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스크랩] Love Me Tender (Elvis Presley) ... !

긴 긴 시간 2013. 12. 17. 10:16

■ Elvis Presley ... !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는 미국출신의 록큰롤의 제왕으로서 배우겸 가수이다. 그의 본명은 "엘비스에이런 프레슬리 (Elvis Aaron Presley)" 인데 1935년 1월 미국 미시시피주의 이스트 투플로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의 데뷔는 1956년인데 영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 로 하였고 1977년 8월 16일 (향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는 록큰롤의 역사를 이룩하여 놓은 로큰롤의 제왕이다. 쌍둥이 형인 제시 프레슬리 (Jesse Presley) 는 태어나자마자 곧 사망했으며 엘비스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부모로부터 배우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1943년에는 국민학교 선생의 권유로 컨테스트에 나갔었는데, 거기에서 "올드 숍 (Old Shop)" 을 불러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컨테스트에서 우승한 엘비스는 부모로부터 기타를 선물로 받았고 그는 그의 재능을 키워 나갔다. 1948년에 엘비스의 가족은 그가 13살때 테네시 주 멤피스로 이사를 하였고 엘비스는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극장 안내원으로 취직을 했었다.

 

그리고 1953년경에는 크라운 일렉트릭 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하였으며 여가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집으로 보내던 그는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드리기 위해 4달러 짜리 자작 레코드를 만들고자 "선 레코드사 (Sun Record)" 를 찾았는데 선 레코드사의 경영자인 "샘 필립스 (Sam Phillips)" 가 엘비스의 노래를 들어 보고 곧 그를 스카웃하여 몇 곡의 노래를 취입하게 되었다.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사운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던 "선 레코드사 (Sun Record)" 의 사장 "샘 필립스 (Sam Phillips)" 의 협력에 의해 엘비스는 1954년부터 음악 경력을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기타리스트 스코티 무어와 베이시스트 빌 블랙과 함께 음악을 하였고 나중에는 RCA 빅터로 레이블을 옮겨 그곳에서 커널 톰 파커와 20년 동안 매니저를 하기로 계약을 했었다. 그리고 1956년 1월, 엘비스는 RCA에서 발매한 첫 싱글 "허트 브레이크 호텔 (Heartbreak Hotel)" 을 발표하였고 이 노래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하며 대히트를 쳤다. 이어 엘비스는 텔레비전 출연과 차트를 휩쓸며 인기를 얻었고 "로큰롤" 을 새로운 인기있는 장르로 크게 유행시켰다.

 

데뷰 싱글 "허트 브레이크 호텔 (Heartbreak Hotel)" 은 특히 젊은 팬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어냈다. 당시 "빌 헤일리 (Bill Haley)" 보다 더 박력 있고 섹스 어필하는 자신 특유의 스타일로 노래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엉덩이의 마술사" 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의 무대 위에서의 제스쳐는 전 세계의 10대 청소년들에게 더욱 열광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가미된 음악들을 발표하면서 10대들의 우상으로 군림하였다.

 

1956년에 영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 에 출연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여러 차례 영화에 출연한 엘비스는 10대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967년 5월 1일, 엘비스는 미 육군 대령의 딸인 "프리실라 뷰리우 (Priecilla Beaulieu)" 와 결혼해 한 명의 딸을 두기도 했지만, 1973년에 이혼을 했다. 이때부터 엘비스는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건강이 악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약까지 복용하는 등 최악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마침내 1977년 8월 16일 멤피스 침례병원에서 4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게 되었다.

 

 

   

   

 

 

그의 사망소식에 전 세계 팝 애호가들은 비운에 간 그의 생애를 아쉬워 하였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멤피스의 엘비스 저택으로 객들이 줄을 이어 빈소를 찾고 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 5주년 행사가 벌어졌던 1982년 미시시피강 주변에서는 추모 컨서트가 멤피스 주립 대학에서는 그에 관한 강연과 감상회가 끊이질 않고 열렸었는데 감상회에 모인 팬들 대부분은 1960년대 그의 사운드와 스테이지 매너에 황홀해 하던 중년 신사 숙녀들이 자녀들과 함께 참여해 젊은 시절의 낭만을 되찾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는 20세기 대중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다양한 목소리는 컨트리, 팝 발라드, 가스펠, 블루스 등의 장르를 포괄하며 이례적인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또한 그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솔로 가수이기도 하다. 그는 총 14번의 그래미 후보로 지명받았고, 3번의 수상을 했으며 36살에는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수 많은 음악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기도 하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는 1956년 나이 22세때 영화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 로 데뷔하였는데 1957년 미국 국방부로 부터 징집 영장을 받고 신체검사를 받았으며 1958년에 독일연방공화국 내에 소재하는 제1기갑사단 소속 미군기지에 소총병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주 장르로 해 노래를 불렀으며 로큰롤, 가스펠, 록, 펑크, 발라드, 팝 등의 장르에서 모두 정상급에 올랐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비틀즈와 함께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아티스트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약 10억장 이상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는 1977년 8월 16일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자택의 욕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향년 42세의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2008년 빌보드지는 "핫 100 차트 (Hot 100 Chart)" 50주년을 기념하여 50년간 성공적인 차트 기록을 올린 아티스트들의 기록을 분석해 순위를 는데 엘비스 프레슬리는 4위에 올랐다. 그는 1954년 엘비스의 최초 앨범이 발표되고 1977년 그가 죽음을 맞게 될 때까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예능인 중 한사람이다.

 

◎ 싱글 챠트 "넘버 원 (No 1)" 에 등장했던 곡들 ... !

 

   - 1956년에 데뷰 곡이라고 할 수 있는 "Heartbreak", 같은 해에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 1957년에 "Hound Dog / Don't Be Cruel" 과 "Love Me Tender", "Too Much", "All Shook Up", "Teddy Bear", "Jailhouse Rock"

   - 1958년에는 "Don't" 와 "Hard Headed Woman" 을

   - 1959년에는 "A Big Hunk O' Love" 와 "Stuck On You" 를

   - 1960년에는 "It's Now Or Never" 와 "Are You Lonesome Tonight"

   - 1961년에는 "Surrender", "Good Luck Charm", "Suspicious Minds"  등 무려 17곡에 이르고 있다.

 

 

■ 곡명 : Love Me Tender (Elvis Presley) ... !

 

 

 

출처 : 웹어스 (WebUs)
글쓴이 : 도시선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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