 높다), 기술은 거의
필요없고 유해 작업이라 남자들도 꺼려하는 노동(주로 여성 중심 사업장에서), 약간의
육체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공정이라고 밝히고 있다.(주11) 요컨대 미혼 여성과
남성들 모두가 꺼리는 노동을 기혼 여성들이 맡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업체 P전자에 대한 사례 연구를 보면, 기혼 여성이 집중된 공정은
작은 단자에 2개의 전선을 끼워 맞추는 등 "반나절이면 배울 수 있고 일주일도 안
걸려서 손에 익는"단순 노동과 구리 가루를 녹이고 구리선을 뽑아내는 일을 하는
전선부의 유해 작업(11 명 중 4 명이 기혼 여성, 나머지는 남성 노동자)이다. 전선을
뽑아내는 열처리 기게는 일정 온도가 되어야 작동되기 때문에 작업의 효율을 위해
점심 시간에도 기계를 끄지 않고 작업이 계속되어 이 부서의 노동자들은 점심 식사도
식당에서 날라다가 유해한 작업장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도 기혼 여성들은 이 부서의
수당이 높다는 이유로 서로 가려고 지원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주12)
결혼 덕분에 노동에서 면제되기는커녕 이제 자식까지 딸려 돈을 벌어야할 필요가
더욱더 절박해진, 그러나 일자리를 얻기는 힘든 기혼 여성 노동자들은 가장 악조건
속으로 일하러 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이 결혼했다는 것이 다시 이 끝없는 단순 노동을 강요하는
명분이 된다. 노동은 본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의 환상이 그랬듯이, 이제 결혼의
현실이 여성들로 하여금 이 모든 고역을 참고 견디게끔 한다. 노동할 권리도, 가정을
지킬 권리도 여성 노동자에게는 보장되지 않으며, 어느 것이나 권리로서가 아니라
권리의 침해로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악순환의 고리를 볼 수 있다.
자본의 고용 차별 ^25,135^ 단순, 하위직 노동 ^25,135^ 여성의 결혼 퇴직 ^25,135^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 이러한 순환 고리가 자본에게 의미하는 것은 노동력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고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혹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서의 의미이다. 즉 노동력을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단순직에는
여성 노동자를 고용하여 결혼 전까지만 사용하거나 기혼 여성을 임시직으로 사용하며,
노동력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한 숙련직, 관리직 등에는 남성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 노동자에게 의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살
권리와 일할 권리를 제한당한다는 것이고, 남성 노동자에게 의미하는 것은 가장이라는
허울 아래 혹사당하는 것이다.
고용 차별은 사회적 노동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 중 핵심적인 것이다. 고용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는 불평등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 소외된 노동, 8시간은 죽어 주자.
앞에서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가장 큰 원인이 일이 지겹기 때문임을 보았다.
노동에서 느끼는 소외야말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못지않게 여성 노동자가 겪는
커다란 고통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 노동자에게조차도 많은 경우 노동이 "지옥 같은 고역"이다.
그것은 근로 조건이 나쁘고 노동 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가 세고 게다가 임금은
쥐꼬리만 하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동에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어 소음과 공해 그리고 언제 어느 때나 나의 몸 일부를
아니 전부를 앗아갈 지도 모를 기계, 부품, 크레인님께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안전화 끈을 맨다. 추운 겨울에도 구슬 땀을 흘려야 하고, 화장실에 갈
시간마저도 흔하지 않은 열악한 작업장이 나의 하루, 나의 시간과 인생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앗아가는구나.
시커먼 얼굴과 콧구멍은 연탄 장수 같다. 가슴은 왜 이리 답답하고 무엇인가 꽉 차
있는 걸까. 먼지와 가스를 많이 마셨기에 혹시 진폐증인가 하는 병이라도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건강이 제일이라던데 이놈의 직장은 일이 제일이고 품질이 이등이니
건강은 몇 등이나 될거나.(주13)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는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 노동자는 기계나 다른 노동
수단들과 마찬가지로, 자본가가 구입하여 생산에 투입한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상품으로서 노동자는 기계나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기계의 가치가 노동력의 가치와
직접적으로 비교되며, 노동자의 인간적 존재나 가치는 냉혹한 타산에서 언제나
부차적인 고려 사항일 뿐이다. 더구나 노동력은 언제든지 같은 값에 다른 노동력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이다. 상품으로서 노동자는 노동 과정에서 자본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음을 느낀다.
노동자 자신이 생산 수단의 주인이 아닌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되며, 인간이 아니라 도구가 되고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며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된다. 그것은 생산의 목적이 생산을 하는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자본)을 버는 것, 가능한 한 최대의 이윤을 얻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이윤 추구의 논리 앞에서 노동자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조건들조차도
냉혹하게 무시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런 노동의 성격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기본적으로 강제
노동이다. 이런 강제 노동에서 노동자를 통제할 필요에 의해 자본은 감시와 감독의
위계 질서를 만든다. 노동은 "강제와 감시 속에 우울하고 고통에 찬" 것이 된다.
그런데 여성 노동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노동에서의 소외가 더욱 커진다. 여성
노동자의 경우, 보다 단순 반복적인 노동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노동에서 발전의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노동에서의 소외를 더욱더 극대화한다. 노동 조건이
그나마 낫고 생산직 여성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까지 한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도 단순
노동, 보조적인 업무, 발전 가능성이 없는 직장 생활에서 오는 심각한 소외를 겪고
있다.
사무직 여성 근로자들이 하는 일을 한마디로 압축시키면 '커피^36,36^카피'예요.
커피 심부름과 카피 해오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뜻에서 자기비하할 때 쓰는 말이죠.
설사 자기가 어떤 일을 조사하고 정리했다 하더라도 결재 도장은 다른 남자 직원들이
찍는 그런 식이죠. 대개가 보조적인 일에 불과해요. 전화를 받는다든지, 커피를
탄다든지 하는 일이 전부랄 수도 있죠. 전화 교환수, 경리, 타이피스트, 이런 직종도
사무직이에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 일 다 하면서 손님 오면 커피 심부름
정도는 해야 하죠. 여직원들은 거의 대부분 보조직에 머물러 있을 뿐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여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해도 업무에
능력이 반영되지 않아서 점점 일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흥미를
잃어버리죠.(주15)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는 강제와 감시의 위계 질서의 최하위에 놓인다. 여성
노동자는 자본의 감시와 감독의 대상으로서 가장 철저하게 대상화되고,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간부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거^36^예요. 얼마 전 공장장 겸 상무라는 사람이 아주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되어서 왔는데요, 저희들을 완전히 개 돼지 취급을 해요. 뭐 천재가 돌맹이를
다루게끔 돼 있다나요, 너희는 돌맹이들이고 난 천재다, 그러니 내가 너희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그리곤 완전히 기계처럼 부려먹어요.
그러면서도 자기네한테 필요할 땐 "여러분을 가족처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보다
나은 복지 시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어깨를 툭툭치며 웃을 때는
소름이 끼쳐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대부분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노동은 '죽음의 고역'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 속에서 삶이 아니라 죽음을
체험하고, 자아의 실현이 아니라 자아의 파괴를 느낀다.
그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현장 작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증세로, 전 생활의
80%이상을 직·간접으로 굉장한 영향을 주는 심각한 문제 거리다. 출근직전부터
거침없이 밀려오는 일에 대한 두려움은 짜증 섞인 푸념 정도로 그치질 못한다. 현장
출입문은 그야말로 표현에 손색이 없는 지옥 문 바로 그것이다. 그곳을 들어서면서
마음속으로 '언제까지 이러겠나. 까짓 8시간만 팍 죽어 쥐 버리자' 생각하고 비장한
각오로 들어간다. 무엇보다도 정신 못 차리게 바쁘고 힘겨운 작업과 일일이 감독하는
상사 관리자들의 빈틈없는 감시의 눈초리와 호통에 대한 공포와 후유증이 그 주된
원인인 듯 싶다. 생산 증대를 위해 기계회전을 최고속으로 해 놓거나 현장 온도
습도가 맞지 않아 작업이 엉망이 될 경우, 이건 순전히 작업자의 정신 상태 문제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데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간혹 몸이 아파서
조퇴나 결근 신청을 할 경우, 이땐 여지없이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당하는데 배짱이
있어서 엄살 섞어 버티거나 아주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 않으면 정말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수작이 되어 버린다.
어쩌다 잘못해서 기계 고장이라도 낼 경우엔 으레히 가혹한 책임 추궁이 뒤따른다.
"그따위 정신 상태를 가지고 뭘하냐? 회사의 귀중한 재산을 함부로 다루냐? 회사가
얼마나 손해를 본 줄 아냐? 시말서를 쓰던가 퇴사를 해라"는 등으로 아주 노골적으로
노동의 가치를 기계보다 못한 무엇 정도로 취급해 버리는데. (주16)
소외된 노동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하고 있을 때는 인간이 아니라고 느끼고,
노동하지 않을 때에만 인간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내 모습, 내가 바라고 원하는 내 모습은 조장 언니의 눈치를 살피며
지도원의 초침 바늘 앞에서 쩔쩔매는 그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행복한 시간과 공간
이것이다. 다른 것은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나만의 휴식과 꿈을 안겨주는 16시간을 위하여 8시간은 죽어주는
것이다. 8시간 동안은 나의 이성도 감정도, 필요하다면 오장육부까지도 이곳에 빼놓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주17)
노동이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고역, 참고 견뎌야만 하는 고통인 사회에서는 노동하는 것이 권리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하지 않는 것이 권리로 느껴지고,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거꾸로 인간답게 사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여성이 일할 권리를 찾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을 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을 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첫째로 자본과
노동자의 전도된 관계를 바로잡아 노동자가 생산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둘째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여성이 이 사회의 노동을 변혁하지 않고는 노동에의 참여가 곧바로 해방을 가져올 수
없으며 오히려 이중의 소외를 약속할 뿐이다.
3) 저임금, 뼛골 빠진 10 년에 남은 것
어머니. 제가 하는 일은요, 0.7--0.8mm 되는 조그만 바늘로 시계줄 부속에 구멍을
뚫는 일이에요. 그것도 그냥 기계에 맞춰 뚫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해야
하는 정밀한 작업이에요. 그냥 하면 쇳가루가 구멍 속으로 흘러들어 가니까 기름을
수도꼭지처럼 틀어놓고 그 속에 손을 담그고 일하는 거^36^예요. 그래서 항상 손이
퉁퉁 불어 나고 기름 독 때문에 얼굴에 땀이 나도 손댈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일하면서도 하루 일당이 1,710원이^36^예요. 거기다 9시까지 연장 근무를 해야 한
달에 7 만원 정도 받아요. 결근을 하루 하는 달엔 그나마 3일치 씩이나 깎이는
거^36^예요. 더구나 공단 주변에 방값이 비싸고 닭장 같은 집을 지어 놓고, 어떻게든
방세 올리고 전기세, 수도세 악착같이 받으니 주변에선 방도 못 얻고 한 시간을
버스타고 다니면서 출퇴근하고 있어요.
아침이면 거북이 등처럼 줄을 지어 기어가는 만원 버스 땀냄새와 사람 틈에
끼어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애태우다 공장에 뛰어가면 일 시작 전에 녹초가 되어
버리지 뭐^36^예요. 산다는게 이리도 고달픈 것인지.
(중략)
어머니 며칠간 방 문제로 돌아다녔어요. 지금 사는 집 기한이 2개월이나
넘었거든요. 퇴근 후 후들거리는 지친 몸으로 복덕방을 기웃거리며 며칠을 헤매다
참담한 가슴으로 돌아서길 수없이 한답니다.
어머니. 뭔지 모를 분노와 눈물이 납니다.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한 채 내일은 또
퇴근하면 퉁퉁 불은 손을 감추며 방을 얻으러 다니고 또 공장으로 출근할 거^36^예요.
어머니!.(주18)
이것은 80 년대 초의 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세계가 놀랄
만큼 성장했지만, 여성 노동자의 생활 이야기는 임금의 액수를 제외하면 마치 바로
요즈음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임금의 액수는 많아졌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대적으로는 더 나빠졌다. 1970 년 전산업 임금
총액의 생계비 충족률은 67.8%였다. 그러나 1989 년 현재는 62.5%(정액
급여만으로는 45.0%)다.(주19) 노총이 집계한 1989 년 5월 현재 4인 가족 최저
생계비는 78 만 8천 69원이다(노동자 가구의 평균 가족수는 약 4인이다.) 그런데
1989 년 현재 월 평균 임금이 30 만원 이하인 노동자가 42.9%이며, 70 만원 이하
소득자가 전체 노동자의 70.3%다. 또 지난 1980 년에서 1987 년까지 7 년간 10 대
재벌의 자산 증가율은 평균 43.2%, 연 약 62.5라는 엄청난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 노동자의 실질 임금 증가율은 1980 년과 1981 년에는 각각 ^35^3.4%,
^35^0.2%로 오히려 감소했고, 그후 1982 년부터 1986 년까지는 평균 7.5%씩
증가했을 뿐이다. 수천 억, 수조 원의 자산이 한 해에 62%씩 불어나는데, 일년에
기껏해야 몇 백만원인 임금은 한 자리 수 인상의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본가의 자산은 해마다 쌓여가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거의 대부분이 먹고
사는 데다 써버려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먼지만 날리기 마련이다.
왜 우리 노동자들만 이렇게 못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뼛골이 빠지게 일을 해도
잘 살 수 없는가! 왜 나는 10여 년 동안 열심히 일을 했건만 열심히 한 것이 우습게
이렇게 못살아야 하는가. 왜 돈뭉치 한번 마음대로 만져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가!
내가 열심히 일해도 우리 식구 먹고 살 것밖에 없다. 왜 그럴까? 그렇게 열심히
일했건만 이제 남은 것은 허약한 육체뿐인가. 정말로 허무하다. 정말로 속상하다.
마음놓고 한없이 울고 싶다.(주20)
노동자가 가난한 것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을 자본가에게 빼앗기기 때문이다. 1989
년 현재 노동자 일인당 부가 가치는 1천 3백 41 만원인데, 1인당 급여액은 3백 70
만원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한 해 동안 자신이 생산한 것 중에 약 4분의 1 만을
돌려받은 셈이며, 나머지 약 4분의 3은 자본을 위해 일해준 셈이다(게다가 부가
가치에서 급여율이 차지하는 비율, 즉 노동 분배율은 1980 년의 30.0%에서 27.6%로
줄어들었다).(주21) 반면 자본은 이 지불되지 않은 노동을 먹고 점점 비대해진다. 해가
갈수록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 격차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한다.
빈부 격차가 확대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의식에도 반영되고 있다. 노총 조합원의
임금 만족도를 보면 1984 년에는 만족한다가 42.3%였는데, 1989 년에는 20%로
줄어들고, 80%의 노동자가 불만족을 나타냈다.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전적으로 만족함은 1.7%에 불과하고(1984 년 2.3%) 어느 정도 만족함이 18.3%(1984
년 40.0%), 별로 만족하지 못함이 56.7%(1984 년 46.7%), 전혀 불만족이
23.2%(1984 년 10.9%)나 된다.(주22)
노동의 산물이 노동자의 것이 되지 않고, 그로부터 소외되어 대립된다는 것은
노동이 천대받고 반대로 노동 생산물이 숭배되며, 노동을 하는 인간이 천대받고,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노동 생산물을 누리는 인간이 존중받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사회에서 노동은 저주받을 고통의 원인이기조차 하다. 노동자 자신의 노동이
심화시키는 이러한 상대적 불평등과 물질에 의한 인간 지배야말로 절대적 궁핍
이상으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1985 년 1월 29일 화요일
오늘날까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바라왔나. 죽고 싶다.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될까.
이런 식으로 살지 않으면 안될까? 노동이란 단어가 싫다. 남들은 공부할 시기에
노동이란 단어를 가지고 생활한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 힘들다. 모든 게 싫다.
노동 중에서 특히 '봉제'라는 것이 이렇게 치사할까 새삼 느껴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차별이라는 것이 없는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까? 생각만 해도 날아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있는 자와 없는 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렇게 해야만이 사회가
형성되는 것인가.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만 하는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나 같은 고통, 나 같은 나날을 겪지 않도록 나만이라도
차별이라는 것이 없는 바른 생활을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괴롭기만 하다.
앞으로라도 이러한 사회가 계속되지 않고 좀더 나은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주23)
* 남녀 임금 차별
노동자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의 최하층으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경제적 불평등과 절대적 상대적 빈곤의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당하고 있다. 1989 년
노총의 여자 단신 최저 생계비는 33 만 1천 54원이다. 여자 단신 최저 생계비의
내역에는 한 달 동안 과일이라고는 사과 3개와 귤 천 원 어치가 전부이고, 가구는
비키니 옷장, 석유 곤로, 찬장, 가전 제품은 라디오와 선풍기, 밥솥뿐이며, 책은 월간지
한 권이 끝이다.(주24)
그런데 문자 그대로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월 평균 30 만원(상여금 포함)
이하의 임금을 받는 여성 s동자가 전체 여성 노동자의 73.4%나 된다. 다시 말하면
절대 다수의 여성 노동자가 자기 한 몸 먹고 살기에도 부족한 임금을 받고 있다.
더욱이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최근 들어 정부가 정하는 최저 임금선으로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노동부는 1990 년의 최저 임금을 시간당 690원, 즉 8시간 정액
급여로는 한 달에 16 만 5천 원으로 정했다. 노총 최저 생계비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1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 454 만 4천 명의 약 12.4%인 56 만 2천명이 이
최저 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고, 10인 미만 노동자 436 만여 명도 이와
비슷한 임금 수준으로 살아간다. 이런 저임금 층의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이를 약간 넘는 선에서
정해지고 있다. 구로동의 ㄷ전자에서 일하는 보통 여성 노동자 박영숙씨의 경우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는 이 회사에 입사한 지 7 년이 되었는데도 월 임금 총액은 19
만 8천 원으로 20 만원을 밑돈다. 요즘 들어선 수출 부진으로 시간 외 근무 없이 법정
노동 시간인 주 46시간만 일하기 때문에 기본급에 월차, 생리 수당 등을 합한 것이 그
정도이다.(주25) 한 달 수입이 20 만원 이하라면 그 생활이 어떨지 가히 상상이 간다.
사무직 여성의 경우에도 큰 차이가 없다. 자본가들은 사무직 여성 노동자에게
생산직 여성에 대한 우월 의식을 심어 노동자라는 의식을 약화시키려 하지만, 이
'우대'의 알량한 실상은 얄팍한 월급 봉투 속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1984 년 3월 수습 여행원 시절, 첫 봉급 명세표를 받아 쥐었던 나는 행여 누가
볼새라 얼른 감추고 말았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던 당혹감, 창피스러움,
기막힘. 은행원의 봉급이 고작 9 만 1천 원. 물론 수습이란 딱지가 붙긴 했으나, 개인
사무실의 여직원도 초봉이 최소 15 만원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십만원도 되지 않다니
한심했다. 내가 이러려고 그다지도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우며 지냈단 말인가?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습이 끝나면 월급도 많이 오르려니 했지만 기본급 자체가 적은데 차이가
있었겠는가? 월 총소득이라 해야 21만원, 식대를 제하고 나면 16 만 9천 원. 재형
저축 하나 들고 나니 손에 쥐게 되는 것은 8 만 9천 원. 난 또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만 5 년이 지나 5급 여행원이 되면서도 갈등은 여전했다. 기본급만 4 만 7천원
올랐을 뿐이니. 오죽 했으면 국민은행 한 지점에서는 봉급 명세표 그 자존심마저
공개했을까?(주26)
여성 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1989 년 현재 10인 이상 사업체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33 만 6천 8백 79원으로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 63 만 9천 5백
78원의 52.7%에 불과하다.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사무직과 생산직을 막론하고 생산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보다 낮다. 다음 표와 그림은 생산직 남성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사무직과 생산직의 남녀 노동자의 평균 임금 지수를 표시한 것이다. 이 표가
보여주듯이 사무직 여성의 평균 임금은 생산직 남성의 70% 정도이며, 생산직 여성의
평균 임금은 50--55%에 불과하다. 여성 노동자는 초임에서부터 남성과 차별을
받으며, 해가 갈수록 임금 격차는 확대된다.
다음 표는 풍국 노동조합이 88 년 10월에 조사한 임금 실태이다. 남녀이 초임이
같은 회사는 15개 업체 중 3곳 뿐이고, 나머지는 작게는 일당 200원에서 크게는
2,400원까지 차이가 난다.(주27)
게다가 남녀의 임금 격차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생산직의 경우, 경력 1 년 미만의 중졸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6.9%인데, 경력이
5--9 년은 59.5%이고, 10 년 이상은 53.4%이다. 고졸 여성의 경우에도 1 년 미만은
76.2%인데, 5--9 년은 62.6%, 10 년 이상은 63%이다. 사무직의 경우, 고졸 1 년
미만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6%인데, 5--9 년의 경우에는 54.2%, 10 년 이상의
경우에는 64.4%이다. 그러면 이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원인을 살펴
보자.
* 남편이 먹여 살려 준다?
임금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는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생활비다. 여기에는 생계를
유지하는 비용과 교육, 훈련 비용이 들어간다.
남성의 경우, 임금은 그 자신을 포함해서 전 가족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여성의 임금은 가족의 생활비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 개인의 생활비, 혹은
남편의 임금에 대한 보완물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이것은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할 경우에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근거가 되며, 또 여성이 주로
고용된 직종의 임금이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여성이 주로
고용된 직종이 저임금직인 것은 그것이 주로 미숙련 노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 노동력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남녀 초임의 차이와, 기혼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여성 노동자는 근속 연수가 길어도 임금이 거의 올라가지 않는
것 등도 이런 근거에서 행해진다.
이런 기준이 통용되는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비롯한 전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성의 평균적인 노동력의 가치는 여성의
평균적인 노동력의 가치보다 높다.
그러나 이미 기혼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여성 노동자의 30%에 달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기혼 여성 노동자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실제로
자본이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을 부양할 만한 임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의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으며, 여성을 고용하여 그들간에 가족의 생활비인 노동력의 가치를 분할한다.
즉 부부가 함께 벌어야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1989 년 현재 기본급의 최저 생계비 충족률은 45.0%에 불과하다.
남편 한 사람의 임금만으로는 도저히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 동양
정밀 노조가 조합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월급으로
생활하기가 어렵다는 응답이 99.2%(어렵다 70.8%, 아주 어렵다 28.4%)이고,
넉넉하다는 응답은 0.8%에 불과하다. 남자 조합원의 부양 가족이 평균 2.9 명이고
근속 연수가 평균 5 년 9개월인데, 기본급이 24 만 5천 818원으로 노총 최저
생계비의 55% 정도에 불과하다. 쇠고기를 특별한 경우에만 먹는다는 응답이
49.6%고, 가족 여행을 1 년에 1번도 못 간다는 응답이 73.1%이며, 가정 불화의
78%가 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응답했다.(주28)
이런 저임금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다수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주29)
선반공 조씨(45세): 1978 년에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 일당은 6,120원이다.
지금 한 달 수입은 25--26 만원이다.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집사람이 봉제
공장에 다니는데 한 달 수입이 10 만원쯤 된다. 자식은 둘로 중학생 하나와 6
학년짜리가 있다. 네 식구가 35 만원으로 살고 자식들 학교도 보내려니 힘이 든다.
가능하면 절약을 하는데 나는 하루 차비 600원씩과 약간의 비상금 등 한달에 2
만원의 용돈만 쓰고 술담배는 안한다. 요즈음엔 옷이 떨어져서 못입지는 않으니까
옷값은 많이 안든다. 아이들의 군것질을 막기 위해 내가 엄격하게 금하고 어릴 때부터
버릇이 되서 무엇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제화공 박씨(33세): 3 년 전에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은 기능공 대우를 받아
일당이 약 6,000원인데 잔업이 있으면 한 달 수입이 23--24 만원이 되고 잔업이 적어
8시간만 일하는 때는 18 만원밖에 안된다. 요즈음은 잔업이 없는데 애들 셋하고,
5식구가 먹고 살려니 힘이 든다. 집사람이 몇 년 전부터 집에서 부업을 하는데 한 달
수입이 3--4 만원밖에 안되지만 살림에는 큰 보탬이 된다. 나는 작업이 일찍 끝나면
집에 가서 집사람이 하는 일을 같이 한다. 수입이 적으니 정말 사람 사는 것 같지
않게 산다. 담배 끊는 것은 건강에도 좋다고 하지만 술 한 잔도 못 먹는다. 동료나
친구 관계가 어색해 질 때도 있다. 고기는 월급을 타고 나서나 몇 번 먹어 본다.
그러나 그 달에 예상하지 않은 지출, 즉 애가 병원에 간다든지 경조금이 나갈 일이
있으면 고기류는 못먹고 월급날 바로 전에는 김치하고 밥만 먹게 되기도 한다. 애들
교육만큼은 잘 시켜 보려고 큰 애를 집근처 유치원에 보냈었는데 돈을 못내 중간에
그만 두었다. 기본 음식 외에 과일 등은 거의 안사먹는다. 여가라든가 취미 활동은
생각도 못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극장에도 한번 못가봤다. 그저 TV나 본다. 저축으로
계를 들지만 계를 타더라도 전세금 오르는 것 주고 빚 갚으면 그만이다.
이것이 남자가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의 실상이다. 여성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기혼 여성들이 취업을 하는 이유에 관한 조사를 살펴보아도 이를 명백히
알 수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서 기혼 여성 노동자의 취업 이유는 37.3%가 생활비
부족, 애들 교육비의 마련이 21.1%, 집 장만 21.1%, 생계 책임 11.2%로 나타났다.
교육비나 집 장만 역시 가장 기본적인 생활비에 속하므로 93.9%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주30)
이런 사정은 전문직, 사무직, 생산직 노동자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절대적인 궁핍이냐 평균적인 생활 수준 유지 곤란이냐는 정도의
차이다. 전문직이나 사무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절대적인 궁핍은 벗어났지만 계속
높아지고 있는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따라잡기가 힘들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상품화의 진전이고, 생활 수준은 상품을 많이 소비하는 정도에
달렸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전문직과 사무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점점 생활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으며, 자동차가 없으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까지 되었다. 얼마
안 있어 자동차가 지금의 TV처럼 일반 대중의 생활 필수품이 될 것이다. 요컨대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임금은 그만큼
상승하지 않는다. 전문직과 사무직 노동자의 증가는 전문직의 지위 하락을 동반하고
있다. 임금은 물가 상승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남편이 전문직이나 사무직
노동자인 경우에도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조차 남편 한 사람의
임금만으로는 점점 부족하게 된다.
그리하여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내가 모두 취업하고 있는 경우,
가족의 생활비를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불평등하게 지급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남성과 같은 임금을 벌어서 현재 임금 소득의 두 배를
벌게 된다 해도 문자 그대로의 최저 생계비 정도를 벌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마치 남편이 가족의 생활비를 벌고 여자의 수입은 가욋돈, 여유분이라도
되는 듯이 "남편이 먹여 살려주는 데 여자는 조금만 받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최근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가족 수당 지급 문제는 맞벌이의 증가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즉 남성 노동자들에게만 지급되던 가족 수당을 여성
노동자에게도 지급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삼성 제약 노동 조합은 1990 년 배우자
수당 1 만원, 자녀 수당 1 만원(2인까지)을 '남녀 구분없이', '배우자의 수당 수혜
여부에 관계없이'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족 수당 규정을 단체 협약에 포함시켰다.
또 코스모스 전자는 작년부터 남녀 노동자 모두 배우자, 자녀, 부모 각 일인당 2천
5백 원씩의 가족 수당을 주고 있으며, 자녀 1인에 한해 중 고등 학교 입학금과
등록금을 전액 지급하도록 명문화했다. 텔레 비디오와 진성 전자 노동 조합도 가족
수당을 남녀가 똑같이 받는 것을 따냈다.
전국 금융 노조 이경자 여성 국장은 "지난 해 말 개정된 가족법에서도 부부 공동
생활 비용은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규정했다"면서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복지적 의미의 가족 수당은 남녀에게 똑같이 지급, 남녀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수당이나 학자금의 쟁취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긍지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학자금 준다는 말만 들었는데 이번에 단체 협약에
학자금이 신설되고 보니 돈보다도 여자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하던 것을 따내 괜히
자랑스럽고 마음이 뿌듯합니다.(주31)
그러나 물론 가족 수당의 평등한 지급은 여성과 남성이 가족의 동등한 공동
부양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가족 수당 자체가 가족의 실제 부양비가 아니라,
그 명목의 보조적인 급여로서 각종 수당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남성만이 가족의 부양자가 아니라, 여성도 동등한 부양자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의식이 자라고 있는 것은 괄목할 만하다.
* 고용 차별
두번째 요인은 자본의 고용 차별에 의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본은 노동력의
생산비가 많이 들고(임금이 높고),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는 숙련,
전문 기술직에 여성의 고용을 꺼리고, 미숙련, 단순, 육체 노동에만 주로 여성을
고용한다. 이 때문에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 실시된다손 치더라도 남녀간 임금 격차는
남는다. 실제로 서구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 1970 년대에 동일 임금법이
실시되었지만 남녀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남아있다.
남녀 임금 격차의 요인을 분석한 박세일의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임금 격차에서
생산성 격차로 인한 것이 66.1%이고 차별로 인한 것이 33.9%인데, 생산성 격차 중
학력차로 인한 것이 19.5%, 경력차로 인한 것이 46.6%이며, 차별로 인한 것 중 고용
차별이 18.9%, 임금 차별이 15.0%이라고 한다.(주32)
그러나 이처럼 생산성에서 오는 격차와 차별로 인한 격차를 기계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생산성 격차가 생기는 원인 자체가 자본의 고용 차별에 있다는 사실을
흐려, 임금 격차를 합리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경력차로 인한 격차는
사실상 자본이 미혼 여성을 주로 고용하며, 출산 휴가 등을 지급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기혼 여성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을
임시직으로 고용하는 등의 고용 차별에 의해 주로 생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남성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원인 역시 근본적으로 고용 차별과 임금 차별에 의한
것이다.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더라도 여서의 취업이 남성보다 어렵고, 여성에게 평생
고용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며, 승진이 안되는 것 등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낮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력차로 인한 격차를 고용 차별에 포함시키면, 고용 차별로 인한 격차가
65.5%를 차지하고, 학력이 낮아서 오는 격차가 19.5%, 여성의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낮은 평가에서 오는 것이 15.0%가 된다. 즉 임금 격차의 가장 큰 요인은 고용 차별에
있다.
한편 이렇게 고용 차별을 통해 여성의 저임금을 유지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애당초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노동에 종사할
기회를 없앰으로써 남녀의 임금 격차를 눈에 띠지 않게 하고, 혹은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주33)
다음으로 우리나라 자본의 종속성과 체제의 비민주성이 여성 노동의 저임금과 남녀
임금 격차를 심화시킨다.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모든 자본주의국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달 정도와 민주주의의 발달 정도에 따라서 여성의 지위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1932 년 이래 사회 민주당 정권에 의해 지속적으로 남녀 평등을 위한
정책이 실시되어 온 스웨덴의 경우,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의 90%에 달한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의 전통이 약한 미국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1979 년 미국 노동성
통계에 의하면 남성 노동자 임금의 62%에 불과하며, 1955 년 이래 35 년 동안
자민당 정부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선진국 중에서 임금이 낮기로 유명한 일본의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1981 년 현재 남성 노동자 임금의 53.3%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과 기술에서 선진국에 뒤떨어진 우리나라 자본은 보다 급속한 발전을 위해
일차적으로 저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도 경찰과 감옥을
동원한 폭력적 탄압을 사용하고 잇다. 저임금의 유지를 위해 그 주요한 희생 제물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여성 노동자였다.
남녀간의 임금 격차는 학력간 임금 격차, 사무직, 생산직 간의 임금 격차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주요한 임금 격차의 한 요소다. 이러한 임금 격차는 첫째로, 노동자
대다수를 저임금에 묶어두면서도 기업간의 경쟁과 급속한 기술 혁신에 필요한 기술
전문 인력을 독점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으로서, 둘째로, 노동자 내부네
차별을 둠으로써 저임금과 계급적 차별에 대한 저항을 완화, 분쇄하는 방안으로서
활용되었다. 특히 노동 운동이 아직 초기 단계였던 1960--1970 년대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압하는 데 남성 노동자들이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독점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와 이에 따른 계급적 연대 의식의 발전에 의해
정신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 간의 대립,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간의 대립은
자본가에 대항한 단일한 노동자 계급으로의 단결에 의해 극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노동 운동은 여성 차별 철폐를 위한 구체적인 조항들을 자신들의
일상적 경제 투쟁의 일반적인 목표의 하나로 채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1987 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부터 나타나 현대 중전기는 여자 생산직
사원에세 근속 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내걸었으며, 울산의 럭키 노동자들은 여자
기숙사 설립, 여사원에게 균등한 임금 지급, 여사원 생리 휴가비 지급을 내걸었고,
미포 조선에서는 "상여금 차등제 폐지하고 남녀 공히 500% 지급하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최근에는 남녀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안으로
기본급의 남녀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코롬방은 1988 년 5월 여성 3
만원, 남성 2 만 2천 원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고 한국 바이린은 1988 년 4월, 여성
임금은 21.4%, 남성 임금은 18.6%로 차등 인상했으며, 유유 산업도 1988 년 4월
기본급을 여성 17.9%, 남성 12% 차등 인상했다. 이런 요구나 투쟁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 운동에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남성 노동자의 의식을 민주화하여 노동자 전체의
의식과 단결, 투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남성
노동자들이 먼저 제안하여 기본급에서의 남녀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투쟁한 제성
정밀의 노조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에 회사가 마음대로 임금을 올려줄 때는 오히려 더 많이 받는 동료가
미워지더군요. 이는 결국 노동자간에 위화감을 조성하여 분열을 유도하는 자본가의
분열책일 뿐입니다. 임금 차별을 없애는 일은 바로 이러한 위화감을 없애고 단결력을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주34)
이는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가 아니라 이러한 경쟁을
통해 전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는 자본과 권력에 대한 투쟁의 동반자로 여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이다.
남녀 평등을 위한 노력은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촉진하는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이런 단결된 투쟁을 통해서만 남녀 노동자는 자본과의 투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다.
4) 모성 파괴, 잘 키울 권리, 잘 자랄 권리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인간적, 여성 억압적 성격은 모성 파괴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모성은 인간 자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 사회의 전제 조건이며, 여성이
인류를 위해 담당하고 있는 생산적인 역할이다. 그러므로 모성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 남녀 모두의 일이며,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사회적인 일이다.
모체의 상태가 태아에게, 역으로 태아의 상태가 모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급속히 생성, 성장하는 생명을 몸안에 품음으로써 여성들에게는
평상시와는 다른 많은 필요들이 생겨난다. 신체적으로는 보다 많은 영양 섭취와 휴식,
적절한 건강 검진 등등이 필요하고, 유해한 환경이나 과로를 피해야 하며,
정신적으로도 즐겁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또 새로 태어난 어린 생명의
보호를 위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이것은 여성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남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태어나고 성장하며 인간답게
자녀를 가지고 기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윤 추구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는 이 '인간의 조건'도 힘없이 무너진다.
전지 전능한 자본은 상식에 무지하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철저히 무능하다.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은 모성과의 모순을 낳고, 여성은 오히려
모성으로 인해 각종 불이익을 당한다. 여성이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할 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기존의 자원마저 빼앗는다. 모성 파괴는 새 생명과 여성 노동자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 살인 행위
노동자의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모욕을 받아야 하나요.
저는 올해 30세의 아줌마 미싱사입니다. 우리 회사는 의류 수출업체로서 종업원
600여명을 거느리는 국내 굴지의 재벌 계열 회사입니다. 저는 76 년 결혼하여 첫
아이를 낳고 목재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같이 직장 생활을 해오던 중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입덧이 심하게 나서 힘든 미싱 일을 한다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남편과 같이 힘들게 모아서 산 아파트에 들어가는 10 만원이란 부금을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부어 나갈 수가 없었고, 제 스스로도 이번에 산전 산후 휴가를
따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텨나갔습니다.
임신 7개월이 지나 해산할 때가 다가 오자 미리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저는
용기를 내어 회사 과장에게 가서 출산 휴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과장은 아니나
다를까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무슨 휴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출산 휴가요" "얼마나
걸려요?" "2 달인 걸로 아는데요" "그런 것은 우리 회사에는 없어요, 쉬고 싶으면
우리 회사에 안 나오면 될 것 아니요. 알아서 해요"라고 과장은 냉정하게 잘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나는 계속 과장, 부장에게 이야기했고 이들은 서로 미루어가며
나를 몰아 세웠습니다.
거기에다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현장에서 나의 불룩한 배를 보고 퍼부어대는
조소였습니다. 남자 관리자들과 기사들은 "애새끼를 뱄으면 집구석에나 있을
것이지"라며 노골적으로 수근거려댔고 나이 어린 미싱사들도 "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측은해 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 힘을 준 사람이 바로 임신 5개월된 동료
미싱사 미자였는데 미자는 출산 휴가가 있는 것도 모르다가 내가 그런 것을 위해
싸우자, 관심을 가지고 물어오더니 "언니가 따내면 나도 청구하겠다"며 열심히
싸우라고 격려하곤 했습니다.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이것은 떳떳한 권리라는 생각으로 싸운 결과 당당히 출산
휴가를 따내었습니다. 산전 1 달 산후 1 달을 쉬고 아직 회복이 덜된 몸으로 회사로
출근을 하자 미자가 퉁퉁 부은 얼굴로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울먹이며 너무나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출산 휴가를 얻고 쉬게 되자 미자도 용기를
내어 과장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과장은 펄쩍 뛰면서 뻔뻔스럽다는 듯이 노려보며,
"우리 회사에는 그런 것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
도저히 쉴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던 미자는 혼자서 고민고민하다가 드디어 임신
7개월의 아기를 병원에 가서 임신 중절 수술을 하였고, 그 후 바로 회사에 나와 일을
했더니 몸이 점점 부어 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관리자들이 자기 부인이 이런 꼴을 당했으면 가만히 있었을까요? 아무리 자기
뱃속 차리는게 우선이고 노동자들을 우습게 본다지만 이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가
아닙니까?
모성 파괴는 공인된 가장 흔한 살인 행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 살인
행위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독점 자본의 규모에 관한 한 선진국이지만
노동자의 생활에 관한 한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후진적인 것이 모성 보호일
것이다.
선진국들에도 현재와 같은 수준이나마 모성 보호가 실시되기까지는 참혹하고 악명
높은 모성 파괴의 역사가 있었다. 공장 지대에서 유아 사망률이 다른 지역보다 몇
배나 높아지고, 노동력의 공급을 위협할 정도에까지 이르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하고서야 자본가 계급은 비로소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착취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았다. 자본가들은 스스로 자진해서 여성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했는데, 이는 자본가들이 갑자기 자비로와져서가 아니라,
그제서야 비로서 그들이 마음놓고 부리던 것이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 모성 파괴를
어느 정도 제한하지 않고는 자본 축적이 위태로우리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즉 자본이 모성 파괴라는 살인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오직 경제적 이해타산에
의해서일 뿐이다. 노동 과정에서의 모성 파괴가 다음 세대 노동력의 지속적인 공급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해지거나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커져서 임신 출산, 혹은 탁아소
등의 비용을 들이더라도 기혼 여성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가 있거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인해 양보가 불가피한 경우에만 자본은 마지못해 모성 보호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뎌 왔다. 선진국들이 앞으로 나아간 것은 언제나 노동자들이 투쟁에 의해서
뿐이다. 이런 모든 경우에도 자본은 가능한 한 최소한의 양보만을 하려하며, 그
최소한의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 자본이 원하는 만큼 공급될 수 있는 선에 의해서
결정된다. 선진국의 법률은 이런 양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법률들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우리나라는 이 최소한의 법적 조치에서도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다.
지켜도 그만이고 안지켜도 그리 큰 해가 없는 법이 구색 갖추기로 모성 보호를
규정해놓은 데 불과하다.
노총의 조사에 따르면 생리 휴가를 유급으로 쉬는 경우는 20.3%에 불과하고,
수당만 받고 쉬지 않는 경우가 46.8%, 수당도 받지 않고 쉬지도 않는 경우가 9.5%,
회사 사정상 미안해서 못쉰다가 8.9%이다. 여성 노동자가 임신했다고 해서 노동
강도를 줄여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주35) 또 육아 휴직제에 대해서도 있다는 응답은
25.7%에 불과하고 없다가 36.4%,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가 25.5%, 무응답이 12.4%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한편으로는 모성 보호에 관한 제도적 문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의 결여를 보여준다.
신문에 거의 매일 실리다시피 하는 직업병과 산업 재해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 노동자들은 수은, 납 등의 중금속에 거의 무방비인 채 노출되어 있으며, 많은
수가 생리 불순과 생리통을 겪고 있다. 최근 노동 상담소에는 "무균실에서 오래
근무했더니 생리가 없어졌어요"와 같은 호소가 줄을 있고 있다.
유해한 노동 환경으로부터의 보호는 여성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
노동자에게 해로운 것은 남성 노동자에게도 해롭다. 단지 여성은 모성으로 인해 그
피해가 더 심각하고, 2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그 피해가 종종 치명적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 폭발하고 있는 육아 문제
얼마전 부모가 다 일하러 나간 사이 집에서 놀던 아이들 둘이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맡길 사람도 없고 집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고 하여 문을 잠궈
놓았던 것이다.
"혜영아! 용철아! 어디 갔니."
9일 오후 서울 망원동 대근 연립 지하 셋방을 찾은 아빠 권순석씨(30세 부천 유미
레미콘 경비원)와 엄마 이영숙씨(27세 파출부)는 타다남은 이불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혜영(5세 여) 용철(4세 남) 남매는 이날 오전 방안에서 놀다 불이 나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빠져 나오려 발버둥쳤지만 창문도 없었고 방문은 밖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권씨 부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사람들 고향에서 같이 자라 5 년 전
농사꾼 부부가 됐으나 9백 평 논농사로는 생계를 지탱하기 힘들었다. 남매를 70세
노모에게 맡기고 부부는 지난 해 5월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은 막 노동판을 아내는
가정부를 전전하면서 떨어져 살던 부부는 이를 악물고 돈을 모으고 빚을 합쳐 지난 해
10월 겨우 4백만원에 3 평짜리 지하 셋방을 장만했다. 혜영이와 용철이가 두 달 후
서울에 올라와 네 식구는 이산 가족 신세를 면했다. 가난을 이기려고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권씨는 새벽같이 경비원 일을 나가 30여만원을, 이씨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파출부로 일해 35 만원을 벌어 빚을 갚아 나갔다. 제일 큰 문제는 어린
남매를 돌보는 것이었다.
"부엌에 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했고 애들이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당할
것 같아 방문을 잠글 수밖에 없었어요." 맡아줄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남매는
방안에 갇혀야 했고 이 현실은 지금 부모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다.(주36)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탁아 문제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준다. 기혼
여성의 취업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탁아를 필요로 하는 아동의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 수는 1989 년 현재 최소치로 추정해서 151 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공사립 유아 교육 기관에 다니는 아동은 51 만여 명인데, 그 중 3세 이하
아동은 2천 7백 70 명 뿐이다. 적어도 1백만 명의 아동이 적절하고 안정되게
보육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유아 교육 기관에 다니는 경우도 오전 시간만 보육하는
유치원에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나라 남녀 고용 평등법 제12조는 "사업주는 근로 여성의 계속 취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유, 탁아 등 육아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법률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직장 탁아소는 공단 지역 및 근로 여성 밀집
지역의 시범 탁아소와 사업장 탁아소가 있는데, 사업장 탁아소는 전국에 걸쳐
12개뿐이다.
우리나라의 탁아소에는 대규모 탁아소로 새마을 유아원과 공단 탁아소가 있고
소규모 가정 탁아소와 빈민 탁아소 등이 있다. 새마을 유아원은 2천 413개소에 20 만
1천 명을 수용하고 있는데, 대도시 지역에서의 조사에 의하면 8시간 보육이 44%,
7시간이 33.3%로, 보육 시간이 여성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보다도 짧아 취업 여성은
이용을 못하고 오히려 중산층 전업 주부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가정 탁아의 경우는 비용이 월 10 만원이 넘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여성 노동자 중 소수에 불과한 전문 기술직 노동자나 중산층 주부들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 현행법상 3세 미만의 유아를 정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관은 새마을 유아원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새마을 유아원조차 대개 4세 이상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영아반은 1986 년에 와서야 서울에서 겨우 10개소에
설치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중 6곳은 오전 9시에 시작하고, 9곳은 오후 5시 이전에
문을 닫아 역시 주로 중산층 가정 주부들이 이용하고 있다. 결국 3세 미만의 유아를
가진 여성 노동자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0--3세
유아의 보호에는 포유실과 조유실 등 많은 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인건비도 많이 들기
때문에 탁아소가 광범위하게 설립되려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은 어떤가? 보사부는 6세 미만의 어린이 82 만 명을 수용하기 위해서
수용 인원 10 명 규모의 가정 탁아소 2 만 5천 7백 개와 수용 인원 70 명 규모의
시설 탁아소 8천 20개 등 모두 3 만 3천 720개의 탁아 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필요하다고 설정한 시설 탁아소 8천 2십 개 중 올해는 겨우 250개,
1992년에도 1천 2백여 개만을, 그것도 설립 계획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나머지 5천 5백 곳과 가정 탁아소 2 만 5천 7백 곳은 1995 년까지 세제 지원 등으로
민간 차원에서 설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기혼 여성 노동자는 한 해 평균
30%씩 증가하고 있는데! 요컨대, 정부는 방치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 아이는 어머니의 책임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탁아소가 드물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탁아소가 발달하는 방식에 있다. 우리 사회의 탁아소는 어머니가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과 자년 양육을 조화롭게 해 낼 수 있어야 하며 노동자의 자녀가 가장
잘 자랄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 사회의 탁아소는 '아이를 기르는 것이 어머니의 일차적인 의무이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어떤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전제를 타파하지 않으며,
아이는 어머니가 집에 있어야만 잘 자랄 수 있으며 아이를 탁아소나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전제를 타파하지 않는다.
탁아소는 일하는 어머니와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배려'로서가 아니라, 단지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를 위한 '최소한의 방편'으로서만 발전하고 있다. 그 결과
어머니는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최선의 경우에도 결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아이는 최소한의 방편으로서의 탁아소에서 최소한으로 자란다.
왜 그런가? 이는 자본이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끌어들이는 목적이 여성의 해방이나
남녀의 평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으로의 착취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달리
여성을 고용할 길이 없는 경우에 탁아소가 최소한의 수준에서 발달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머니가 키워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본은 탁아소의 건설과 같은 기혼 여성의
고용에 따른 자신의 부담을 최소화한다. 여성들에게 일이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자본은 여성 노동자들이 사회적 노동에서의 비천하고 시시한 대우와
지위를 참고 견디도록 만든다. 여기에는 참으로 교묘한 연쇄 고리가 형성되어 있다.
여성들은 자식을 위해 일하지만, 그 때문에 자식은 버려져 자란다. 자본은 기혼 여성의
노동력을 싼값으로 얻고, 아이를 기르는 비용(노동력 재생산비)도 최소화한다.
이런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성이 착취의 미끼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성을
사회적 노동과 대립되게 만듬으로써 자본은 모성을 그것을 위해 여성이 다른 인간적인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짐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위대한 어머니상, 희생적인
어머니상으로 포장되낟. 그러나 그 내막은 자본이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절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모성은 희생 되고, 그 희생은 결국 자본에게 바쳐진다.
자식이 어머니에게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는
어머니에게 짐이 된다. 자본이 만들어 내는 노동과 모성의 모순은 어머니와 아이의
모순을 낳는다. 아이와 자아 실현의 욕구 사이에서 양자 택일을 강요당하는 것은
심각한 모성 파괴의 하나다.
최근 기혼 여성 노동자가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모성 파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직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모성 보호에 대한 여성
노동자들의 의식과 투쟁도 고양되고 있다.
은행의 경우, 1985 년부터 4개월의 육아 휴직(산전 산후 2개월 휴가 제외)이
가능하다. 그러나 60일의 출산 휴가는 급료를 받고 근속 연수에 포함되는 반면, 육아
휴직 4개월은 단지 휴직만이 보장될 뿐이다. 남행원은 군복무시 70%의 임금이
지급되고 그 기간이 근속 연수에 포함되는 것에 비해 불평등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또 MBC에서는 단체 협약을 통해 1988 년 9월 이후 4개월의 육아 휴직을 쟁취했다.
그 중 3개월의 육아 휴직(그 중 2개월은 유급)이 가능하다.(주37)
모성 보호와 자년 양육을 위한 싸움은 여성만의 싸움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책임은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모성 보호 요구는 여성이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노동자의 다음 세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며,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하나로서, 남녀 노동자 모두의 문제이다.
5) 불안정 고용, 1원 50전에 몸은 병들어 가고
여성 노동자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그 중 많은 수가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피고용자 961 만 명 중에서 상시 고용이 811 만 4천명으로
84%이고, 일고가 149 만 6천 명으로 16%나 된다. 전체 피고용자 중에서 일고가
차지하는 비율을 남녀별로 보면 남자 14%, 여자 20%이며 임시고를 포함하면 남성
노동자의 29.1% 여성 노동자의 51.8%가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다.(주38)
불안정 고용은 산업 예비군의 일부로서 정체적 과잉 인구에 해당한다.(주39) 임시
고용, 일고 노동자들은 노동 조합에 가입할 수도 없으며, 언제든지 손쉽게 해고될 수
있고, 생리 휴가, 연월차 휴가를 받을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상여금, 퇴직금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차별 대우를 받는다. 자본가들은 이러한 임시고와 일고를 늘리고, 특히
여성을 여기에 이용함으로써 이중 삼중의 이익을 볼 수 있다. 모성 보호 비용을
절약하면서 여성 노동력을 계속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회사와 이웃 회사인 롯데 제과의 가장 큰 문제는 일용부를 쓰는 문제와 생산
품목을 하청으로 주고 있는 문제였다. 정식 공원을 쓰는 것보다 일당도 적게 줄 수
있으며 상여금과 퇴직금도 없으며 또 언제든지 필요하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할 수
있으니 회사로서는 이 얼마나 큰 소득인가?
또 일용부는 회사로부터 잘못 보이면 더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정식 공원들보다 더
많은 생산을 내야 한다. 단적인 예로 껌부의 껌파치를 까는 데 있어서 일용부에게
도급제로 일을 시키기 때문에 그들은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스스로 1시간 정도씩
앞당겨서 출근하여 경쟁을 하며 남보다 많은 작업량을 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또
종합 선물 작업 역시 도급이라 하여 혹독하게 일을 시키고 있으나 실로 월급을 타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면 회사는 도급제의 양이 다 나오지 않아서 도급제
월급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일용부를 쓰면 노사간의 분쟁도 없을뿐더러 여러 형태로
득을 보는 것이다. 회사는 득을 보게 되지만 노동 조합측으로 보면 조합원의 수효가
줄어들어 노동 조합이 자연히 축소되는 것이다. 일용부는 단 한번만 지각을 해도 월차
수당이 없어진다. 그들은 여성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용부라는 것 때문에 생리
수당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주40)
불안정 고용의 또 하나의 중요한 형태는 가내 노동이다. 가내 노동은 흔히 하청
노동, 가내 부업이라 불리는 것으로 기혼 여성의 주요한 취업 형태다. 다음 사례는
거의 대부분의 가내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전자 조립'이라는 부업 일을 하게 된 것은 결혼 후 첫째 아이를 낳은지
100일이 지나서였다. 그때 내겐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정말이지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겠다는 위협이 음습해 왔었다. 그러나 전자 조립은 나사 하나 죄는 데 1원 혹은
1원50전, 그것도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밥먹고 치우는 것 빼놓고 아침부터 밤 11시^36,36^12시까지 꼬박 앉아 일해도
하루에 2,000개를 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이 한달에 4--5 만원 안팎. 그러나 그 돈도 하루 이틀 사이에
어디로 간지 모르게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 또 일을 하다 보면 점심을 거르기
일쑤이다. 요것마저 해놓고, 요것만 끝내고 하다보면 어느덧 시장기가 가셔서 밥 맛이
통 돌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밥도 제때 먹이지 못하게 된다. 가끔씩
3살짜리 첫째 아이가 와서 칭얼댈 때도 그것을 돌봐줄 겨를이 없다. 이럴 때는 돈 몇
푼 줘서 보내는게 상책이다.
돈같지도 않은 것 번다고 아이 교육은 그대로 방치되고 몸은 몸대로 망가진다고
생각하면 속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말이지 내가 공장다닐 때와 비교해 보면
부업 일은 공장 일보다 더 오랜 시간을 더 열심히 힘들게 일하면서도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러한 낮은 임금 때문에 공장에서도 이런 부업거리를 자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일 게다. 우리 동네만 해도 많은 아줌마들이 "집에서 놀면 뭐한, 반찬
값이라도 벌어야지 않느냐"는 말에 솔깃해 낮은 단가에, 상여금도 없고 일하다 다쳐도
치료비조차 받지 못하는 부업 일을 너도나도 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하고, 거기다 중간 매개인까지 끼어서 정말 반찬 값도 안되는 돈을 주고 일을
부려먹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심심풀이가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도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낮은 단가에도 어쩔 수 없이 부업을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좁은 방에서 하루종일 구부리고 일하다 보면 눈이 나빠지고
팔다리에 신경통이 생기기도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아줌마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서
단가를 쑥 올려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옆집 찬우 엄마가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공장에 다니는 것이 무척이나 부럽다.(주41)
이들은 고달픈 공장 노동자조차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의 처지에 있다.
여성개발원이 1989 년에 실시한 가내 노동 실태 조사 역시 이를 보여준다. 서울시의
20개 저소득층 집단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경제 활동 인구의
9.4%가 가내 노동을 하고 있다.(주42)
가내 노동 업무는 단순 반복적이고 기계화되기 어렵거나 기계화가 채산성이 맞지
않는 작업들로서 전체 제품 생산 과정에서 떼어져 나올 수 있고, 또 분리되어도 작업
과정 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공정으로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봉과 바느질이 많고,
전자 부품과 장신구의 조립에서 마늘 까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성개발원의 조사에서 전체의 28.9%만이 특정 기술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71.1%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다고 답했다. 기술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경우의
62.5%가 미싱 기술이었다.
이들이 정식 노동자로 취급되지 않는 데 비해 노동 시간은 공장 노동자의 노동
시간에 육박한다. 즉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7.74시간이나 되며, 월 평균 노동
시간이 167.2시간으로 10인 이상 사업체의 기혼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 노동 시간의
67.9%에 달한다. 또 가내 노동자의 3분의 1이 공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만큼, 혹은 그
이상 노동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 가내 노동자의 월 평균 공임액은 10 만 4천 894원으로 제조업부문
고용 기혼 여성 월 평균 임금의 절반 수준인 52.4%에 지나지 않고, 제조업 남성
노동자 월 급여액의 4분의 1(26,2%)밖에 안된다.
이 중 월 10 만원 미만의 수입을 갖는 가내 노동자가 과반수 이상인 60.6%에
이르고 1987 년 제조업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 수준인 20 만원 이상인 경우는
13.7%에 불과하다.
더구나 시간당 임금을 비교해 보면 가내 노동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627.4원으로
기혼 고용 여성 노동자의 77.7%에 불과하다. 작업 종류 별로는 미싱 일을 하는
경우가 가장 높고 실밥 따기가 가장 낮은데, 마늘 까기는 1시간당 305원으로
최하위다. 그래서 이들 스스로가 아이들 요구르트 값밖에 안된다 하여 '요구르트
벌이', 쥐가 한번에 물어오는 것밖에 안된다 하여 '쥐벌이'라 부른다. 이렇게 낮은
소득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일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게 한다.
작업 환경을 보면, 가내 노동자의 93%가 자기 집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도 집이나
집 주위 골목, 일감 집 등 가정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활 공간과 작업
공간을 겸하므로 생활에도 일하기에도 불편하고 비좁다(이들의 45.3%는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43.6%가 방 2개인 집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소음, 먼지 및 본드
냄새 등에 거의 아무런 방비가 없다.
안경집 제조의 한 공정으로 본드를 사용하여 철판의 한 면에는 금박지를 붙이고
다른 한 면에는 안감을 붙이는 일을 5 년째 해오고 있다. 주위에서 냄새가 지독하다고
하고, 시동생도 본드가 안 좋으니 하지 말라고 하나 본인은 익숙해져서인지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만 어린 아들의 건강에 영향을 줄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막내 아들(국민 학교 5 학년)에게 하루 3--4시간씩 자기 일을 돕도록 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각종 직업병이 발생하지만, 직업병으로 취급되지 못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취업이 불규칙하다는 점이다. 여성개발원의 조사에서 지난 1
년간 현재의 가내 노동에 줄곧 종사해 온 경우는43.9%고, 1 회 이상의 비취업 기간이
있었던 가내 노동자의 비율은 40.7%,다른 종류의 가내 노동이나 직업(파출부, 행상
등)을 가졌던 경우가 15.4%였다.
그리하여 가내 노동에서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임금이 싸다가 28.6%로 가장
높고, 일거리가 충분치 않고 불규칙하다가 23.2%로 두번째이며, 작업 환경이 나쁘다가
16.2%, 시간 독촉을 받는게 힘들다가 15.5%, 일 자체가 힘들다가 12.6%로 나타났다.
이런 가내 노동에 종사하는 이유를 보면 76.4%가 가사와 병행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고, 12.3%가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서라고 답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이
하청을 주는 주된 동기는 비용 절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정식 고용 노동자에 비해
임금이 훨씬 싸고 관리 비용과 간접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1988 년 현재 기업의
노동 비용을 100으로 했을 때, 가내 노동자의 노동 비용은 57%를 밑돈다. 와이셔츠
실밥 따는 공정을 하청주고 있는 한 기업은 가내 노동자에게 일감을 줄 경우, 직접
임금 비용만도 일인당 하루 최고 2,100원에서 최저 1,200원 정도의 임금을 절약할 수
있으며, 여기에 제수당, 상여금, 퇴직금과 복리 후생비 등의 간접 비용이 가내
노동자에게는 일체 들지 않기 때문에 훨씬 싸게 먹힌다고 말한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의식 향상과 노조의 활성화로 인해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가 점점 어려워지는 데 비해
가내 노동자들은 비조직화되고 낮은 기회 비용을 갖는 특성 때문에 지배가 훨씬 쉽다.
집에서 아이들까지 돌보면서 일해야 하니 '모성 보호' 책임도 없고, 일거리가 없으면
그것이 바로 자동 해고이므로 예고도, 해고 수당도, 퇴직금도 필요가 없다. 이들 가내
하청 노동자들은 단결권이나 단체 행동권도 없고, 최저 임금제의 대상에서도 제외되며,
의료 보험 혜택도 보너스도 받을 수 없다. 문자 그대로 '무권리' 상태의 최하층
노동자인 것이다.
기업이 가내 노동을 이용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하청 물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내 노동은 경기 변동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가장 손쉽게
직접적으로 떠넘기는 형태다.
가내 노동은 주로 중소 수출 업체로부터 나오며, 이는 다시 종합무역 상사 등
대기업과 하청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수출업체나 공장에는 의례
'외주과'라는 것이 있어 하청을 담당하고 있다. 하청은 공공연한 또 다른 형태의
고용임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가내 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식되지 않고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갖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가내 하청은 한편으로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 산업의 모순을 최종적으로
전가하는 메카니즘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사 책임을 지고 있고, 정식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대적 과잉 인구로서의 기혼 여성 노동력을 가장 고율로 착취하는 방식이다.
취업과 실업을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이러한 가내 노동자의 광범위한 존재는 기혼
여성이 산업 예비군 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 부문간의 심각한 불균형이 실업과 상대적 과잉 인구의 모순을 한층
심각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자본은 이 모순을 가사와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진
여성들에게 최종적으로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수위의 독점 자본의 성장 이면에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세계 수위의 가혹한
착취가 자리잡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항상적인 해고의 위협 속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혈을 짜내는 착취가
존재하고 있다.
제2장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과 여성
2. 가사 노동
1) 가사 노동이란?
가사 노동하면 흔히 요리, 빨래, 육아 등의 노동을 연상한다. 그런데 요리나 빨래,
육아가 곧 가사 노동은 아니다. 다같이 고추장을 만드는 노동이라도 집에서 하면 가사
노동이지만, 고추장 공장에서 하면 사회적 노동이다. 빨래는 세탁소에서도 하고,
육아는 탁아소나 유치원에서도 한다. 같은 노동도 가사 노동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있고, 사회적 노동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가사 노동은 무엇인가?
가사 노동은 사회적 노동에 대비되는 말이다. 즉 사회적 단위(공장, 회사 등)에서
사회를 향해(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의
소비를 위해 행해지는 노동을 가리킨다. 가사 노동을 역설적으로 생산의 사회화의
산물이며, 곧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봉건 사회에서도 요리나 빨래, 육아들의 노동이
행해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생산 역시 가족을 단위로 해서, 주로 가족의 소비를 위해
행해졌다. 가족의 소비를 위해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농업 노동이나 요리 등 식품 생산
노동, 육아, 빨래 등의 서비스 노동은 모두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같은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생산과 서비스 노동이 점점 더 사회화하였고, 이
과정에서 사회화되지 않고 가정에 남아 있는 노동이 가사 노동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의 영역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점점 축소되고 있는 유동적인 것이다.
* 가사 노동의 이중적 의미
가사 노동은 여성에게 이중의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가족을 위한 자발적인 봉사,
애정의 표현으로서의 의미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집을
꾸미고 밤참을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더욱이
거기에는 자본가의 강제와 감시도 없고, 노동의 산물이 자기 것이 되지 않는 비애도
없다. 거기에는 사회적 노동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당해야 하는 온갖 소외가 없다.
노동은 애정에서 나온 자발적인 것이며, 그 결과는 가족이 향유한다. 따뜻하고 안온한
가정을 꾸미는 일! '정말 여자로서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지도 모른다.' 가정은
사회적 노동에서 여성이 받는 소외를 보상해주고, 가사 노동은 사회적 노동에서
소외된 여성들에게 존재 이유를 제공한다. 여성들은 가족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며, 그것은 애정과 헌신이라는 후광으로 고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만큼 행복하지만은 않다. 현실에서 자발적인 봉사는 일방적인
희생을, 고귀한 헌신은 무보수의 비애를,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동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사 노동의 부담은 사회적 노동을 장애물 경주 같은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후자의 측면이 더 지배적이 된다. 이것이
가사 노동이 여성에게 갖는 두번째 의미이며, 보다 현실적인 의미다.
가사 노동의 문제는 첫째로 가사 노동 그 자체의 문제, 둘째로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의 양립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제 가사 노동의 문제를 하나씩 살펴보자.
2) 가사 노동의 가치는 얼마?
* 집에서 논다?
우리나라 주부의 1일 가사 노동 시간에 대한 연구를 보면 1988 년 현재
8--9시간에 달한다. 가사 노동이 휴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당
56--63시간으로 우리나라의 평균 임노동 시간보다도 길다.(주43) 한 조사에 의하면
막내 자녀가 4살 이하인 가정 주부의 가사 노동 시간은 평균 11.6시간이나
된다.(주44)
또 외국 주부의 1일 가정 노동 시간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981 년 현재로 하루
평균 6.6 내지 6.8시간의 가사 노동을 하고 있다. 주당 노동 시간은 46.2시간으로
역시 이들 나라의 임노동 시간보다 길다. 최근의 한 미국 잡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가정 주부들의 가사 노동 시간은 평균 주당 92시간이나 된다.(주45)
사실, 가사 노동 시간은 정확히 잴 수도 없다. 아이는 끝도 없이 어머니의 손길을
요구하고, 아내의 배려가 충분한 지점은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가사 노동은
안하면 금새 표시가 나지만, 해도 표시는 안나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노동이다.
대부분의 가정 주부들은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잘 때까지 집안일에 매여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일하는 주부를 두고 사회는 '집에서 논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를
'먹여 살린다'고 말하고, 자식들은 어머니가 '그냥 집에 있다'고 한다. 아무리 일해도
'그냥 논다'고 취급되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가정 주부의 운명이다.
* 가사 노동의 가치는 얼마?
하루 종일 일하는 가정 주부가 '그냥 논다'는 말을 듣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사
노동을 해서는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없는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사 노동을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는가?
가사 노동이 사회적 노동과 달리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가치를
생산하는 데도 그것을 지불 받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임금 속에 가사
노동의 가치도 들어 있는데, 그것이 표면상 나타나지 않아서 주부의 몫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이른바 "가사 노동 논쟁"이라는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가사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진적 여성 해방론자인 델라 코스타는 가사 노동이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잉여
가치를 낳는 노동력 상품을 생산하므로 가치는 물론 잉여 가치를 낳는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입각해 한때 가사 노동에 대한 임금 지불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또 세콤브는 가사 노동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으로써 소상품
생산과 같다고 보았다. 노동력의 가치에는 생활 자료의 가치뿐 아니라 그 생활 자료를
최종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키는 노동인 가사 노동의 가치가 포함되며,
주부가 생산한 가치는 그 가치를 포함한 노동력이 상품으로 팔림으로써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 경제학의 입장을 고수' 한다고 알려진 폴 스미스는,
가치는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에서만 발생한다는 등의 이유로 가사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가사 노동의 가치 문제는 현실의 필요에 의해서도 제기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가정
주부가 교통 사고를 당했을 경우 손해 배상이나 이혼시 재산 분할 청구권의 근거로서,
가사 노동의 가치를 무엇에 근거하여 얼마로 평가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지난 1985 년 교통 사고를 당한 한 여성 노동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가 가사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에 대해 일용 도시 여성 근로자의 일당 4천 원을
적용한 일이 있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가사 노동의 경제적 기여를 인정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진일보한 것이지만, 이를 일용 여성 노동자의 일당으로 계산한 것이
부당하다는 여론과 함께 가사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할 것이냐 하는 논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서구에서도 가사 노동의 가치 평가 문제가 주부들과 학자들의 관심사가 되고, 이를
화폐로 계산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방법으로 고안된 것은 지금까지 5가지
정도가 있다. 요리, 청소, 빨래, 가정 관리, 육아 등 각각의 가사 노동을 요리사,
청소부, 세탁부, 보모 등등의 전문가에게 맡길 경우의 비용으로 계산하는 전문가 대체
비용법, 가사 노동 전체를 가정부와 같은 사람에게 맡길 경우의 비용으로 계산하는
총합적 대체 비용법, 가사 노동을 함으로써 하지 못하는 사회적 노동에서의 임금
수입에 의해 계산하는 기회 비용법, 주부 자신이 가사 노동을 그만두고 사회적 노동을
할 경우,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금 수준에 의해 계산하는 요구 임금
방법, 가사 노동의 가치에 대한 주부 자신의 주관적 평가액에 의해 계산하는 주관적
평가법 등이 그것이다.
이런 방법에 따라 가사 노동의 가치를 계산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영금 씨의 연구에 의하면 전문가 대체 비용법에 따른 가사 노동의 가치는 53 만
8천 438원이고, 총합적 대체 비용법에 따르면 42 만 469원, 기회 비용법은 52 만 9천
941원, 요구 임금 방법에 따르면 72 만 9천 201원, 가사 노동의 가치에 대한 주부
자신의 주관적 평가 방법에 따르면 50 만 2391원이다.(주46)
미국 '스타지'는 전문가 대체 비용법에 따라 미국 주부가 가사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연간 4 만 8천달러(약 3천 264 만원, 월 평균 272 만원)를 넘는다고 분석했다.
그 내역을 보면 가사 노동 시간은 1주일에 무려 92시간 가량으로, 청소부로서 1주일에
6시간, 연간 1천 825 달러(약 124 만원), 세탁부로 주당 4시간, 연간 696 달러(약 47
만원), 요리사로 주당 15시간, 연간 1 만 4천달러(약952 만원), 웨이트리스로 1주일에
7시간, 연간 1천 820 달러(약 123 만원), 가정 교사로 주당 10시간, 연 5천 2백
달러(약 353 만원), 운전 기사로 1주일에 6시간, 연 3천 644 달러(약 247 만원)
일하고 이에 심리학자로서 연간 1 만 4천 달러(약 952 만원)와 유모로서 연 4천 680
달러(약 318 만원), 쇼핑에 1주일에 6시간, 연 6천 240 달러(약 424 만원)이다.(주47)
이런 계산들 중 한 두 가지는 교통 사고시 손해 배상이나 이혼시 재산 분할의
근거로서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계산법들은 모두가 가사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다른 형태로 바꾸거나 다른 경우를 미루어 계산한
것으로 어느 것도 곧장 가사 노동이 생산한 가치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는
역으로 가사 노동의 가치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사실, 가사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가사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사
노동이 판매를 위해서 행해지지도 않고, 가사 노동자가 그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
임금을 받고 고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밥을 지어 팔면 돈을 벌 수 있다.
또 식당에 고용되어 요리를 해도 임금을 받는다. 세탁소는 빨래를 해주고 돈을
받는다. 간호원은 환자를 간호하고 임금을 받으며, 심지어 똑같은 가사 노동을 하고
파출부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집에서 아무리 밥하고 빨래하고, 가족을 간호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쳐도 한 푼도 벌 수 없다. 가정 주부는 밥을 지어 팔거나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가족의 소비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가사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준다.
상품의 가치에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가 있다. 사용 가치는 물건의 유용성이다.
교환 가치는 하나의 물건이 다른 물건과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나며, 상대적으로만
표시될 수 있다. 이 교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 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 생산이고, 우리가 어떤 물건의 가치가 얼마인가라고
할 때 그 가치는 바로 교환 가치를 뜻한다.
가사 노동은 물건의 유용성을 증가시킨다. 쌀을 밥으로 만들고, 더러워진 옷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갖고 있는 유용성을 높인다. 이 유용성이 곧 사용 가치다.
가사 노동은 사용 가치를 생산한다.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서 가사 노동은
유용하고 필요한 노동이다.
그러나 가사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노동자가
음식을 만든다고 하자. 이 노동자의 요리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며, 음식물의 가치에는
요리 노동의 가치가 포함된다. 그러나 집에서 요리를 해서 가족이 먹을 경우, 이때의
요리 노동은 사용 가치는 생산하지만 '가치'는 생산하지 않는다. 음식의 사용 가치는
가족의 사용, 즉 소비에 의해 실현된다. 사용 가치를 위한 가사 노동에 대한 대가는
가족의 '사용', 즉 소비로 충분하다. '가치'란 원래 교환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즉
하나의 상품이 얼마만큼의 가치(사용 가치가 아니라)를 가졌는가는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로만 표현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밥 한 공기의 가치가 밥 한 공기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밥 한 공기의 가치는 그것과 교환될 수 있는 다른 상품,
혹은 화폐로만 표현된다. 밥 한 공기는 이를테면 쌀 두 공기, 혹은 500원의 가치로
표현된다. 그러나 사용 가치는 다른 사용 가치와 비교될 수 없다. 자기가 먹은 밥 한
공기의 사용 가치는 다만 밥 한 공기의 사용 가치일 뿐이다. 이때 밥 한 공기가
500원의 가치로 표현되는 것은 그것이 교환을 통해 밥 한 공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사회적 노동량이 다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은 사회적 평균 노동으로 전화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교환 가치는 상품 생산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상품 생산이 아닌 자급 자족을 위한 생산으로서의 가사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사 노동을 소상품 생산에 비유하는 것도 잘못임을 알 수 있다. 가사
노동이 소상품 생산과 같다는 주장, 가사 노동이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다는
주장은 노동력이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일면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고 가사 노동과
노동력 재생산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가사 노동은 사회적 노동에 비해 소비와
좀더 밀접히 관련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력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가사 노동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위한 노동이다. 가사 노동의
직접적인 생산물은 노동력이 아니라 음식과 같은 물질과 청소나 육아와 같은 여러
가지 서비스다. 즉 유용성을 생산하는 것이지 노동력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력의 생산은 (출산을 제외하면)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등의 소비로만 이루어진다.
소비와 소비를 위한 노동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것은 식사와 요리가 구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사 노동은 이 소비를 위한 유용성을 만드는 것이며, 판매를 위해 상품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가사 노동은 소상품 생산이 아니라 자급 자족적인
생산이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없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명한 일이다. 돈을 벌려면 화폐와 교환을 해야 하는데, 가사 노동은 자급
자족적인 노동인 것이다. 문제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돈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사 노동만이 홀로 자급 자족을 위한 것으로 남아있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서 가사 노동은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노동력의 가치를
낮춘다. 예를 들어 가사 노동을 하지 않고 이를 모두 상품으로 구입할 경우, 즉 음식을
사서 먹고, 아이는 탁아소에 맡기고, 세탁은 세탁소에, 청소나 기타 잡일은 서비스
센터에 맡길 경우, 생활비는 그 만큼 상승할 것이고, 임금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할 경우, 4인 가족의 최저 생계비가 150 만원이 든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고, 아이는 집에서 기르고, 빨래와 청소도 집에서 하는 것으로
가정한 최저 생계비는 80 만원 정도가 된다고 하자. 이 경우, 가사 노동은 70 만원의
가치를 절약한 셈이다(그리고 이것은 결국 노동자의 재산 형성에 대한 가사 노동의
기여가 된다. 즉 직접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돈을 절약함으로써 재산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자본은 이 사용 가치를 위한 생산으로부터 이득을 볼 수 있다. 만약, 가사
노동을 통해 여성이 70 만원의 노동력 재생산비를 절약했는데, 남편을 통해 그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비로 10 만원만을 지급한다면 자본은 이를 통해 60 만원의 임금을
절약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은 단순히 잔존할 뿐 아니라, 자본에 의해
재생산되기도 한다.
* 가사 노동과 사회적 노동간의 모순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생산 사회이다. 생산의 목적은 자급 자족이 아니라 판매이며,
따라서 교환 가치가 지배한다. 그런데 가사 노동은 자급 자족적인 생산으로서
자본주의화되지 않고 남아 있는 전자본주의적인 생산 방식이다. 즉 가사 노동은
자본주의의 영역 외부에 있다. 상품 생산 사회에서 사용 가치는 가치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가사 노동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유용성을 제공하지만, 교환 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이 된다.
자급 자족, 사용 가치의 생산이 주를 이루었던 봉건 사회에서는 여성이 가사 노동을
한다는 것이 지금과 같이 고립과 무가치를 의미하지 않았다. 가사 노동 담당자로서
여성의 경제적 역할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것이었다.
일단 상품 생산이 지배하게 되자 교환 가치가 전부이고 사용 가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생산의 각 분야에 침투하여 상품 생산을 확대할수록,
(교환)가치의 힘은 점점 더 커지는 반면 사용 가치는 상대적으로 점점 더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 결국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린다. 이것은 사회적 노동에 대한 가사
노동의 종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불평등을
낳는 경제적 토대이다. 봉건 시대의 여성은 관습적, 법률적 차별 속에서도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가졌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여성은 법률적인 평등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노동인 가사 노동에 예속됨으로써 '소비자'의 위치로 전락하였다.
가사 노동의 잔존으로 인한 여성의 가사 노^36^예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불평등이 순전히 경제적인 관계를 통해 재생산되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가사 노동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의
처지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우선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과 가사
노동만을 하는 여성은 차이가 있으며, 가사 노동만 하는 경우에도 남편이 가족의
생활비에 충분한 임금을 버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여기서
남편의 임금이 높은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경우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3) 주부의 현실
(1) 중간층 주부
돈 잘 버는 임금 노동자 남편을 가진 살림하는 아내라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상이
탄생한 것은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에 들어서면서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 우선,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관리, 행정, 전문, 기술, 사무직 등 정신
노동 분야가 점점 확대되고, 그 중요성이 증가한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던 정신 노동자들이 자본의 지배하에 들어와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자본은
이들의 공급과 재생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가장 안정적이고도
값이 싸게 먹히는 방법은 이들에게 가족 임금을 주어 그 아내들이 가사 노동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독점 단계에서 막강한 힘으로 발전한 노동 운동을
약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즉 정신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를 차별하고, 이들 사이에 격차를 형성하여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들 정신 노동자, 혹은 숙련 노동자들은 미숙련 단순 육체 노동자들과는 달리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직종에 여성을 고용할 경우, 모성 보호와 탁아소 등의 비용과 관리의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이런 직종에는 주로 남자들이 고용되었다. 중간층 남성들은 점점 더 임금
노동자가 되었지만, 중간층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가 되지 못하고 그들의 아내로서
가정 주부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독점 단계에서 구조저이고 항상적인 문제로 대두한 실업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성들이 그 일차적인 희생양이 되었다. 독점 단계에 와서 '여성의 본분은 가정을
지키는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강화되었고, 여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업자로
가정으로 돌려보내졌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하고 가혹한 착취는 실제로 가정을 파괴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노동력의 재생산이 위기에 처하였다. 이에 대해 자본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사회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함으로써 여성의 가족에 대한 봉사와
희생을 통한 가족 유지를 꾀하였다.
이 결과 노동자의 상층에 속하는 소수의 남성들이 가족 임금을 지급받게 되었고
그들의 아내는 가정을 지키도록 권장받았다. 자본은 남성 노동자에게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여성들에게는 상류 계급의 여성과 같은 생활을
꿈꾸도록 선전하였다.
이제 중간 계급의 여성은 이전에 상류 계급의 여성들을 위해 마련되었던 지위를
더욱더 열망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에 숙녀라는 개념은 연약하고, 게으르고,
순결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가정 내의 요구에 충실한 여자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가치는 그녀의 아름다움, 기질 등의 장식적인 가치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여인은 결코
임금 노동자일 수는 없다. 이러한 이상은 너무나 확고하고 거의 종교적인 성격까지
띠어 '진정한 여성다움의 숭배'라고까지 불리웠으며 여성들로 하여금 그 이미지와
미덕에 무조건적으로 추종할 것을 요구하였다.(주48)
이러한 여성의 모습은 앞의 광고에서 전형적이고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다.
즉 정열적이고 강하고 유능한 남편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나약하고 비생산적이긴
하지만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이다.
중간층 가정 주부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상'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이 갖는 모든 속성이야말로 '여자답다'는 말 속에
표현되는 찬미와 멸시(그리고 멸시로서의 찬미까지)를 모두 담고 있다.
이들은 하층 주부나 혹은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의 '소망'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생계의 절대적인 압박이나 사회적 노동에서 자본으로부터 당해야 하는 온갖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중간층 가정 주부의 실제
처지는 그렇게 이상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J. 버나드의 연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이 기혼 남성보다 정신 건강 상태가 훨씬
나쁘며, 전업 주부가 취업 주부보다 더 고독해 하고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낀다고
한다.(주49) 특히 산업화와 함께 주부들의 신경증이 남성보다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신경증 증세를 나타내는 여성의 수는 1950 년대에는 남자와 같은 정도였으나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1960 년대 이후부터는 남자보다 훨씬 많아졌다. 이들이
겪는 문제는 무가치함, 사회적 고립, 경제적 의존, 자아 실현의 위기 등이다.
*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
가정 주부가 부딪치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가사 노동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행해진다는 데 있다. 가사 노동은 자본주의 외부에 있으며, 따라서 '사회'의 외부에
있다. 사회적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사 노동은 외딴 섬과 같은 존재이다. 가사
노동은 안 할 수 없고 필요하고 유용한 노동이지만 사회에서는 잊혀진 노동이다. 이는
가사 노동의 담당자가 사회의 '외부'에 있고 따로따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사적인 영역에 갇혀 있다. 생산의 사회화가 엄청나게 진전되어 전세계를
상대로 한 생산이 이루어지고, 지구가 하나로 된 시대에, 따라서 인간의 사회성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가정 주부는 가정이라는 사적이고 좁은 영역에 갇혀 있다.
우리 사회의 주부는 자유로이 다닐 수는 있으나 그녀에게는 특별히 가볼 만한 곳이
없다. 따라서 그녀의 감옥에는 담이 필요없다.(주50)
가정에 들어감과 동시에 그녀의 사회적 존재는 잊혀진다.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
잊혀진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잊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존재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됨과 동시에 가정 주부는 자신의 이름도 더 이상 갖지 않게 된다.
사회적인 활동이 단절됨과 함께 자기 자신의 삶도 단절된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녀는
^456,356,356,356,123^의 아내, ^456,356,356,356,123^의 어머니로만 존재한다. 그녀의
활동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이 전부이다. 그녀 자신의 삶은 남편과 자식의 삶에
형체가 없이 녹아버린다. 그러나 대상화된 자신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또 남편이
아니다(이것은 그리 자명하지 못하다). 자신의 삶은 남편의 삶에 녹아들었지만, 남편의
삶은 자기의 삶이 될 수 없다. 나의 삶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남는 것은 공허뿐이다.
아내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남편보다도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고 자아의 실현이
보장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남편과 결혼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리고 만다. 남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내에게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당신의 모습,
천사같이 아름다워'라든지 '당신은 아이를 낳는다는 소중한, 소중한 일을 하는거야'
라고 속삭여 왔다. 아내도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중년이 되고 아이들도 다
큰 지금에 이르자 부인은 지독한 상실감에 사로잡혀 신경 쇠약에 걸리고 만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느낌,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아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조금씩 무너져 버린다. 자신의
손으로부터 떠나가 버린 자신의 삶을 통곡하면서.(주51)
가사 노동에 자신의 삶을 바친 대가는 '자아의 위기'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삶, 무너져 내리는 삶. 이것이 가사 노동을 통해 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운명이다. 얼마 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 주부로 있던 한 여인이 자기 실현을
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렇듯 가정 주부들이 겪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는 점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 퇴보와 사회적 무능력
가사 노동을 여성만이 담당함으로써, 그리고 여성이 가사 노동만을 담당함으로써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여성들이 뒤처지고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W부인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자신이 남편보다 학벌, 가문, 키 등 모든 면에서
객관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에 남편의 횡포에도 의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W부인은 결혼 7 년쯤 후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모든
면에서 W부인보다 열등했던 남편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 승진을 거듭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능력이 있는 어엿한 중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W부인은 '젊은
날의 매력마저 없어진 평범한 가정 주부'일 뿐이었고, 매일 집안에서 애만 키우다 보니
점점 열등해지고 무능해져 있었다. 나중에는 남편까지도 W부인을 무시하는 듯이
행동했고, '네가 뭘 아느냐'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W부인은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고 남편을 미워하기에 앞서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되었다.(주52)
가정 주부가 무능하고 사회에서 뒤처지게 되는 것은 가사 노동이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가사 노동이 대개 단순 반복적인 육체 노동이고, 낙후되고 후진적인
노동이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은 우선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낙후되어 있다. 가사 노동을
통해서는 사회 전체에 대한 안목이나 사회 생활의 경험이나, 사회적 인간 관계의
경륜이나, 혹은 적어도 한 가지 일에 대한 직업적인 숙련, 그 어느 것도 쌓을 수 없다.
게다가 가사 노동은 소비를 위한 노동이다. 아무리 일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 밥을
아무리 해도 먹어 없어지고, 그릇을 닦고 또 닦아도 또 수북이 쌓이고, 방은 쓸고
쓸어도 또 더러워진다. 끝도 없는 노동이 이어지지만, 그 노동의 성과는 어떤 형태로도
쌓이지 않는다.
가정 주부는 이러한 단순 반복적이고 쌓이지 않는 노동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
가사 노동의 후진성은 그것이 사회화되지 않고 개인적인 부담으로 남아있는 데서 오는
것이다. 개인적인 부담으로서의 '집안일'은 원시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방식으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주부들을 지쳐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가사 노동은 후진적인 생산 부문이다. 사회적 노동은 눈부신 속도로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으며, 나날이 새롭고 많은 양의 지식과 훈련,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에
비해 가사 노동은 상대적으로 정체되고 후진적인 영역이다. 흔히 사회 활동에서
무능하여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에게 '집에서 애나 보지'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가사 노동에 대한 실제 이하의 비하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가사 노동의
상대적인 위치를 표현한다. 가사 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쉽고, 따라서 가장 천대를
받는 노동이다.
가정 주부가 직장 여성이나 남편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지금과 같이
사회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몇 년간 가사 노동만을 하다 보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기 쉽다.
이 때문에 특히 고통과 갈등을 겪는 것이 중간층 가정 주부들이다. 남편들이 대개
가장 앞서가는 정신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사 노동과의 격차가 더욱더
두드러지고, 대개 고학력인 이들 주부들은 결혼할 무렵엔 남편과 대등했는데, 세월이
감에 따라 서로 다른 노동의 영역이 그 사이에 심연을 가로놓기 때문이다. 이 심연을
메우려는 가정 주부들의 노력은 안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주53)
남편이 밖에서 하는 일하고 비교를 하면 생각만 해도 속상해서 죽겠다. 나는 공부할
것 다하고 파출부도 아니고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면 너무 한심하다. 남편은
집안일 하찮게 보지는 않지만 쉽게는 본다. 골치 아픈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남편은
사회에서 자꾸 성장해서 앞으로 나가고 나는 집에만 있으니까 아무래도 퇴보하는 것
같다. 나중에 말도 안통할까봐 계속 조바심이 나고 마음이 급하다. 일부러 신문은
경제난까지 샅샅이 본다. 남편하고 거리감이 생길까봐. 그건 또다른 압박감이다.
요즘 사회 생활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도 새롭게 배우는게 너무나 많은데 그런걸
보니까 이러다가 내가 아빠하고 아이들하고 말이 안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점 점 나혼자만 모르고 소외될 것 같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9시 뉴스라고
토요일날 심야 토론은 꼭 본다. 그런거라도 봐서 남편한테 뒤지는 것을 좀 메꾸려는
것이다.
편하기는 집안일이 편하다. 학교에 가면 내가 직접 수업이라는 내 일을 맡아서 하고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할 입장이니까 계속 신경을 써야 하고 또 다른 문제도
생기고 하니까 갈등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갈등이 있는 만큼 발전도 하게 된다.
좀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거니까. 집안일은
단조로우니까 집에 있으면 퇴보하는 것같고 집안일은 쉬는 만큼 쌓이기만 하는 거니까
성취감이 전혀 없는 일이다.
여성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남자들은 흔히 '남자들은 돈 버느라고 고생하는데
여자들은 집에서 남편이 벌어오는 것 갖고 살림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다'라고 한다. 물론 사회적 노동에 비해서 가사 노동은 편하다.
그러나 남녀의 위치를 바꾸자고 한다면 그러자고 할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편한 만큼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고생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얻어지는 것
중에 값진 것은 없으며, 새로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퇴보와 사회적 무능, 천한 대접뿐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 편한
지위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강요라는 데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남은 가사
노동은 여성 종속의 최후의 사슬이다.
* 천직인가, 천직인가?
가정 주부는 우리 사회 최후의, 최하의 천직이다. 그것이 최후의 천직인 이유는 가사
노동이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듣기 좋은 말과는 달리 직업에는 귀천이 있는데,
가장 천한 직업도 직업이 없는 것보다는 귀하다.
가정 주부는 영원한 아마추어다. 가정 주부가 되는 데에는 어떠한 직업적 훈련도,
직업 정신도, 전문성도 필요하지 않다. 가정 주부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애도 키우고 숙제도 지도하고 장도 보고 가계부도 쓰고 꽃도 키우고, 남편,
자식과 상담도 하지만 요리는 요리사보다 못하고, 빨래는 세탁소 주인만큼 할 수
없으며, 아이 교육은 교사만큼 할 수 없고 화초를 정원사만큼 잘 가꿀 수 없다.
조금이라도 전문적 훈련이나 교육이 필요한 노동은 전부 사회화된다. 남는 것은
단순 반복적인 육체 노동, 전문적인 훈련이나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노동이며,
남편과 아이의 '시중을 드는 일'이다.
'시중을 드는 일'. 이것이야말로 현재 가사 노동의 본질이다. 린 존스턴의 연재 만화
'좋든 나쁘든'을 보면 아내가 온 집안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쳐다보고 있다. 그녀는
고함친다.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치우느라고 내 인생을 다 보냈어. 맙소사,
이것이 그들이 내게 바라는 거야!!!"(주54)
가사 노동은 가족원의 소비와 관련된 노동이다. 밥을 하고, 밥상을 치우고, 이불을
개고, 옷장을 정리하는 일은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일이다. 이것을 각자가 자기 자신의
일로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시중드는 일이고, 따라서 시중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해야 한다면, 그것은 시중이며, 그 사람은 하인과
같은 존재가 된다.
바로 이 때문에, 가사 노동은 결코 자발적인 애정으로 될 수 없으며, 일방적인
희생이 되어 버린다. 이 관계 속에서 남편과 아내는 주인과 종이 된다. 심지어
자식에게조차 여성들은 시중꾼, 종이 된다. 가사 노동을 여성의 천직으로 규정하는 한,
그것은 천직이 된다. 가사 노동을 통해서 여자들은 하찮고 시시하고 비천한 것에
동화된다.
* 갈등과 불안
가정 주부가 겪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가사 노동과 사회적 노동 사이에서의
갈등과 번민이다. 자본주의는 가사 노동을 사회적 노동과 분리시켜 여성의 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해체되고 점점 축소되는 영역으로서 였다. 주부가 하는 일은 점점
중요성과 비중이 줄어들고, 가정 주부는 점점 해체되어가는 집단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정 주부는 탄생과 동시에 소멸해갈 운명을 타고 났다. 주부의 위치는 이미 그리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며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욱더 불안정해진다. 이는 가정
주부들이 정체 의식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일단 주부로 집에 눌러 앉은 이후 제대로 된 직장에 정규
직원으로 재취업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노동을 하기에는 육아를
비롯해 걸리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전문직 여성의 수도
많아진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성의 전형성도 점점 퇴색한다.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 점점 바람직한 여성으로 이야기된다. 광고 문구마저 바뀌고 있다.
캐리어 우먼의 승용차, 엑셀 TRX
일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여가는 캐리어 우먼.
일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자기만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
여자는 자기 세계를 가질 때 아름다워 진다. 그렇게 자신있게 사는 여자일수록
파트너의 선택은 르망 스패셜 팩!
양쪽에서 가정 주부의 위치는 위협을 당한다. 중간층 가정 주부들은 자아 실현의
욕구와 가사 노동 부담, 현모양처와 캐리어 우먼 사이에서 갈등하고 불안해 하면
주눅이 든다.
제 또래의 주부들은 뭔가 전문적인 일에 뛰어들어 자기 실현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모두들 갖고 있지만 가정 일에 매달리다 보니 이미 갖고 있던 자신의 능력조차
사장시켜 버렸어요. 또 사회에서 요구하는 데두 적구 하니까 그냥 체념하고 사는 게
대부분이죠. 그리고 저 같은 경우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또 내 능력을
계발해 보려 노력하다가도 막상 날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까, 사회에서 날 받아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설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여자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과 사회에서 제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는 것, 이런
이중의 고민 때문에 요즘 많이 불안해하는 편이에요.(주55)
이런 갈등은 중간층의 지위가 불안정하다는 것에 의해 더욱 가속화된다. 새로운
상품들이 계속 개발되고, 물가 인상의 압박 속에서 임금은 그만큼 인상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처음에
이들은 보다 유한 마담식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점차로 알뜰 주부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한데 어울린 것은 중간층의 중간적인
성격 때문이며 게다가 불안정성이 자꾸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길게 다듬어
매니큐어를 한 손에 레이스로 짠 장갑을 끼고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고상한 여인의
꿈은 빨래와 설겆이와 요리에 시달려 쭈글쭈글해진 손을 보고 한숨짓는 가정부의
현실로 다가온다. 경제적 지위의 불안정은 가정 주부의 위치를 흔드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한편으로는 가사 노동을 온존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끌어들이며, 한편으로는 여성의 경제적 의존을 재생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가족의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는 자본의 모순된 작용은 가정 주부를
진퇴양난, 사면초가에 몰아넣는다. 가정 주부는 이 가운데 하루하루를 착잡하고
불안하게 보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방은 어떤 것일까?
* 생기있는 하루하루
가장 흔히 제시되는 해결책은 더욱더 열심히 가사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즉 '가사
노동을 통해서 자아 실현을 하라'는 역설이다. 또 자아의 공허를 소비를 통해서
메우고, 점점 보잘 것 없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 더 많은 소비로 치장하라는
것이다. 즉 소비를 통해서 자아 실현을 하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의 복음, '소비하라, 소비하라'는 것으로 귀착된다.
부엌은 주부의
자기 실현 공간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주부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루 세 번 매일같이 반복되는 똑같은 부엌일,
신혼초에는 몰랐던 지루하고 권태스러운 하루 일과.
당신은 혹시, 짜증과 의욕 상실로 웃음을 잃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든 면에서 자기를 실현시켜 가고 있는데 비해
당신만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은 생각에
소외감마저 느끼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지금 당신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주부로서의
'자기 실현' 공간입니다.
스스로 일하고 싶고, 즐겁게 일하며 일을
마쳤을 때 밀려드는 성취감으로 생활 의욕이
끊임없이 샘솟는 부엌,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절실한 것입니다.
가까운 한샘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주시는 일로부터
전혀 새로운 당신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여자는 하루를 위하여 일주일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소한 사랑 싸움도 르망과 함께
풀어 버리는 또 다른 멋과 여유!
참으로 이 얼마나 교묘한 그물망인가. 자아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여성이 부엌일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엌을 치장함으로써, 부엌일을 더욱더 추구함으로써,
부엌일에 더욱더 자신을 동화시킴으로써 상실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부엌일 때문에
권태와 소외감을 느끼지 않느냐? 부엌 가구를 바꿔라! 더 맛있는 요리를 해라! 집을
더 멋지게 치장해라! 그래도 안되면 르망을 타고 놀러가라. 일주일의 권태에 값하는
하루의 권태가 구원을 줄 것이다.
이는 '여자의 자리는 가정'이라는 성별 분업을 강화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은폐되며, 더욱더 고도화된 형태로 재생산된다. 자본은 이들의
불행을 다시 한 번 자본에 얽어 매는 미끼로 삼는다. 어디에나 펼쳐진 악순환의
그물코에 여성들은 또 한 번 걸려든다. 알면서도 걸려든 이 그물에서 여성들은 제
꼬리에 달린 방울을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맴을 돈다. 여자들은 한샘 유로에 전화를
걸고, 전자 렌지를 사서 더 맛있는 요리를 할 궁리를 하며, 매직 쉐프를 꿈꾸고,
르망을 사자고 졸라댄다.
그러나 '새로운 당신의 생활'은 시작되지 않는다. 부엌과 안방 사이, TV광고와 전자
제품 대리점 사이, 소비와 더 많은 소비 사이, 공허와 허무 사이. 게다가 가사 도구의
더 많은 소비를 통해서 가사 노동에서의 자아 실현을 꾀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의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가사 도구들은 부분적으로는 가사 노동을 더 다양하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사 노동을 기계화함으로써 해체하고 단순화하는 작용을
한다. 가사 노동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점점 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되고, 가정
주부는 점점 더 시간이 남아돌게 되며, 주부의 역할은 더욱더 쓸모없게 된다. 자본이
제공하는 마지막 은신처조차도 그리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번민하고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처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본은 고통받는 여성들을 또다른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돈벌이의
대상으로서의 삶, 진통제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삶이야말로 자본주의가 가정 주부에게
보장하는 '생기있는 하루하루'이다.
* 새로운 주부상?
가정 주부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짐에 따라 최근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해 지고 있다. 중간층 주부들은 여성들 중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층이며, 따라서 많은 잠재력을 가진 층이고 남녀 평등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층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주부의 문제를 더욱더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런 움직임의 많은 부분은 주부의 쁘띠부르주아적인
위치에서 오는 허위 의식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삼으려 한다. 얼만 전 '또
하나의 문화'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주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주최측의 주제 발표에서 발표자는 가정 주부들이 가진 당당함과 주눅든 모습의
양면성을 보자면서 '이런 된장 찌개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끓인다'는 당당한 태도가
있는가 하면, 일해서 돈 버는 여성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사회적 추세 속에 '영원한
미숙련 노동'으로 남아있는 집안일에 열등감을 느끼는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면서
새로운 주부상을 만들기 위해 당당함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서 주눅들음을
완화할 길을 찾자고 제안했다.
토론에 참여한 한 주부(32세)는 대학 졸업 후, 전문직에서 일하다가 아기를 낳아
기르느라 전업 주부가 됐다면서 '남편의 봉급을 맡아 살림하는 것이 전혀 의존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재취업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를 기르며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취업하지 않았다'며 바깥에
나가 돈을 벌어야 성취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냈다.
또 한 주부는 남편의 봉급에 가족 수당이 포함됨으로써 주부가 집안에서 하는 일에
대한 간접 보수가 매겨져야 한다면서 가사 노동의 가치화나 주부 운동의 자리 매김이
꼭 가정에서만이 아닌 노동 현장의 과제로 주어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자신의 일을 주위 상황과 여건 등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인가를 분석해 보고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을 때는 가능한
다른 사회 참여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동안 무조건 취업만이 대책이라고 보아 온
것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때', '가정 주부에 만족하는 여성들에게는 사회 개혁의 한
구석을 담당할 수 있는 소비자 운동이나 학부모 운동 등을 통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7시에 집을 나서서 러시아워의 만원 차에 부대끼면서 출근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부럽겠어요?' 그리하여 아이들의 가정 환경 조사서에 무직이라고 쓰는
대신 주부라고 쓴다든지, 주부를 살림꾼, 살림가, 또는 살림 경영인이라 부르는 등
'주부라는 직업인으로서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생각들은 중간층 가정 주부의 쁘띠부르주아적 허위 의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흐름은 성별 분업을 강화하고, 유지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며, 노동자
계급 여성의 운동과 상치된다. 여자가 가사 노동을 맡는 성별 분업이 여성이 남편에게
종속되는 주요 이유고, 여성의 저임금과 기타의 각종 불이익과 차별의 주요한
메카니즘인 마당에 이를 정당화하는 것을 노동 운동의 목표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주장은 이들의 의식이 얼마나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또 하나의 허위 의식은 가정 주부를 '스스로 선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은
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어렵고 힘들며 감시와 강제
속에서 일해야 하는 사회적 노동 대신, 집에서 자유롭고 자발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각자 좋아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의 객관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마치 각개인의
희망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듯이 말한다.
게다가 가사 노동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말과 가사 노동이 이 사회에서 놓여있는
위치를 호도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가사 노동이 선택할 만한 것인가? 스스로
노^36^예가 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 오히려 괴롭고 회피해야 할
일일 것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주인이 되는 것은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원해서 노^36^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노^36^예라는 사실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그의 위안은 오직 한 가지
뿐인데, 스스로 '의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가
거의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 있으며 만약 남편이 없다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는 하루
아침에 뿌리채 흔들릴 것임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있다. 현실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이런 공허한 관념이야말로 이 선택론의 유일한 받침대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힘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것 중에 값진 것은 없다.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것에서 당당함을 찾는다면 그만큼의 당당함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이에 주관적으로 만족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전문화가 이루어 지는 세상에서 그 상대적 가치가 점점 평가 절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나름대로 당당하게 살겠다는 포부를 갖는 것은
가상하기는 하지만 우물 바깥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가엾은 일이다. 만원 버스에
부대끼고, 노동에 시달리고, 상사에게 질책당하고, 부하 직원에게 신경쓰고, 임금
인상을 위해 밤을 세우고 목이 쉬고, 더러 피도 터지고, 혹은 감옥에 가야 할 위험과
맞서는 이 모든 일들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남편의 임금의 절반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인정받고 싶다. 남녀 차별의 드높은 담을 허물기 위해 남자들보다도 몇 배나
더 고생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남자와 평등하게, 혹은 직장 여성과 평등하게 대우받고
싶다. 여성 해방을 위한 신산스럽고 고통에 찬 노력은 사양하고 싶지만 그 해방의
과일은 자기 좋을 대로 따먹고 싶다. 자신은 그릇된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릇된 현실의
쓴 맛은 모두 피하고, 현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런 좁은 시야와 주관적인 생각 자체가 주부라는 위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와 고용과 임금에서의 남녀 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으며, 이들이 전형적인 여성상인 듯이 이야기 됨으로써 탁아소의
미비를 비롯한 심각한 문제들이 가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 자신이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성 억압을 재생산하는 메카니즘의 핵심적인
고리이기도 하다. 이런 가정 주부의 위치를 고정화하려는 시도가 여성 노동자들의
이해와 상반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들은 주부의 위치를 고정, 강화하는
운동을 노동 현장에서 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런 흐름은 전체 여성 운동에 오히려
해를 가져올 것이다.
한 가정 주부는 주부 문제에 대한 접근들이 주부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주부들의 현실에 대해 깊은 동정을 느낀다. 그러나 중간층 주부들이 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기 지위를 합리화하고 옹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한 사랑받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들이 허위 의식을 벗어던지고, 여성 노동자들의 이해와 자신들의
이해를 일치시킬 수 있을 때만, 자기 계층에 한정된 협소한 이해가 아니라,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의 이해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봉사의 대가로서만
애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하층 주부
* 현모 양처의 공간
구로 공단 근처의 벌집, 도시 달동네의 판자집. 대문을 들어서면 곧장 부엌이고 바로
옆에 방이 한 칸씩 붙어 있다. 부엌은 0.5 평이 조금 넘는 정도로 돌아설 데도 없고
방은 2 평도 채 안된다. 명색이 사원 주택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5개의
계열 회사를 거느린 흄관, 전주, PC관 생산 업체인 A사의 경기도 오산에 있는 사택을
보자. 방 1, 부엌, 시멘트 마루가 전부고, 네 세대가 맞붙어 통풍이 좋지 않다.
벌집과 판자집과 사원 주택의 공통점은 이밖에도 많다. 공동 화장실과 잘 안나오는
수돗물, 연탄 난방 등. 앞의 사원 주택에서도 수돗물은 아침 6시에서 9시, 낮
12시에서 2시, 저녁 6시에서 9시에 시간제로 나온다.
나를 제일 성가시게 하는 것은 수돗물 받는 일과 구공탄 가는 일이다. 부자
동네에서는 한강물이 더러워져서 미제물이나 약수를 사다 먹는다지만 나는 그 한강
물이라도 우리 집에 콸콸 나오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이조 말에 찍은 사진에 나오는 '물 긷는 여성'의 모습을 서울 시내 복판에 있는
동네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다. 재래식에, 연탄 난방에, 더운 물은 물론이고 찬 물도
잘 안나오는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부엌이 '현모양처의 공간'으로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층 가정 주부들 역시 앞에서 말한 가사 노동의 성격에서 오는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그러나 가난이 가사 노동에서 오는 고통을 한층
배가시킨다.
이상의 표가 보여주듯이 취사에 조차 연탄을 사용하는 42.4%나 되며, 편리한
가스나 전기를 사용하는 가정은 16.6%에 불과하다. 난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74.7%나 된다. 기름을 사용하는 가정은 겨우 3.9%에 지나지
않는다.
가사 노동의 주요 조건인 주택 설비는 더욱 한심하다. 재래식 부엌이 87.0%이고
부엌이 없는 가구가 전국적으로 3.3%, 대도시에는 무려 6.4%나 된다. 온수가 나오는
목욕 시설은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 대도시의 경우에도 9.5%에 불과하고, 목욕
시설이 없는 경우가 가장 낮은 대도시에서 74.0%이다. 화장실도 수세식률이 전국
평균 두 배가 넘는 대도시가 26.5%에 불과하고,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2.7%나 된다.
중요한 가사 도구인 냉장고와 세탁기의 경우 냉장고는 도시 가구의 반 정도인
51.5%, 세탁기는 16.1%만이 소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있는 가전 제품도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저임금은 일차적으로 열악한 가사 노동 조건을 가져온다. 일차적으로 먹는
것, 입는 것을 해결해야 하므로, 가사 노동 조건을 개선할 여지가 없다. 역으로,
열악한 조건에서의 아내들의 과로가 남성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보완하고 있다. 가사
노동을 통해 보다 많은 사용 가치를 생산함으로써 소비를 절약하고, 저임금을
보완하는 것이다. 자본은 이를 통해 저임금을 유지하는 이익을 누린다.
이들은 중간층 주부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상품들을 이용하지 못하고, 대신
이를 자신이 직접 손으로 한다. 예를 들면 유아를 위한 일회용 기저귀 대신 헝겊
기저귀를 사용하고, 외식을 하거나 라면 이외의 인스턴트 식품, 반조리 제품, 배달
음식을 이용하는 일도 극히 드물다. 요즘은 수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전화 한 통이면
물건을 배달해 주지만, 이들은 값이 싼 시장에서 온통 몇 바퀴씩 돌면서 가장 싼 곳을
찾느라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빨래도 손으로 하고, 노동을 경감시키는
편리한 가사 도구들을 사용하는 대신 더욱 강도 높은 가사 노동으로 상품 구입을
대신한다. 즉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온통 '몸으로 때운다.'
가사 노동자로서 하층 주부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이들은 돈을 벌지 못하면서 살림살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살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비를 절약하는 것이다. 절약의 첫번째 대상은 자신의 몫이다.
없는 살림에 자식과 남편을 챙기다 보면 자신을 위한 소비는 그야말로 최소한으로만
이루어진다. 속옷마저도 자식이 입다가 낡은 것을 입고, 어쩌다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도 남편과 자식, 때로는 시부모에게 먼저 주고 나면 자신은 언제나 남은 찌꺼기
차지가 된다. 아이를 낳을 때조차도 병원 한 번 못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친목 모임을
가질 수도 없으며, 문화 생활이나 오락, 나아가 책을 읽는다든지, 사회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먹고 자는 생활에도 쫓기어 영양 실조, 빈혈,
과로와 신경통에 시달린다. 이런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여성을 우리 사회는 '알뜰
주부', '장한 어머니'라고 미화하고, 그 중 가장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희생하고
최소한의 삶을 산 주부를 뽑아서 대통령 표창을 준다. 아내들의 눈물겨운 희생 위에
우리 사회가 서있다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단지, 이들이 더 이상 희생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보다는 그 희생을 장려하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간접세를 통해서 하층 근로자로부터 소득의 30%정도를 세금으로 거두어 가는
정부는 이 세금을 대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몇몇 독점 재벌과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 사용한다. 학교 급식의 실시나 상하수도를 비롯한 대중 위생 설비, 편리한 입식
부엌을 갖춘 값싼 공동 주택, 누구나 싼 값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탁아소, 임산부들의
건강과 출산, 모자 보건을 책임지는 보건소,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체육과 오락 시설,
이용하기 편리한 도서관 등의 건설은 완전히 외면한 채 호화 맨션 아파트,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무기의 생산과 도입, 선거 자금으로 쓰고 있다. 이들은 남편의
임금만으로는 도저히 평균적인 생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절박하게 일자리를
얻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급속히 분해되어 임금 노동자가 되고 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기혼 여성 노동자는 주로 이들 하층 주부들이다. 그러나 아이를 맡길
탁아소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상층 노동자들이 가정 탁아나 파출부
등을 이용하여 그나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들은 비용 때문에 엄두도 못낸다.
급속히 임금 노동자로 분해되고 있는 이들 하층 주부들은 쁘띠부르주아적인 허위
의식을 보다 적게 가지며, 임금 노동자들에 대해 훨씬 더 일치감을 느낀다. 노동
운동의 지원에서 나타난 이들의 맹렬한 투쟁성은 그 한 징표이다. 예를 들어 86 년의
경동 탄광의 파업에서 부녀자들은 장장 32시간에 걸친 도로와 철도 점거 농성을
주도하여 탄광 노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파업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87, 88 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이들은 노동 운동의 빼놓을 수 없는 지원
세력이 되었다.
이들의 맹렬한 투쟁의 배경에는 물론 가정 생활을 포함한 노동자의 전 생활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착취의 강화가 있다. 이런 투쟁 속에서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게 되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음으로써가
아니라, 남편과 함께 자본가에 맞서 싸움으로써만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무기력하고 나약하고 고립된 '살림이나 하는 여편네'로부터 사회 운동에
당당히 한 몫을 차지하는 사회 세력이 되고 있다.
오늘도 잠자리 들 시간에 시커먼 굴 속 막장으로 우리 식구 밥을 위해 졸린 눈의
그이를 보냈다. 애들 공부도 시킬 수 있고, 집도 있고 돈도 모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안고 광산촌에 온 사람이 우리 가족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 사택에 살 때에는 눈물만
났다. 쪼그만한 방 한 개에 부? 한 개, 수도와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건물을 허술하게 지어서 옆방에서 말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지만 이런 사택도 못들어
오는 사람이 많다니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공동 수도에서 물을 받아야 하고, 일주일마다 바뀌는 남편 갑을병에 맞춰
밥해주랴, 애들 챙기랴, 탄가루가 날리니 빨래는 해도해도 끝이 없고, 한 푼이라도
생활에 보탬이 될까 싶어 부업으로 뜨개질을 하려 해도 회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다. 거기에다 일에 지친 남편은 집에 와서 큰소리만 치게 되고 우리는
맘에도 없는 소리로 서로를 아프게 하면서 부부 싸움을 하곤 하였다. 나라고 왜
모를까? 햇빛도 없고, 공기도 부족한 수천 미터 땅 속에서 언제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고, 진규폐까지 걸린다는 그 힘든 일을 하는 남편이 왜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참고 견디면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1 년을
넘기고 2 년을 넘기고 그렇게 3 년째에 접어들던 작년 8월, 남편 회사에서 농성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불안한 마음으로 동네 아줌마들과 같이 회사에 올라갔다.
아저씨들이 질서 정연하게 반별로 앉아 노래를 배우고 있었다.
우리들이 하나 둘씩 모여 꽤 많이 모이자 농성을 지도하던 분 중에 한 분이 왜
농성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구호를 외쳤다. "도급제 철폐하라", "어용노조
물러가라", "임금 인상하라". 우리도 남편에게 질새라 큰소리로 외쳤다. 회사가 떠나갈
듯이, 온 산이 떠나갈 듯이 한 목소리로 한 마음으로 온 가족 모두 크게크게 외쳤다.
그동안 회사에서 얼마나 남편을 못살게 굴었는지, 얼마나 고통스런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던 것을 자세히 듣게 되고, 아이들 교육 문제, 사택 문제, 남편들의
건강 문제를 서로 마음 터놓고 얘기하니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나만이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모두가 나와 같은 무제를 안고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 왔다. '우린 모두 한가족이구나', '모두가 하나이구나'. 벅찬 감동으로 우리는 가족
장기 자랑, 부부 장기 자랑, 노래 자랑 등 재미있고 평화적으로 농성을 하였다. 같이
모여있을수록 우린 깊은 신뢰로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여기서 협상하자,
저기서 협상하자 시간만 끌고 우릴 분열시키려고 별별 소문을 다 퍼뜨리고, TV에선
우리가 폭도가 된 것처럼 떠들었지만 우린 굳건하게 싸워나갔다. 우린 서로의 힘에,
우리의 힘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비로소 인간으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경찰의 잔인한
진압으로 농성이 해산되고 다시 남편이 일을 가기 시작하던 날, 나는 오랫동안 울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협상 장소 때문에 대표들끼리 싸우지만 않았어도, 아니 우리가
더 철저히 준비만 했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 그래도 개운치 않았다.
우리와 회사가 싸우는데 제3자인 경찰과 노동부, 지방 유지들이 나서서 왜 회사 편만
들었을까? 그들이 끼어 들지 않았으면 우리는 충분히 우리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었을텐데. 갑자기 그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다. 나쁜 놈들, 우리 편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진짜는 회사 편만 들던 그들이 너무 미웠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그들은 정말 모를 것이다. 나는 시커먼 물이 흐르는 이곳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인가를 생각해 본다. 세상 원망이나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닐 것 같고, 체념하고 살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일단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남편과 같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곳에서 생기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 무엇이고, 그 아픔의
근원이 무언가를 생각해 보고, 이 아픔을 남편과 힘을 합해 없애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이 시간 이후로 한편으로 접어두었던 인간적인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일깨우며 서로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살리라 결심해 본다.
(어느 광부의 아내)(주56)
남편들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이들은 가정 주부의 좁은 시야와 가부장제의 낡은 틀을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정 주부라는 데서 오는 고립 분산성과 단순히 남편의
지원자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적인 운동을 벌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지역 단위의 조직을 통해 지방 자치제에 참여하고, 주택이나
상하수도, 탁아소 문제와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 취업 기회의 확대를 위한 운동 등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3) 취업 주부
* 동동거리자 저무는 하루
88 년 현재 10인 이상 기업체의 기혼 여성 노동자는 38 만 5천 636명으로 전체
여성 노동자의 25.5%이다(기혼 여성 노동자의 74.9%는 10인 미만 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89 년 말 현재 종업원 10인 이상 사업장의 기혼 여성은 전체 여성 노동자의
30%인 47 만 명이고, 종업원 1인 이상의 전 사업장에서는 100 만 명을 넘어 남녀
노동자 전체의 10%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혼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이 사회가 여성의 어깨 위에 지우는 부담과 이중 노동의 고통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하루는 최소한의 생리적 필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동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그 노동 시간들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는 일과표의 행간에는 취업 주부들의 땀과 노심초사와 피로와
고생스러움과 동동거림이 숨겨져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도시락 싸고 나면 머리도 제대로 빗지
못한 채 회사로 달려가야 한다. 회사에 가면 숨돌릴 틈도 없이 작업대에 앉아야 한다.
고등 학교 다니는 아들 때문에 새벽 1시에 자고 다시 5시에 일어나 아들 도시락을
싸주어야 한다는 이씨 아줌마의 얼굴은 늘 푸석푸석하고 눈 언저리는 부어 있다.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말로는 "몸이 너무 피곤해서 주간 일만 해야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돈을 벌어서 자식들을 학원이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한 명도 빠짐없이
잔업을 한다. 나를 비롯해서 아줌마들 모두는 동동거리며 뛰어 다닌다. 아침 출근할
때도 뛰고, 점심 때 아이들 저녁 차려놓기 위해 집에 잠깐 들를 때도 그렇고, 퇴근해서
집에 올 때도 뛴다. 하루종일 쪼달리고 바쁘다.
어제 회사의 아줌마들과 하는 계 모임에다가, 집들이까지 겹쳐서 모처럼 놀다가 좀
늦게 들어왔다. 그랬더니 남편은 "여편네가 무슨 짓 하느라고 이렇게 밤늦게
쏘다녀"라며 화를 냈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막상 그런 소리를 들으니 나도 화가 났다.
결혼해서 산지 10 년이 넘었지만 나는 늘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곗돈 부어 탄
돈도 남편이 유세한다고 할까봐 마음놓고 자랑하지도 못했다. 여자는 이럴려고
태어났나 싶다(박금숙, 32세, 성신 화학 여성 부장).(주57)
* 안팎곱사등이
하루종일 쪼달리고 바쁜 취업 주부가 얻는 보상은 직장과 가정에서의 성취가 아니라
양쪽에서의 비난과 질책이다. 사회적 노동에서는 가사 노동의 부담으로 인해 "직장
일에 소홀하다", "책임감이 없다"고 비난받고, 가정에서는 사회적 노동으로 인해
"가정을 소홀히 한다", "여자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고 비난받는다. 직장에서는
모범적인 노동자가 될 수 없고, 가정에서는 훌륭한 주부가 되지 못한다.
이중 노동은 여성을 안팎곱사등이로 만든다. 가장 정상적이고도 이상적인, 그래야
하는 직자오가 가정을 가진 여성이 오히려 이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나는 방송 스크립터였다. 내가 맡고 있는 프로는 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주간
다큐멘터리 프로로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에 있어 방송국 내에서 정평이 있는
프로였다. 잔뜩 고픈 배를 움켜 쥐고 아무도 없는 집에 문을 열고 들어와 보면 설거지
통에는 설거지거리가 담겨 있고 안방에는 이부자리와 잠옷들이 널려 있다. 그 순간
얼마나 화가 치밀고 힘이 빠지는지는 아마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밖에
가스나 수도, TV나 전기 밥솥, 세탁기 등이 고장을 일으켰을 땐 당장 불편도
문제지만, 고칠 일도 막막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의 사회가 이 세상의 모든 여자는
항상 집에 있는 걸로만 안다. 그러니 온정신을 모아 방송 일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나는 회사 전화로 각종 애프터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전기 밥솥에 보온이
안된다는 둥의 얘기를 해야만 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들을까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바심을 쳐가며 말이다. 그 때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라(또 나는 일의
하중이 비교적 가벼운 날을 택해 밥솥을 고칠 사람이 올 시간에 맞춰 퇴근을
비정상적으로 앞당겨야만 한다). 점심 시간이면 점심을 되도록 빨리 먹고 나서 회사
지하의 구판장에 간다. 동네 슈퍼에서는 살 수 없는 물건들(속옷이나 로션, 다음날
먹을 빵이나 쨈 등)을 사서 사무실로 돌아 온다. 그때 양손에 들린 비닐 봉투에
사무실 동료들이 시선을 던질 때면 난 어쩐지 집안일을 회사까지 끌어들이는 칠칠치
못한 여자, 회사 일은 대충하는 여자로 낙인찍히는 것만 같아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곤 했다.
피곤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나의 일과는 집안 대소사가 겹칠 땐 극에 달한다.
그리고 나의 방송 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처음 그런 경험을 한 것은 현대
중공업 사태가 한창 달아오르고 있을 때였다. 우리 프로에서도 그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우리 팀 사람들 모두는 그 아이템을 책임질 적격자로 나를 꼽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몹시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4--5일간 출장을 가야 한다는 데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미혼이었던 다른 동료에게 그것을 맡기고 나에게는
서울에서 취재할 수 있는 것으로 배당하려 했다. 나는 그런 결정을 애써 번복시키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댁쪽에 생일 잔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시댁은
생일에는 가족 모두가 모이는 강력한(?) 전통이 있었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새며느리라는 입장 때문에 현대 중공업과 생일 잔치를 바꾼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때로는 집안 행사에 용감하게 빠지기도 했지만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았다. 더구나 다른 동서들은 일찍부터 와서 식사 준비를
하는데 나는 식사 시간에 겨우 맞춰 오곤 했으니, '직장다닌다는 핑계로 일도 안하는
얌체 동서'로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각자 바쁘고 피곤하게 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달라져 갔다. 남편은 자기 일에 관록이 붙고 노하우가 쌓여갔지만
나는 눈치보기와 요령만 늘어갔다. 남편은 프로그램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부당한 압력
때문에 고민하고 또 그에 대항해 싸웠지만 나는 고장난 전기 밥솥과 식사 메뉴(집안
모임용), 방송일이 뒤범벅된 채 정체 모를 괴물과 싸웠다. 그리고 나는 차츰 방송
노조의 당면 과제와 현안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깜깜해져 갔다. 이 동지 없는 싸움에(생각해 보라, 세탁소나 가전 제품 회사나 은행,
그리고 '가족', 무엇 하나 내 편이 되어 주었나) 나는 차츰 지쳐갔다. 결국 나는 일을
그만 두었다. 물론 전적으로 가사 노동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방송 일을 그토록
황망히 정리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 이중 노동의 피곤함이었음은 부인하지
못하리라.(주58)
이 경우는 그나마 아이도 없고 생활 수준이 높은 전문직 여성의 경우이다. 육아는
다른 어떤 가사 노동보다도 더 여자한테 떠맡겨지는 률이 높다. 게다가 가사 노동을
책임진다는 것은 단순히 밥하고 빨래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가정 일을 온통 주관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쪽을 다 정상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여성들은 사회적 노동에서, 나아가 노동 조합 활동을 비롯한 사회 활동에서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가사 노동에 발목을 묶인 여성과 홀가분하게 뛰는
남성의 경주에서 누가 유리한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이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에 빨래거리를, 머리에는 설거지거리를 이고 허덕거리며
달리다 보면 남자들은 이미 저만큼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람석에서는 이른
소리가 들려온다.
"그 봐라, 여자가 하면 얼마나 하겠냐."
게다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여성들이 뒤집어 쓰기
마련이다. 남편이 가정에 불성실하더라도 그것은 '사회 생활하자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용인되거나 아니면 "그렇게 만든 여자 탓"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차츰차츰 사회적 노동에서 자기를 실현하고, 사회에 참여하여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포부는 꺾이고 좌절한다.
가사 노동의 책임은 여성 노동자가 사회적 노동에서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어 소련은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에
있어서는 세계 제일의 수준에 도달했다. 16세에서 54세의 여성의 거의 90%가
전일제로 고용되어 있거나 학업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노동력의 51%를 구성하고
있다.(주58) 그러나 가사 노동의 사회화와 남녀 분담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가사
노동 책임은 여전히 주로 여성이 지고 있다. 1967 년에서 1970 년 동안의 남녀의
노동 부담을 보면, 직업을 가진 남성은 일 주일에 가사 노동 10시간을 합쳐 주당
51시간을 일하는데 비해 직업을 가진 여성은 가사 노동 27시간을 포함해 일 주일에
65시간을 일한다.(주60) 이것이 여성들이 사회적 노동에서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놓이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 문제는 여성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른 한편, 여성들은 사회적 노동의 부담으로 가정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다. 여성을
안팎곱사등이로 만드는 것은 안과 밖의 과중한 노동 부담이다. 사회적 노동과 가정을
양립시키기에는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 모두의 부담이 너무 무겁다.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노동 시간(게다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더 길다)으로는
아무리 가사 노동을 줄여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잔업,
특근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되어 있으니 가사와의 양립이 순탄할 수가
없다.(주61)
오후5시 30분 퇴근이지만 항상 7시 30분까지 연장 잔업한다. 원래 애들 때문에 난
잔업 안 하려고 했는데 월급제라 회사에서 허락해 주지 않는다. 대신 탁아소 마감
시간 때문에 밤 10시까지 하는 야근(1주에 2 회)은 나만 빠진다. 그러면 다른 미싱
아줌마들이 왜 혼자만 야근 안 하느냐고 뭐라고 그런다.
원래 오후 5시 30분 퇴근인데 잔업한다고 하면 몰래 도망 나오곤 했다. 애초에 잔업
안 한다고 들어 갔는데 매일 잔업이 있으니깐 나혼자 빠지기가 미안하다. 그렇지만 난
탁아소 시간 끝나면 애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퇴근 시간이 넘어서도 일이 지체되면
애 걱정이 되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사무직의 경우에도 연장 근로가 밥먹듯 행해진다. 여성 노동자를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정도다. 이 사실은 기업이 노동자의 가정 생활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이를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가사 노동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 즉 가사 노동의 사회화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업 주부의 가사 노동 시간은 9시간에서 12시간에 이르며, 취업 주부의
가사 노동 시간도 무려 4시간 정도에 이른다. 그것도 사회적 노동 시간이 워낙 길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다. 나이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앞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훨씬 더 길다. 가사 노동의 사회화와 남녀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설사 8시간 노동제가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여성 노동자는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가사 노동의 사회화가 미흡하다는 것은 가사 노동 문제가 개별
부부들 사이의 부담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가사 노동 부담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녀 양육이다. 그것은 자녀 양육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급한대로 때울 수 있는
다른 문제들과는 그 질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문제에 이르면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아이들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무엇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지
알수 없게 되어 버린다. 자식의 인간다운 성장과 맞바꿀 만한 무엇이 이 세상에
있겠는가? 그런데 자본은 여성을 노동자로 끌어들이면서 자녀 양육은 여전히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 놓는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여성 노동자들은 이중고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남성과 평등하게 참여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노동자 가족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도 가사 노동을 사회화하여 그 부담을 줄여나가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대해 이를 기대하는
것은 가시 나무에 호박이 달리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왜 가사 노동이 사회화되지
않는가? 가사 노동이 사회화되어야 할 필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절박한 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외면당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 가사 노동이 사회화되지 않는 이유
그것은 가사 노동의 사회화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의 근본적인 목적인 이윤 추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의 경계는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어떤 가사 노동의 사회화가 필요하고 가능한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화가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에 적합한가 아닌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본의 이윤 추구에 의해 가장 일차적으로 사회화되는 가사 노동은 기계제 대공업의
의한 대량 생산이 유리한 경우이다. 대규모 공장 생산이 가내 수공업을 대치하는
것이다. 정미, 직조나 의복의 제조, 비누 등의 생활용품, 인스턴트 식품을 비롯한 식품
산업의 발달 경우가 그것이다. 이 경우에는 상품으로 구입하는 것이 집에서 만들어
쓰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므로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에 적합하며, 노동력
재생산비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인스턴트 식품을 제외한 매끼의 식사는 상품으로 구입하는 것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싸게 들지 않는다. 매끼의 식사는 기계제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고(보관, 운반, 저장 곤란), 생산성 향상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즉 아직까지 매끼 식사의 요리에 있어서는 기계제 생산의 이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집에서 만드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 따라서 하루 세끼의 식사는 자본주의적
산업으로 발달하지 못하낟. 만약 하루 세끼를 사먹는다면 노동력의 재생산비는 훨씬
상승할 것이고, 따라서 임금이 더 높아져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화되는 것은 서비스 노동 중에서 전문적인 지식이나 훈련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교육과 의료, 간호 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을
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지식과 훈련을 갖추어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육은 노동자의 재생산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며, 노동자 대중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임금이 높아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자본은 교육을 노동
과정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만 제공하려 한다. 그러므로 대중 교육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사업으로는 발달하지 못한다. 초 중등 교육에서 순수한 사립 학교가
발전하는 것은 현재의 사립 국민학교처럼 소수를 위한 값비싼 학교로서 뿐이다.
대중의 교육은 오직 공공 사업으로서 최소한의 수준으로, 그것도 교육받을 권리를
위한 대중의 투쟁의 결과로서만 발달해왔다.
노동 대중의 보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보육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도록 하는 것이 탁아소에서 키우게 하는 것보다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절약하게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또 교육과 달라서 현재로서는
자본이 노동자에게 노동을 시키기 위해 반드시 육아를 사회화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자본이 바라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초등 교육 이상의 교육을 받을 필요는
있지만 반드시 탁아소에서 자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거꾸로 노동자의 편에서도,
학교에 가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탁아소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은 현재 남아있는 가사 노동을 사회화할 경우, 그것 자체로서는 자본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 이윤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본의 입장에서는 가내 노동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를 여성에게 맡기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 노동의 사회화를 진전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확대됨에 따라 인구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노동자가 되고, 기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에 의해 두 가지 방식으로 사회화가
진전되는데, 첫째로, 자본이 탁아소의 건설을 비롯한 추가적인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기혼 여성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이익인 한에서, 자본에 의해 탁아소가
발전한다. 두번째로 기혼 여성에게 탁아소와 여러 가지 서비스, 가사를 대체하는
상품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이 주어지는 데 비례해서 탁아소와 서비스 센터,
가사 대체 상품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혼 여성은 고용에서도 꼴지 차지, 임금에서도 꼴지 차지라는 사실에 의해
가사 노동의 사회화는 생산의 사회화의 꼴지 차지가 된다. 한편으로는 기혼 여성을
고용하기 위해 가사 노동 사회화의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기혼 여성의 고용을
제한하고, 다른 한편으로 기혼 여성의 고용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 가사
노동의 사회화를 제한한다.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 노동자 사이의 경쟁도 기혼
여성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즉 자본이 값싼 미혼 여성 노동자나 가사 노동의
부담이 없는 남성 노동자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경우, 혹은 탁아소 없이도 고용되고자
하는 기혼 여성을 구할 수 있을 경우(아이를 그 조부모에게 맡긴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자본은 탁아소 건설을 비롯한 가사 노동 사회화로 떠밀리지 않는다.
특히 산업간, 부문간 불균등 발전의 모순이 한결 심각하여, 산업 예비군이 많고,
노동자들간의 경쟁이 보다 격심한 우리나라에서 자본가들은 노동력 재생산의 위협이나
노동력의 부족, 모성 파괴에 대한 여성 노동자의 저항에 보다 적게 부딪쳐 왔다.
여기서부터 재벌의 규모에 관한 한 세계에서 앞에서부터 손꼽히지만 탁아소의 발달에
관한 한 뒤에서부터 손꼽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생겨났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가사
노동은 자본의 이윤 추구와 자본주의적 노동 과정의 필요, 기혼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의 증가에 의해 사회화되어 가지만, 산업 예비군의 존재와 노동력 재생산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려는 자본의 본성에 의해 그 과정이 고통스럽게 지연되고,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자본의 목적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생산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거나, 노동자의
자녀들이 바람직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자본의 일차적인, 그리고 흔들림 없는 관심은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지 인간으로서의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자녀를
기르며, 노동자의 자식들이 어떻게 자라는가는 자본의 관심사가 아니다.
자본의 목적은 오직 보다 많은 이윤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가능한 최저한의 수준으로 깎아내리고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최대화하려 한다.
그러므로 자본은 요리, 육아를 비롯한 가내 노동을 사회화 하는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를 여성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도 효과적으로 부려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산력이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자본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 있는 한, 따라서 노동력의 최대한의 착취에, 곧
노동력 재생산비의 최대한의 절약에 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자본주의 발달의
자연적 과정에 의존하는 한, 노동력 재생산의 사회화는 언제나 최소한으로만
이루어지며, 가장 뒤떨어진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여성 노동자는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의 이중 부담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도록 강요되고, 노동자의 자녀는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 남아서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최저한의 수준에서 자라난다. 이것이 한 해에 수천억 달러의
예산을 전쟁 물자의 생산에 쓰는 '선진국'들의 실상이다.
가사 노동의 사회화, 그것도 올바른 방식의 사회화는 자본의 자연적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여성 노동자들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투쟁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성의 해방이 가사 노동 사회화의 목적이 되는 한에서만 가사
노동은 올바른 방식으로 사회화된다.
*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가사 노동의 문제는 그것이 사회화되지 않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사 노동의
과중한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권리를 찾기 위해 가사
노동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가사 노동 문제는
사회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화가 일거에 행해지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가사 노동 자체가 완전히 사회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의 사회화에는
한계가 있다. 자녀를 돌보는 일에는 탁아소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부분과 부모가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식당, 세탁소, 서비스 센터가 할 일이 있고, 가족이 할 일이
있다. 가사 노동은 개인과 가족의 일상적인 생활과 뗄 수 없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사회화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가족에 남는 가사 노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가족이 분담해야
한다. 가사 노동을 남녀가 분담하도록 하는 정책과 재교육이 실시되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가사 노동의 분담이 가장 잘 되고 있다는 중국의 경우를 들어 보자.
중국에서의 가사 노동의 변화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가사
노동을 사회화하고, 재편성하고, 가족 밖에서 가사 노동을 조직화하는 일이다. 주로
이러한 사회화에 의해 가사 노동은 점차 감소한다. 그러나 주부들을 가사 노동에서
해방하기 위해 집단화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측면도 있다.
이 제2의 측면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이유는 생산을 올리기 위해 가사 노동을 가능한
한 집단화할 필요가 있다는, 여성 해방에 관한 관료적인 구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가사 노동과 사회적 노동의 차이를 지극히 피상적으로 받아들인
데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가사 노동은 결코 '가족적인' 것이 아니며, 가족에 의해
수행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해서 오로지 여성이 수행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빨을 닦아 달라고 하거나 옷을 입혀 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침대를 정돈하고 구두를 닦고 남편이 어지럽혀 놓은 것을 치우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이 비교는 억지라고 생각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자가 자기 몸을 씻겨주고 머리를 손질해 주고 분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
주는 전용 하인을 사용하던 일이 그리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비교가 억지가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침대를 정돈하거나 솔질을
하거나 옷을 꿰매거나 청소를 하는 일은 이빨을 닦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각자가
스스로 그것을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일이고,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그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게 된 나라이다. 20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었던 것은 남자들도 가사 노동의 재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사 노동을 배우고, 그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경멸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가사 노동은 이미 여자의 일은 아니다.(주62)
그러나 이 당연한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그리 당연하지가 않다. 다음 표는 노동자
부부의 생활 시간을 비교 조사한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가사 노동 시간의 차이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다른 나라의 취업 여성과 취업 남성의 주요 가사 노동 참여율을 보면
프랑스는 여성 95.2%, 남성 58.4%, 미국은 여성 93.8%, 남성은 50.3%이며 소련은
여성 98.7%, 남성 73.4%, 폴란드는 여성 98.2%, 남성 58.2%이다.(주63) 이는
한편으로는 취업 남성의 절반 이상이 가사 노동을 분담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절반 정도는 가사를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들보다 특히 심각하다.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사 노동은
라면 끓이는 것 정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많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 똑같이
바깥에서 일하고 들어와 남자는 안방으로, 여자는 부엌으로 간다. 그리고 명령이
쏟아진다. 이래서는 남녀 평등은 물론 가정의 평화와 행복도 있을 수 없다.
신혼의 몇 달간은 꿈과 같이 흘러갔다. 상호 견제와 공동 생활에의 열정으로 남편은
나보다 오히려 열심이었다. 나 역시 오랜 객지 생활에 지친 남편에게 '따듯한 가정'을
주고픈 소망 때문에 가사 노동에 신경을 퍽 썼다. 윗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잔업을
빼고 공장 활동(당시 노조를 만들기 위한 예비 모임들)도 표나지 않을 만큼 소홀히
하면서 부리나케 집으로 와 남편을 기쁘게 할 반찬 만들기에 전전긍긍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사 노동은 소꼽장난이 아님이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명절, 제사, 시부모, 친정 부모 생신을 비롯한 각종 경조사가 모두 내 차지로 떨어졌고
단칸 살림도 살림이랍시고(물론 나의 살림 욕심도 가미되었지만) 이불 빨래며 김치,
된장, 간장 담그는 일이며 각종 세금 납부에서부터 철을 넘기면 안되는 옷장 정리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노동력을 요구하였다.
게다가 남편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은 도통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설거지나
밥 몇 번 하는 것으로 온갖 생색을 다 내곤 했다. 모처럼 별러온 휴일에도 미뤄온
이불 빨래는 안중에도 없이 공장 동료와의 약속으로 밖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자발적이었던 가정의 노동이 차츰 내게 질곡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남편대로 내가
공장 일로 좀 늦거나 휴일에도 나가면 은근히 "여자들은 모여서 왜 그리 오래
쑥덕거려. 회의 체계가 영 안 잡힌 것 아니야?", "요새 밥상이 왜 이리 황폐해?"라는
비난을 하곤 했다. 이런 저런 항변도 많이 하였고 내가 파논 함정에 내가 빠졌다는
느낌과 함께 "왜 결혼했나?" 한숨지며 혼자 울기도 하였다.(주64)
우선 직장 생활이 어쩔 수 없이 가져오는 가정에의 소홀함을 용납치 않는
분위기^36^예요. 어디 맞벌이가 여자 혼자의 만족을 위한 겁니까? 남편과 함께 힘을
합쳐 남보다 앞선 가정을 꾸려 보자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자기는 손끝하나 까딱
않으면서 집안이 어수선하다는 등 불평만 늘어놓는 남편을 볼 때는 과연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라는 허울좋은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어요.(주65)
가사 노동을 여자만이 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불평등의 기초인 동시에 그
집약적인 표현이다. 아내가 가사 노동의 부담으로 인해 사회적 노동에서 남편보다
불리한 입장에 놓일 뿐 아니라, 가사 노동을 아내가 전담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의
시중을 드는 것, 남편의 하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은 가족을
위한 노동이고 애정이 기초가 된 자발적인 배려일 수 있지만, 그것이 오직 여성만이
하는 일이 되면, 희생이자 시중이 되는 것이다. 가사 노동을 혼자 떠맡게 됨으로써
여성 노동자들은 남편에 의해서까지 억압을 받게 되며, '불행한 결혼에 대해 절망'
하고 남편조차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 그 반대 편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홀로서기'의
처지에 놓인다. 가사 노동 문제는 노동자 부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갈등의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중국 기행 연재 만화에서 박재동은 중국에서는
남자들이 요리와 빨래, 청소, 장보기를 하고 여자들은 아이 보기와 집안 꾸미기를
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요리와 빨래, 청소, 장보기, 아이 보기와
집안 꾸미기를 하고, 남자들은 이불 개기와 생색내기를 한다.
남자들이 이불 개기와 설거지만으로 생색 내기를 하는 까닭은 가사 노동에 대해서
배우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고 익혀
일상사가된 가사 노동이 남자들에게는 낯선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안 하던
일을 하면 그것이 전체 가사 노동의 어떤 부분인지를 모르고 스스로 굉장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가사 노동 전체를 배우고 익히게 하기까지는 많은 학습과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의 일을 도와준다는 시혜 의식 때문에 생색을 내는 것이다.
지난 3,4 년 동안 기나긴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년 전 조안나가 전일제
근무를 시작했을 때, 아기 맡기는 책임도 그녀 몫, 청소 책임도 그녀 몫, 요리도 그녀
몫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내가 도와주기는 했습니다만, 항상 그녀에게 나는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다, 난 당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어요. 난 공정함이
습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죠. 모든 책임은 그녀의 몫이었으며 난 그저 기회있을
때마다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거죠. 지금은 내가 빨래더미를 바꿀 때
아내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일
뿐이며, 우리는 각자 해야 할 우리 자신의 일을 하는 겁니다.(주66)
* 가부장적 기득권
"당신 이제 학교 선생 그만둬. 당장 사표 내고 주부 노릇 착실히 해."
"."
"똑똑히 거듭 말해 두겠는데 그만두라면 그만둬. 나도 가장 노릇 좀 제대로 해보고
싶어, 아침엔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곱게 화장하고 머리맡에 건강식도 대령하고
넥타이도 매주고 대문 밖까지 배웅나와 일찍 들어오라고 신신 당부하고, 낮엔 회사로
코맹맹이 소리로 전화도 좀 걸고, 저녁에 들어가면 왕을 받들듯이 정성껏 환대를 하고
양말도 벗겨주고 발도 씻겨주는 그런 아내가 되어줘야겠어. 이건 명령이야."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체제에 의해 명백히 이득을 누린다.
남편이 아내의 노동력의 가치까지 자신의 임금으로 지급받음으로써 가부장적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 임금을 받는 상층 남성 노동자는 그 임금을 통해
가정에서 임금이 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받는다. 그 아내들이 상류 계급 여성의
생활을 본뜨고자 하는 것처럼, 이들은 상류 계급 남성의 지위를 향유하고자 한다.
아내의 복종과 봉사와 서비스, 그리고 이를 '명령'할 권리. 가정이라는 소왕국을
다스리는 근엄하고 권위있고, 그리고 동시에(속으로는)자애로운 임금. 그 왕관이 주는
매력은 포기하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것이다.
그러나 왕관은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오름과 동시에 땅에 떨어져 버렸다. 머리 위의
왕관은 없어졌는데, 머리 속의 왕관에 대한 향수는 아직 살아남아서 헛된 '명령'을
발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가부장적 지위를 확고히 보장할 만한 튼튼한 물적 기초가
없다. 이들의 재산이란 생산 수단이 아니라 생활 수단에 불과하고, 가족 임금을
보장받는 상층 노동자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노동자이다. 그의 지위는 다른 모든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불안하다. 다른 모든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상층
노동자들도 '자본을 증식시켜주는 한에서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경기의 변동에
그 운명이 달려 있고, 실업, 물가 상승, 임금의 하락,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 등에 의해
그 지위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대졸 남성의 취업난, 실업과 중견 사원의 적체 상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는 불가피하게 중도 탈락자들과, 엄청난 긴장과 압박감 아래 남아서 일하는 자들을
만들어 내는 속에서만 이들의 지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날
출금했더니 자기의 책상이 없어져 집에 돌아와 어린이 놀이터에서 울었다는 한 가장의
이야기는 이들의 가부장적 지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부장의 지위는 확고부동한 권리가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며, 실제로는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려야할 의무'를 뜻한다. 최근 가정에서 남편, 아버지의 지위가 약해지고 있는
것은 남성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가부장적 권리가 허구적이기 때문이다. 높아지는 생활
수준에 따른 가족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만도 이들에게는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 가정에서의 '가장'의 지위가 확보되기에는 그의 임금 노^36^예로서의 운명은
너무도 위태로운 것이다. 한 평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온 가정 주부가 어느 날
'위기의 여자'가 되는 한편, 위태위태한 가부장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는 임금 노^36^예로서의 남편은 항시 '위기의 남자'의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 어쨌든 이들 상층 남성 노동자들이 가부장적 권한을 가질 조건을 어느
정도나마 확보하고 있는 데 비해 대다수의 남성 노동자들은 그럴 만한 조건을 갖고
잇지 못하다.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가장은 사실 명목상의 감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권위와 권리 대신 버거운 부양의 의무와 무능력한 가장이라는
초라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나는 과거 협신중하 공사에 입사하여 지금도 근무중이다. 당시 급료 4 만 9천 원
급료 수령시 이것 저것 털고 나면 집사람에게 급료 봉투를 전해주기가 민망하다.
이유는 수령한 급료로서는 1개월의 생활비는커녕 10일분의 생활비 밖에 안되니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집사람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나도 미안하고 더욱이 자식들
보기에는 더욱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자식을 학교에 보내면서 자녀 교육의
뒷바라지도 확실히 못하고 자녀 교육비도(3개월 분 118,100원) 납기일 내에 납부하지
못하니 자식들에게도 얼굴을 들 수가 없다.(주67)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 '가장'들의 신세다. 왕관만 없어진 게 아니라, 그것을 올려
놓을 얼굴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도 가련한 임금 노동자는 여전히 집안에서는 세
식구의 밥줄을 쥔 하늘이라는 데서 만족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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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주68)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임금 노동자도 그 사람에게만은 "밥 줄을 쥔"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하늘'이다. 그러나 이 흔들리던 작은 하늘은 아내가 남편과
함께 돈을 벌러 나감으로써 마침내 반쪽 하늘이 되며, 따라서 동시에 땅의 반쪽이
된다. '남편이 아내를 벌어 먹이는' 관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남편과 바깥일, 아내는
집안일'이라는 분업 역시 붕괴된다. 이들 남편에게 아내의 가사 서비스를 받을 만한
근거와 조건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머리 속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진다"는 옛날 이야기가 살아 남아서 이들을 안방에 고정시켜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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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파악
사내 자식이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지고
기집애가 싸돌아 다니면
집안이 망한다고
누누이 귀에 익게 들었다.
집안이 망했는데 못 다닐 곳은 어디며
맞벌어 먹는 판에
부엌에 들어가면 또 어떠랴
기집애는 돌아다니지만
사내 자식은 안방에 앉아
한나절 잔소리가 쏟아진다.
물 떠와라 밥 차려라 양말 빨아라
속옷 찾아놔라 청소 깨끗이 해라
애 달래라 반찬 신경써라.(주69)
아내의 사회적 노동을 받아들이기는 그래도 쉬운 일이지만, 자신의 가부장적 권리를
포기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남편에 대한 재교육과 훈련은 많은 경우
'투쟁'으로 화한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가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힘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들의 투쟁에 의해 남편들은
단단한 가부장제의 알에서 깨어나고 있다.
나는 33세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청탁받았을 때
주저함이 없이 응하게 된 동기는 가사 노동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실천을
일상화하기까지 아내와의 지난했던 투쟁을 밝힘으로써 나와 동일한 고민을 하면서
고통받고 있을 이 땅의 남성 동지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동지적 배려
때문이다. 연애 시절, (아내는) 나에게 배우자상에 대한 견해를 물었는데, 나는 평소의
생각대로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고 집에서 아이나 키우며
집안일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정색을 하며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더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전근 대적인 사고 방식을 아직도 갖고
있느냐'고 따져왔다. 나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남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런
괘씸한 발언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결혼 이후, 막상 두 사람이 생활하게 되자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 분담 문제, 공동 빨래 문제, 방 청소 등등에 대하여 아내는 동일하게
역할을 분담하자고 제의했다. 나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도 누리고, 좀더 편해지고 싶어서
결혼한 것인데 편해지기는커녕 계속해서 구속과 문제 제기를 받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시간이 나거나 기분이 내키면 가사 노동을 일정 부분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지,
동등하게 분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남자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가정 내 민주화를
위해서는 가사 노동 분담이 필수적이라며 나를 집요하게 설득하여 했다. 가사 노동
공동 분담표도 작성하여 붙이고,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평가를 하고, 적어도 1 년(결혼
기념일)에 한 번씩은 얼마나 자신의 생활과 가정 생활에 충실했는가를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잠도 자지않고 끈질기게 문제 제기하고 토론하자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제안을 형식적이나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나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결혼 후 만 2 년까지는 거의
매일 가사 노동 분담 문제로 부부 싸움을 했다. 나는 가사 노동의 지원자, 보조자이긴
했으나 적극적인 담당자는 결코 아니었다.
결혼 후 2 년이 지난 어느 겨울,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인 나는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이혼하는 편이 훨씬 서로에게 좋겠다'고 하면서 이혼을
하자고 했다. 당시 내 심정은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저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내는 내가 이혼하자고 한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는 죽음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였다.
'당신과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생활 속에서 내가 당신에게 제기한 문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지적해 온 것이다. 당신의 이혼 제기는 관계의
포기이며 비겁한 도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럴 생각이라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삶을 정리하는게 낫다고 본다'며 아내는 극단적 방식으로 나왔다.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아내의 성격이나 기질이 갖고 있는 특수성, 그리고 나의 완고함이
부딪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본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아내의 방식이 어떠했든지간에 내가 올바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내의 극단적인 방식에 내가 변화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자로서 그 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을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나의 생활에
변화가 있기 시작했다. 억지로 시작했던 가사 노동이었지만, 다음 날 새로운 노동을
위한 재생산 노동으로서의 가사 노동의 가치를, 나날의 실천과 아내와의 생활 평가를
통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남녀 차별의 전형이
가사 노동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형태로부터 출발되는 것임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인식과 실천이 가사 노동의 분담을 통해 통일되면서 우리 둘 사이에는 동지적인
애정과 신뢰가 성숙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주70)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떨어지는 것이 있긴 있다. 그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
가부장적 기득권이다. 이것을 버리(게 하)기까지의 과정은 멀고 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가 성숙한 애정이라면 가사 노동은 참으로 할 만한 노동이 아닌가? 오직 멀고
험한 성숙한 애정보다 눈 앞의 가부장적 이득에 연연해 하는 남자만이, 즉, 남자답지
않은 남자만이 부엌에 들어가기를 꺼릴 것이다.
* 가부장적 기득권의 이면
게다가 아내를 부려먹을 권리로서의 가부장적 기득권은 실상 달콤한 껍질에 싸인
독약과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궁극적인 이익은 자본에게 돌아가고,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남편과 아내 모두의 착취율의 강화와, 남성들의 가정으로부터의 소외와,
부부 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의 왜곡과 파괴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남성 노동자에게
가정 책임을 면제하는 대신 생산 과정에서 가정 책임을 다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
높은 노동을 시킨다.
남자들 점심 시간에 한 번씩 나오면 땀이 옷에 꼭 비맞은 사람 오양 척척해 가지고
와서 맥이 빠질대로 빠져서 와가지고 밥 한 끼 먹고 가고 저녁에는 7시, 8시가 뭐야
9시 다 돼가지고 와서 저녁밥 먹고 자는 거죠. 오면 그냥 피곤하니까 누워자는데
솔직히 말해서 집에 와서 '아이고 내 새끼 이뻐' 하고 한 번 안아보길 해요 뭐를 해요.
자기 몸이 피곤하니까. 베개 내려놓고 머리만 닿으면 자요. 9시면 자요.(주91)
연구, 전문 기술, 관리직의 남성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가정 일은 아내가
맡아서 한다는 전제하에 이들은 자본에 의해 그 최대한까지 혹사당한다. 남성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이를 더욱더 강화한다. 이런 가운데 도태되지 않으려면 남성
노동자들은 가정적인 의무를 다할 수가 없다. 밤 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리는 남편, 혹은
아버지가 집에서 하는 일은 잠자는 것 뿐이다. 책임이 없는 곳에는 권리도 없기
마련이다. 그는 가정적 즐거움을 빼앗긴다. 남성 노동자의 가정에서의 위치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다. 그가 어떤 권리와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아내와 자식들과의 친밀한
인간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번다는 사실에서 나올 뿐이다. 이는 돈의
권리이고 권위이지 그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아니다. 그는 가족 내에서조차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물질적 존재로 존재한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거의 '돈'으로만 전달되고 표현된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돈말고도
마음을 터놓는 대화와 함께 놀아주고 따듯하게 보살펴 주는 것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이 가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고 있으며, 훨씬 나은 경우에도 신체적으로 보살펴주는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남성들이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욕구들을 억압당하고 이에 둔감하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을 베푸는 것은 남자들 자신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다. 그런데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와 남성의 가부장적으로서의 권위 의식이 가족들에 대한 자상한 배려를
가로막고 있다. 그 결과 남성들의 삶 역시 왜곡되고 공허하게 된다. 그는 가족에서
튼튼한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하며, 가족 관계를 희생하면서 추구한 사회적 성취 역시
대개는 평생을 바친 끝에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임금 노^36^예의 현실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에게는 설 자리가 없다. 가정에서마저 설 자리를 잃는 남성들은
여성보다도 더욱더 뿌리뽑힌 나무가 되어 흔들린다. 남자 노인들이 여자 노인보다
더욱더 초라하고 할 일 없고(따라서 쓸모없고) 갈 곳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대해 보이던 가부장의 자리는 한갖 연민의 대상이 된다.
결혼이 현실감 있게 다가서면서 자녀 양육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것을 보며
자라온 탓이 크다고 생각된다. 당신은 자식에 대해서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자녀 교육은 어머니에게 완전히 맡기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마치 수퍼맨인 것처럼 생각되었을 뿐이고 그나마 내가 철들면서
그러한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주72)
가부장권의 실상은 겉껍데기의 감투 아래 가정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남성 노동자들 역시 무엇보다도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 모든 고역을 참고 견디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가족을 위한
노동은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로 보답을 받는 것이다.
* 노동과 가정의 양립
이는 가사 노동 문제에 대한 여성 해방 운동의 목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을 제공한다. 가사 노동에 대한 올바른 해결은 여성을
무조건 사회적 노동에 지금의 남성들과 똑같이 몰아넣는 것에 있지 않다. 이는 가정과
노동을 대립시키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의해 길들여진 데서 나온 발상이다. 그와
반대로 가사 노동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직장과 가정,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을 양립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양쪽 모두에서
자기를 실현하고 사회와 가족에게 공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성 해방은 무슨 일벌레를 만드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일벌레는 가사
노^36^예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것이다. 여성 해방의 목표는 가정을 희생시켜
직업적 성공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가정의 조화에 있으며, 인간
개개인이 노동을 통해서 뿐 아니라, 가족 관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인성을
전면적으로 발달시키도록 하는 데 있다. 앞의 사례에서 가사 노동 문제를 통해 성숙한
애정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은 가사 노동 문제, 나아가 여성 해방이 내포한 지평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정과 노동의 양립은 양면적인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는 여성을 가사 노동과
가정에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사회적 노동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성을 가족과의 인간적 관계로부터의 소외에서 해방시켜 가사 노동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제의 일단은 선진 자본주의국의 노동
운동과 여성 운동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ILO에서는 1981 년, 가족 책임이 남녀의 공동 책임임을 분명히 하는
조약을 제정했다. ILO의 156 호 조약과 165 호 권고는 가족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과하는 한 양성 평등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에 근거하여 가족 책임은 남녀
쌍방과 사회가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것을 권고 하고 있다.(주73)
특히 육아와 모성 보호를 둘러싼 선진국 노동 운동의 흐름은 육아를 여성만의
책임으로 보지 않고, 남녀 모두의 책임으로 보며, 모성뿐 아니라 부성도 권리로서
쟁취해야 한다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육아 휴직을 남성도 가능하게 하고,
모성 휴가가 아니라 부모 휴가를 쟁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모성 휴가가 아니라 부모 휴가를 규정하여, 아버지도 육아 휴직을 얻을
수 있으며, 아이가 아플 때, 아이를 더 낳을 때(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를 돌보기 위해 부성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아이가 아동 복지 클리닉에 가야할
때, 부모가 탁아소를 방문하고자 할 때(1부모당 1년에 1일) 부모는 부모 휴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일년에 한 아이당 60일로 되어 있다.(주74)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부성 급여에 관한 의식이 아직 매우 낮다.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육아를 위한 어머니의 휴직이 시급하다는 응답은 79.9%인데 비해 육아를 위한
아버지의 휴직이 시급하다는 응답은 16.9%(도시의 20 대 남성의 경우는 19.2%, 30
대 남성은 10%, 50 대 이상 남성은 7.9%가 시급하다고 답했다)로 낮은 응답률을
보였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그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에 있어, 의식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주75) 사실,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을 원하고 사회 생활에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능한 소질을 발휘하듯이 남성들 중에서도 가족들에게 세심하고
자상한 배려를 하고, 가족을 잘 보살피며, 이를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사회 활동을 잘 해내는 여자들이 여자답지 못할거라는 편견에 시달리듯이
가정적인 남성들도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여성들이 사회적 노동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남자들은 가사 노동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가 필연적이듯이 남성이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추세이며, 사회적 활동과 가사 노동을 함께 하며,
협력해서 살아가는 새로운 유형의 부부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들은 남녀 차별적인
사회의 이질적인 요소로서, 현재 속에서 자라나는 미래의 싹들이 언제나 그렇듯
강고해 보이는 낡은 관념과 관습에 시달리고, 아직은 약하고 여려 보이지만 이 강고한
벽들을 뚫고 마침내는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
엄마(아내)가 일 다니느라 힘들어 할 땐, 애 옷이 밀리고 하면 빨래 도와 주는데
남들 볼까봐 문 잠그고 한다. 주로 안집 식구들이 일요일 오전에 교회갈 때 하는데,
안집 사람이 오면 빨다가도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것을 남한테 보이고 싶지
않다(30세, 용접공, 카스테레오 조립공의 남편).
내가 애 씻기고 머리도 묶어주고 세심하게 신경쓰는 것 보면, 남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한번은 집에서 애 옷 빨고 있는데 옆집 형님뻘 되는 친구가 술 먹자고
와서, 내가 빨래 다 하고 나가겠다고 하니깐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남의 눈 개의치 않고 한다(25세, 신발 봉제, 악기 조립공의 남편).(주76)
성별 분업의 붕괴는 사회와 가정을, 공생활과 사생활을, 이성과 감성을 통합한다.
그리하여 이는 남녀 모두의 전인적인 인간성을 기르며, 보다 조화롭고 풍부한
인간으로 만든다. 가사 노동을 통해서 남성은 가족에 대해서 재인식한다. 이를 통해서
남성은 아내와 자식들의 진정한 욕구를 깨닫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을
변혁하는 것은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남성을 변혁하는 것이다. 가사
노동을 변혁하는 것은 가사 노동을 여성이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인간적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게 하는 것이고,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과의 대립과
모순을 폐지하는 것이며, 여성과 남성 사이의 오랜 불평등과 갈등과 불화와 오해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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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본주의의 발달과 여성의 미래
이상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에서 여성이 놓인 위치와 문제점을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사회적 노동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가사 노동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역으로 가사 노동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사회적 노동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 사이의 성별 분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성 노동자의 위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발달은 성별 분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1) 자본주의 발전 단계와 여성 노동의 변화
자본주의의 발달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기존의 성별 분업을
폐지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하나는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육체 노동이 해체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임신, 육아에 필요한 시간과 신체적 소모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기본적으로 육체적 힘의 차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화하는
하나의 중요한 표지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계의 발명과 함께 확립되었는데, 기계제 대공업의 발달은 노동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왜냐하면 기계가 육체적 힘을 대신하므로,
노동에서 육체적인 힘은 점점 불필요하게 되어 기존의 성별 분업의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인 여성과 남성의 육체적 힘의 차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기계는, 그것이 근육의 힘을 요구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근육의 힘이 약하거나
또는 육체적 발달은 아직 미숙하지만 팔과 다리는 더욱 유연한 노동자를 사용하는
수단으로 된다. 그러므로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은 자본가에 의한 기계 사용의 첫
번째 결과였다!(주77)
생산력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많은 육체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힘든
육체 노동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정신 노동이 발달한다. 이는 노동자들 사이의 육체적
힘의 차이를 무의미하게 하며, 그런 점에서 기존의 성별 분업의 붕괴는 일률적이거나
직선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과학 기술의 기술적 토대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하나의 산업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생산의 중심이 옮겨간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에게 필요한 기능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노동자의 구성도
달라진다.
근대적 공업은 결코 어떤 과학 기술의 기존 형태를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며,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종전의 모든 생산 방식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근대적 공업의 기술적 토대는 혁명적이다. 근대적 공업은 기계, 화학적
과정 및 기타 방법들에 의하여 생산의 기술적 토대, 그리고 그것과 함께 노동자의
기능, 노동 과정의 사회적 결합들을 끊임없이 변혁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사회 내부의 분업도 변혁시키며 많은 자본과 노동자 대중을 한 생산 부문에서 다른
생산 부문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킨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흡수되고
축출되며 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는데, 동시에 징집되는 노동자들의 성별, 연령
및 기능에 있어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난다.(주78)
자본주의의 발달 단계에 따라 여성 노동자의 위치는 변화해 왔다. 1차 산업 혁명의
결과로 성립한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주요한 산업은 경공업이었는데, 역서는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여성은 1차 산업 혁명의 전위대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섬유 산업은 자본,
기술, 한 장소에 집중된 노동력에 의해 매뉴팩쳐로부터 새로운 과정을 창조했다. 이
섬유 산업의 노동력은 거의 젊은 여성 노동력, 새로 도시화된 공장 지대를 둘러싼
농촌 지역의 가족 농장으로부터 모집되었다. 1896 년 프랑스에서는 의복 제조
노동자의 87%, 섬유 노동자의 51%가 여성이었다.(주79)
전체 공장 노동자 중에서 18세 이상의 성인 남성 노동자가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23%에 불과하다. 직물 산업에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다음과 같다. 면직물 공장에서
56.25%, 모직물 공장에서 69.5%, 견직물 공장에서 70.5%, 아마포 공장에서
70.5%이다.(주80)
이는 모든 나라에 공통된 현상이다. 일본에서도 산업 혁명을 주도한 방직 산업에서
여공들이 압도적 비중을 점하고 있었으며, 1909 년에는 민간 노동자의 65%가
여자였다.(주81) 우리나라 역시 1922 년에 여공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20.5%이며,
1928 년에는 33.7%로 증가하였으며, 1936 년까지 32.0--34.2%라는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주82) 방직과 같은 공장 노동자 중에서의 비율은 물론 훨씬 높았다.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생산의 기술적
성격이다. 1차 산업 혁명의 결과로 성립된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주요한 산업은 방직,
방적 등의 섬유 산업이었다. 이 산업의 기술적 성격은 여성 노동에 적합한 것이었다.
방적이나 방직에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행하는 일은 주로 끊어진 실을 잇는 데
그친다. 다른 주요한 노동은 전부 기계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노동에는 어떤
근육의 힘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손가락이 유연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손가락을 교묘히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손의 근육이 발달해
있는 남자 노동자는 여성과 연소자에 비해 훨씬 부적당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연히 이
노동으로부터 배제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수력, 증기력이 손의 힘이나 팔의 힘을 점점
대신함에 따라서 더욱 성인 남자의 고용이 줄어들게 된다.(주83)
여성이 산업의 중심에 서자 노동자 가족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서로 바뀌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남성들이 일자리를 잃고 집안 일을 하고,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했다.
그는 아무런 가구도 없고 더럽고 습기찬 지하실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는가? 그는 바늘로 부인의 양말을 깁고 있었다. 문간에 있는 자신의
옛친구를 보자마자 그는 양말을 감추었다. "잭, 무얼하고 있나?" 불쌍한 잭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 나도 이것이 내일이 아닌 줄 알고 있어. 그러나 불쌍한
마누라는 공장에 갔네. 마누라는 아침 5시 30분에 공장에 가서 저녁 8시에 온다네.
집에 돌아와서는 너무나 기진맥진해 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야 하네. 왜냐하면 나는 3 년째 실업 상태에 있기 때문이지.
아마도 나는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을 거야." 그리고 나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 "여기에는 여자와 어린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많이 있지만 남자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어. 자네는 할 일 없이 길에서 방황하는 수백 명의 사내들을 볼 수
있을 걸세."(주84)
그런데 이 당시 초기의 열악한 공장 노동에 여성들을 대거 끌어들인 것은
한편으로는 생명의 생산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에 대한 무지에 기초하고 있었다.
당시 모성 파괴의 실상은 엄청난 것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해산할 때까지 계속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것은 일을 하지
않으면 임금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해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전날 저녁까지 노동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해산을 하는 경우는 아주
빈번하며 일을 하다가 공장 안의 기계들 사이에서 애를 낳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주85)
젖먹이 어린애가 있는 부인은 어린애가 집에 남아 배고픔 때문에 종일 울 수밖에
없자 우선 어린애가 우는 것을 막기 위해 아편을 넣은 14약(팅크)을 먹이고는 공장에
나갔습니다. 이것을 먹이면 위가 마비되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 약 때문에 죽는 어린이가 많이 생겼습니다.(주86)
질문: 어린애가 있나요?
답: 아니요. 둘이 있었으나 고맙게도 모두 죽었어요.
질문: 당신은 아이들의 죽음에 만족을 느끼나요?
답: 그렇습니다. 신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애들을 길러야 할 짐을 벗었고 불쌍한
그애들은 이런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아내는 매일 12시간 내지 13시간씩 공장에서 노동하고, 남편 역시 같은 공장이나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간 동안 일한다. 이렇게 될 때 그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잡초처럼 자란다. 아이들은 1주일에 1실링이나 18 펜스의 비용으로 보모에게
보내진다. 그들이 거기서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는 가히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로 인해 공장 지대에서 어린아이들의 사고가 놀랄만큼 증가하고 있다.
맨체스터 검시관의 통계에 따르면 이 한 달 동안에 69 명의 어린이가 화재로 죽고, 56
명이 익사했으며, 23 명이 추락해서 죽고, 77 명이 그밖의 원인으로 죽어, 모두 225
명이 사고로 죽었다. 반면에 비공장 지대인 리버풀에서는 12 달 동안 사고는 단
146건이 있었다. 『맨체스터 가디안』지는 거의 매일 호마다 화재로 인한 죽음을 몇
건씩 보도하고 있다.
어머니들을 고용함으로써 어린이의 사망률이 전체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주87)
아무런 대비도 없이 여성들을 가혹한 공장 노동에 혹사시킨 대가는 출산율의 감소와
엄청난 유아 사망률, 결과적으로 인구와 노동자수의 감소라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에
자본가들은 모성 보호 입법을 제정했다. 이것은 결국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며 여성의 고용에 영향을 미쳤다.
뒤이은 제 2차 산업 혁명에 의해 중공업이 발달하여 생산의 중심이 되었고,
자본주의는 독점 단계에 들어섰다. (전자나 전기기구 등 여성이 더 많은 부문도
있지만) 자동차, 항공 등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많은 중공업 부문에서 남성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중공업이 경공업에 비해 육체적인
힘을 어느 정도 필요로 하고, 작업 환경이 유해하거나 열악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공업이 여성에게 더 적합한 데 비해 중공업은 남성에게 더 적합했다. 그리하여
경공업과 중공업 사이의 분업이 새로운 성별 분업으로 되었다. 그리고 중공업
노동자와 경공업 노동자와의 격차가 남녀의 격차에 더해졌다. 물론 이것이 여성이
중화학 공업의 노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 1차 대전과 2차 대전
당시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자 여성 노동자들은 즉각적으로 남성 노동자의 자리를
메꾸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그 자리는 다시 남성들로 메꿔졌다.
제1차 대전은 여성의 노동력 참여에 근본적이거나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1920 년의 여성의 고용률은 20.4%로 1910 년(20.9%)보다도 실제로 약간
낮았다. 노조와 정부, 사회는 여성의 경제적 역할의 영구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대신 여성은 전시의 긴급한 필요를 채웠으며 평화가 돌아오자마자 그전의
자리로 돌려보내졌다. 개혁가 마리 폰 클릭이 썼듯이 "즉각적인 위험이 지나가자
편견이 다시 생활 속에 들어왔다."(주88)
전쟁 중에는 일부 여성들이 철도 산업에서 비전통적인 직업(기계공과 같은)에서
일했다. 전쟁이 끝나자 철도 산업은 여성들을 타이피스트, 카드 천공원, 비서,
접수계원, 사무직원으로만 고용했다. 독점 자본이 발달하고 정신 노동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 한층 굳어졌다. 이런 영역에서는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데, 여성은 모성 보호 문제와 가사 부담 문제 때문에 자본이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관리직이나 중공업에, 여성들은 단순 사무직과
경공업에 고용되었다. 중간층 여성들은 적당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유능한 남자를 만나 가정 주부가 되는 것이 가능한 최선의
길이었다. 하층 여성들도 미혼 시절 경공업이나 단순 사무직에 취업했다가 결혼한
뒤에는 가정 주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 분업은 다시 확고해졌고, 차별도
심해졌다.
기혼 여성은 이 시기에 거의 집 밖의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임신과 육아, 가사
노동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중간 계급의 아내들은 더욱 소수만이 일했다. 이혼했거나
과부가 되었거나 남편이 실업한 여자들만이 일했다. 이 시기에는 여성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았으며 여성의 대부분은 어린 아이의 어머니였다.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은 독신 여성들로 쉽게 채워졌다. 독신의 백인 여성들도 노동력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다. 고용된 젊은 독신 여성은 단지 일시적으로만(결혼할 때까지)일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저임금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 여성들은 흔히 "그렇지만 너는 너를
부양하는 남편이 있지 않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성차별이 점점 더 거의 모든
직업에서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직업적 위협"으로 되었다.(주89)
중공업과 경공업, 혹은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 사이의 성별 분업이 굳어지면서
노동자 계급 가정 내에서의 남녀 위치는 다시 남성 우월적으로 재편되었다. 새로운
변화는 제 3차 산업 혁명이라고 불리는 과학 기술 혁명에 의해 준비되고 있다. 과학
기술 혁명은 생산의 자동화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 산업의
발달은 인간을 단순 육체 노동에서 해방시킬 날을 기약하고 있으며, 정신 노동까지도
대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산력의 발전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은 고업이 그 중요성을
점차 새로운 산업에 넘겨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산업은 농업이나
공업같은 물질적 생산 부문이 아니라, 서비스 산업같은 비생산 부문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교육, 연구, 문화 예술 활동, 의료와
건강, 여행과 레저, 오락 등에 쏟게 될 것이다. 다니엘 벨이 말했듯이 이러한 새로운
산업은 여성 인력을 대거 끌어들일 것이다. 이런 산업은 육체적 힘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여성들의 지적, 정서적 능력을 필요로 하고 발휘하게끔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제 3차 산업 혁명의 진전과 함께 여성
노동자의 비중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자본가들이 여성을 고용하기
위한 대책에 부심할 정도로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급증하는 또 하나의 기초는 새로운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한편, 노동 생산성이 점점 더 커져서 여성들에게 모성 보호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고용하는 것이 자본에게 유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
생산성이 낮은 단계에서는 여성들이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하는 편이 더 생산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제 점차 고부가 가치 산업이 발달하고, 노동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여성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또한 전반적인 노동 조건의 향상 역시
여성에게 노동의 기회를 넓히고 있다. 앞으로의 생산력 발전이 기존의 육체적인 힘에
기초한 분업을 붕괴시키고, 여성들이 자질을 발휘할 수 있는 노동 분야를
확대시키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 역시 높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가사 노동에 있어서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 역시 이 시기의 일이다. 가사
노동의 기계화와 자동화, 사회화가 이전 어느 시기보다도 활발해졌다. 예를 들면 1956
년에는 영국에서 전가구의 8%만이 냉장고를 가졌으나 1981 년에는 93%로 증가했다.
1970 년에는 전가구의 30%만이 중앙 난방이었지만 1981 년에는 그 두배에 가까운
59%가 중앙 난방이며, 가전 제품 역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1981 년 현재
전가구의 78%가 세탁기를 소유하고 있다.(주90)
또한 탁아소나 유치원이 대규모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에 와서의 일이다.
이런 변화는 한편으로는 생산 자체의 확대 발전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급증하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에 의해 촉진되었으며, 다시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2) 줄어드는 가사 노동
성별 분업의 재편은 기계와 상품 생산의 발달에 따라 가사 노동이 해체됨으로써도
일어나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이 거의 모든 생산 분야와
서비스 분야에 확대됨으로써 종래 가정에서 행해지던 많은 노동이 사회화되어 가정
내의 노동은 점점 줄어든다. 우선 기계제 대공업의 발달에 따라 예전에는 여성들이
담당했던 가정 내 생산의 많은 부분이 기계제 대공업에 포섭되어 왔다. 예를 들면,
정미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밥을 짓기 위해서 벼를 방아로 빻아 키질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미 기계와 돌 고르는 기계의 발달로 방아를 찧던 노동이 기계화되어, 가정을
떠나 공장에서 행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쌀을 씻는 노동까지를 기계화한 청정미의
대량 생산이 착수되었다. 이제 밥을 짓기 위해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쌀에 물을
부어 불에 올려놓는 것 뿐이다. 또한 자동화된 기계 설비를 통한 식품의 대량 생산이
가정 내에서 여성들에 의해 수행되던 요리 노동의 점점 다 많은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빵, 과자, 국수, 라면, 만두, 각종 냉동^5,23^ 건조 식품, 기타 인스턴트 식품은
물론, 간장과 된장, 고추장, 햄, 치즈, 소시지에 이르는 다양한 식품 산업의 발달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밥과 각종 반찬을 파는 슈퍼마켓이 늘고 있다. 기계에 의한
생산이 수공업적인 낡은 방식보다 유리한 모든 기존의 가내 생산 부문이 기계제
대공업의 대치된다. 여러 가지 서비스 산업의 발달 역시 가사 노동을 해체시킨다.
국민 교육의 일반화와 유치원, 탁아소의 발달은 육아 노동을 사회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화 한 통으로 가전 제품에서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집에 앉아서 구입할 수
있는 배달 사업도 발달하고 있으며, 이삿짐을 싸서 옮겨서 다 정리해 주는 이사
대행업을 비롯한 서비스 센터도 성업중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가정집의
청소 대행업까지 생겨났다. 또한 학교 급식을 비롯해 식당도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미한 정도지만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 비율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여러 가지 가사 도구 역시 가사 노동을 경감시킴으로써 가사 노동을 해체한다.
오늘날 기계제 대공업은 나날이 다양한 가사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가사 도구는
가정 내 노동의 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을 경감한다. 이전에는 밥을 하기 위해 내내
지키고 앉아 장작불을 때야 했지만 이제는 전기 밥솥에 스위치만 넣으면 된다. 가스
렌지와 전자 렌지 등 요리 도구의 강도를 절감하고 숙련을 해체한다. 빨래 함지를
이고 시냇가에 나가 집에서 재를 밭혀 만든 잿물로 해야 하던 빨래는 이제 전자동
세탁기에 스위치를 넣는 노동으로 대신될 수 있다. 컴퓨터의 발달은 세탁기에게
빨래의 양과 종류와 더러움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세탁 방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이 개발한 퍼지 방식의 세탁기는 기름때가 묻은 옷과
진흙이 묻은 옷을 구별하여 스스로 세탁 방식을 선택한다. 청소기도 마루와 양탄자,
다다미를 구별하여 청소 방식을 자동 조절하는 것이 개발되었다. 기름 보일러와 가스
보일러의 발달은 난방을 위해 스위치를 넣는 일을 한꺼번에 할 수도 있다. 최근
보급되고 있는 홈오토메이션 장치는 집 밖에서도 원격 장치를 이용해서 이들 스위치를
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집 안의 온도와 습도 조절, 공기 정화를 자동으로 하고, 첨단
전자기기와 주방 용품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된 주방 자동화 시스템인 시스템
부엌이 보급되고 있다. 이 부엌은 손을 갖다 대면 물이 저절로 나오는 센서식 수도와
가스 감지 경보기 등이 갖춰져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컴퓨터 통신망을 갖춘
가정집과 가사를 담당하는 로봇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상품을 구입하고 싶으면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시세와 목록을 복 h전화 한 통만 하면 된다. 가사 노동에서도
힘든 육체 노동, 단순 반복 노동이 점차 줄어들고 자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가사 노동의 사회화와 자동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확대 발전과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에 의해 추진된다. 가사 노동의 성격상 모든 가사 노동이 사회화될 수는 없지만,
가사 노동이 여성의 사회적 노동에 장애물이 아닐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가정 내 노동의 경감과 단순화는 두 가지 점에서 성별 분업을 해체한다.
첫째로 이는 가정 내 노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가정 밖의 노동을 할 기회를 넓힌다.
둘째로 가정 밖의 일을 하고 있는 남성들도 가정 내 노동을 손쉽게 할 수 있게 한다.
가사 노동이 많은 시간과 숙련을 요할 때에는 남자들이 이를 하는 것이 보다
어려웠다. 가사 노동을 단순화하고 경감하는 가사 도구들의 발달은 남성이 가사
노동에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가사 노동이 사회화와 기계화를 통해 경감되고
단순화되는 것은 여성이 가사 노동만을 하고, 가사 노동을 여성만이 해야 할 필요를
없앤다. 이는 여성에게는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기회를 넓히며, 남성에게는 가사
노동에 참여할 기회를 넓힌다.
3) 적게 낳는 시대
여성의 생산 노동 참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요소는 피임술의
발달이다. 봉건 시대까지 인구의 사망률은 매우 높았으며, 특히 유아 사망률이 높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중의 생활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도저히
피임이 발달할 수 없다. 피임에 관한 몇 가지 비방들이 어느 사회에나 전해져 왔지만
결코 일반화될 수는 없었다. 일반 민중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산아 제한은 낙태와 영아
살해였다.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수유에 많은 신체적인 에너지를 소모했으며, 특히
낙태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여성들은 인생의 활동적인 시기의 대부분을 임신과 출산,
수유의 연속으로 보냈다.
나는 어머니의 일곱번째 아이였다. 내 밑으로도 일곱 명이 더 태어났다(모두 14명).
이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완전히 노^36^예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머니는
항상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젖먹이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형제들 중 위로부터 여덟 명조차 도움이 없이는 학교 갈 준비를 할 수 없을 만큼
어린 편이었다.(주91)
자본주의가 가져온 생산력의 급격한 발전은 생활 수준의 일반적인 향상을 가져왔고,
이것이 평균 수명을 연장하고 사망률을 낮추고, 특히 유아 사망률을 낮추었다.
이와 함께 의학의 발달과 그 대중적 보급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인구가 얼마나 급격히 증가하고, 사망률이 감소했는가는 영국의 예에서 알 수
있다. 18세기 초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는 550 만에서 600 만이었다. 이것이
1800 년 말에는 3천 250 만 명이 되었다. 1820 년 사망률은 인구 1,000 명 당 33.1
명에서 21 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유아 사망률이 개선되었고, 평균 수명도
늘어났다.(주92)
이러한 평균 수명과 인구의 증가야말로 피임술이 발달하고,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도록 한 기초였다. 그러나 근로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간편한 피임법이 개발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구 증가에 힘입어 근로 민중을 위한 간편한 피임에 대한 주장이 나왔다. 1820 년
프란시스 플레이스가 이를 옹호하였다. 근로 여성에 대한 효과적인 혜택은 1921 년
매리 스톱스가 할러웨이에 산아 제한 진료소를 개설 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대중적인
피임법인 경구용 피임약이 개발된 것은 1950 년대에 와서였으며 이 알약이 널리
사용된 것은 1960 년대의 일이었다. 그 후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약이 널리
보급되어 일반 민중도 피임이 가능하게 되었다.(주93)
피임법의 개발과 보급은 여성의 건강과 노동 능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들은 일생에 걸친 임신과 출산의 연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에너지를 노동에 쏟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0 대 혹은 20 대 초반에 결혼하여 10번의 임신을 경험한 1890 년대의 노동층
주부는 임신중이거나 갖난 아이의 첫 해에 모유를 먹이는 데만 약 15 년의 기간을
소비했을 것이다. 이 기간에 그녀는 해산의 수레 바퀴에 묶여 있었다.
오늘날 전형적인 가정 주부가 임신과 수유에 소비하는 기간은 대략 4 년 정도일
것이다. 불과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에 아이를 낳고 수유하는 데 소비되는 시간이
이처럼 단축되었다는 것은 여성의 자유의 혁명적 신장(그것은 출산을 억제할 수 있는
힘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를 의미한다.(주94)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노동에서 물러나는 기간은 불과 몇
개월에서 몇 년에 불과하다. 노동 조건의 개선, 노동 시간의 단축, 육체 노동의 감소
등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장애를 점점 더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술적으로는 여성의 모성 기능이 여성의 노동에서의 위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계에 왔다. 임신과 출산의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소모가 줄었다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 영양 상태가 개선됨에 따라 임신이 여성의 신체적 쇠약과 노쇠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었다. 임신과 출산은 엄청난 신체적 에너지의 소모를 가져오며 임산부가
적절한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할 경우,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영양소를 빼앗아 가기
때문에 아이를 몇 명만 낳아도 여자들은 쇠약해서 껍데기만 남게 되는 수가 많았다.
실제로 봉건 시대까지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훨씬 짧았다.
그러나 아직도 낙태와 피임술의 발달은 다른 분야에 비하면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피임과 낙태로 인한 신체적 소모는 여성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것이 여성들의 노동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에
관한 과학의 발달과 사회 복지의 증진은 이로 인한 여성의 부담을 점점 더 줄여나갈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달이 기본적으로 여성이 노동에서 부차적인
위치로부터 벗어나 주체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의 물적 토대를 마련한다. 물론, 여성의 해방이 단순히 이런 생산력과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여성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자본과 인간의 전도된 관계를 바로잡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인간, 특히 여성들 자신의 실천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 투쟁은 지난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해방을 향한 여성들의 투쟁은 역사 발전의 필연성이라는 가장 튼튼한
동력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주)
1. 한국 여성 민우회, '함께 가는 여성', 1989.11. p.17.
2. 민족문학 작가회의 여성문학분과위원회 편, '여성 운동과 문학', 실천문학사,
1988, p.21.
3.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이 주최한 전국대회, "사회발전과 직업 의식의 전환"
세미나, '조선일보', 1990,7,17.
4. '주부생활', 1989, 12,pp.490--491.
5. 박성준, '여성 근로자의 동기 부여에 관한 실증적 연구, k은행 여자 직원을
중심으로' 연대 경영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6. 여성 개발원, '취업 여성의 사내 교육 실태 분석', 1990.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등 5개 도시 11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임. '조선일보' 1990.
2.3.일자 참조
7. 차형훈, '한국 전자 산업의 노동과정과 노동통제',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1985, p.15.
8. 이숙진, '노동자 계급 여성의 여성해방의식획득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 1989,p.114.
9. 김혜경, 신현옥, '제조업 생산직 기혼여성 노동자의 상태와 문제', 한국여성연구회,
'여성과 사회', 창간호, 1990.p299.
10. 여성개발원,'생산직 근로 조건에 관한 연구, 영세 봉제 전자 업체를 중심으로',
p.123.
11. 김혜경, 신현옥, 앞의 글, 한국여성연구회 편, 앞의 책, p.299.
12. 김혜경, 신현옥, 앞의 글, p303.
13. 작가 미상, '건강은 몇 등','진도 소식2', 1985, 김경숙 외, '그러나 이제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돌베개, 1986, pp160--161.
14.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분과위원회 편, 앞의 책,p9.
15. 위의 책, p.25.
16. 작가 미상, '하소연 할 곳도 없이', 김경숙 외, 앞의 책, pp147--148.
17. 석정남, '공자의 불빛', 일월서각, 1984. p.13.
18. 정남수, '원풍 소식', 김경숙 외, 앞의 책, pp.163--164.
19. 한국노동조합총연맹, '1990 년도 임금 인상 활동 지침', p. 38.
20. 김은영, '뺏골 빠진 십 년에 남은 것', '시정의 배춤터, 등불5', 김경숙 외, 앞의
책.
21.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앞의 책, p.46.
22. 위의 책, p. 16.
23. 배희옥, '너무너무 괴로운 하루','요한의 메아리7', 김경숙 외, 앞의 책,pp.
98--99.
24.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도시근로자 최저 생계비', 1989.11.
25. 이월미(중소기업은행 삼성남지점), '미소 뒤에는 쓰디쓴 아픔이',
한국여성민우회,'함께 가는 여성', 1989.p.6.
26. 풍국 노동조합, '한울타리', 제4 호, 1988.10.26.
27. 위의 책.
28. 동양정밀노조, '노맥' 제 7호, 1989.4.1,pp.16--19
29. 정이환, '저임금 구조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제적 적응 양식, 생산직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1986, p.112.
30. 김혜경, 신현옥, 앞의 글, 한국여성연구회 편, 앞의 책, p.307.
31. 이종홍, '나우 정밀 노보', 1989.1.
32. 박세일, '여성 노동 시장의 문제점과 남녀별 임금 격차 분석', '한국개발연구', 제
4권, 제2 호 1982. 6. pp.59--87참조
33. 실제로 여성들만 종사하는 직종에서 남녀별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성
노동자들잉 상당수에 달한다. 즉 봉제, 전자의 생산직 여성만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봉제의 경우 64.0%, 전자의 경우 37.3%의 여성노동자가 남녀 차별이 없다고
답했으며, 차별 대우를 받는다는 응답은 봉제의 경우 17.6%, 전자는 43.3%였다. 전
산업의 조직 여성 노동자를 상대로 한 노총의 조사 결과는 이보다는 약간 높지만,
역시 남녀 차별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동등한 편이라는
응답이 23.6%, 잘 모르겠다가 14.5%이며, 다소 차별 대우가 47.4%, 심한 차별대우는
7.0%이다(노총,'조직 여성 근로자의 실태 조사', 1988).
34.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 여성 노동자', 1990.3. p.5.
35.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직 여성 근로자의 실태 조사', 1988.8. p171
36. '중앙일보' 1990. 3. 10.
37. 여성 민우회, '함께 가는 여성', 15 호, p.5.
38. 선진국의 경우에도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다. 영국의
기혼 여성 노동자 중 전일제로 일하는 비율은 16%인데 비해 37%가 시간제로 일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여성 노동자의 45%가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남성은 5%).
39. 정체적 과잉 인구는 현역 노동자의 일부이면서 그 취업이 극히 불규칙한 영세
중소 기업 노동자, 임시고, 일고, 가내 노동자, 가내 하청 노동자 등으로 구성되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노동력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를 자본에게 제공하며
노동자계급의 평균 수준이하의 생활을 한다.
40. 순점순, 앞의 책, pp.263--264
41. 정미숙(31세 주부), '1원 50전에 몸을 병들에 가고', '인천 여성 노동자',
1990. 7. p.18.
42. 한국여성개발원, '가내 노동 실태에 관한 연구', 1989. p.50
43. 정연금, '가정 노동의 가치 평가를 위한 방법론적 모색', 이대 박사 학위 논문,
pp.11--14.
44. 김영란, '가사 노동에 관한 계급별 사례 연구, 신중간 계급 가족과 노동자 계급
가족을 중심으로' 이대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1989, 38.
45. '한국일보', 1989. 11. 22.
46. 정연금, 위의 논문, p.52
47. '한국일보', 1989. 11. 22.
48. m.f.fox,s.hesse biber, women at work, mayfield publishing company,
1984, p.19
49. 묵자 책 159참조
50. philip slater, j. bernard 1982, p.46에서 재인용.
51. 주부 아카데미 협의회 여성 문화팀 '등우리'의 연극 "이 세계 절반의 나"
중에서, 여성 편집위원회, '여성 1' 창작과 비평, p.280.
52. 한혜경, '한국 도시 주부의 정신적 갈 등의 사회적 요인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 1985, pp. 47--48.
53. 김영란, 위의 논문, p. 93.
54. 게일 킴벌, '평등한 부부', 한국여성개발원, 1988, p.92.
55.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 분과위원회편, 앞의 책, '여성과 계층 운동', p.27.
56. 광산지역사회선교협의회, '광산 노동자 신문', 창간호, 1988, 4. 10.
57. 인천 여성 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 1990. 3.
58. 정영훈, 한국여성연구회편,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여성과 사회, 창간호,
창작과 비평사, 1990, p.195--199.
59. mariyn j. davidon, cary l. cooper, working women, an international
survey, john wiley & sons, chichester, 1984, p. 280.
60. 위의 책, p.297.
61. 김미하, '노동자 가족 내 성별 분업에 관한 사례 연구, 남성의 양육 참여를
중심으로',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 1989, p.57.
62. 클로디 브로이엘, 앞의 책, pp.91--92.
63. marilyn j. dabidon, cary l. coopre, 앞의 책, p.270.
64. 변정옥, '민주 가정과 노동 해방', 한국여성연구회편, 앞의 책, p.208.
65. '아내들의 행복4', '조선일보', 1986. 1. 26.
66. 게임 킴벌, 앞의 책, p.94.
67. '협신중하 노보'
68. 박노해,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p.13--14
69. 최명자, '우리들 소원', 풀빛, 1985, pp.100--101.
70. 김종일, '가사 노동과 나의 해방', 한국여성연구회편 위의 책, pp.188--191.
71. 이숙진, '노동자 계급 여성의 여성해방의식 획득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학위 논문, 1989, p.72.
72. 허진호, '자유로운 결혼 생활의 설계도, 함께하는 삶을 위하여', 또 하나의 문화
편, '또 하나의 문화', 4 호, p.118.
73. 여성개발원, '국내외 여성 관계 법제에 관한 연구', 1984, pp.107--115참조.
74. marilyn j. dabidon, cary l. coopre, 앞의 책, p.156
75. 여성개발원, '여성문제에 관한 국민 여론 조사', p.406--407.
76. 김미하, 앞의 논문, p.84.
77. k.marx, capital 1, penguin books ltd, 1976, p.517.
78. 위의 책, pp. 617--618, 15장 제9절 주 227.
79. 묵자책 208참조.
80. 엥겔스, 박준식 외 옮김, '영국 노덩자 계급의 상태', 세계, 1988, p.408.
81. 묵자책 208참조.
82. 이효재, '일제하의 한국 여성 노동 문제 연구', 윤병석 외 편, '한국 근대사론3',
지식산업사, 1978, p.105.
83. 엥겔스, 앞의 책, p.141.
84. 같은 책, p. 184.
85. 같은 책, p.201
86. 조우화 편저, '인간의 역사', 동녘, 개정판, 1991, p.176.
87. 엥겔스, 앞의 책, p.161.
88. m.f.fox,s.hesse biber, women at work, mayfield publishing company,
1984, p.19
89. 위의 책, pp.24--27참조.
90. j.f.c. 헤리슨, 앞의 책, p.378.
91. 헤리슨의 앞의 책, p.381에서 재인용.
92. j.f.c 헤리슨, 앞의 책, pp.211--212.
93. 위의 책, pp.211--212.
94. 위의 책, pp.381--382.
제3장 가족 (p200)
가족 관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다. 생산 관계가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면, 가족 관계는 인간의 종족이 보존되기 위해
결혼과 자녀 양육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 생산 관계가 노동과 그 생산
수단 및 생산물의 소유와 분배라는 경제적 관계로서, 생산력의 발전에 기초하고
있다면, 가족 관계는 부부와 부모 자식의 애정과 상호 원조에 기초하고 있다.
애정은 노동과 함께 인류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사랑은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다른 모든 것들이 이를 위해서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주1)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남녀간, 부모 자식간의
애정이야말로 인간의 삶의 조건이자 원동력이고, 다른 모든 관계와 활동의 기초이며,
인간 자신의 정신과 정서의 궁극적인 토대이다. 그러나 노동과 마찬가지로 애정 역시
어떤 종류의 이상적인 상태로 존재하거나 혹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애정은 인간
자신이 그러하듯이 동물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변화 발전해 왔으며, 그 발전은
인간 자신의 변화 발전이 그렇듯이 모순에 찬 것이다.
가족 관계는 생물로서의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다. 또 심리학적으로는
개개인의 심리와 성격, 인격 형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조직이다. 어떤
사회 조직도 가족을 무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가족은 문화에 따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며, 가장 기초적인 사회
조직으로서, 그 위에 다른 사회 관계들이 서는 기반을 이룬다. 가족 관계는 생산
관계의 영향을 받지만, 가장 기초적인 조직으로서 또한 생산 관게에 영향을 미쳐왔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인간이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가족 관계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했다. 예를 들면 모성 보호나 착취가 가족을 유지하는 선으로 제한되어야
하는 것, 여성이 가정을 맡아보는 것도 이러한 적응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 관계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은 가족의 형태에서부터 부부와 부모 자식 관계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하다. 거기에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이제 자본주의가 가족 관계에 가져온 변화를 살펴보자.
----------------
1. 가족 이기주의와 가족의 파괴
자본주의는 가족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작용을 가한다. 하나는 가족을
사회의 고립된 원자로서 강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인간적 유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 가족 이기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은 재산 상속의 단위이고, 노동력 재생산의 단위이다. 가족은
여전히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출생부터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 성원이 직업을
갖는 것, 병이 났을 때 치료를 받는 것, 교육을 받는 것 등등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각 개인의 책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이러한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기본 단위가 된다. 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경쟁의 또 하나의 단위가 되며, 각각의 가정은 다른 가정에 대해
경쟁 관계에 놓인다. 가족은 사회 성원에게 의식주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경쟁에
나서는 무기를 갖추게 하는 곳이다. 이러한 가족 단위의 경쟁이 가족 이기주의의
기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간, 노동자간, 그리고 자본과 노동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가족은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사회에 떠있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노동자들은 가족 밖으로 한 걸음만 내디뎌도 온통 적대적인 힘들에 둘러싸이게 된다.
사회의 적대성이 발달할수록, 사회와 분리된 사적인 공간, 피난처로서의 가족의 성격도
강화된다. 여성들은 경쟁의 단위인 가족에서 남편과 자식들이 경쟁에서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원을 갖춰주고 무기를 챙겨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모양처이다. 노동자 계급 내에서 가족
이기주의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상층 노동자들의 경우다. 이는 소수의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이 특히
치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서 특히 가족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높은 교육을 받은 전문 기술, 사무직
노동자들을 공급받기 위해 이들 상층 노동자들에게 가족 임금을 주어 여성들이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전념할 수 있고, 자식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을
지급하므로, 가족 단위가 유지되고 강화될 물적인 기초도 상대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에
비하면 튼튼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가정을 파괴하는 다음의 경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 가족의 파괴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족은 강화되지만 인간적 관계로서의 가족은 파괴되고 있다.
많은 노동자 가족이 자본의 탐욕스런 이윤 추구로 인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업
재해로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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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가 울 때면
더욱 생각나는 형
고등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겠다고 집을 떠난 형
고인 눈물에 못이겨
잘가라는 인사도 못한 나
구차한 집안 살림을
조금이라도 덜겠다고 나간 형은
왜 아직 소식이 없나.
눈보라와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가 울도록
건너편 먼 정거장엔
무수히 많은 차들이 있건만
형을 태운 버스는
왜 하나도 없는가?(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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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일기
길고 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슨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기인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 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바삐 팽겨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들면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주3)
연애할 때나 신혼 초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직장일이 바빠지면서 아주
집에서는 말문을 닫아버렸어요. 왜 그러냐고 따지고 들면 종일 사람에 시달려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말을 또 하라는 거냐며 버럭 성을 내곤 해요. 살을 맞대고 사는
남편이지만 대화할 시간이 없어요. 쉬는 날은 어떤지 아세요. 피곤하다면서 문 걸어
잠그고 종일 잠만 자는 거^36^예요.(주4)
얼마 안되는 돈 번다고 애들이랑은 많이 떨어져 살았지요. 결혼해서 연년생으로 애
둘 낳고 잠시 집에 있다가 큰 애 두 살 때부터 큰 애는 시골 친정에 보내고, 작은
애는 서울 고모댁에 맡기고는 전자 공장에 1 년 반 다녔어요.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어
직장 그만두고 애들 데려다가 한 두 달 집에 있었더니 더 불안해져요. 그래서
형제지간만이라도 같이 지내야지 싶어서 둘을 다 시골 친정에 보내고 A 식료품에
다녔죠.(주5)
아기(5세)를 평택의 시댁에 맡겨놓고 회사 생활을 하고 있죠. 한 달에 한번씩 가서
아기를 보고 오는데 아기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요. 엄마가 못 돌봐줘서 그렇고, 또
혼자 떨어져 있으니 눈치만 늘어가는 것 같아서요. 야근을 하고 들어와서 잠을 자도
아기 생각에 잠도 잘 못자고.(주6)
나는 배가 고프다!
한 달 500시간 이상 일을 해야 겨우 삼십만원 정도의 임금으로 하루 한 두 시간
잠자는 아들 딸들의 모습만을 보기에는 너무나 배가 고프다.(주7)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동자 가족의 실상이다. 끝없는 경쟁의 톱니바퀴에
물려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 사회가 부여하는 노동의 주된 동기는 가족의 생활
향상이다. 그러나 가족의 생활 향상을 위한 노동에 의해 가족은 파괴된다. 자식들을
잘 가르치고 훌륭히 키우기 위해 부모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잔업, 특근을 밥먹듯
한다. 자식들은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 동생이라도 가르치려고 일찌감치 공장에
간다. 그리하여 가족은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얼굴조차 잘 볼 수 없게 된다. 먹고 사는
것, 혹은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위해서 가정 생활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자식들은 부모, 특히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남편과 아내는 소원해지고, 각자 뿔뿔이 살아간다. 그리하여 휴전선 철책으로
가로막힌 것도 아닌데, 이산 가족이 되는 부모와 자식일 늘고 한 집에 살아도
남남같이 느끼는 부부가 늘어간다.
이러한 가족적 유대의 붕괴는 현대인들의 정서적 불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다. 어린이의 성장에는 밥만큼이나 부모의 애정과 가족 간의 친밀한 관계가
필수적이다. 사랑이 결핍된 아이들은 정신적, 정서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신체적으로도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늘어가는 청소년
범죄는 가정의 파괴와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성인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조화롭고 애정에 찬 가정 생활은 정서적, 정신적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 가정 생활의
파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치루는 가장 심각한 희생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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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혼
1) 사고 파는 결혼
* 사랑할 권리
자본주의가 가져온 '자유'는 결혼에도 커다란 발자국을 찍었다. 봉건 시대까지 신분
사회의 결혼은 일차적으로 신분에 의해 규제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신분을
폐지함과 동시에 결혼을 신분간의 결혼이 아니라, 신분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결혼으로 만들었다. 신분적 제약은 봉건 시대까지 남녀간의 사랑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신분이 다른 남녀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용이와 월선이의 한맺힌 사랑 이야기는 용이는 평민인데
월선이는 무당 딸이라는 천한 신분이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서로 신분이 다른
남녀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결혼에
대한 신분적 규제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을 억압하였으며, 때때로 사람들은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걸거나 사회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억압에 저항하였다.
또 하나의 변화는 결혼에서 부모의 의사보다 당사자의 의식이 우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분 사회에서 재산과 신분의 소유자이고 장차 자식에게 이를 물려줄 사람인
아버지는 가부장으로서 자식에 대해 거의 무제한의 권리를 가졌으며, 그 가장 중요한
권리의 하나로서, 자식의 혼인에 대한 결정권을 가졌다. 결혼이 신분의 상속과 유지의
수단인 한, 그 일차적인 고려 조건인 신분인 한, 당사자의 감정은 부차적일 뿐 아니라,
흔히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가부장권의 약화를 가져왔고, 결혼은 부모에 의한 강제에서
해방되었다. 연애 결혼이 인권으로서 선포되었다. 이제 결혼은 자유롭고 평등한 두
당사자간의 자유로운 계약이 되었고 이 계약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애정이라고 선언되었다. 애정이 없는 결혼은(그전에는 오히려 일반적인
것이었던)비도덕적인 것이 되었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폐기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진보가 갖는 의미는 엄청난 것이다. 자유 연애를 인간의 자연적인 권리로
회복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가장 중요한 억압, 가장 중요한 불행의 근원의 하나가
폐지된 것이다.
* 너무 높은 목표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자유가 그렇듯이 결혼의 자유에도 함정이 놓여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신분 제도와 부모의 강제 대신 금전적인 고려를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결혼에 있어 경제적 조건은 한편으로는 매우 동물적이고 자연적인 선택 조건이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의 양육을 예비하는 결혼에 있어서 한 가족을 영위할 만한 경제적
능력(생활, 노동 능력)의 유무야말로 기본적인 고려 조건이다. 생활할 능력도 없이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방종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고려가 이러한 자연적인 조건을 넘어선 것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더이상 자연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않다. 경제적 조건이 흔히 그에게
합당한 것 이상의 지나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조건이 우리 사회에서 사랑과 결혼을 결정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예로 혼수 문제를 들수 있다.
서울 논현동에 사는 H양은 중매로 군의관인 K씨를 만나 결혼하기로 합의했다.
중매장이는 남자 집안에서 지참금으로 1억 이상을 바란다는 말을 전해 왔다. 개업해
줄 돈을 미리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신랑은 전주에서 의대를 나오고 부여군에서 일하는 의사다. 신부는 대학 무용과를
나온 미모의 여성. 중매를 통해 만난 이들은 추석을 쇤 후 결혼하기로 하고 지난 1월
약혼했다. 신부 어머니는 "아파트와 승용차를 사주고 전체 혼수 비용으로 3억 원을
들이겠다. 장차 병원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혼 기간 중 신랑이
자동차를 새로 사서 타고 다녔다. 그러나 신부 집에서 이 자동차 값을 안주고 모른척
하자 신랑이 어느 날 "결혼 안하겠다"고 통고해 왔다. 나중에 속셈을 알아 보니,
"아파트 승용차를 주고 병원도 차려주겠다는 약속을 결혼 후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 때문에 미리 3억 원 어치 혼수를 확보해 두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신부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결혼을 시켜야 하느냐"며 혼란에 빠져 있다.(주8)
얼마 전에는 3천만원 어치의 예단이 적다고 장인 장모를 폭행한 의사 사위가
있었는가 하면 아파트를 마련하지 못해 결혼을 못한 아들과 그 아버지가 연이어 목을
매 자살한 사건도 일어났다. 경제적 조건은 가장 일차적인 중매 조건이다. 다음은
경찰이 단속 때 압수한 소위 마담 뚜들의 수첩에 적혀있는 신랑 신부 후보들의 신상
명세서의 일부이다.
^456,356,356,356,123^ (여)
25세. 9월 13일 신시생
부친, 김^456,356,356,123^씨. 의성 김씨 서울 ^456,356,356,123^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현재 ^456,356,356,123^대 교수
어머니는 약국 경영, 작은 이모는 ^456,356,356,123^대 교수, 큰 이모는 종합 병원
외과 과장
자기 앞으로 40 평짜리 아파트가 준비돼 있음.
모 대학 치대 재학중.(주9)
일간 신문의 광고란에는 "결혼 상담소"라는 고정란이 있는데, 이런 광고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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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은행
남. 외교관 30 대 재혼.
남. 29세 행시합격자.
20 대 상속녀. 직장 확실한 남자 원함.
실제로 결혼에 있어서 일차적인 고려 조건이 애정이 아니라 금전적인 요인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애정은 이 일차적인 고려가 끝난 후의 이차적인 조건일 뿐이다.
먼저 조건이 적합한 사람을 골라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자유 연애의 한계'이고 '사랑이 꽃피는 사회'의 실상이다. 누가 그렇게 하도록
강제하고 있지 않지만, 자본가 계급은 자본가 계급과 결혼하며,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계급과 결혼한다. 재벌과 정치계, 법조계, 군, 관료들 사이에 혼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결혼은 이들이 세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노태우: 장남 재헌, 동방 유량 신명수 회장 장녀 신정화. 장녀 소영, 최종현
성경그룹회장 장남 최태원
김복동: 장녀 미희, 강성진 증권 협회장 차남 흥구
노신영: 장남, 정세영 현대 그룹 회장 장녀. 차남,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 막내 딸.
김우중: 김준성 전 부총리
정주영: 신한 해운
정몽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 딸 영명
결혼은 자유로운 상품 교환이 되고 있다. 결혼이라는 상품 교화에서도 역시 등가
교환의 법칙이 관철된다. 혼기가 된 남자와 여자는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 가치를
표시한 레테르를 붙이고 보다 나은 값에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상품이 된다. 그리하여
각자 제 값에 팔려간다. 자본가 계급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계급과
결혼한다.
등가 교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상품 교환으로서의 결혼에 있어서 '자유 연애'란
기껏해야 이 상품 교환의 장식물, 상품의 포장지에 붙여진 셀로판지로 된 종이꽃에
지나지 않으며, 최선의 경우에는 공정한 거래를 더욱더 빛나게 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며, 보다 나쁜 경우에는 '공정한' 거래를 방해하는 장애물로서 쓰레기통에나 처박힐
운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운명은 우리나라가 자본주의화되기 시작한
초기부터 싹텄다. '자유 연애'는 그것이 시작되자마자 배신을 당했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만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돈에 배신당하는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중요한 이 시대의 사랑의 테마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돈은 마침내 인간의 가장 자연적이고 인간적이며
내면적인 감정에 대해서까지도 승리를 거둔다. 사회적 관계만이 아니라, 사적인
관계에서까지, 생산을 둘러싼 관계만이 아니라, 가족 관계에서도 돈은 챔피언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전제했을 때 인간은
사랑을 사랑으로만 교환하고 신뢰를 신뢰로만 교환할 수 있다. 또 만약 예술을
즐기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이 예술적 교양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극과 격려를 실제로 주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모든 관계는 자신의
현실적인 개인적 삶을 그 의지의 대상에 따라 특수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사랑의 감정도 없이 사랑한다면, 즉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며 결과는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주10)
그러나 전능한 신, 돈은 사랑마저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그 소유자에게 부여한다.
그가 설사 인격적으로 천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돈은 그를 귀한 인간으로 만든다. 그가
설사 사랑할 능력이 없으며,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더라도, 돈은 그에게 사랑할 능력을
부여하며, 사랑받을 수 있게 한다. 그가 못생겼더라도 돈은 그 단점을 가려준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부인을 사들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돈이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고귀한 인간이더라도 그는 천한 인간이 된다. 그가 누군가를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하더라도 돈이 없는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 된다.
돈에 배신당하는 사랑은 두 가지의 또 다른 현상을 낳고 있는데, 그 하나는 연애와
결혼은 별개의 문제라는 경향이다. 이는 냉혹한 타산에 의해 지배되는 결혼에 대한
보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사과의 반 쪽을 먹어버린 뒤에 온전한 사과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결혼과 분리된 연애가 온전한 것일 수는 없다. 연애를 결혼과 분리하는 그
순간부터 연애 역시 타산적인 것이 된다. 그 사랑은 이기적이고 순간적이고
피상적이며, 서로 책임지지 않는 것이 된다. 현대의 대중 가요의 대부분이 순간적이고
퇴폐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요는 병뿐 아니라 약도 주는데,
순간적인 사랑의 상처를 막기 위해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는 처방도 해준다.
또 하나의 현상은 수단으로서의 애정이다. 인간이 수단이 되고, 결혼이 거래가 되면,
애정도 거래를 위한 수단이 된다. 자본주의 자유의 진가가 구두닦이에게 재벌의 꿈을
심어주는 데 있듯이, 자본주의적 자유 연애의 진가는 애정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신데렐라의 꿈, 혹은 재벌 사위가 되는 엘리트 사원의 꿈을 심어주는 데 있다.
결혼이 이렇게 매음이 되는 것은 자본가 계급에게 전형적이다. 자본가 계급에
있어서는 거의 노골적으로 금전적 고려가 애정에 우선하며, 흔히 당사자의 의사보다는
아버지(재산을 소유한)의 의사가 우선한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이 지나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다.
노동자들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자들에 있어서는 부가 그들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면 노동자들에 있어서는 궁핍이 그 자유를 가로막는다. 이들에게 경제적인
조건은 곧장 먹고 사는 생활의 문제다. 가족의 최저 생계비에 훨씬 못미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은 이들을 결혼 상대자로 적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은 "넥타이 매고 일하는 신랑"을 얻는 것이 소망이다. 인천 여성
노동자회가 1989 년 12월 인천 지역 전자 산업 중 민주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 상대자로 남성 노동자를 택하지 않겠다에
찬성이 46%, 반대가 54%로 나타났다.
* 신랑감 제일 조건 학벌인가?
그렇다. 이 사회에서 학벌은 곧 경제력으로 통하고, 인정받는 직장을 얻으려면 전문
대학이라도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소 인간성이 떨어져도 학벌이 좋은 편이 결혼
상대자로는 낫다고 본다. 결혼은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려면 인간성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밥만 굶지 않으면 최고이던 옛날과 달리 인간답게 살려면 문화 생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는데 이 역시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더구나 생활이 궁핍하면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내기 마련이고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가정에서는
자녀 교육도 원만히 이루어지기 어렵다. 궁핍한 가정에서 아웅다웅하며 자라는
아이보다야 여유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성격도 좋고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경제력의 문제는 맞벌이하면 되는 것이고,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자기 발전도
된다고 하는데 기혼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임신·출산에 따른
작업량의 부담은 고사하고 아이를 낳으면 당장 맡길 곳도 마땅하지 않고, 탁아소에
맡긴다 해도 아이 키우며 집안 일, 공장 일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결혼해서까지
고생스럽게 사는 것을 바라는 여성 노동자가 어디 있겠는가.(주11)
이런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농촌 총각의 결혼난이다. 농업의 피폐로
농촌 총각은 가장 부적당한 결혼 상대자가 되었다. 대도시에는 젊은 매춘 여성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지만, 농촌에는 젊은 처녀가 없다. 상대적 빈곤은 인간의 조건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결혼을 못해 비관 자살하는 농촌 총각이나 돈을 위해 스스로를
망치는 매춘 여성은 그 대표적인 희생자다. 자본주의는 사랑의 싹을 틔웠지만, 그것은
미처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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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상황들의 불확실성에 관하여
폴리
내가 바라는 것, 그건 너무 많은가요?
우울한 인생 중에 한번쯤
한 남자에게 나를 바치는 것
그것은 너무 높은 목표일까요?
피첨(성경을 두 손에 들고)
그건 이 세상 인간의 권리란다.
잠깐 왔다 가는 인생이기에 행복하고
세상 모든 즐거움을 나눠 갖고
돌덩이가 아니라 빵을 먹는 것은.
그건 이 세상 인간의 적나라한 권리란다.
그렇지만 누군가 자기 권리를 또한 찾았다는 말
그 말은 슬프게도 아직 아무도 못들었지, 아, 어디에 그런일이
누가 한 번 권리를 찾고 싶지 않겠니
하지만 상황이, 그게 그렇질 않단다.(주12)
2) 신데렐라 콤플렉스
자본주의 사회의 결혼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여성에게 결혼이 생존
수단이라는 점이다. 속된 말로 결혼을 영구 취직이라고 하는데, 결혼을 함으로써
여성이 먹고 살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엥겔스는 결혼이 보다 더 흔하게
여자쪽의 매음이 된다고 말했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재투성이인 부엌에서 먹고 자야 할
정도로 비참한 지경에 놓여 있었다. 백설 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백조의 호수의
오데뜨 공주 등도 한결같이 비참한 처지나 곤경에 빠졌다. 가사 상태에 빠지거나
마술에 걸려 인간으로 살 수가 없었다.
오늘날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매우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녀들의 대부분은
"남자에 한함"이라는 마법에 걸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인간답게 살 수가 없다.
그녀를 이 견디기 힘든 비참함과 마법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백마의
기사"뿐이다. 결혼을 주요한 소재로 삼았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제인 오스킨 시대에 젠트리 계급의 여성이 적입을 선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이란 교양은 있되 재산이 얼마되지 않는 여성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명예로운 대책이었다. 그러한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 할지라도,
빈곤을 면하려면 여성들이 가장 기꺼이 바라는 보장된 길인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오스틴의 소설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선택할 경우 상당히 합리적인 배려를 하고
있다. 낭만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것이 혐오스럽다 할지라도, 생존에 관심을 갖는
이상 여자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오스틴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오늘날의
여성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선택하고 있다.(주13)
신데렐라에게 결혼은 현실로부터의 구원이며 피난처다. 여자는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싸우는 대신 참으면서 기다린다. 자신을 이 비참함에서 구제해 줄
누군가를.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악취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용감히 쳐부수고,
그녀를 구출할 것이다. 그리고 왕자의 성으로 가서 공주는 이제 더 이상 현실의
무시무시한 적들과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되고, 먹고 사는 것, 그 절박한 고생스러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곱게 치장하고 왕자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일 것이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오직 이것만이 고즈넉한 성의 고요를 ? 것이다.
그녀의 전부를 안아주기에 넉넉한 남자의 가슴에 그녀는 자기를 떠맡겨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결혼에 인생을 걸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대신 남자가 자신을
떠맡아 주기를 기대하는 것,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한 남자의 품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여성들이 앓고 있는 신데렐라 증후군이다.
금전 결혼이 자본가 계급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면 신데렐라 컴프렉스는 쁘띠
부르주아, 혹은 상층 노동자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왕자는 어떤가?
왕자는 신데렐라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해 버렸다." 죽은 백설 공주에게도, 잠자고
있던 공주에게도, 밤에만 춤을 추던 오데뜨에게도, 상사병이 나도록 반해 버렸다.
공주는 매우 비참한 처지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힘으로는 그런 비참함을 뚫고
나올 수 없었다. 왕자는 죽은 백설 공주와, 잠자는 공주와 말 한마디 할 새도 없었다.
그러나 왕자는 공주에게 반해 버렸다. 왕자는 공주의 무엇에 반했을까?
왕자가 공주에게 반한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다. 왕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대등한 (아니 어떻게 그럴수가!) 한 인간이거나, 그녀의 내면 세계, 그녀의 능력, 그
어느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녀의 비참함과 그녀의 외모였다. 왕자의 백마와 힘셈과
용기가 그러했듯이 공주의 비참함(열등함)과 아름다움이 '사랑의 조건'이 된다.
나는 신부감의 제일 조건으로 외모를 친다. 왜냐하면 여자는 뭐니뭐니 해도 얼굴이
이뻐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여자는 꽃, 남자는 나비로 비유하는데 이는 여자가 주로
남자에 의해 선택되고 사랑받으며 가정의 분위기를 밝게 가꾸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자가 악세사리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가
대체적으로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쁜 것은 좋은 것, 미운 것은 나쁜 것이라는 사회 통념에 따라 여자는
이뻐야 하고 이쁜 여자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이쁜 여자를 얻는
남자는 능력있다는 소리를 듣고, 어쩌다 부부 동반이라도 있어 함께 나갈 경우 남자
체면도 서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얼굴만 이쁘면 됐지 능력있고 똑똑해봤자 남자
알기 우습게 알고 따지기도 잘해 골치만 아프다. 좀 생각이 모자라고 마음이 잘
안맞는다 해도 살다 보면 여자는 남자를 따라오게 되어 있고 차츰 맞추면서 살 수도
있는 것이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주14)
여자가 자신과 대등하면 골치만 아프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 외모, 장식적
가치, 악세사리로서이지, 하나의 인격, 그것도 자신과 평등한 인격으로서는 결코(!)
아니다. 여자의 인격 같은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여자의 인간적 특성들은 골치
아픈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물건이 그렇듯이 여자도 자기 자신을 갖지 않는다.
물건이 그렇듯이 여자도 그 소유자를 따라 오게 되어 잇다. 왕자에게 공주는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소유물과 같은 것이다. 그녀는 남자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과 마찬가지로 그가 '차지'하고 '정복'하고, 그럼으로써 남자로서의 위신을 완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 필수품이다.
만화나 영화, TV 드라마 등 현대의 대중 문화 매체들은 이런 남녀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현세의 출세적 '외인구단'의 엄지와 까치가 그렇다. 엄지에게는
자신의 생이나 목표가 없다. 두 남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그녀의
삶의 줄거리이다. 그녀의 사랑은 수컷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암사슴처럼 승자를 향해서
끊임없이 동요한다. 그런데 이런 엄지를 까치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까치의 사랑 속에서 순수한 헌신보다는
광적인 집착과 소유욕을 본다. 그 소유욕은 너무나 커서 심지어는 정말로 엄지를 위해
희생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희생이란 다른 형태의 소유다. 이런 집착은 상대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진실한 애정이 아니라, 그의 세상과 다른 모든 인간들과의 관계,
소유와 승부욕의 집약적인 표현이다. 그에게 엄지는 정복해야 할 최후의 땅일 뿐이다.
이 땅을 정복하는 데에 적용되는 논리는 양육강식이다.
여성이 결혼 없이는 비참함과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의지가지 없는
신세인 한, 남자가 여자에게서 단지 미모만을 취하려고 하는 것, 여자를 소유물로 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 둘은 완벽한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남자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에 반한 여자와, 여자가 자신보다 열등하다는 것에 마음이 놓이고 득의 양양한 남자.
남자에게 자신을 온통 맡겨버린 여자와 여자를 소유물로 여기는 남자. 미모 외에
아무런 생존 능력이 없는 여자와 다른 무엇보다 공주의 미모만을 중시하는 남자.
동화책은 이렇게 끝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만약 이들이 정말 행복하다면 그 관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한 쌍조차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의 성을 들여다 본 어떤
사람은 이렇게 알려왔다. "왕자는 공주를 돌보느라 지쳐서 심장 마비에 걸리고, 공주는
대리 인생을 사느라 우울증에 걸려서 각성제를 복용하고 있었다."(주15)
현실의 신데렐라들은 불행히도 그 성이 모래성이었음을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척박한 모래성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은 피어나지 못하고 가시덤불만 자라난다.
게다가 현실 생활의 자그마한 위협에도 이 모래성은 흔들리고 금이 가고 구멍이
뚫리고 허물어진다.
이 성을 모래성으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성이 사랑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해 타산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함정은 바로 그들의
사랑 그 자체에 있다. 공평하고 다행스럽게도(그러나 우리의 돈바라기 남자들과
신데렐라에게는 불행하게도)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의 반대급부로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돈에 대한 사랑이지, 그 자신에 대한 사랑은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다. 현실의 왕자는 대개의 경우 임금 노동자에 불과하다. 현실의 왕자는
백마 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게다가 공주는 불로초를 구하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왕자와 아이 둘을 낳고 배가 축 처진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게다가 왕자는 공주가 그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
J. 버너드의 연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이 결혼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첫번째 요인은
결혼 후 남성에 대한 기대와 실제 사이의 불일치를 겪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나오는 높은 기대를 거는데, 남편이 기대한 만큼
강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충격을 받고 남편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는 것이다.
남편이 모든 면에서 자신을 이끌어 주고, 자기 대신 험한 세상을 헤쳐 줄 것이라는
기대는 결혼과 함께 헛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남자의 우월성이란 이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데서 오는 사회 경제적인 지위의 우월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돈이 많다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것과 인격이 훌륭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흔히 상반된다. 게다가 남편의 사회
경제적 우월성조차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점점 더 취약한 것이 되고 있다. 가련한
임금 노동자인 남편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그리 확고하지 못하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책임질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여자는 마음 놓고 내디딘 발걸음이
벼랑 끝이었음을 발견하고 당황하고 불안과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한편 남자들 역시 가부장적 관념과 아내의 기대와, 가족을 부양하는 것조차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것으로 만드는 현실 사이에서 모순에 처한다. 우월해야
한다, 혹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아내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관념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에서 좌절과 낭패를 맛본다. 게다가 남자들도 변하고 있는
세상과 함께(그보다 좀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변하고 있다. "나 하나만 믿어 온
당신"보다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며 자기 일을 가진 여성"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와 평등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보조자나 시중꾼보다는
진정한 상호 협력자, 동반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또 설사 평등하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자기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짐을
나누어 지기를 바라는 남자들이 늘고 잇다. 이런 남자들은 가정 내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자신의 의존심을 왕자가 언제나 받아주리라고 생각해
왔다. 무기력하면서 얼굴만 예쁜 신데렐라뿐 아니라, 유능하고 어느 정도 자기 영역을
개척한 여성들조차도 그런 유혹을 받고 있다. 신데렐라는 자신이 일을 그만두는 것을
왕자가 싫어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데렐라가 성 안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며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왕자는 어떻게 했을까?(주16)
코머셜 아티스트인 로이스는 게일리와 함께 생활하게 된 이후부터 갑자기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유롭게 살아 나가기 위하여 얼마나 이를 악물고
살아왔던 것일까 하고 스스로도 놀랍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쨌든 젊은 시절 양친 곁을
떠난 이래 생활비를 함께 벌어줄 사람과 지낸다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가령
자기의 수입이 없더라도 먹고 사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입장이 된 것도 역시
이것이 처음이었다. 로이스는 게일리의 집에서도 자기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지내는 시간은 세월이 흐르는 데 따라 차츰 줄어들었다. 그대신 집안에서
서성거리거나 게일리를 위해 정성이 담긴 요리를 만들면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력적인 작업 습관으로 길든 과거의 그녀의 모습은 이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몇 개월이 지나자 로이스는 완전히 일을 중단해 버리고 온종일 책을 보거나 뜰의
야채 밭을 돌보며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어렴풋이 다시 한번 미술 학교에
들어가 그림을 공부하고 화가가 되어 볼까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이스가 이와 같이 가정적으로 되어 가는 데 따라 게일리의 사랑은
식어갔다. 그녀는 이미 과거 그를 열중케 했던 자유롭고 진취적인 여성이 아니었다.
자기는 이 사람의 패트런이 되기 위하여, 또는 그녀의 일의 대용품이 되기 위하여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결국 게일리는 속은 듯한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이전의 그녀에게 있어서 일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톰이라는 믿음직한
남편을 얻은 지금은 그만두지 못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일에 대하여 이전과 같은 의욕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매일 아침 출근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무거운 책임에도 지쳐 있었다. 그녀는 톰에게 당분간 일을 쉬고 집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톰은 몹시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집에서
단 한 사람의 일꾼이 되고 싶지는 않아. 일은 계속하지 않으면 안돼요."
다이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매우 견실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래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마음이 들지
어떨지, 어쨌든 1 년 정도만 함께 살아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미용실을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우리는 근사한
아파트를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래 그녀는 완전히 달라졌던 것입니다.
이전의 그녀는 일주일에 서너번은 밤에도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아파트를 산
뒤로는 전혀 일하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나의 저녁 식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자기가 근무하는 가게 주인의 험담을 이것저것 늘어놓는가
햇더니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둔 겁니다. 요즈음은 빨리 결혼해 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리고 자기는 지금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설거지라든가 청소를 도와주지 않으면
"남존 여비 사상"이라고 화를 냅니다. 결국 그녀는 무엇이든 보살펴 주기를 원하는
아기와 다 큰 여자의 양쪽 자리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됩니다.
저쪽은 좋은 면만을 취하고 나는 항상 최저의 역할을 맡을 뿐이지요.
여자가 결혼으로 일생의 승부를 걸던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물론 주체적인
여성들 자신의 성장에 근본적으로 달려 있지만, 세상이 여성들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외모를 가꾸면서 참고 기다리는 대신,
자기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경제적인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사랑의 부조화에 있다.
신데렐라들은 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식으로 배워왔다. 유능한 여성들조차 일에
자신을 쏟기보다는 결혼하기 전에 잠시 거쳐가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진정한 흥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첫 결혼에 실패한 한 인기 정상의 연예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기인으로서 인기얻고 사는 것도 기쁨은 있었지만 제겐 그 당시엔 일에
대한 욕심이나 애착이 정말 없었어요. 여자의 행복이란 좋은 남자 만나 가정 꾸미는
그 이상의 것은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었거든요. 여자에게 있어서 '일'이란 건 '사랑'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 여겼어요." 그러나 반대로 남자들은 남자에게 사랑이란
일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 배운다. 결과는 무엇인가? 서로 기대 수준이
엄청나게 어긋나는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에 인생을 걸고 있는 여자와, 자기 삶에서
짜투리만을 여자를 위해 남겨두고 아내를 자기 생활의 작은 공백을 메우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남편. 결혼에 대한 기대에 가득차 있던 여자는 신혼 초부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남자들은 자기 좋을 대로 움직일 줄 알았던 여자들이
이것저것 요구를 하자 "잘못 걸렸다"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이 삐끄덕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결혼은 행복의 문이 아니라 갈등과 부조화에 찬 '지옥의 문'이 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이해가 안가는' 존재가 된다.
3) 가부장적 가족 관계
(1) 가부장제의 기초
자본주의 핵가족을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확립함으로써 전통적인 가부장권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봉건 시대에는 노동의 단위가
가족이었으므로 주된 가족 형태는 대가족이었고, 남성이 지배하는 부계 사회에서 이
대가족은 부권의 토대였다. 그러나 기계제 대공업은 노동자를 개별로 파악한다.
노동자는 가족을 단위로 해서가 아니라, 각 개인별로 자본과 계약을 맺는다. 이에 따라
가족은 종족의 번식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필요한 최소 단위로 축소되었다. 부부와
부모의 양육과 보호가 필요한 미혼의 자녀들만이 이 가족에 속한다. 핵가족이
성립함으로써 이제 결혼하는 남녀는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가지 않고, 각자 부모를
떠나 독자적인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 의의는 획기적인 것이다. 가부장제의 가장
큰 기초의 하나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의 가계에 편입되는 결혼,
시아버지에서 며느리까지의 위계적 가족 관계는 붕괴된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자신과
상대방의 가문, 가계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은 가문이나 가업,
가산의 유지 보존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롭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을 폐지함으로써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를
붕괴시킨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남성을 가사 노동에 참여시킴으로써
가족 내에서의 남녀 평등의 기초를 점점 확대시키고 있다.
그러나 또한 자본주의는 가부장제를 완전히 폐지하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각
계급마다 서로 다른 기초 위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가족 관계의 내용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핵가족이
전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에서다. 자본가 계급에서는 재산의 상속이
부모로부터 자식의 독립을 해치고 있다. 유산 계급은 노동자 계급보다 훨씬 더 자식이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핵가족의 성립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후에도
부모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주17)
뿐만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가족은 성별 분업이 보다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이
성별 분업은 재산 소유의 불평등으로 귀착된다. 남편과 아내는 법적으로 평등하고
축첩은 폐지되었지만, 그 대신 자본가인 남편과 상속자를 낳아 기르는 역할에 매인
아내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과 매춘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이에 비해 봉건 시대의 농노와는 달리 완전한 무산자인 노동자 계급에서는 남성
지배의 기초는 무너졌으며,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가 늘어나고, 동일 노동의 분야가
확대됨으로써 가족 내 남녀 평등의 기초가 확대되고 있다. 이 가족에서의 남녀
불평등의 최후의 기초는 남녀의 고용 차별과 임금 격차, 여성의 가사 전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권이 사유 재산과 성별 분업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가부장적인 가족은 자본가 계급의 가족이다. 그 밑에는 남편은
사회적 노동만을, 아내는 가사 노동만을 하는 중간층 가족이, 그리고 중산층 가족
아래에는 남편과 아내 모두가 나가서 일을 하는 노동자 가족이 있다. 크든 작든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사회 가족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고 봉건적인 가부장적 관습이
훨씬 많이 남아 있어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고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주18)
* 영원한 어린아이
가족은 인간의 성격, 정서,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장이다. 태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후 일생 동안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성격의 기초가
대략 3살 정도까지 거의 형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족 관계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가부장적인 가족이 인간의 심리와 심성, 인격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가부장적인 가족은 인간의 불평등을 체화시킨다. 가부장적인 가족은 인간을 주체와
대상, 주인과 종, 지배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 자기를 내세우는 자와 자기를 죽여야
하는 자로 구분한다. 가부장적 가족의 중심은 남자들이다. 가부장제는 남성들을 자기
중심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여자를 몰자아적인 존재로 만든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가학적인 심리를, 여성에게 피학적인 심리를 심는다.
나는 4 남 1 녀 중 맏이이자 3 대 장손으로 태어났다. 할머니는 집안의 대를 잇는
장손이라면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셨다. 5살 위였던 막내 고모가 나를 돌보아 주었는데
나의 잘못으로 얼굴에 조그만 상처가 나도 막내 고모가 야단을 맞았다. 국민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머니는 1주일에 한번씩 물을 데워서 나를 목욕시켜 주셨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탓으로 나는 할머니와 고모가 전적으로 나만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찾아오시는 어머니마저 나를 지극히 편애했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여자들은 남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비단 나뿐 아니라 이
땅의 대부분의 남성들은 단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히 장남인 경우에는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것 때문에 집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랐을 것이다.(주19)
요즈음의 젊은 청년 중에는 엄마로부터 과잉 보호를 받고 맹목적으로 귀여움을
받으며 양육되어지고, 공부만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엄마가 대신 맡아 해준다는
식으로, 엄마의 탯줄과 꼭 묶여 있어 이유가 늦어지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어른처럼 성장하고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이다. 자신이 취한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남자가 대체로 여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 이러한 남자는
자기 중심적으로 연인이나 아내를 엄마의 대리, 성의 도구, 허전할 때의 위안적인
존재로밖에 보지 않는다. 여자의 인권을 짓밟아 뭉개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남자
자신의 행복조차 상하게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주20)
가부장제는 기본적으로 남자를 과잉 보호 속에서 키운다. 더욱이 다른 여자 형제에
대해 차별적으로 떠받들려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영원히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에서 자라는 남자들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가부장적 가족은 남성의 자아를 매우 취약하고 불안정하고 불건전하게 만든다. 언제나
자기를 내세우고, 지배해야 하고, 우월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남성의 자아는 오히려
더 상처받기 쉽다. 이것은 남자들의 자아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욱더 완고하고
경직되게 만든다. 손 쉬운 방법은 여자를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아를 내세우는 데서 상처받기 쉬운 남성은 그러한 취약성을 방어해야만
합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입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진짜
인간에 의해 거부되는 것보다 대상물에 의해 거부되는 것이 훨씬 쉬우니까요. 내
생각에는 이러한 과정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어떠한 형태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도
파괴시킵니다.(주21)
상대방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체이며, 자기 자신이 상대방과 마찬가지로 주체라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통의 근원이다. 사랑은 단순한 화합이 아니며, 주체간의
대립과 모순을 통한 화합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단한 투쟁이다.
그러나 우월 의식으로 길들여진 상처받기 쉬운 자아는 상대를 대상으로 만드는 손쉬운
방법으로 이 투쟁을 회피한다.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으며(왜냐하면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자아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여자는 별수 없다"는 생각 뒤로 숨어 버린다. 그들은 여자를 자신의 이러저러한
욕망의 대상, 장식물, 심부름꾼, 자신의 찬미자, 자신의 마음대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존재로 취급한다. 이들은 여자의 삶을 자신의 삶에
일방적으로 통합시켜 버리려 하며, 상대야 어떻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며,
일방적으로 여자가 자신에게 맞추어 살 것을 강요한다. 이런 남자들이 여자에게
보이는 정열은 실상 여자에 대한 지배욕이나 소유욕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바탕은
이기심과 자의식일 뿐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본성을 억압한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상대를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 속에서는 이러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사랑
속에서 자신이 향상되고 충만된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받아들일 때이다. 그는 점점 더 허전해지고 사랑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진다. 그의
깊숙한 내면에서는 그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며, 그런 식으로는 결코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러나 이런 본성의 소리는 현실 제도의 물결에
휩쓸려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흔히 더욱더 비뚜로 나간다. 그는 사랑을 얻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이를 숨기기 위해 의심많고 욕심 사납고 변덕스러워진다. 그는
마치 어린애가 떼를 쓰듯 사랑을 요구한다. 그는 자신이 사랑을 쏟았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해 (그것의 자기 중심성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반대급부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자동 판매기에 동전을 넣고 스위치를 누르면 커피가 쏟아지듯이. 그는
언제나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애정을 쏟는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
이런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며 맹목적이고 비판
능력과 자아가 없는 여자다. 그리하여 가부장제는 여성들을 이렇게 길들이기 위해
수많은 채찍들을 개발해왔다.
가부장제는 그것이 성립된 극 순간부터 취약한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 더 많은
억압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는 자연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남녀는 상호
보완적으로 창조되었지,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지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억압들이 늘어나고 강해질수록 남녀는 그 자연적인 관계와는 멀어지고,
사랑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남녀 모두의 불행은 심화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실현되는 애정은 진실로 상대방을 향한 것 뿐이다. 따라서 사랑은 평등을 전제로 하고,
대상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사물과의 관계처럼 일방적이 되는 것, 소유와 지배의 관계가 되는 것, 이것이 사랑을
소외된 것으로 만들고, 인간이 남녀 관계를 통해서 더 풍부해지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갉아먹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은 상호적인 기브 앤드 테이크다. 즉 사랑은 사랑의 줌이 거절되지 않을까 하는
떨림이요, 사랑의 받음이 대립물을 이기지 못할까 하는 떨림이다. 사랑은 소망이
자신을 기만하고 있지나 않은지, 또는 자신이 자신을 완전히 되찾을지 여부를 놓고
노력한다. 받는 쪽은 받음으로 말미암아 타자보다 더 풍요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받는 쪽은 물론 풍요롭게 되지만 타자도 꼭 그만큼 풍요롭게 된다. 마찬가지로 주는
쪽은 주는 것으로 말미암아 더 빈곤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타자에게
줌으로써 그만큼 많이 자신의 보물을 늘리는 것이다. 로미오의 품 안에서 줄리엣은
말한다. 내가 더 많이 줄수록 나는 더 많이 갖게 된다고.(주22)
아무 것도 받기를 원하지 않으면서 주기만 바라는 여자. 이것이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의 희생을 양분으로 섭취하면서 자라난 남성들의 이상이다.
남자들이 자기 중심적이 되도록 훈육된 이면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타자 중심적이
되도록 훈육되었다.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여자들은 언제나 객체가 되는 연습을
해왔다. 여자들은 남자 중심적인 가족과 사회에서 늘상 시중꾼, 보조자, 엑스트라의
역할을 떠맡도록 강요되었다. 그뿐 아니라, 여자들은 "여자는 남자 잘 만나는 게
최고다"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라며,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식으로 배운다. 그런데
그 전부인 사랑을 할 남자들은 대부분이 자기 중심적인 애정을 바란다. 즉 여자에게
자신을 포기하고 그녀의 삶을 남자의 삶에 일치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여자들에게 사랑은 자아에 대한 배반으로서만, 자아의 포기로서만, 일방적인
헌신으로서만 존재한다. 여성들은 누구나 자아와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어느
하나를 포기할 것을 강요당한다. 남자들의 지배욕과 소유욕이 사랑의 허명을 쓰듯이
여자들의 노^36^예적 예속과 의존이 여자의 길이며 참사랑이라고 미화되어 왔다. 그
가운데 여자들의 자아상은 점차로 부정적인 것이 되고, 자아는 부정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이 자기 과장에 익숙하듯이 여자들은 자기 비하에 익숙해진다.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만나도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기보다는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고 참고 주저앉는다. 남자들의 자아는 가부장제라는 철갑을 두르고 상처를 최대한
방어하고 있지만, 무방비 상태인 여자들의 자아는 무수히 상처를 받는다. 중년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 화병의 가장 주된 요인은 가부장제가 주는 여성의
자아에 대한 상처에 있다.
최근의 '화병에 관한 연구'를 보면, 화병환자 100 명 중 87 명이 여성인데, '자신의
화병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속상한 일 참고
살다보니'(48 명), '속 끓는 것 참다가'(22 명), '화나는 것 참다가'(32 명), '억울하고
분한 것 참다가'(38 명) 등으로 답했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에게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속상한 일들을 제공하며 그것을 참아야만 하도록 만든다.
요컨대 가부장제는 여성들을 병들게 하고 이를 통해 유지된다. 그러나 그 숱한
채찍들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자아는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급증하고 있는 우울증은 단순히 여성이 병든다는 징표가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이 채찍들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징표다. 억압의
부당함을 느끼지만 아직 그것을 깨치지 못한 과도기의 현상인 것이다.
이제 가부장적인 가족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고, 남성의 인격과
삶을 왜곡시키며, 남녀 모두에게 커다란 불행을 가져다 주는지를 가부장적 가족의
단적인 현상들인 아내 구타와 남편의 외도를 통해 살펴 보자.
(2) 아내 구타
김 여인은 29 년 전 24세에 두 살 위인 이씨와 결혼하였다. 남편의 구타 행위는
결혼 1개월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김 여인의 처녀 시절 취미로 모아둔 예쁜
지갑, 손 수건 등이 조금 있었는데, 남편은 고향 어른들에게 그것들을 선물로 갖고
가자고 하여 다른 것이 어떻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렇듯 처음 매를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친정에 임시로 기거하고
있었으므로 김 여인은 친정 식구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꾹 참았다. 남편이 여관 집
여자와 가깝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김 여인은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좀
물었더니 대뜸 "계집 년이 강짜가 심하다"고 하면서 김 여인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짓찧어 댔다. 김 여인은 그런 이야길 듣고 스스로 소화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이
좁다고 생각되어 다시는 남편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타를 이렇다 할 특별한 이유없이 한 달에 한 두번씩 당했다. 결국
1975 년경에는 남편의 구타로 인해 김 여인은 7개월 된 태아를 사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여자가 찾아 와 김 여인 남편의 정부라고 밝히고는 용서를
빌면서 자기가 멀리 떠나려고 하니, 차비를 좀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때 김 여인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돈을 얼마 정도 그 여자에게 주었는데,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는 낮에 들어오더니 "네 년이 얼마나 잘났기에 남편 바깥 일에 참견이냐! 이런
년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고 하며 갖은 폭언을 쓰면서 펌프 물을 푸고 있는
김 여인의 배를 마구 차고 마당에 쓰러뜨린 후, 김 여인을 나무 절구대로 마구
때려댔다. 나중에 병원으로 실려가 하루만에 죽은 사내 아이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여인은 자기가 참을성이 없고 정말 남편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닌가
느꼈고, 어떻게 하면 남편의 나쁜 습관을 고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바램도
가져보았다. 그래서 김 여인은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면 온갖 보살핌에 신경을 다
썼다. 세숫물을 떠다 바쳤고 심지어 발을 씻어 준다든지, 손톱, 발톱까지 깎아주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큰 소리 안 나게 하고 살아야
친정 어머니 말씀처럼 일부 종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
여인의 건강은 펌프물도 길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그러나 이런 남편의 구타 행위는 점점 날이 갈수록 잔인해져서, 어떤 때는 약탕관을
깨서 등을 찌르며 때리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다 뽑아놔서 파마도 할 수가 없게
되기도 했다. 또 연탄집게로 심하게 두들겨 대서 온 몸이 멍투성이었고 아이들 앞에서
옷을 벗기고 술병, 몽둥이, 가구, 골프채 등 닥치는대로 손에 들고 구타했다. 그런
구타의 결과 늑골과 요추의 골절상을 입기까지 했다. 김 여인은 병원 치료도 가끔
받으러 다녔는데 남편은 의사와 간호원 앞에서는 온갖 친절과 자상한 태도를
보이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큰 걱정을 하는 척 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구타는 점점
심하여 과도를 목에다 대고 "네까진 년 죽이기는 식은 죽먹기야"라고 협박하는가 하면
"만약 도망가거나 하면 어딜가든지 찾아내어 죽여 버리겠다"고까지 한 적도 있다.
이러한 생활의 반복 속에서 김 여인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헛소리를 지르고, 헛것이
보이기까지 했다. 때로는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자살을 하면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1978 년에는 이러한 증상으로 모 정신 병원에서 2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남편이 김 여인을 구타하는 이유는 남편의 외도에
대해 어쩌다 얘기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고, 반찬이 입맛에 안맞는다고, 방이
따뜻하지 않다고, 바지 주름이 잘못 잡혔다고, 친정 어머니에게 여편네 멋대로
스웨터를 사드렸다고 등등이었다. 남편은 한번 구타하기 시작하면 보통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이삼십 분씩 구타를 계속했다. 이렇게 남편은 김 여인을
규칙적으로 계속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구타했다.
그러나 김 여인이 더욱 모멸스럽고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은 남편이 구타 후에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김 여인을 붙들고 부부 관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먹을 것, 속치마, 잠옷, 심지어 팬티까지 사들고
들어와서는 다정스럽게 대해주기도 하며 지난 일들은 다 잊으라고 하며 말문을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처럼 김 여인을 치욕스럽게 한 적은 없다.
또한 남편은 김 여인에게 구타뿐 아니라 일체의 금전 사용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렇듯 김 여인은 29 년 동안 결혼 생활에서 김 여인 자신이 가정 생활 용품을
선택해서 사보거나 갖고 싶은 것을 단 한번도 구입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은 자녀들도
구타하였는데, 5 남매가 모두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맞으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자녀들은 항상 기를 펴지 못하고 성장했다. 남편은 평소에 여자라는 것은 집에서
아이나 낳고 집안살림만 잘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여자와 바가지는 밖에
내놓으면 버린다는 속담이 꼭 맞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딸 자식 공부는 적당히
시켜서 시집만 잘 가면 그만 이라고 하면서 딸보다 아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집안 꼴
잘 되어 간다고 하며 아들을 때리기도 했다.(주23)
* 은폐된 전쟁
1983 년 2--3월 708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 후
남편에게 구타당한 일이 있읍니까"라는 물음에 42.2%가 있다고 대답했다. 또 "지난
1년 동안 남편에게 구타당힌 일이 있읍니까"라는 물음에 14%가 있다고 답했다(그런데
이런 설문 조사에는 무응답자의 비율이 20--40%에 달하는 등 매우 높아 구타의
비율이 실제보다 낮게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한 달에 한번 이상, 일주일이 멀다고
구타당하는 주부가 100 명 중 1 명이나 된다. 서울 인구 천 만 중 가정 주부를 300
만으로 잡을 때 3 만 명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면 서울에서 아내 구타가 하루에
200 내지 1,200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주24) 매일매일 가정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전쟁이.
미국에서는 살인의 20--50%가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살인의 40%는 부부의
살인이며, 이들의 85%는 아내가 구타당해 살해된 경우라는 보고가 있고, 여자
피살자의 40%는 남편이 살해한 경우라고 한다. 독일에서도 여성 피살자의 22%가
남편의 폭행으로 죽었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타로 사망한 경우는 통계가 없어 알 수 없고, 아내 구타의 실상
역시 많은 경우가 가려져 있어 정확한 파악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빙산의 일각인
드러난 경우만 보아도 그 실상이 참으로 엄청나다. 여성의 전화의 1983 년의 분석을
보면, 구타당한 여성의 56.9%가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였고 신체 여러 부위를 심하게
맞아 골병이 들거나 멍이 들고 머리카락이 빠진 경우가 30.8%였으며, 노이로제 혹은
정신병에 걸린 경우가 10.3%였다. 구타로 인해 코뼈나 이빨이 부러지고, 고막이
파열되는 경우가 흔하다. 김광일의 조사에 따르면 구타당하는 아내의 61%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골절이 41%, 탈구 21%, 안구 탈출, 안구 파열이 6%, 칼
등의 예리한 물건에 찔린 상처가 21%, 임신한 아내를 때려 유산한 경우가 29%나
되었고, 두개 골절이 2 명, 안구 파열에 의해 안구가 튀어 나온 경우도 있었다.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기도 하며,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화상(담뱃불로 지짐)을 입기도
한다. 특히 뇌손상으로 인한 간질과 구타로 인한 후유증으로 일생을 불구가 되는
경우도 있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김광일의 연구 대상 중 54%가 아내 구타 후 강간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는데,
구타당한 후 공포와 모멸감 그리고 상처의 아픔 때문에 여성에게는 성교할 의사가
전혀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폭력으로 성교를 감행하는 것이다. 연구 대상 가운데는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타 후 강간하는 경우가 6%나 있었고 적어도 자녀들이
눈치챌 수 있는 상황, 이를테면 옆 방이나 마루에 자녀들이 있는 상황에서 안방에서
큰 소리로 성행위와 관련된 명령을 하거나 동작을 하는 경우가 20%였다. 81%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구타하고 있었으며, 20%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나체로 벗겨놓고 구타하고 있었다.
93%는 구타 이외에 말로 협박하고 욕을 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있었는데 상스러운
욕에서부터 상대방의 체면과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는 말을 하고, 죽으라고
저주하거나 죽인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욕설과 폭언은 정신적인 상해를 가하는
것으로써 정신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구타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육체적 손상에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보다 치명적인 손상은 정신에 가해진다. 구타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구타당하는 아내는 지극히 자존심이 상해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구타를 당했다는 수치심, 남편에 대한 분노, 구타에 대한 공포와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무기력 등으로 인해서 정신적 혼란과 다양한 정신,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반복적인 구타로 불안, 초조, 공포, 분노, 체념의 정서 반응과
적절한 감정 표현을 못하여 불면증, 두통, 소화 불량, 가슴 답답증, 속열이 얼굴로
치솟는 느낌 등 정신, 신체 장애 증상이 나타난다.
더 나아가 구타가 오랜 동안 반복되면 자존심의 상처가 깊어져 주체성의 상실,
자아의 파괴에 이르며, 정신병까지 걸린다. 그 중에는 자신은 맞을 만하니까 맞는다고
막연히 믿고 이러한 결과로 자신이 매맞을 짓을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으며,
남편에 대해 죄책감마저 갖는 죄업 망상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나름의 적응 방식의 하나이다. 아내 구타는 아내의 신체와 정신,
인격 자체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아주 심한 구타를 주기적,
반복적으로 당하는 경우가 4--12%이다. 이 중 가장 낮은 비율인 4%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더라도 부부를 800 만 쌍이라 가정하면 32 만 명의 아내가 심한 남편의 구타로
노^36^예 상태에 빠져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강도나 강간범, 혹은 (강도나 잡아야 하는데 엉뚱한 사람을 잡는) 폭력 경찰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진 폭행, 강간, 살해 등이 가정에서 남편에 의해 더욱더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가정 파괴범은 바로 가정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떤가?
몇 해 전 남편에게 구타당한 부인이 남편을 경찰에 고발하여 구속된 사건이
일어나자, 매스컴은 일제히 '부부 싸움 법정으로 가야 하나'라며 아내가 남편을
고발하다니 세상 참 말세라는 식의 보도를 대서특필했다.(주25) 사법 기관은 폭행한
남편에 대한 구속 영장 신청을 "폭행 동기에 정상을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음을 들어
혹은 "부부간의 일이고 상해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했다.(주26) "남편이
주먹을 휘두르는 버릇이 없어져야 하겠지만 남편을 처벌하려는 부인의 응징 풍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디 한 군데 호소할 곳도 없는 의지가지 없는 여성들이 가정의 '평화'의
허울 아래 오늘도 '폭력' 남편의 희생 제물이 되고 있다.
* 맞을 만하니까 맞는다?
앞의 재판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아내 폭행에 대한 흔한 통념의 하나는 "여자가
맞을 만하니까 맞는다"는 것이다. 아내 구타자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맞을 만한 짓"이란 어떤 것인가?
앞에서 말한 김광일의 연구에 의하면 남편이 말하는 아내 구타의 이유를 보면
의처증, 즉 부인의 품행을 탓하는 것이 36%, 남편의 외도를 부인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31%, 아무 것이든 닥치는 대로 트집을 잡아 구타하는 경우가 80%나
되었다(두 가지 이상을 들 수 있게 했기 때문에 합계가 100%가 넘는다).
부인의 품행을 탓하는 것과 남편의 외도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탓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데, 이것이 동시에 같은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오히려 심하게 외도를
하는 남편일수록 부인의 품행을 의심하는 경향도 있다. 어쨌든 이 세 가지가 모두
때릴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아내에 대한 의심이 이유있는 것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남편의 외도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구타를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이 아니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남은 것은 아무거나 트집을 잡는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내 구타자들에게는 아내의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다 구타의 구실이 된다. 사실상 아내 구타자들은 구타의 명분을 찾기 위해
아내의 행동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지켜보고, 물고 늘어진다. 시비를 거는 남편에게
반박을 하면 말대꾸한다고 때리고, 참고 있으면 남편 말이 말같지 않냐고 때린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고, 국이 너무 뜨겁다고, 혹은 국이 너무 식었다고, 남편을
화나게 했다고 때린다. 그런데 화나는 이유는 정말로 사소한 것이다. 맞을 만하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유가 불명확한 것이다.
게다가 설사 정말로 아내에게 결함이 있거나 아내가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그것이
구타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합리적인 대화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여자가
맞을 만한 짓을 하면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남자가 같은 잘못을
했다고 해서 아내에게 맞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구타가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왜
여자에 대해서는 자명하지 않은가? 때려서 해결하려는 태도에는 아내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들어 있다.
여자가 맞을 만한 일을 하니까 맞는다는 생각에는 이미,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관념이 깔려 있다. 맞을 만한 짓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아내의 불복종이다. 남편에게 대드는 것(남편의 말에 반박하는 것), 남편에게 말
대답하는 것(남편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등등. 다시 말하면 여자가 남자와
평등해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맞을 만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여자를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인 태도이다.
요컨대, 결코 맞을 만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아내 구타에는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도 있을 수 없다.
* 폭력 권하는 사회
그런데 왜 남편은 아내를 때리는가? 아내 구타자에 대한 사례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그 배경은 크게 두 가지이다. 지배와 피지배, 약육 강식, 경쟁이 지배한느 사회에서 각
개인이 받는 억압과 그로 인해 쌓이는 분노, 좌절감, 억눌린 감정, 스트레스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가부장적인 사회 질서와 권위 의식이다. 물론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후자이다. 사회 생활이 주는 압박을 아내에게 푸는 것은 아내가 약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쟁, 위계 질서, 감시와 감독, 상대적 빈곤, 이런 것들이 현대인들의 정서를
억압한다. 누구나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강고하고 거대한
사회 질서에 대해 각 개인은 무력하며,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어 있는지 잘 알 수도
없다.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에 매일 직면하면서 사람들은 가슴속에 무언가가 가득
쌓이는 것을 느낀다. 한 남자 노동자는 "아침에 출근할 때 쓸개를 내가 아는 곳에
떼어 놓고 온다"고 말했다. 쓸개를 떼어놓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비인간적인 상황들에
수시로 부딪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파괴적이고 폭력적 충동이 어느
정도는 일상적인 정서가 되었다. 폭력 영화, 만화, 비디오가 판을 치는 것은 단순히
그런 것을 공급해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한 수요를 낳게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런 파괴적 충동이 가정 내 폭력의 하나의 원인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사회에서 당한 것을 집에 와서 푸는 것이다. 부글부글 끓던 억눌린 감정은 용암이
약한 지표면을 뚫고 나오듯 약자를 향해 분출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요인은
아내를 지배하려는 남편의 욕구이다.
* 가부장적 권위 의식과 지배욕
폭력 가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편과 아내 모두가 가부장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의 대부분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아내를 결코 자신과 대등하다고 인정하지 못하고, 종처럼 부리고
완전히 지배하고자 한다.
정신적 공감대 없이 왕과 시녀 사이로 봉사해야 해요. 왜 진실로 나를 대해주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인간이라는 것을 조금도 이해 안해줘요.
아내 구타자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남자의 우월성이라는 신념이 자아 정체성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실생활에서 이 신념이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으면 곧 그들은 자아에 상처를 받고 으르렁거리는 것이다. 아내 구타에 관한 연구는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앨보우에 따르면 "학대자는 아내의 역할에 대한 개념에 집착하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 아내가 남편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격분하게 되고 부인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내를 자기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그는 아내의 순종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하여 아내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를 때리는 남편은
실제적 권위를 잃었거나 권위를 잃었다고 감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Whitehurst,1974).
"남편들은 아내에 의해서 자기의 초서열적인 위치가 위협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Faulk,1974). 폭력은 "가정의 우두머리로서 위치를 유지하려고 할 때에
생긴다(Gelles,1972)." "아내 폭행과 가학적 성욕을 성적인 쾌감보다는 오히려
지배욕과 관련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즉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 하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를 움직이려는, 말하자면 그의 신이 되고자 하는, 절대자가 되려고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이러한 상태는 상대방을 육체적으로 초라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상해를 입히는 형태로 실현된다." 아내
구타와 가부장적 권위 의식과의 상관 관계는 아내 구타자 중에서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 출신의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연구들이 아버지가
폭력적이고 어머니가 수동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남편 중에 구타자가 많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김광일의 연구에서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의 73%가 폭력 가정에서 성장해 왔고,
폭력 가정은 아니나 외형상으로 붕괴된 가정 출신이 15%나 되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하며 지내 온 경우가 53%, 반대로 아버지가 어머니로부터
구타당하며 지낸 경우가 18%이고 남편이 그의 어머니로부터 구타당하고 자라 온
경우가 41%, 그의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하고 자라 온 경우가 37%였다.
앞의 사례에서도 김 여인의 시아버지 역시 심한 아내 구타자였고 자녀 구타자였다.
남편의 할아버지대로부터 시작해서 자식에 이르는 4 대에 걸쳐 결혼한 남자 21 명 중
19 명(94.5%)이 전형적인 아내 구타자였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아버지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자라난
경우에도, 자신 역시 아내 구타, 아동 구타자가 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가정은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장이다. 이러한 가정이 왜곡되고
폭력과 지배와 이기적 욕망이 횡행할 때, 아이들은 그것을 몸에 익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똑같이 지배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리하여
악순환이 형성된다.
폭력 가정에서 남자 아이들은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 모순 때문에
갈등하지만, 다른 모델을 보지도 체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부장적
지배 질서를 몸에 익히고, 그에 익숙해져 그것을 자신의 사고 방식과 생활 습관,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일부로 체화해 버린다. 그리하여 자신이 가부장의 위치에 서게 되면
때로 모순과 갈등을 느끼면서도 사회가 워낙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명분 아래
그토록 부당하다고 느꼈던 가부장의 위치에 안주하게 된다. 나아가 그는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자면 어쩔 수 없다"고까지 이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은 사회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형성되어 버린 자기 자신이다. 이를
자신에게 감추기 위해 자기 합리화가 필요한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군주였다. 특히 어머님에 대한 아버님
말씀은 곧 법이었다. 가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조그만 일에서부터 아버지는
일방적인 명령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을 희생으로 대신했다. 어머니는 가정의
편안을 위해서 참아야 된다고 했으며 여자의 미덕은 복종, 순종에 있다고 알게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살 아오셨다. 어떤 논쟁이든지간에 일방적인 아버지의 승리로 끝났다.
어머니의 순종이 보여준 가정의 편안함, 그럼에도 아버지가 싫어졌다. 어린 나에게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려운 가정을 이끌어 가시는 데에 단 한 가지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느껴졌다. 가부장적인 단어를 알기 전에부터 눈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일방적인 승리를 배워버렸다고 할 수 있다.(주27)
그러나 가부장적 가족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것이 단지 가부장적 압제를
배우고 익히게 하는 데만 있지 않다. 가부장적 가족은 아동의 인성 발달에 여러 가지
장애를 초래하며, 특히 폭력 가정은 아동의 성장에서 여러 가지 인격 장애를 가져온다.
폭력 가정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는 그 어머니가 당하는 고통의 많은 부분을 함께
당한다. 어머니가 맞는 것을 울며 지켜보면서 아동은 폭력에 대한 공포, 구타자에 대한
증오와 분논,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자책 등 피구타자의 경험을
공유한다. 피학대의 직,간접 경험은 가학의 충동을 낳고, 육친에 대한 증오는 잔인성을
기르며, 분노는 격분(충동 조절의 장애)을, 자책과 무력감은 열등감과 자아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심는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바람직한 모델을 갖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리감과 생소함, 거북함, 억눌림을 느끼고, 나아가 증오를 품는다.
이 억압감과 증오감은 그것이 육친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느끼는 자에게
더욱더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들은 동시에 비판 의식과 자신은 결코 저렇게 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갖는다.
어떤 경우에는 이 반발감과 비판 의식이 본인의 의지, 주변 상황, 배우자의 태도 등과
결합하여 부정적 인성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 자기 내부에서 자라고 있는 가학성과 잔인성, 열등감에 대한 비판
의식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 의식과 반발이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의
갈등은 자아의 불안정과 모순, 갈등을 초래하며, 더 나아가 정서적 불안정, 이중 인격,
낮은 자존심과 의지 박약, 비관주의의 원인이 된다. 이것이 다시 부정적 인성을
극복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구타당하는 아내들의 태도 역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어떤 아내들은 자신이
다시 자식을 구타함으로써 남편에게 당한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거나, 자식을 미워하고,
유기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한다. 또 어떤 아내들은 남편에게 당하는 배신과 고통과
억압에 비례해서 자식에게 매달리고, 오로지 자식만을 바라보며 희생하고 헌신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양자가 교묘히 결합된다. 어떤 경우든 아동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환경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며, 남을 사랑할 줄 모르고, 의심이 많고,
정이 없고, 인색하며, 남에 대해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참을성이 없고, 의존적인 인성을 배양한다. 이러한 인격적 결함이야말로 남편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원인이다. 자기 자신의 결함으로 인해 남편들은 아내를 때리는
것이다.
김광일은 "아내 구타의 원인은 구타하는 남편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광일의 연구에
따르면 심한 아내 구타자의 70%가 인격 장애로 진단이 내려졌으며, 14%는 정신병적
증상을 보였다(의처증을 위주로한 편집 장애가 11%, 정신분열증이 3%). 인격 장애로
진단된 경우에는 편집성이 위주가 되는 경우가 35%, 반사회적 인격이 위주가 되는
경우가 11%, 양자가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16%, 폭발성 인격(주28)이 4%였다.
특징적인 것은 아내 구타자들 중 많은 경우가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때문에
때린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아내의 결점을 고쳐주기 위해, 버릇을 고치기 위해
때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책임 회피와 자기 기만, 합리화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내 구타자들의 우월 의식에서 나온다. 이는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나
부, 명예가 있는 남편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자신이 아내를 구제해 주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때리는 것조차 아내를 위한 시혜라고 생각한다. 이런
남편들은 죄책감이 없고 뻔뻔스러우며, 자신이 완벽하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그런데
이런 우월감이나 완벽하다는 망상은 사실은 열등감과 결핍감에 대한 보상 심리이며,
아내를 구제한다는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 인색함과 애정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는 아내를 때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히며, 그것이 잘못인 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충동을 자제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번번히 아내를
구타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그 역시 판단력을 잃고 책임을 아내에게 돌린다.
한편 구타당하면서 참고 살아가는 아내의 대부분은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남편의 구타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신이 참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이 순종이 남편의 가부장적 의식을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들이 순종하는 편을
택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화목한 가정'에 대한 집착,
결혼 생활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식을 부양할 능력의 결여가 이들에게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참는 쪽을 택하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때리는 남편에게는 아내가 맞아도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아내는 경제적 능력이 없고, 자식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맞아서
분하더라도 참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길 것이 뻔하다"고 믿기 때문에
남편들은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것이다. 구타를 하는 남편들 중에는 아내가 태도를
바꿔 대항하기 시작하면 크게 당황하고, 갑자기 비굴해지거나 더 이상 구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에서는 아내 구타가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일단 구타가 일어나면 경찰에 보고되고 경찰에 보고되면 법정에 서야 하고 법정에
서면 무조건 3개월을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하므로 구타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도
구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 구타는 결코 잘 잘못의 문제가 아니며, 단순히 남자가 육체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의 문제는 더 더욱 아니다. 남편의 폭력의 배후에 깔려 있는 것은
남자의 일방적인 승리를 보장해 주는 가부장제라는 확고한 사호제도인 것이다. 다음
사례는 가정 내 폭력을 퇴치하기 위해 사회적 수단들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3개월쯤 살았을 때였다. 또 폭언과 폭행이 시작되길래 그 동안 사귀었던
미국인 여성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였다. 그랬더니 쉼터를 소개해 주었다.
쉼터는 초라했지만 밤낮 없이 24시간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쉼터 팜플렛을
남편에게 주어 나도 남편의 폭행시 갈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이혼
서약서의 내용을 내가 불러주어 받아쓰게 한 후 사인도 하게 했다. 조금 지나자
남편이 저녁 먹으러 와서는 자기는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 이혼하느니
차라리 아이들과 다 같이 죽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부엌 바닥에 나를 쓰러뜨리고는 목을 조르면서 내가 한 행동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말하라고 하여 나는 목숨을 살려야겠기에 잘못했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이들의 생명도 위험했기에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그 쉼터를 또
찾았다. 다음날 아침 전문 상담원으로부터 상담을 받았는데 바로 고소를 하라면서
프린트된 고소장을 주었다. 그것은 중간 중간 밑줄 그어진 곳에 나의 이름, 남편의
이름을 적어 넣기만 하면 되고 비용도 필요 없었다. 나는 그때 취직도 할 수 없는
부인 비자를 갖고 있던 터라 거의 무일푼이었다. 그런 가난한 사람은 무료로 법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판결 받은 후에 남편이 소송 비용을 후불로 치러야 했다.
지금 기억하기에 약 50불 정도였던 것 같다. 상담소에서 작성한 고소장을 들고 법원에
갔더니 나이든 남자 경찰관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 서류를 먼저 심사하는 판사
앞으로 갔는데 그는 내 말을 들어본 후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 못 믿겠다는 듯이
남편이 이빨로 물은 팔의 상처를 보자고 하였다. 그 상처와 목에 난 상처 등을 보고는
바로 접수시키면서 그때 당시 아이들을 누가 돌보고 있는가를 물어 내가 쉼터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하자 아무런 재산도 직장도 없었던 나를 친권자로 인정해
주면서 열흘 후에 판결을 받으러 오라고 하였다. 그곳에서는 의사의 진단서도 필요
없었다. 판사가 판결한 법에 따라 내 남편은 집에서 2개월 간 쫓겨나게 되었다. 2개월
간 나와 아이들의 생활비를 대주면서도 나의 허락없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내가 경찰에
전화를 걸면 남편이 구속될 처지가 된 것이다.(주29) 그날 밤 남편은 모텔에서 잠을
자면서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나를 손에 너무 꽉쥐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는데 그런
자신을 반성한다고 했다. 또 자기 머리에 무슨 빛이 비치는 것도 같다며 내게
고맙다고까지 하였다. 다시 폭력과 폭언이 나와서 나는 미국에서의 이혼에 희망을
걸었다. 남편의 폭행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여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2백^36,36^3백 달러만 가지고 변호사에게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
돈만으로도 사건을 맡아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소송을 제기해 놓고부터 나는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어 미국 의사 고시 준비에 정신을 쏟아 차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 좋은
법 제도가 불안으로 어지럽던 나의 머리를 그렇게까지 맑게 하여 내가 능력을 힘껏
발휘하게 도와주는 데에 신비함마저 느꼈다. 변호사가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접수시키기
바로 전날 남편은 만약 내가 정말로 이혼하면 자기는 미국에서 자살해 버리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무척 큰 충격을 받고 고민 끝에 남편을 살리기 위해 이혼을
하지않기로 했다. 남편은 분명히 조금 변했다. 그전에는 온식구가 같이 죽자고 했으나
그때는 자신이 죽는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나와 자식들의 생명이 자기의 소유물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 순간이었나 보다. 나는 그 뒤로 10개월 정도를 열심히 공부해서
기초 의학인 1차 시험, 임상 의학인 2차 시험을 6개월 간격으로 합격하고 난 다음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게 어려웠던 생활 속에서 내가 폭행하는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그 성질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남편 역시 우리나라 여성 비하 문화의
희생자라고 인식했던 데 기인한다. 나는 나를 살려주었던 이 법 제도의 혜택을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받을 수 있도록 이 일을 위한 여성 운동에 나의 수입의 많은
부분을 써야할 의무를 느낀다. 지금은 남편이 상당히 변해서 가정 생활이 행복한
편이다.(주30)
(3) 남편의 외도
올해로 결혼 생활 10 년째를 맞는 두 아이의 어머니. 남편은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럭저럭 사는 축에 드는 편이다. 허리띠를 제대로 풀고 살 수 없을 만큼
빠듯했던 사업이 2--3 년 전부터 눈에 띠게 호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살 만하게 되면 딴 마음 먹게 마련인 것이 남자들의 속성인가? 외박이 거듭되면서
한부인은 남편의 신상에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의 뒤를
캐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에게는 숨겨둔 여자가 있었다.
처음 남편은 그런 사실을 딱 잡아뗐다. 한마디로 "있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사람잡을 여편네"라는 것이었지만 한부인이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대니까 이번에는
아주 터놓고 "그래, 그렇다면 어쩔테냐?"는 식으로 막 나오더라고 했다. 그때부터
불화가 일기 시작한 집안은 두 사람의 싸움 소리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아내는
분한 마음에 악을 쓰며 대들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으레 손찌검으로 나왔다. 한부인은
그렇듯 툭툭 내뱉는 남편의 말이 뼈아프게 가슴을 저려왔다고 했다.
남편의 사설을 정리해 보면 대충 이렇다.
"사내가 바람 좀 피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여자가 교양 없이 난리를
치느냐", "바람 은 피웠지만 남편 구실이며 가장 구실 못한게 뭐 있느냐. 밖에서
벌어다 주면 여자는 안에서 아이들 거들면서 살림이나 잘 하면 될 일이지 웬말이
그리도 많으냐", "허리는 절구통같이 해가지고 어디 하나 매력있는 구석이 있어야
남자가 한눈을 안 팔지", "남자를 제대로 이해할 줄 모르는 맹꽁이 같은 여편네", "그
여잔 진짜 여자야. 적어도 당신과는 비교가 안 돼."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것은 남편이 자신의 부정을 뉘우치기는커녕 그것을 일종의
사내다움으로 분칠하면서 아내의 힐난에 고압과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주31)
* 정신적 폭력
남편의 외도는 여성을 괴롭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다. 여성의 전화의 1986 년
5월 1일부터 1987 년 4월 30일까지의 상담 사례 분석에 따르면 남편의 외도가
21.79%로 1위였다. 또 주부들의 전화의 통계에 따르면 1989 년 6월 1일부터 1990 년
5월 31일까지의 전화 상담 1천 4백 64건 중 부부 문제 상담이 61.3%로 가장 높은데,
그 중 남편의 외도가 37%로 가장 많았다.(주32)
MBC 여성 살롱 인생 상담에 접수된 문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혼에
관한 상담인데, 이혼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의 부정(33.1%)이다. 대법원이
1985 년 한 해 동안 이혼 사건에 대해 집계한 통계에서도 이혼의 원인으로 배우자의
부정 행위가 48%로 단연 많다. 남편의 외도는 여성의 정신 지로한의 가장 큰 원인일
정도로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 고려 병원 신경 정신과 이시형, 홍종화
박사팀이 1973 년부터 1983 년까지 이 병원에서 정신 질환으로 확인된 주부 291
명을 대상으로 '주부 환자의 정서적 갈등에 대한 원인 및 패턴'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90%가 가정 문제 때문에 병이 났으며, 62%가 남편 문제로 정신 질환을
일으켰음이 밝혀졌다. 그 중 가장 많은 32%가 남편의 외도로 인한 것이었다. 2위인
자녀 문제와 관련된 환자 16%, 시부모와의 갈등 12%에 비해 월등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주부들의 정신 질환은 심리 증상으로 불안(28.4%), 우울(11.2%),
신체 증상으로 두통(8.6%), 위장 장애, 불면증 등을 낳는다. 이동원은 배우자의 부정
문제는 부부간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정신적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정신적 폭력이 우리 가정에
비일비재하게 횡행하고 있다. 이근후가 대도시 부부 700쌍을 대상으로 한 1984 년의
조사에 따르면 남편의 34%, 아내의 5% 정도가 혼외 정사의 경험이 있었다. 이는
이동원의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 남자의 33.2%, 여자의 6.6%가 혼외 관계의
경험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남편의 바람에 의해 배반당하는 여인의 사랑은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사랑의 테마다. 1970 년대에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이 국산
영화로서 보기 드문 관객 동원을 한 것이나, 최근 연극 '위기의 여자'가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이것이 많은 여성들에게 여전히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직도
여성들에게는 '눈물의 씨앗'이다.
남편의 첫 번째 배신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상의 거의 모든 아내들은 '이 세상
남자가 전부 바람을 피워도 내 남편만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뢰는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이러한 신뢰가 깨진다면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그녀에게 치욕이 될 뿐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정조를 지키는 것은
결혼 관계의 일차적인 요건이다. 이런 신뢰를 짓밟고 결혼의 약속을 깨는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다. 그러나 자기 아내는 결혼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이를 배반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다.
* 일부 일처제
우리 사회에는 인간, 특히 남성의 본성이 일부 일처제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일부 일처의 단혼이 우리의 지식이
미치는 한 원시 사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부 일처제의
보편성은 그것이 매우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일부 일처제가 인간이 가장 안정되고 바람직하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가족
형태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동물에 있어서도 암수의 지속적인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대개 새끼의 부양과 관련된 것이다. 즉 발정기가 끝난 뒤, 다른 수컷들이
더 이상 그 암컷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 후에도 그 암컷과 관계를 맺은 수컷은
계속해서 그 암컷과 함께 있으면서 암컷을 보호하고, 돕고 먹을 것을 공급하며, 새끼를
낳아 독립할 때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한 명의 인간이 자립적으로 살아가기까지는 그 어느 동물보다도 오랜 기간에 걸친
부모의 수고가 필요하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의 하나인 모성애와 부성애는 이에
대한 자연의 배려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어린이에게는 자기 부모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강력한 경제적,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는데, 부모에게 있어서 자기 자식을 갖고, 자신이 그들을 기르고자 하는
소망보다 일차적인 것은 없으며, 자식에게 있어서 자기 부모에게 양육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따라서 자신들의 자식과 자기를 낳은 부모로 구성된 가족이 가장
이상적이다. 가족은 경제적 단위일 뿐 아니라 정서적 단위이며, 정서적 관계는 경제적
관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자식의 성장에는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성인 남녀에게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부양의 의무가
삶의 중요한 동력과 동기를 부여한다. 안정된 가족 관계는 인간의 정서적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안정은 일부 일처의 가족에서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의 부모에 대한 전적인 의존은 부모의 무한한 헌신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전적인 헌신과 베품은 오직 배타성 속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만약 대상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면, 그 하나하나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모성애와 부성애는 본능적으로는 자기 자식에 대한 배타적인 애정이다.
애정의 강렬함과 깊이는 오직 제한된 대상에 대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관계의 배타성과 강력한 유대는 부부 관계의 배타성과 강력한 유대의 기초다.
일부 일처제의 또다른 기초는 남녀 관계의 배타성이다. 이러한 배타성은 남녀의
관계 그 자체의 성질에서 오는 것이다. 우선 남녀간의 육체적인 결합 자체가 배타성을
요구한다. 근원적으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행동인 이 육체적인 결합은 상대의
단일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능적인 것이다. 따라서 질투심의 뿌리는 매우
깊다. 사회 제도가 아무리 남편의 외도를 용인하더라도 여성들에게는 그것은 언제나
참기 어려운 본성의 거역, 배반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첩을 두는 것이
공공연히 용인되었던 봉건 시대에도 "시앗하고는 하품도 옮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런 배타성은 고등한 동물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발정기의 동물 중 많은 수가 1대 1로만 관계를 맺는다.
남녀 관계의 배타성의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는 남녀간의 결합이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 육체의 통일적인 관계이며, 이 관계가 두 사람의 개체간의 상호
원조와 공동 생활이라는 전면적인 관계라는 데에 있다. 우선 남녀간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서로가 자기 자신으로서 사랑받기를 원하고, 상대방을 특별하고 특수한
한 개인으로서 사랑한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자신이 한 사람의
개체로서 사랑받을 만하고,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자아
정체성과 정신적, 정서적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부부는 생활 공동체다. 그런 점에서 남녀간, 부부간의 관계는 인간이 맺는 가장
전면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직업적인 관계나 친구 관계와는 다르다. 부부는
자식으로 묶여 있는 생활 공동체다. 이러한 전면적인 관계는 상호간의 성실성을
요구하며, 제3자가 이 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관계 자체를 붕괴시킨다. 친구와는
육체적인 관계가 없으며 하나의 생활 단위를 이루지도 않고 그와 함께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부 관계의 책임의 정도는 친구 관계와 비할 수 없다.
우정은 여러 대상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수적으로 많은 친구는
질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를 어느 정도는 희생한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비해 생활
공동체로서의 부부 관계의 성실성과 책임은 전적인 배타성을 요구한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행복할 때난 어려울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겠다는 결혼 서약은 그것을 표현해 준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서로를 보살피는 강력한 유대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배타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남녀간의 애정이 상대방에 대한 몰두를 거쳐
지속성과 일관성에 대한 바람으로 나가는 것은 이러한 본성의 요구이다.
인간의 성욕 역시 처음부터 부부와 부모 자식의 이러한 관계에 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인간의 성욕은 처음부터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 동물의 성욕은
보다 직접적으로 생리적인 성적 본능과 결부되어 있다. 원숭이의 구애는 암컷의 몸에
변화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이런 변화는 생리적인 요인들에 의한 것이고, 이는
자동적으로 수컷의 성적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수컷은 이에 따라 구애 행위를
계속하는데, 암컷의 발정에 영향을 받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수컷들이 구애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암컷의 상태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에 비해 좀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간의 성욕은 동물과 같이
직접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통제를 받을 수 있는
유연하고 적응성이 있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인간에게서 특별히
발달한 두뇌의 피질이 이성적 판단을 통해 성욕을 조절하고 통제한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영역이며, 그가 본능적인 성욕을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가는
그 판단과 조절 능력에 달려 있다. 이 판단과 조절 능력은 교육과 훈련에 의해서
형성된다. 두뇌 피질이 발달하지 않은 동물들은 생리적인 변화와 외계의 자극에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인간의 성욕은 본능적인 충동에 더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작용하도록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행위는 언제나 본능적
충동과 이성적 판단의 통일적이고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다. 이성적 판단이 본능적인
성욕에 미치는 영향은 흔히 가정하는 것처럼 반드시 억압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조화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본능 자체가 이를 통해서만 실현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를 군혼적 욕망과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연적인 충동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부장제라는 인위적인 제도다. 가부장제는 남자의 뇌를 군혼적인 욕망과
그것을 합리화하고 강변하는 논리로 길들인다. 가부장제는 남성의 뇌에 성욕을
조절하고 통제할 이성적인 훈련을 시키지 않으며, 나아가 이성적인 판단을 가부장적인
기준에 의해 하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는 군혼적 욕구 자체를 생산한다.
그것은 가부장제가 부부간의 사랑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사랑을
소외시킨 대신 남성에게 그에 대한 보상으로 군혼적 욕망을 제공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계급 제도와 가부장제는 사랑이 없는 결혼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서로를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가부장제는 이를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가부장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높은 담을 쌓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 남자는 여자를 멸시하고, 여자는 남자를 소원하고 억압적인 존재로
느끼게 한다. 서로에게 낯설고 불평등한 존재들 사이에 정신적인 사랑 같은 것이 싹틀
수 없다. 그리하여 남녀 모두가 부부 관계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
여자는 그러한 불만을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해소하지만, 가부장제 의해
자식으로부터조차 체계적으로 배제당하는 남성들은 그것을 결혼 바깥의 관계에서
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남자를 외도로 몰아가는 것조차도 순전히
본능적인 육체적 욕구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욕구다.
* 외도의 배경
혼외 관계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랑이 없는 결혼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결혼이 인간의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감정과 유리되어 계급적 질서, 신분이나 금전에 의해
좌우되면서부터 결혼 이외의 관계에서 애정을 구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결혼에서 애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을수록 애정이 결혼 밖으로 흘러나갈 가능성은
높아진다.
따라서 금전적 고려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되는 유산 계급의
결혼에서 외도가 가장 빈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본가 계급에서 남편의 외도가
가장 빈발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여자들의 사랑(?)을 살 수
있는 능력(돈)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외도는 결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싸게
치인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 때문에 이혼보다는 껍데기뿐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택하는 것도 이들 계급 편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랑 없이는 결혼이 반드시 금전 결혼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일시적인 충동에 몸을 맡기고, 이것이 임신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하여 애정이 식어 버린 결혼의 보상으로 다시 일시적인 충동에 몸을
맡기려는 충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일시적인 충동은 '남자로서'
한번쯤 그럴 수 있다는 무책임하고 치기어린 속셈에서 노안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한 경우에도, 그리고 결혼 생활을 파괴할 만한 불만이 없는 경우에도 종종
남자들은 바람을 피운다. 자신의 '남자다움'을 확인하고 싶어서, 또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부담과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관계에 대한 망상에서,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에 대한 신선한 자극을 찾아서,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이 모든 경우에 외도의 충동은 가부장제가 보장해 주는 남자의 유리한 위치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남자다움은 완전히 가부장제가 규정한 것이다. 이혼을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외도를 하는 것은 이중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무책임은 종종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다. 그러나 아내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고,
가정에 불행을 초래하며, 또 다른 여자의 삶을 왜곡시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이라고 불릴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이기적인 욕망과 무분별한 충동에 지나지
않으며, 사랑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사실, 외도의 경력이 많은 남자들이 사랑이
가득한 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흔히 그 반대인 것은 어떤 경우에도 외도는
기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심지어 자식까자)을 짓밟으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고, 상대의 약점을 악용하는 것이며, 타인의 감정적, 정서적
요구와 고통에 대한 불감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이렇게 순수하게
자기 중심적인 욕구를 배양한다.
'남자다움'과 '사랑'의 가면 뒤에는 여자를 자신과 대등한 인격으로 보지않고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 사고, 가부장적 우월성과 특권을 누리려는 욕구, 아내가
경제적 무능력과 자녀 문제, 사회적 인식 등으로 인해 이혼하려 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 이런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외도는 결코 부부사이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아내 구타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깔려
있으며, 이를 지지해 주는 사회 체제가 깔려 있다.
거의 모든 남자들은 아내가 바람이 난다면 당장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참혹하게 짓밟히는 모멸감과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분노와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무능력, 이혼한 여자에 대한 편견, 이혼한 부모를 가진 자식들이
겪어야 하는 갖가지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고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눌러 참고 사는
것이다.
외도는 남편의 우위와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가부장제를 등에 업고 남편들이
아내에게 휘두르는 정신적 폭력이다.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이 그렇듯이 외도를 하는
남편들도 대개 남자가 우월하다는 가부장적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신이 외도를
하더라도 아내가 참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고 그런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구타하는 남편들이 그렇듯이 외도를 하는 남편들도 외도를 자신의 가부장적 지배를
확립하고, 이를 행사하며, 확인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삼고 있다. 외도가 남자다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우월자의 지위 확인이라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내 구타와 마찬가지로 외도 역시 자식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외도는 이미 결혼과 가족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식들은 내용적으로 붕괴된 가정에서 자라나게 되며, 그로 인해 정서적,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게 된다. 일부 일처제에 충실한 것은 곧 자기 자식에게 충실한 것이며 반대로
외도는 배우자뿐 아니라 그 자식에 대한 배반이다. 대개의 경우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식들의 자아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
외도는(그가 의도하든 안하든)자녀의 출생에 대한 저주이며, 그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어린이들은 막연히 아버지가 외도를 하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끼고
죄책감을 가지며,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거나 아버지가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느낌으로써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자녀들이 입는 이런 상처는
그것이 어린 시기에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더 치명적인 것이다. 이런 상처로 인하여
많은 인격상, 인간 관계상의 장애와 곤란이 생겨난다. 이런 어린이들은 난폭하고
무자비하고 산만하게 되거나 반대로 수동적이고 자신감이 없고 내성적이 되기 쉽다.
그리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된다.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는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태도를 무의식중에 닮게 되고,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남자에
대한 피해 의식과 불신을 갖게 된다. 아내 구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외도를
한 가정의 자식이 자라서 다시 외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들이 긍정적인
자아 동일시의 대상을 갖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인격적인 결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가부장제가 얼마나 인간의 심성을 황폐하게
하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여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결혼이 사랑의 또하나의 출발점이
아니라 사랑의 골인 지점, 종점을 의미한다. 물건을 차지하기 위한 열렬한 노력은 이제
끝났다. 목표는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그의 할 일은 끝났다. 그는 그의 집에 아내를
가져다 놓았다. 이로써 아내와의 지지한 관계를 위한 노력은 막을 내린다. 아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흥미를 잃는 것이다. 소유로서의 사랑은 결혼하는 순간(혹은
보다 나쁜 경우, 단지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순간)에 모두 달성된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른 대상을 향한다. 아내와의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안중에 없다. 끊임없이 목표를 바꾸어 나가는 정열, 거기에 있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 단지 소유욕, 이기적인 탐욕이다. 앞의 사례에서 나이들어
배가 나왔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매력이 없고, 따라서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여성을 자신과 평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물건으로 보는 태도에서 나온다.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데 외모와 성적인 매력은
하나의 요소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도,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도 없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인 애정은 언제나 상대방의 정신을 무시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의 정신도 무시된다. 상대에게서 육체적 욕구만을 추구함으로써 그 자신
역시 단지 육체적인 존재가 된다. 그는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신도 황폐하게
하며, 그러므로 그의 사랑은 자신에게나 상대에게나 정신과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대신 이를 파괴한다. 이런 파괴로서의 사랑의 극한이 바로 매춘이다.
(4) 매춘
* 매춘의 천국
이대 앞에서 아현동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매우 아이러니칼한 풍경을 보게 된다.
'첫발자욱', '새색시' 등의 간판 아래 순결을 상징한다는 순백색 웨딩드레스의 눈부신
행렬이 끝나는 바로 그 옆에 붉은 빛 조명이 새어나오는 '유혹'이니 '여왕벌'이니 하는
술집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의 단면이고, "신성한 결혼",
"혼인의 순결"의 실질적인 의미다.
매춘의 역사는 길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만큼 번성하고, 모든 남성을 타락으로
이끌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역사상 최초로 일부 일처제를 법으로 확립한
자본주의 시대만큼 일부 일처제에 대한 배반이 일상화된 적도 없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 일부 일처제는 축첩과 공창의 폐지라는 명백히 여자쪽
권리의 신장으로서 보다 확고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곧 남성의 일부다처 권리의
자동적인 포기를 뜻하지는 않았다. 부르주아 사회는 신분의 권리 대신 돈의 권리를
대치했다. 축첩을 할 권리는 없어졌지만, 그대신 무소불능의 돈의 권리가 법률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에는 그 사회의 대다수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돈을 가진
소수의 부르주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절대적,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 어떤 법적인 뒷받침이 없더라도(아니 법으로 금하더라도) 매춘이
극성스럽게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매춘이 많이 행해진다. 외국
남성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가장 놀라는 것 중의 하나는 상품화된 성을 마음껏
즐기는 남자의 모습이라고 한다. 서구 사회와 비교해 볼 때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도 우리 사회의 성 매매 조직은 대단히 놀라울 정도로 번창해 있다.
성 매매에 관련되는 여성의 수와 빈도에 관한 비교적 보수적인 추측에 근거한 통계를
보면 20세 이상의 남성은 한 달에 1.1 회의 상품화된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서구 사회의 0.032 회에 비해 무려 40배가 높다.(주33)
이는 우리나라에서 성이 개방되고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에게만 순결의 의무를 부과하는 잘못된 성윤리가 널리 퍼져 있고, 남녀의
자유롭고 바람직한 교제가 가로막혀 있으며, 성이 억압되고 보다 심하게 남녀 관계가
왜곡되어 있다는 표시다. 아울러 선진국에 비해 특히 심각한 우리나라의 남녀 차별과
상대적 빈곤, 실업 문제를 드러내 주며, 황금 만능과 인권 경시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실 성적, 도덕적 타락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되었다. "매춘의
천국"이라는 국제적 명성에 걸맞게 우리나라 도시의 거리는 가는 곳마다 호텔, 여관,
룸 살롱, 요정, 술집으로 가득 차 있고, 심지어 다방과 이발소, 사우나탕까지 오염이
되었다.
타락과 부패는 거의 일상사로서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다. 1988 년 12월 23일
하루의 신문 사회면만 봐도 자기 동생이나 자식과 같은 미성년자들에게 음란 비디오를
보여주거나 국민학교 여학생에게 윤락 행위를 시켜 돈을 버는 사람들, 퇴폐 영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잇따라 실려 있다. 이들이 "재수없게도" "연말연시 일제
단속"이라는 연례 행사에 맛뵈기로 걸렸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고,
"전면 단속"이라는 것도 도망갈 구멍을 터주고 소란만 피우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런 소란으로는 그 잔뿌리도 다칠수 없을 만큼 도덕적 타락의 뿌리는
매우 깊을 뿐 아니라, 이 사회의 근간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타락상 또한
엄청나다.
* 현대판 노^36^예 사냥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위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최근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는 소동을 빚고 있는 인신 매매다. 인신 매매는 이미 6,70 년대부터 행해졌는데
최근에 와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일간 신문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인신 매매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길가는
소녀 때려 실신시킨 뒤 매매, 전매", "역, 터미널 심야 다방서 여고생, 여공 등에 접근,
취직시켜 주겠다며 유인, 말 안들으면 흉기 협박", "공원에서 10 대 소녀 등 모두 18
명을 유인해 지방 도시의 윤락가에 팔아넘겨",(주34) "20 대 청년 등 속칭 '빠리꾼' 2
명이 취직시켜 주겠다며 여관으로 유인한 후 폭행하고 다음 날 서울 강동구
천호동 속칭 텍사스 골목의 송하 식당에 76 만원을 받고 팔아 넘겨."(주35)
60 년대 말부터 70 년대 초반까지 많았던 수법으로 일명 '탕치기'라는 강제 납치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데, 그 수법은 30 내지 40 대의 아주머니가 중고등 학생 정도의
소녀에게 "서울역이 어디냐, 거기까지 데려다 주면 사례비를 주겠다"고 유인해
따라오면 바로 기둥 서방에게 팔아 넘기는 방법이다. 기둥 서방에게 넘겨지면 제일
먼저 성적 학대를 당하게 되는데, 하루 10 명 내지 15 명 정도가 드나들며 강간을
하는 것이다. 20여일 동안 그렇게 하면서 그 동안에 일부러 도망갈 기회를 주고
어김없이 다시 잡혀 오게 만든다.
그러는 과정에서 도저히 탈출할 수 없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그래서 매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강제 납치에는 나이 어린 소녀의 희생이 많은데, 그것은 '영계
백숙'이라고 해서 어린 소녀를 찾는 손님들의 식욕을 돋구기 위해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데로 한번 팔리면 아편, 히로뽕, 대마초 등을 이용하여 발을 뺄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런 조직의 인신 매매꾼이나 기둥 서방들은 경찰의 범인 검거에 정보원
역할을 해주고 있어 은밀히 공생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 경찰의 단손을 피하느라
뜯기는 게 많아서 하룻밤에 3 만 내지 35,000원에서 방값, 포주, 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7,000 내지 8,000원 정도로 도대체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나마도 기둥
서방에게 다 빨리는데 기둥 서방들이 그들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그들이 없으면
영업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매춘에서 벗어날 수 없다.(주36)
* 개만도 못한 팔자
이놈의 생활 지긋지긋해서 그만 두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어요. 고향의
부모님께 죄진 것하고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당장 그만둘 수도 없어요. 부모님은 제가
좋은 직장에서 잘 있는 줄 알고 돈도 공장에 다닐 때보다 많이 부쳐드렸어요. 낙태를
세 번씩이나 했는데 피임약을 먹으면 속이 이상하고 안좋더라구요. 체질에 안맞는
모양이어요. 가끔 마이신을 먹지만 속이 안좋아요. 콘돔을 사용하는 남자들과 마구
관계를 하고 나면 쓰라리고 따끔따끔해요. 여기 오는 손님은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데
그 중에는 배운 사람이 더 많은데 꼭 정신 이상자들 같아요. 공장 다닐 때 친구도
창피해서 찾아가지 못해요. 여기서 있는 날까지 있다가 적당히 그만둬야 하는데
시집가서 애낳고 살긴 글렀어요. 성질은 나빠만 지는데 마음은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실은 마음이 넓어진 게 아니라 모든 게 귀찮고 재미가 없는 거지요. 같이
있는 언니 얘기론 가축 병원에서 진돗개 교미 붙이는 데도 몇 십만원 받는대요. 긴 밤
자고 나도 겨우 손에는 7,8천원 들어오는 우리 팔자보다 개팔자가 더 낫다고요. 나는
개보다 못한 처지지요. 그래도 옛날 공장 다닐 때보다야 백번 좋은 대우지요.
한마디로 개 같은 세상이고 개가 살기 좋은 세상이지요.(주37)
매춘 여성은 부르주아 사회의 인간 소외의 극한을 보여 준다. 그것은 매춘 여성이
어떤 점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춘 여성은 인간이 아닌 존재,
단지 물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마치 빵이 그렇듯이 욕구를 채워주는 대상일
뿐이다. 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노동을 하고,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없다. 이들의 삶 전체가 소외 자체다.
이들은 자신을 단순한 도구로 삼는 인간들과 자신이 단순한 도구가 되는 관계만을
맺는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존재지만 우리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이고, 이
사회의 밖에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이 사회의 도덕적 시민권이 없다. 따라서 거의
아무런 권리도 없다. 공적인 사회 체제 그 어느 것의 보호나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이 사회는 이들을 있어선 안될
존재로 규정했다. 그들은 매일매일 그 존재가 부정당하면서 살고 있다. 매춘 여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과 실업, 돈의 지배, 그리고 잘못된 성윤리와 가부장적인 가족의
희생물이다. 이들 여성이 매춘을 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는 빈곤이고, 그 다음은 강간
등의 성폭행 경험과 가정 불화로 인한 가출이며, 세번째는 실연 등 남녀 관계에서의
상처다(대개는 육체 관계로까지 발전했거나 임신까지 한 뒤 버림받은 경우). 지금도
공단 게시판이나 공단 주변의 전봇대를 비롯하여 유수한 일간 신문에 이르기까지
"침식 제공 월수 ^456,356,356,123^만원 초보자 환영"이라는 살롱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직, 저임금에 중노동, 가족 부양의 부담 등으로 허덕이는 막다른 골목의 젊은
여성들, 노동력을 파는 것조차 거부당한 여성들이 이제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련한 희생물 위에서 타락한 포주들, 기둥 서방들, 인신 매매꾼들뿐
아니라 그보다 조금도 덜 타락하지 않은 경찰을 비롯한 공적인 체제가 그 피를 빨고
있으며, 나아가 타락과 인간 소외를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하고 있는 부르주아 사회
체제 자체가 의존하고 있다.
* 하늘을 찌르는 악취
엥겔스가 말했듯이 매춘은 여자보다는 남자를 타락시키며, 그것도 거의 모든 남자를
타락시킨다.
그러나 전통적인 난혼이 우리 시대에 와서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의 영향을 받아 이
생산에 적응하게 되면 될수록, 즉 매춘이 공공연해질수록 난혼은 더욱더 퇴폐적인
작용을 한다. 더욱이 그것은 여자보다도 남자를 훨씬 더 타락시킨다. 매춘은 여자들
중 불행히도 그런 길에 빠지게 된 사람들만을 타락시키며, 그것도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남자의 경우에 매춘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들 전체를 타락시킨다.(주38)
매춘을 낳는 타락의 근원은 부르주아다. 금전적인 목적에 의한 결혼의 바깥에서
성적인 만족을 찾으려는 부르주아의 향락욕은 그들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산으로
뒷받침되어 끝을 알 수 없이 커져간다. 부르주아의 이러한 향락욕과 향락력에
부응하여 향락이 하나의 산업으로 번성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매춘을 만들어 내고,
소비하는 근원지다. YMCA가 1989 년 7월 1일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룸 살롱에서
한 사람이 한 번에 쓰는 돈은 평균 12만 4천 4백 원으로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63
만 1,450원(88 년 12월 현재)의 약 20%에 해당한다. 5 명이 모여 앉으면 최소한
노동자 한 사람의 한달 월급을 하루에 쓰는 셈이다. 이런 향락을 누리는 것이 소수의
부유층에 한정되어 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환락의 중심지라는 강남 신시가지의 O와 H 룸 살롱의 경우는 수십억대의 투자로
바닥 자체가 수족관이며, 수입 가구와 수입 대리석과 수입 조명 시설을 갖추어 방
하나 꾸미는 데 서민 아파트 몇 채 값을 상회한 걸로 알려졌다. 그런 룸 살롱의
시가는 생산 공장 한 개 시설비와 맞먹는다는 계산이다. 1 만 6천 원짜리 양주 한
병이 이런 자리에서 뚜껑만 따도 일금 10 만원, 우유 한 잔에 5천 원, 그래서 쉽게
1백만원 한 장이 된다. 대형 업소의 1일 매출액이 최하 1천만원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살롱의 호스티스였다가 지금은 살롱을 자영하고 있는 모씨는 "공직자와
대기업의 간부, 중소 기업 경영자와 특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죠"라고 말했다.(주39)
그들이 뿌리는 돈의 액수만큼이나 그 타락상 또한 엄청나다. 한 호스티스는 이들의
도덕적 타락을 죽음으로 고발했다.
죽음 부른 '벌주 먹이기' 호스티스 심장 마비 사망
술집 호스티스가 외국인 바이어를 접대하는 손님방에서 '옷벗기기 게임'의 벌주로
손님들이 강제로 권해 마신 술에 만취돼 심장 마비로 숨져. 정양은 17일 밤 8시
40분경부터 이 요정 특실에서 손님 김모씨(48세, 덕유 상사 대표)가 데려온 일본인 4
명 등 손님 5 명을 동료 호스티스 5 명과 함께 접대했는데 손님들이 강제로 권한 국산
양주를 무리하게 마셨다는 것이다.
정양과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이미례 양(27세, 가명)에 따르면 이날 술자리에서
두세 잔씩의 술잔이 오간 뒤 김씨의 제안으로 과일에 꽂힌 과일꽂이 중 짧은 것을
뽑은 사람이 벌로 옷을 하나씩 벗는 '옷벗기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정양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많이 벌칙에 걸렸으나 정양은
옷벗기를 매우 꺼려했다는 것이다.
이때 김씨가 정양에게 "옷을 벗기 싫으면 그대신 벌주를 들어라"고 요구했고 정양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옷을 벗는 대신 양주 한 잔씩 모두 다섯 잔을 비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 등은 이에 그치지 않고 술에 취한 정양에게 재차 옷벗기를 요구,
정양이 이를 거부하자 벌주잔을 양주잔에서 맥주컵으로 바꾸도록 강요. 정양은 이
잔으로 국산 양주 세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는 것.
이 후 정양이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 빠지자 보다 못한 일본 손님이 "술을 토하게
하고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으나 김씨 등이 계속 술을 강요하다 "재수없다.
끌어내라"고 소리쳤고 종업원들이 정양을 데리고 나와 안방에 뉘었다는 것이다.
정양의 시체는 영등포 한강 성심 병원에 안치됐다가 지난 20일 화장됐다.
이날 정양의 고향인 전남 광주에서 연락받고 급히 올라온 정양의 가족들은
"서울에서 백화점에 근무한다며 매달 꼬박꼬박 동생들의 학비를 송금해 주더니 딸이
요식 업소에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통곡했다.(주40)
일간지들은 앞을 다투어 이 사건을 대서 특필하고 목청을 높여 이 사회의 도덕성을
한탄했다.
아무리 험하고 짖궂은 술 손님 시중의 직업을 가진 여성이라 하더라도, 수치심의
본능은 있는 법이거늘, 술과 옷벗기의 양자 택일을 돈의 위력을 빌어 강요하는 것은
술먹는 개 이상의 악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술자리라는 게 흥청망청의 지경으로
'발전'하다 보면 정상적인 눈으로는 보아주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게 마련이라는 상식을
내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황 중에서도 마지막 한계는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도덕군자일 수는
없고, 말은 그럴듯 하면서도 행동은 어림없이 퇴폐성을 탐하는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니취 상태에서 깨어나는 순간 부끄러움을
회복하는 게 인간이고 그런 인간들의 집단이 사회를 형성한다면, 이 사회도 이제는
'취해있는 모럴'을 두들겨 깨워야 한다.(주41)
그가 한탄하는 것은 험하고 짖궂은 술 손님 시중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이 생겨나야
하는 사회 구조나 그런 여성들을 잠시의 희롱 상대로 삼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그는
정상적인 눈으로 보아주기 힘든 상황이 생기는 것까지도 상식으로 눈감아 준다. 술
손님이 험하고 짖궂은 짓을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이기까지 하다. 그가 한탄하는 것은
단지 '마지막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이 마지막 한계에
직면해서야 비로서 도덕성의 파국을 느낀다는 점에서 거의 도덕성이 얼마나 무디고
불철저하며, "퇴폐를 탐하는 짓거리"에 이미 철저히 물들어 있는가를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우리 사회 많은 남성들의 도덕성의 현주소다. 매춘과 타락은
자본가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여자의 순결에 대해 열을 올리는 남자들일수록 그
자신은 이미 순결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의
남성들이 각양 각색의 성 매매와 접하고 있으며 타락에 물들고 있다. 그리고
"길거리의 여자들이 다 그렇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타락한 것은 길거리의
여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런 눈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여자를 술자리나 하룻밤의 희롱물로 삼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이런 도덕적 타락이 남자다움의 징표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남자들이 모여 룸
살롱에 가자고 하는데 싫다고 하면 따돌림을 받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이 타락의 시대에 남자다움이란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사회 구조나
도덕적 부패와 맞서는 진정한 용기, 한 여성에게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성실하고
순수한 애정과는 반대로 강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약자의 불행에 편승하고, 인간을
돈의 힘을 빌어 희롱하고, 자신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욕망을 사회 구조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비겁함의 대명사가 되었다.(주42) 그리하여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가
비겁한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여기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잃어버린 한 호스티스의 생명을 건 항의는 범람하는 타락의 물결에
흔적도 없이 쓸려가 버렸고, 타락의 "마지막 한계"는 계속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세익스피어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악취를 풍기는" 도덕적 부패를 한탄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남성들은 너무 심한 악취에 코가 문드러져 버려서 악취를 악취로
느끼지조차 못하게 되어 버렸다. 타락을 타락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타락은 없다.
* 매춘 권하는 사회
무엇이 매춘을 이렇게 광범위한 사회 현상으로 만드는가?
매춘에서의 성관계는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더구나 그것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남자들 중에서도 매춘을 통해 자신이 고양되고, 인간다워지고,
사랑이 풍부해진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그들은(설사
명료한 의식 속에서가 아닐지라도) 자신이 저열해지고, 추악한 욕구에 몸을 맡기고
있으며, 타락하고 있다고 느낀다. 매춘 행위는 남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의 도구로
삼는 것이고, 이는 상대방의 인간적 본성을 부정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런 비인간적인
관계에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비인간적으로 되었다는 표시다.
매춘에는 성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가장 큰 즐거움의 근원인 정신적인
요소가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사악해진 형태로 있다.
사실, 매춘이 광범해지는 것은 이렇게 비뚤어지고 뒤틀린 정신, 사악한 욕구를 이
사회가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성은 원래 상호적인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을 억압한다. 상호적인
성의 한 편이 소외되자, 성 그 자체가 소외된다. 성은 남녀간의 사랑의 표현이며, 그럴
때만이 남녀 모두에게 삶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남녀의 관계를 주인과
노^36^예, 인간과 사물의 관계로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가부장제는 사랑을 억압한다.
또 성을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랑이 없는 성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사랑과 성과 출산을 분리시켰다. 사랑과 출산과 분리된 성은 인간 사회에서 그
정당하고 정상적이고 건강한 자리를 잃고 무언가 수치스럽고 저열하고 인간답지 못한
것, 따라서 감추어야 하고, 마치 없는 듯이 행동해야 하는 은밀한 것이 되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그것은 마치 공인된 범죄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여성의 성을 억압한 대가는 남성의 성도 왜곡되는 것이다. 남성의 성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 자유는 사랑할 자유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대신 타락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성은 뒤틀어졌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되는 대신, 지배와
소유의 표현, 다른 한 편에게 있어서는 피지배와 파괴, 자기 부정의 표현이 되었다.
성이 왜곡되어 수치스러운 범죄와도 같이 숨겨야 하는 것이 되자, 이번에는 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왜곡된 인식이 다시 보다 심한 성의 왜곡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에서 억압된 성은 다른 한편에서 비정상적이고 불건강한 형태로 과장되고
부풀려져 재생산되었다. 결혼 관계의 외부에서 성적인 만족을 구하는 타락한
부르주아야말로 매춘에 대한 수요의 근원지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신이 매춘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생산한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여자들을 실업으로 몰아넣어 몸을 팔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여성의 성이 상품이 되자 자본은 이것을 다시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 섹스 산업의 성장은 가부장제 속에서 소외된 성과 자본의
후안무치한 탐욕과 황금 숭배의 합작품이다.
오늘날 우리는 외설물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거리의 가판대는 유수한 신문사와
잡지사가 발행하는 외설 신문, 외설 잡지로 가득 차 있고 외설 영화, 외설 비디오,
외설 쇼, 외설 만화, 심지어 TV에 이르기까지 눈길 가는 곳마다 외설물들이 넘쳐
흐른다.
자본주의적 상혼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성은 인생의 구원이다. 그것은 자극적일수록
좋다. 일회적이고, 복잡하지 않고, 더 나아가 폭력적이고 한마디로 비인간적일수록
좋다. 이런 외설물들은 성을 사랑의 동력으로가 아니라 타락과 추함과 소외의
근원으로 만들며, 구원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망치는 근원으로 만든다.
이런 외설물의 범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이 억압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어디를 가나 성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은 성이 수치스럽고 비밀스러우며, 건강하지 못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넘쳐흐르는 성은 그것이 가진 좋은 요소는 모조리 제거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의 범람은 성의 억압의 표시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성교육은 우리 나라
학교의 정규적인 교과 내용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정상적인 통로는 거의 전무하다. 그리하여 여성들 사이에서 성에 관한 놀랄
만한 무지가 널리 존재하며, 남성들 사이에서는 놀랄 만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지식은 거의 대부분이 성을 왜곡시키는 외설물에서 얻어진 것이거나 이를
구전으로 전해들은 것들이다. 성이 인간에게 가지는 중요성뿐 아니라,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으키고 있는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성에 대한 이런 무지는 거의
야만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바로 이런 야만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이런 외설물과 향락 산업은 성에 대한 수요와 그에 대한 태도와
의식을 생산한다.
"생산은 생산에 의해 비로소 대상으로서 창조되는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욕망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소비를 생산한다. 그 때문에 생산은 소비의 대상, 소비의
방식, 소비의 충동을 생산하는 것이다." 매춘을 향하는 성적 욕망은 사실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이런 충동질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매춘에
대한 수요를 만드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매춘은 인간 소외의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 인간 소외에 의해 요구되고 있다.
성의 사회적 기능이란 즐거움 없는 노동과 희망 없는 생활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보상하는 것으로써 소용되는 것은 아닐까? 부르주아 성 문화는 마치 "산업 재해
수당"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는 성과 그 '기쁨'(그러나 실제로 어떤 기쁨이고 누구의
기쁨일까?)을 괴로움의 대가로, 심심풀이로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급여의 일부로
만들었다. 종군 위안부는 우리들 여성에게 있어서 영원한 추문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즉 그것이 '여성의 서비스'(즉 '물건'으로서의 여성)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수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백질과 의식과 TV와 교육과 여가와 똑같이 노동력의
재생산에 첨가되는 생활 필수품이다.
사람들의 대다수가 창조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사회, 노동이 이미 급여 가치
이외의 의미를 갖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자유 시간 속의 성이란, 개인 사이의
관계가 갖는 특별한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각 개인이 사회로부터 성적 소비
속으로 도피하는 수단이 된다. 이 도피는 분명 환상일 수밖에 없다. 도피한 사람은
다시 거기서 이 사회의 모든 흉악한 특징을 다른 형태로 발견한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 상품 가치, 이기주의 소비를 위한 소비 등등.(주43)
그러므로 가부장제에 의한 성의 소외와 자본에 의한 인간 소외는 정말
천생연분이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금전적 가치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성이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하나의 단순한 소비, 욕망의 충족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또 이것이야말로 성의 소외의 극한적인 표현이다. 여기서는 쌍방이 모두
하나의 물질, 동물의 차원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줌으로써
자신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라면 이 이기적인 소비로서의 성이 사랑과는 정반대에
선다는 것도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위계 구조(사회와 가족 모두의)는 사회 성원에게
가학적인 충동을 심는다. 모든 인간 관계는 투쟁이며 한판 승부며 이를 통해서
상대방을 멋지게 때려 눕히지 않으면 안되는 결전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굴복하면 그에게서 완전히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학적인 충동에
가장 적합한 상대는 창녀다.
창녀는 학대받기 위해 존재한다. 가장 저열한 남자도 창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가장 비천한 남자도 창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하나의 주체와의
관계를 맺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없다. 필요한 것은 돈 뿐이다. 돈으로 다른 사람을
부리는 데 익숙한 자본가들은 그들의 돈의 위력을 행사하고, 지배를 확인하고,
가정에는 없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매춘부를 산다. 사회의 다른 곳에서 학대받고
지배당하는 남자들, 돈의 위력 때문에 쓸개 빠진 듯이 행동해야 하는 남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자기 위안을 위해서, 자기 확인을 위해서, 돈
앞에 무너진 자신의 자존심을 돈의 힘을 빌어 회복하기 위해서 창녀를 산다. 창녀의
효용은 그녀가 만만한 존재라는 데 있다. 창녀에 대한 우위는 완벽하게 확립되어
있다. 창녀는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녀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다. 그녀의 효용은 저주를 받는 데 있다. 창녀를 사면서
남자들은 그녀에게 저주를 보탠다. 이 사회에 대한 저주, 지배자에 대한 저주, 돈에
대한 저주를 모두 창녀에게 보낸다. 도스토옙스끼가 그의 여러 소설들에서 창녀를
대지에 비유한 것은 의미가 깊다.
그 구성원의 일부를 동물만도 못한 삶에 처박고, 이를 인구의 절반이 일상사로서
받아들이고 이에 가담하고 있는 사회,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적인
실상이다.
4) 새로운 가족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가부장적인 가족은 커다란 불행의 근원이다. 가정불화의
대부분은 가부장제에 의해 생긴다. 이는 여성에게 보다 더 큰 불행을 가져오지만
남자들 역시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가부장제는 가족을 병들게 하고 병든 가족 관계는
인간을 그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가장 내면적인 감정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병들게 한다. 가부장적 횡포는 이 질병의 증상일 뿐이다.
인간이 자신을 동물과 구분하여 인간이 되기 위해 치른 수업료는 엄청난 것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비인간적인 억압과 고통에 몰아넣는 것을 대가로 치뤄야했기
때문이다. 노동에서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가족에서의 진보도 그 대가를 요구하는 지도
모른다. 원래 야만적인 상태에 있었던 인간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야만적인 수단,
노^36^예제가 필요했듯이 인류의 절반이 타락하고 나머지 절반이 억압에 신음하는
야만적인 시기를 경과하는 것은 가족과 사랑이 야만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필요
조건인 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눈 앞에서 가부장제가 급속히 무너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수천 년간 여성을 생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가부장제는 생겨난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라져 가고 있다. 가족과 남녀 관계는 최근 백여 년 간에 지금껏 수천 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 생겨나는 가족은
남녀가 평등한 가족이 될 것이다. 원시 시대의 가족을 연구한 모오간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가족이 네 가지의 형태를 차례로 밟아 오다가 지금은 다섯 번째의 형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형태가 장래에도 지속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나올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뿐이다. 즉 가족은 바로 과거에도 그랬듯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발전할 것이며, 사회가 변함에 따라 변할 것이라는 것이다. 가족은 사회 제도의 한
산물이므로 그 문화 발전 상태를 반영한다. 일부 일처제 가족은 문명 초기 이래
개선되어 왔으며, 또 특히 최근에 와서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가일층
완성되어 드디어 양성의 평등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원시 시대의 남녀 평등은 인류의 야만적인 상태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문명이 새로운 차원에서의 남녀 평등의 기초가 될 것이다. 가부장제는 자신을 낳은
문명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가족은 이미 노동자 계급의 가족 속에서 그 싹이 트고 있다.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을 함께 하며 사회의 진보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서로 협력해서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로서의 부부 관계가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여성들의 자각과 투쟁 속에서 자라나지만, 남성들의 각성과 알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
속에서도 자라나고 있다.
나의 처는 내가 "당신은 나의 동지이자 연인이다" 라고 말하면 "내가 무슨 당신
동지냐 딱까리지"라면서 면박을 준다. 나는 한때 여자는 동지이기 전에 여자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를 대해 왔었다. 밥 짓고 맛있는 반찬 만들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그리고 그 다음에 노동 조합 활동을 하든지 뭘하든지. 그런데, 몇 년 전 나는
노동 조합 운동과 관련되어 감옥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처는 '구속자 가족
협의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주변 동료들을 보면서,
또 다른 집 남편과 자기 남편을 비교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나에
대해서도 '가정에서는 평균 이하의 나쁜 남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자각은 실행에 옮겨졌다. 즉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다. 나에
대해서도 함께 가사일을 분담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그러나 처의 그러한
노력은 나의 적극적인 배려와 나 자신의 충분한 반성이 없음으로 해서 커다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자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진정한 노동 운동은 가정 내에서의 평등한 부부 관계, 동지적 관계와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 처가 여자이자 동지라면 참 좋겠다. 그래서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토론도 하고,
서로의 부조간 부분은 함께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부의 동지적 관계를 그렇게 원했던 우리 처가 서서히 그러한 노력을 포기해 가는
바로 그 시점에 나는 오히려 동지적 관계의 정당성에 대해 눈을 떠 나가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가 많이 늦었음이 피부적으로 느껴진다.
동지는 무슨 얼어죽을 동지냐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면 됐지. 운동은 너나 열심히
해라 나는 집에서 애기보고 빨래하고 밥지을테니까.
노동 해방, 인간 해방, 그리하여 여성 해방을 이루어내기 위해 운동한다는 놈의
처께서 이렇게 나오시니 아찔하기도 하고 죽을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번쩍번쩍 드는
것이다.
한 사람은 '노동 운동'하고 한 사람은 '가사 노동' 하는 상태로는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서로 대화도 잘 안되며 집안 일들에도 상호 협조 체제가 안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부부 간의 참된 사랑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처가 동지였으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부터 나는
처와 함께 가사 노동에서부터 노동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같이 해나가도록
더욱더 노력하겠다.(주44)
나에겐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똑똑한 딸 아이가 있다. 그런 내 딸에게 누가 순종과
복종만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굳이 법을 들추지 않더라도, 한과 눈물의 세월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참아와야 했던 어제의 어머니 이제 다함께 이 땅에
진정한 여성 해방이 되기까지 우리네 어머니들이 당해야 했던 한의 세월이 환희와
기쁨이 넘치는 세상으로 되기까지 나의 작은 마음에서, 그리고 실제 행동에서
실천적으로 보여 주리라 다짐해 본다.(주45)
미래의 가족과 새로운 세대가 이러한 각성과 노력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가부장제의 역사는 엄격한 성별 분업과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 일과 사랑, 공생활과
사생활의 분리의 역사였다. 남자의 사회적 활동이 그의 가정적 무책임뿐만 아니라
가정의 파괴와 사생활의 방종을 합리화시키고, 여자의 가정 내 역할이 그의 사회적
활동의 희생을 요구하던 역사였다. 남자는 일을 위해 사랑 따위는 사소한 것이라
배웠고, 여자는 사랑만이 자신을 바칠 유일한 것이라고 배워야 했다. 인간다운
삶 그것은 노동과 인간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유적인 본질을
실현하고 발전시키는 삶이다.
새로운 가족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 일과 사랑, 공생활과 사생활을 통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우선, 모든 가족을 서로 대립하게 하고, 가족과 사회,
공생활과 사생활을 대립시키는 적대 관계의 해소를 필요로 한다. 또한 남녀를 각각
사회와 가정으로 분리시키는 분업 체계의 붕괴를 필요로 한다. 새로운 남녀 관계는
사회적 책임과 가정적 책임을 공유하고,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도록 배우며, 일과
사랑을 모두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남녀 사이에서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서 자라날 것이다.
(주)
1. 다른 일체의 것이 봉사해야 한는 어떤 목적이 있을 경우, 이 목적과 투쟁하는 그
어떤 것도 이와 동드아한 권리를 갖지 못한다.(헤겔,'사랑에 대하여', 황태연 편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지양사, 1983, p, 207)
2. 김숙경( 서산 팔봉중학교 2 학년, 여), 전인순 엮음, '생강 캐는 날', 온누리,
1986, pp.22--23.
3. 박노해, '노동의 새벽', p.20.
4. 홍승아, '여성 노동의 사회적 존재 형태 및 그 성격에 관한 연구', p.87.
5. 홍승아, 위의 글, p.87.
6. 홍승아, 위의 글, p. 87.
7. 현대종합목재 노동조합설립위원회가 1987 년 7,8월 대투쟁 당시 낸 유인물.
8. '새마을 부녀회 전북지부 상담 사례', '조선일보', 1990. 10. 27.
9. 윤재걸, '서울 공화국', 나남출판사, 1984.
10. 마르크스, 엥겔스, '경제학 철학수고', 이론과 실천, 1985, p 193.
11. '신랑감 제일 조건 학벌인가',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 여성 노동자', 1990.
p.14.
12.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푼짜리 가극', 임한순 역, '사천의 선인', 한마당, 1988,
p.44.
13. 줄리아 프레윗 브라운, 박오복, 이경순 역, '19세기 영국 사회와 소설', 열음사,
1990. p.105.
14. '신부감 제일 조건 외모인가', 인천여성노동자회, 앞의 책, p.15.
15. 게일 킴벌, 평등한 부부', 한국여성개발원, 1988, p.68.
16. 이하의 사례는 코완 킨더, 이희구 역, '현명한 여성의 어리석은 선택', 한마음사,
1987, pp.62--66참조
17. 그러나 핵가족은 노인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가부장제가
폐지된다면 가장 좋은 형태는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의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에서는 이것이 흔히 억압과 불행의
근원이다. 핵가족의 역할은 가부장적 관계를 폐지하는 과도적인 데에 있을 것이다.
18. 한국여성개발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부인은 남편을 따라야 한다"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 도시 남성의 89.1%, 도시 여성의 76.3%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은 도시 여성은 21.9%로 의식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도시 남성의
경우는 9.7%에 불과하다. 한국여성개발우너, '여성 문제에 관한 국민 여론 조사',
1985, p.48.
19. 김종일, 앞의 글, 한국여성연구회, 앞의 책, p. 23.
20. 다나까 미찌고, 김희은 역, '미혼의 당신에게', 백산서당 1983, p.23.
21. 케일 킴벌, 앞의 책, p. 75.
22. 헤겔, 황태연 편저, 앞의 책, p.213.
23. 여성의 전화, '여성의 전화 개원 2주년 사례 연구 보고서', 1985, p.5--11.
24. 이하 김광일 편저, '가정폭력', 탐구당, 1988 참조.
25. '한국일보' 1983. 7. 16.
26. '한국일보' 1983. 7. 26.
27. '맥박 3 호', p.21.
28. 폭발성 인격이란 충동 조절에 장애를 갖는 것을 말한다.
29. 부인보호명령이 내려지면 남편은 쫓겨나 살면서 이혼, 별거, 혹은 부인에게
용서를 받든지 다음 일을 결정해야 한다.
30. '여성 신문', 1990. 8.31. p. 7.
31. 이현숙, '가정 폭력을 보는 시각', 김광일 편저, 위의 책, p.242.
32. '한겨레 신문', 1990. 7. 15.
33. 장수입, '한국 사회의 성 매매와 남성 이데올로기', '또 하나의 문화', 제4집,
p.87.
34. '조선일보', 1988. 12.15.
35. '조선일보', 1988. 12. 13.
36. 여성의 전화, '인신 매매와 매춘 여성, 여서의 전화 성폭력 자료1'.
37. 위의 책.
38. 엥겔스, 김대웅 역, '가족의 기원', 아침, p.83.
39. '조선일보', 1984. 6. 6.
40. '동아일보', 1986. 11. 22.
41. '동아일보', 1986. 11. 24. 사설.
42.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집사람이 같은 직장에 있다가 결혼했기 때문에 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네가 모르는 남자들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집사람의 기를 꺾기 위해서 일부러 술 마시고 고스톱 치며 늦게 들어가고
기회가 있는 대로 며칠씩 집에도 안 들어갔다"(김효선, 허순희, '한국 남자, 낮에도
뛰고 밤에도 뛴다', '또 하나의 문화', 제4 호, p.108). 술 마시고 고스톱 치고, 아내의
기를 꺾기 위해 외박하는 "남자의 세계"는, 없는 편이 있는 것보다 휠씬 나을 것이다.
사실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아주 졸렬하고 유치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얼마 안있어 역사 박물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쓸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43. 클로디 브로이엘, '하늘의 절반', 동녘, 1985, p.194.
44. 박성철(해고 노동자, 용접공), '아내와 동지', '인천 여성 노동자' 1990. 3. 11.
45. 최학진(선미 산업 노조 조사통계부장), '맥박 3 호'
(맺음말)
지금까지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들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러나 이 고통의 무게를
이기고 일어서는 여성들의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한 면만을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성들은 그들이 당하는 이 모든 고통보다 위대하며,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억압보다 강하다. 여성들은 그들이 짊어지는 짐의 무게만큼 당당해지고
강해지고 성숙해지고 있다.
난 노동자입니다. 전 공순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라인에서 내가
빠져 버린다면 우리 라인은 큰 지장을 가져 옵니다. 나 한 사람이 빠져도 그런데, 만일
모든 라인 사람들이 빠진다면 회사는 운영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힘이 있습니다. 비록 각 개인의 힘은 약할지라도
우리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힘이 이룩될 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능히
헤쳐나갈 수가 있습니다(작자 미상,'난 공순이입니다', 김경숙 외,'그러나 이제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돌베개, 1986, p.114).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대부분의 U.S.여성 노동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노조가 만들어지고 임금 인상 투쟁을
거치면서 조합원들의 의식은 과거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U.S.조합원
모두는 당당히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투쟁에 임하고 있다.
5차에 걸친 노동청 항의 방문과 경찰서 연행 과정에서 보여준 억척스런 투쟁 모습은
과거의 나약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힘차고 건강한 여성 노동자!
여성 투사!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기필코 승리하리라!', 인천 여성 노동자회,'인천
여성 노동자', 준비호, p.18).
여성들은 사회와 역사의 주인으로 나서고 있으며, 그에 맞는 강함과 슬기와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공로는 세상에 강함을 더해 주는 데만 있지 않다.
여성들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더욱더 깊이 이해하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된다. 여성들은 억압과 냉대 속에서도 쓰라린 고통을 감싸기에
충분한 부드러운 심성과 세상의 냉대를 녹일 따뜻한 마음씨를 간직하고 키워 나가고
있다. 물질 만능과 약육 강식의 논리와 폭력으로 물든 사회에서 바로 그것에 의해
가장 소외되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이를 이길 만한 힘인
인간적인 가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나 자신도 불행하지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싶고 나의
친구들과 같이 토론하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좀 더
키워가면서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박정화,
'하지만 나는 바른 말을 했어', 한윤수 편,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청년사, 1980,
pp.204--205).
그리고 나 혼자만을 생각하지 않고 항상 내 주위에 고생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하리라(최순희, '가로등 밑에서 공부할까', 한윤수 편,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p.54).
향순아, 옥련아, 나는 너희들이 일하는 모습, 진지하게 살려고 애쓰는 순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몰라. 착한 우리들의 웃음을 보며
삶의 진가가 무엇이며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장남수, '빼앗긴 일터', 창작과 비평사, 1984, p.27).
아들아, 이제 엄마가 선봉에 선다
아들아 너는 지금쯤 잠이 들었을까
밥은 제 때 차려먹었을까
막내 상진이는 이번 주에 소풍을 간다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한 요 며칠 째 엄마 가슴은 이렇게 미어지는구나
직장 폐쇄 철회 투쟁이 한달 째 접어드는 밤 11시
싸늘한 시멘트 바닥 위에 지친 몸을 쓰러뜨려 보지만
그저 아득하기만 한 우리들의 내일처럼
쉬이 잠은 와줄 것 같지가 않구나
아들아, 그러나 사장이 누운 침대가 이보다 더 포근할까
외진 구석에 잠이 들거나 밤내 규찰을 도는 젊은 노동자들
언제나 듬직하고 다정한 네가
엄마가 싸우는 농성장엔 이리도 많이 있구나
파업 찬반 투표를 할 때만 해도 엄마는 무척 망설였단다
마흔이 다 된 이 나이에 무얼 하겠는가라고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 남은 목숨 살아가면 그만이지라고.
그러나 우리 앞에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직장 폐쇄
이젠 엄마도 어제의 엄마일 수는 없었단다
눈치만 봐왔던 중주임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지 않을 수 없었단다
아들아 엄마는 똑똑히 보았다
돈많은 사장놈들의 더러운 본질을
그리고 알았다 독재의 힘을 빌려
4월과 5월 우리 천만 노동자의 목을 내리쳤음을
이곳 케이디케이에서뿐만 아니라 남성, 남지에 내려진
직장 폐쇄에 대해 법을 집행한다는 검판사는 박수를 보냈고
국민을 위한다는 야당은 뒤돌아 섰으며
진실을 말한다는 언론은 끝내 입다물었다
그러나 지역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임투를 마치고도
기꺼이 투쟁에 함께 나섰으며 쟁의 기금 마련 연대 지원으로
학생들과 더욱 힘껏 끌어 안았다
(KDK 파업 농성 때 아줌마 노동자들이 공동 창작한 시,'손땀',1989.11.20.p.1)
어머니 투사들의 시에서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빛을 본다.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우리는 소풍 도시락을 싸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랑과 이 세상의 거대한
불의와 맞서 싸우는 불굴의 용기와 투지가 결합하는 것을 본다. 그들의 투쟁은 그것이
섬세하고 깊은 애정과 결합됨으로써 더욱더 강해진다. 그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사회적 불의와의 대결을 통해 더욱더 풍부해진다. 미래는 현재의 가장 압박받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다.
여성들은 모성과 그들이 가정에서 맡아왔던 역할들을 통해서 많은 미덕들을 키우고
간직해 왔다. 여성들은 모성을 통해 인간과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깊은 쯩 있는 좀천본 규을합됨으런未?인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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샙 5?시집가서 애낳고 살긴 글렀어요. 성질은 나빠만 지는데 마음은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실은 마음이 넓어진 게 아니라 모든 게 귀찮고 재미가 없는 거지요. 같이
있는 언니 얘기론 가축 병원에서 진돗개 교미 붙이는 데도 몇 십만원 받는대요. 긴 밤
자고 나도 겨우 손에는 7,8천원 들어오는 우리 팔자보다 개팔자가 더 낫다고요. 나는
개보다 못한 처지지요. 그래도 옛날 공장 다닐 때보다야 백번 좋은 대우지요.
한마디로 개 같은 세상이고 개가 살기 좋은 세상이지요.(주37)
매춘 여성은 부르주아 사회의 인간 소외의 극한을 보여 준다. 그것은 매춘 여성이
어떤 점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춘 여성은 인간이 아닌 존재,
단지 물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마치 빵이 그렇듯이 욕구를 채워주는 대상일
뿐이다. 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노동을 하고,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없다. 이들의 삶 전체가 소외 자체다.
이들은 자신을 단순한 도구로 삼는 인간들과 자신이 단순한 도구가 되는 관계만을
맺는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존재지만 우리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이고, 이
사회의 밖에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이 사회의 도덕적 시민권이 없다. 따라서 거의
아무런 권리도 없다. 공적인 사회 체제 그 어느 것의 보호나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이 사회는 이들을 있어선 안될
존재로 규정했다. 그들은 매일매일 그 존재가 부정당하면서 살고 있다. 매춘 여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과 실업, 돈의 지배, 그리고 잘못된 성윤리와 가부장적인 가족의
희생물이다. 이들 여성이 매춘을 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는 빈곤이고, 그 다음은 강간
등의 성폭행 경험과 가정 불화로 인한 가출이며, 세번째는 실연 등 남녀 관계에서의
상처다(대개는 육체 관계로까지 발전했거나 임신까지 한 뒤 버림받은 경우). 지금도
공단 게시판이나 공단 주변의 전봇대를 비롯하여 유수한 일간 신문에 이르기까지
"침식 제공 월수 ^456,356,356,123^만원 초보자 환영"이라는 살롱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직, 저임금에 중노동, 가족 부양의 부담 등으로 허덕이는 막다른 골목의 젊은
여성들, 노동력을 파는 것조차 거부당한 여성들이 이제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련한 희생물 위에서 타락한 포주들, 기둥 서방들, 인신 매매꾼들뿐
아니라 그보다 조금도 덜 타락하지 않은 경찰을 비롯한 공적인 체제가 그 피를 빨고
있으며, 나아가 타락과 인간 소외를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하고 있는 부르주아 사회
체제 자체가 의존하고 있다.
* 하늘을 찌르는 악취
엥겔스가 말했듯이 매춘은 여자보다는 남자를 타락시키며, 그것도 거의 모든 남자를
타락시킨다.
그러나 전통적인 난혼이 우리 시대에 와서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의 영향을 받아 이
생산에 적응하게 되면 될수록, 즉 매춘이 공공연해질수록 난혼은 더욱더 퇴폐적인
작용을 한다. 더욱이 그것은 여자보다도 남자를 훨씬 더 타락시킨다. 매춘은 여자들
중 불행히도 그런 길에 빠지게 된 사람들만을 타락시키며, 그것도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남자의 경우에 매춘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들 전체를 타락시킨다.(주38)
매춘을 낳는 타락의 근원은 부르주아다. 금전적인 목적에 의한 결혼의 바깥에서
성적인 만족을 찾으려는 부르주아의 향락욕은 그들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산으로
뒷받침되어 끝을 알 수 없이 커져간다. 부르주아의 이러한 향락욕과 향락력에
부응하여 향락이 하나의 산업으로 번성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매춘을 만들어 내고,
소비하는 근원지다. YMCA가 1989 년 7월 1일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룸 살롱에서
한 사람이 한 번에 쓰는 돈은 평균 12만 4천 4백 원으로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63
만 1,450원(88 년 12월 현재)의 약 20%에 해당한다. 5 명이 모여 앉으면 최소한
노동자 한 사람의 한달 월급을 하루에 쓰는 셈이다. 이런 향락을 누리는 것이 소수의
부유층에 한정되어 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환락의 중심지라는 강남 신시가지의 O와 H 룸 살롱의 경우는 수십억대의 투자로
바닥 자체가 수족관이며, 수입 가구와 수입 대리석과 수입 조명 시설을 갖추어 방
하나 꾸미는 데 서민 아파트 몇 채 값을 상회한 걸로 알려졌다. 그런 룸 살롱의
시가는 생산 공장 한 개 시설비와 맞먹는다는 계산이다. 1 만 6천 원짜리 양주 한
병이 이런 자리에서 뚜껑만 따도 일금 10 만원, 우유 한 잔에 5천 원, 그래서 쉽게
1백만원 한 장이 된다. 대형 업소의 1일 매출액이 최하 1천만원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살롱의 호스티스였다가 지금은 살롱을 자영하고 있는 모씨는 "공직자와
대기업의 간부, 중소 기업 경영자와 특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죠"라고 말했다.(주39)
그들이 뿌리는 돈의 액수만큼이나 그 타락상 또한 엄청나다. 한 호스티스는 이들의
도덕적 타락을 죽음으로 고발했다.
죽음 부른 '벌주 먹이기' 호스티스 심장 마비 사망
술집 호스티스가 외국인 바이어를 접대하는 손님방에서 '옷벗기기 게임'의 벌주로
손님들이 강제로 권해 마신 술에 만취돼 심장 마비로 숨져. 정양은 17일 밤 8시
40분경부터 이 요정 특실에서 손님 김모씨(48세, 덕유 상사 대표)가 데려온 일본인 4
명 등 손님 5 명을 동료 호스티스 5 명과 함께 접대했는데 손님들이 강제로 권한 국산
양주를 무리하게 마셨다는 것이다.
정양과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이미례 양(27세, 가명)에 따르면 이날 술자리에서
두세 잔씩의 술잔이 오간 뒤 김씨의 제안으로 과일에 꽂힌 과일꽂이 중 짧은 것을
뽑은 사람이 벌로 옷을 하나씩 벗는 '옷벗기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정양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많이 벌칙에 걸렸으나 정양은
옷벗기를 매우 꺼려했다는 것이다.
이때 김씨가 정양에게 "옷을 벗기 싫으면 그대신 벌주를 들어라"고 요구했고 정양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옷을 벗는 대신 양주 한 잔씩 모두 다섯 잔을 비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 등은 이에 그치지 않고 술에 취한 정양에게 재차 옷벗기를 요구,
정양이 이를 거부하자 벌주잔을 양주잔에서 맥주컵으로 바꾸도록 강요. 정양은 이
잔으로 국산 양주 세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는 것.
이 후 정양이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 빠지자 보다 못한 일본 손님이 "술을 토하게
하고 쉬게 하는 게 좋겠다"고 제의했으나 김씨 등이 계속 술을 강요하다 "재수없다.
끌어내라"고 소리쳤고 종업원들이 정양을 데리고 나와 안방에 뉘었다는 것이다.
정양의 시체는 영등포 한강 성심 병원에 안치됐다가 지난 20일 화장됐다.
이날 정양의 고향인 전남 광주에서 연락받고 급히 올라온 정양의 가족들은
"서울에서 백화점에 근무한다며 매달 꼬박꼬박 동생들의 학비를 송금해 주더니 딸이
요식 업소에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통곡했다.(주40)
일간지들은 앞을 다투어 이 사건을 대서 특필하고 목청을 높여 이 사회의 도덕성을
한탄했다.
아무리 험하고 짖궂은 술 손님 시중의 직업을 가진 여성이라 하더라도, 수치심의
본능은 있는 법이거늘, 술과 옷벗기의 양자 택일을 돈의 위력을 빌어 강요하는 것은
술먹는 개 이상의 악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술자리라는 게 흥청망청의 지경으로
'발전'하다 보면 정상적인 눈으로는 보아주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게 마련이라는 상식을
내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황 중에서도 마지막 한계는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도덕군자일 수는
없고, 말은 그럴듯 하면서도 행동은 어림없이 퇴폐성을 탐하는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니취 상태에서 깨어나는 순간 부끄러움을
회복하는 게 인간이고 그런 인간들의 집단이 사회를 형성한다면, 이 사회도 이제는
'취해있는 모럴'을 두들겨 깨워야 한다.(주41)
그가 한탄하는 것은 험하고 짖궂은 술 손님 시중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이 생겨나야
하는 사회 구조나 그런 여성들을 잠시의 희롱 상대로 삼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그는
정상적인 눈으로 보아주기 힘든 상황이 생기는 것까지도 상식으로 눈감아 준다. 술
손님이 험하고 짖궂은 짓을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이기까지 하다. 그가 한탄하는 것은
단지 '마지막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이 마지막 한계에
직면해서야 비로서 도덕성의 파국을 느낀다는 점에서 거의 도덕성이 얼마나 무디고
불철저하며, "퇴폐를 탐하는 짓거리"에 이미 철저히 물들어 있는가를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우리 사회 많은 남성들의 도덕성의 현주소다. 매춘과 타락은
자본가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여자의 순결에 대해 열을 올리는 남자들일수록 그
자신은 이미 순결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의
남성들이 각양 각색의 성 매매와 접하고 있으며 타락에 물들고 있다. 그리고
"길거리의 여자들이 다 그렇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타락한 것은 길거리의
여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런 눈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여자를 술자리나 하룻밤의 희롱물로 삼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이런 도덕적 타락이 남자다움의 징표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남자들이 모여 룸
살롱에 가자고 하는데 싫다고 하면 따돌림을 받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이 타락의 시대에 남자다움이란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사회 구조나
도덕적 부패와 맞서는 진정한 용기, 한 여성에게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성실하고
순수한 애정과는 반대로 강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약자의 불행에 편승하고, 인간을
돈의 힘을 빌어 희롱하고, 자신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욕망을 사회 구조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비겁함의 대명사가 되었다.(주42) 그리하여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가
비겁한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여기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잃어버린 한 호스티스의 생명을 건 항의는 범람하는 타락의 물결에
흔적도 없이 쓸려가 버렸고, 타락의 "마지막 한계"는 계속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세익스피어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악취를 풍기는" 도덕적 부패를 한탄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남성들은 너무 심한 악취에 코가 문드러져 버려서 악취를 악취로
느끼지조차 못하게 되어 버렸다. 타락을 타락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타락은 없다.
* 매춘 권하는 사회
무엇이 매춘을 이렇게 광범위한 사회 현상으로 만드는가?
매춘에서의 성관계는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더구나 그것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남자들 중에서도 매춘을 통해 자신이 고양되고, 인간다워지고,
사랑이 풍부해진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그들은(설사
명료한 의식 속에서가 아닐지라도) 자신이 저열해지고, 추악한 욕구에 몸을 맡기고
있으며, 타락하고 있다고 느낀다. 매춘 행위는 남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의 도구로
삼는 것이고, 이는 상대방의 인간적 본성을 부정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런 비인간적인
관계에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비인간적으로 되었다는 표시다.
매춘에는 성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가장 큰 즐거움의 근원인 정신적인
요소가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비뚤어지고 뒤틀리고 사악해진 형태로 있다.
사실, 매춘이 광범해지는 것은 이렇게 비뚤어지고 뒤틀린 정신, 사악한 욕구를 이
사회가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성은 원래 상호적인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을 억압한다. 상호적인
성의 한 편이 소외되자, 성 그 자체가 소외된다. 성은 남녀간의 사랑의 표현이며, 그럴
때만이 남녀 모두에게 삶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남녀의 관계를 주인과
노^36^예, 인간과 사물의 관계로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가부장제는 사랑을 억압한다.
또 성을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랑이 없는 성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사랑과 성과 출산을 분리시켰다. 사랑과 출산과 분리된 성은 인간 사회에서 그
정당하고 정상적이고 건강한 자리를 잃고 무언가 수치스럽고 저열하고 인간답지 못한
것, 따라서 감추어야 하고, 마치 없는 듯이 행동해야 하는 은밀한 것이 되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그것은 마치 공인된 범죄 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여성의 성을 억압한 대가는 남성의 성도 왜곡되는 것이다. 남성의 성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 자유는 사랑할 자유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대신 타락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성은 뒤틀어졌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되는 대신, 지배와
소유의 표현, 다른 한 편에게 있어서는 피지배와 파괴, 자기 부정의 표현이 되었다.
성이 왜곡되어 수치스러운 범죄와도 같이 숨겨야 하는 것이 되자, 이번에는 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왜곡된 인식이 다시 보다 심한 성의 왜곡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에서 억압된 성은 다른 한편에서 비정상적이고 불건강한 형태로 과장되고
부풀려져 재생산되었다. 결혼 관계의 외부에서 성적인 만족을 구하는 타락한
부르주아야말로 매춘에 대한 수요의 근원지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신이 매춘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생산한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여자들을 실업으로 몰아넣어 몸을 팔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여성의 성이 상품이 되자 자본은 이것을 다시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 섹스 산업의 성장은 가부장제 속에서 소외된 성과 자본의
후안무치한 탐욕과 황금 숭배의 합작품이다.
오늘날 우리는 외설물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거리의 가판대는 유수한 신문사와
잡지사가 발행하는 외설 신문, 외설 잡지로 가득 차 있고 외설 영화, 외설 비디오,
외설 쇼, 외설 만화, 심지어 TV에 이르기까지 눈길 가는 곳마다 외설물들이 넘쳐
흐른다.
자본주의적 상혼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성은 인생의 구원이다. 그것은 자극적일수록
좋다. 일회적이고, 복잡하지 않고, 더 나아가 폭력적이고 한마디로 비인간적일수록
좋다. 이런 외설물들은 성을 사랑의 동력으로가 아니라 타락과 추함과 소외의
근원으로 만들며, 구원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망치는 근원으로 만든다.
이런 외설물의 범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이 억압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어디를 가나 성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은 성이 수치스럽고 비밀스러우며, 건강하지 못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넘쳐흐르는 성은 그것이 가진 좋은 요소는 모조리 제거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의 범람은 성의 억압의 표시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성교육은 우리 나라
학교의 정규적인 교과 내용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정상적인 통로는 거의 전무하다. 그리하여 여성들 사이에서 성에 관한 놀랄
만한 무지가 널리 존재하며, 남성들 사이에서는 놀랄 만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지식은 거의 대부분이 성을 왜곡시키는 외설물에서 얻어진 것이거나 이를
구전으로 전해들은 것들이다. 성이 인간에게 가지는 중요성뿐 아니라,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으키고 있는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성에 대한 이런 무지는 거의
야만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바로 이런 야만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인 것이다. 이런 외설물과 향락 산업은 성에 대한 수요와 그에 대한 태도와
의식을 생산한다.
"생산은 생산에 의해 비로소 대상으로서 창조되는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욕망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소비를 생산한다. 그 때문에 생산은 소비의 대상, 소비의
방식, 소비의 충동을 생산하는 것이다." 매춘을 향하는 성적 욕망은 사실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이런 충동질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매춘에
대한 수요를 만드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매춘은 인간 소외의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 인간 소외에 의해 요구되고 있다.
성의 사회적 기능이란 즐거움 없는 노동과 희망 없는 생활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보상하는 것으로써 소용되는 것은 아닐까? 부르주아 성 문화는 마치 "산업 재해
수당"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는 성과 그 '기쁨'(그러나 실제로 어떤 기쁨이고 누구의
기쁨일까?)을 괴로움의 대가로, 심심풀이로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급여의 일부로
만들었다. 종군 위안부는 우리들 여성에게 있어서 영원한 추문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즉 그것이 '여성의 서비스'(즉 '물건'으로서의 여성)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수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백질과 의식과 TV와 교육과 여가와 똑같이 노동력의
재생산에 첨가되는 생활 필수품이다.
사람들의 대다수가 창조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사회, 노동이 이미 급여 가치
이외의 의미를 갖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자유 시간 속의 성이란, 개인 사이의
관계가 갖는 특별한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각 개인이 사회로부터 성적 소비
속으로 도피하는 수단이 된다. 이 도피는 분명 환상일 수밖에 없다. 도피한 사람은
다시 거기서 이 사회의 모든 흉악한 특징을 다른 형태로 발견한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 상품 가치, 이기주의 소비를 위한 소비 등등.(주43)
그러므로 가부장제에 의한 성의 소외와 자본에 의한 인간 소외는 정말
천생연분이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금전적 가치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성이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하나의 단순한 소비, 욕망의 충족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또 이것이야말로 성의 소외의 극한적인 표현이다. 여기서는 쌍방이 모두
하나의 물질, 동물의 차원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줌으로써
자신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라면 이 이기적인 소비로서의 성이 사랑과는 정반대에
선다는 것도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위계 구조(사회와 가족 모두의)는 사회 성원에게
가학적인 충동을 심는다. 모든 인간 관계는 투쟁이며 한판 승부며 이를 통해서
상대방을 멋지게 때려 눕히지 않으면 안되는 결전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굴복하면 그에게서 완전히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학적인 충동에
가장 적합한 상대는 창녀다.
창녀는 학대받기 위해 존재한다. 가장 저열한 남자도 창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가장 비천한 남자도 창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하나의 주체와의
관계를 맺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없다. 필요한 것은 돈 뿐이다. 돈으로 다른 사람을
부리는 데 익숙한 자본가들은 그들의 돈의 위력을 행사하고, 지배를 확인하고,
가정에는 없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매춘부를 산다. 사회의 다른 곳에서 학대받고
지배당하는 남자들, 돈의 위력 때문에 쓸개 빠진 듯이 행동해야 하는 남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자기 위안을 위해서, 자기 확인을 위해서, 돈
앞에 무너진 자신의 자존심을 돈의 힘을 빌어 회복하기 위해서 창녀를 산다. 창녀의
효용은 그녀가 만만한 존재라는 데 있다. 창녀에 대한 우위는 완벽하게 확립되어
있다. 창녀는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녀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다. 그녀의 효용은 저주를 받는 데 있다. 창녀를 사면서
남자들은 그녀에게 저주를 보탠다. 이 사회에 대한 저주, 지배자에 대한 저주, 돈에
대한 저주를 모두 창녀에게 보낸다. 도스토옙스끼가 그의 여러 소설들에서 창녀를
대지에 비유한 것은 의미가 깊다.
그 구성원의 일부를 동물만도 못한 삶에 처박고, 이를 인구의 절반이 일상사로서
받아들이고 이에 가담하고 있는 사회,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적인
실상이다.
4) 새로운 가족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가부장적인 가족은 커다란 불행의 근원이다. 가정불화의
대부분은 가부장제에 의해 생긴다. 이는 여성에게 보다 더 큰 불행을 가져오지만
남자들 역시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가부장제는 가족을 병들게 하고 병든 가족 관계는
인간을 그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가장 내면적인 감정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병들게 한다. 가부장적 횡포는 이 질병의 증상일 뿐이다.
인간이 자신을 동물과 구분하여 인간이 되기 위해 치른 수업료는 엄청난 것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비인간적인 억압과 고통에 몰아넣는 것을 대가로 치뤄야했기
때문이다. 노동에서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가족에서의 진보도 그 대가를 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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