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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신학교수들의 성명서

긴 긴 시간 2014. 1. 13. 10:26

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신학교수들의 성명서 살아가는 이야기

2012/01/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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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신바람 나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느님 체험을 쉬운 말로 풀어낸다." 바로 연구소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이 사명선언에 따라 성찰은 깊고, 소통은 쉽고 넓게 하기 위해 연구소 식구들이 쓴 칼럼들을 모아 놓은 공간입니다.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때로는 아프지만 약이 되는 비판으로 소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회,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신학교수들의 성명서, 기쁜소식 1004호 복음화 2000
글쓴이 : 이승희
작성일 : 12-01-17 10:40
조회 : 92
교회 …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신학교수들의 성명서
(* 편집자 주 : 이 글은 현재 독일에서 유학 중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인 이승희 씨가 독일, 가톨릭교회의 위기에 대한 신학교수들의 성명서를 번역하여 보내준 글입니다. 이승희 씨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 성명서 소개
2011년 2월 14일, 독일어 권(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대학에서 가톨릭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 144명은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서명자 수는 모두 311명으로 늘어났는데, 서명자 중에는 미국, 스페인, 폴란드 등에서 활동하는 70여명의 비독일어권 신학 교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성명서에서 신학교수들은 교회의 사명이 해방이자 자유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임을 분명히 하고, 완고한 도덕주의는 이 복음 정신과 맞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더 많은 대화와 참여가 보장되고 복음이 전한 자유와 인간 존엄이 존중받는 교회를 위한 구조 개혁을 촉구한다.
이 성명서는 독일 교회 안팎에서 큰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주요 언론들은 성명서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다양한 논평 기사를 쏟아냈고, 교회 안에서도 성명서 내용에 대한 성직자와 교회 여러 단체들의 의견 표명이 이어졌다.
성명서에서 제안하는 내용들이 한국 교회 상황에서 생소할 수도 있는 주제들이지만, 교회 쇄신에 대한 세계 교회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한글로 번역, 소개한다. 성명서 원문 및 여러 번역문들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베를린 카니시우스 학교에서 사제와 수도자들이 일으킨 ‘청소년 성폭행 사건’이1) 폭로된 지 1년이 족히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독일 가톨릭 교회는 유례없는 위기에 부닥쳤다. 이에 대한 반응은 매우 복잡하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옹호하고 부정에 맞서며 성폭력, 침묵, 이중윤리의 원인을 교회 내부에서 찾기 시작했다. 책임감 있는 여러 성직자 및 평신도들은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깨달게 되었다.
권력구조, 의사소통구조, 교회 운영구조, 신자들의 참여구조, 그리고 도덕과 성에 대한 열린 대화를 촉구하는 데는 개혁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동시에 ‘교회의 위기를 외면하고 축소하면 마비와 침체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금기 없는, 열린 대화는 만만치 않은 긴장을 낳는다. 하물며 교황의 방문2)을 눈앞에 둔 상황이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열린 대화의 대안으로 ‘무덤의 침묵’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지막 희망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맞고 있는 이 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폭행스캔들, 그리고 이를 지난 10여년간 은폐했던 일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까지도 다루어야 한다. 신학을 전공하는 교수로서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면 안 된다. 우리는 새로운 참 시작에 공헌할 책임을 느낀다.
2011년은 교회를 위한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에 전에 없이 많은 신자들이 가톨릭교회를 떠났다.3) 그들은 교회지도층에게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거나 제도로부터 자신들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사유화시켰다. 활기와 신뢰를 새롭게 회복하기 위해서 교회는 이런 징표를 이해하고 경직된 구조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두려움 때문에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교회 구조는 쇄신될 수 없을 것이며, 오직 자기비판과 외부의 비판마저 수용하는 용기만이 교회 구조의 쇄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지난해에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공개적인 비판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성폭력 문제가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는 오직 열린 소통을 통해서만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외부에 비쳐진 모습과 교회의 진짜 모습이 서로 일치할 때 비로소 교회는 믿을 만한 곳이 된다. 우리는 교회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시작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을 것이다. 우리는 몇몇 주교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대담, 설교,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대화와 새 출발을 논의의 기초로 삼는다.
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해방하시고 사랑하는 하느님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일이 교회의 임무다. 교회가 복음이 전하는 자유의 소식이 머무는 곳이자 그 소식의 믿을만한 증인이 될 때에만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교회의 말씀과 실천, 규칙과 구조, 그리고 교회 안팎에 있는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고 지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인격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 양심의 자유에 대한 주의, 법과 정의의 옹호,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복음에 기초한 교회의 의무에서 나온 신학의 기본 잣대이다. 이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구체화된다.
성서가 전하는 자유의 복음을 지향하는 일은 근대 사회와 차별적인 관계 형성을 포함한다. 개인의 자유, 성숙, 책임을 인정하는 일은 많은 경우 교회보다 우선한다.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했듯이 교회는 거기에서 배울 게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능력으로만 평가되고 상호간의 연대가 무너지며 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되는 이 현대 사회에서, 그런 복음의 정신에서 나오는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복음이 선포하는 자유야말로 신뢰받는 교회와 교회의 실천과 교회의 사회적 형태를 가름하는 척도다. 지금 교회가 직면해야 하는 도전들은 결코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인 개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를 다루는 개방적인 대화가 다음의 영역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1. 참여 구조 : 교회 생활의 모든 영역에 신자들의 참여는 복음이 선포하는 자유가 믿을만한 것인지 측정하는 시금석이다. “모두에 해당되는 일이면 모두가 결정해야 한다”라는 옛 격언에 맞춰 교회의 전 영역에 더 많은 회의구조(시노드)를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직책(주교, 본당 주임 신부)의 임명에 신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지역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지역에서 결정해야 한다. 결정은 언제나 투명해야 한다.
2. 공동체 :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사람들이 정신적 물질적 재화를 서로 나누는 장소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는 공동체적 삶을 침식시킨다. 사제수의 부족으로 공동체의 규모가 점점 커져 이른바 ‘XXL 본당’이 만들어졌고 그런 초대형 본당에서 친근감과 소속감을 경험하기 어렵다. 역사적 정체성과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사회관계망은 포기된다. 사제들은 ‘과부하’ 상태로 탈진한다. 신자들이 공동책임을 지고 더 많은 민주적 구조 안에서 본당공동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교회에서 멀어진다. 교회 직무는 공동체의 삶에 봉사해야 한다.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교회에는 결혼한 사제와 여성도 필요하다.
3. 법문화 : 모든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인정은, 갈등이 상호 존중 속에서 공정하게 해소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교회법은 신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실제로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한다. 교회 내의 권리보호와 법문화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교회행정법체계 구축이 그 첫걸음이다.
4. 양심의 자유 : 개인의 양심을 존중한다는 말은 인간에게 있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이런 능력을 후원하는 일도 교회의 임무이지만, 이 과제를 온정주의로 귀속시키면 안 된다. 특히 이 문제는 개인적인 삶의 영역과 생활양식에서 더욱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교회가 결혼한 가정과 독신생활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사랑과 신뢰 그리로 상호간의 돌봄 속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는 동성애자커플이나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을 배제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5. 화해 : ‘죄인들’과 연대하기 위해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독선적이며 도덕적인 엄숙주의는 교회와 맞지 않다. 교회는 폭력과 권리의 유보, 그리고 성서가 전하는 자유의 복음을 자비 없는 완고한 도덕으로 왜곡시켜서 여러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이들과 화해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지 않은 채 하느님과의 화해를 설교할 수는 없다.
6. 전례 : 모든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모든 전례는 활기를 띈다.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과 표현방식이 전례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전례는 전통주의에 얼어붙어서는 안 된다. 문화의 다양성은 전례 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며, 하나의 통일된 형식을 지향하는 것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신앙의 축제가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고려할 때에만 교회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모든 당사자들이 이 긴박한 질문들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다면, 지금 시작된 교회의 대화는 해방과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빠져 마비되어 있는 교회를 구할 해답은 자유롭고 공정한 토론에서 얻을 수 있다. 지난해의 폭풍 다음에 침묵이 따라와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다만 ‘무덤의 침묵’일 뿐이다. 두려움은 위기에 대처하는 좋은 자세가 결코 아니었다. 복음은 -예수의 입을 빌려-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한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처럼 용기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며 걸으라고.
"너희는 어찌 그리 두려워하느냐? 너희의 믿음이 그렇게 적었단 말이냐?”
* 서명자 명단 보기 : www.memorandum-freiheit.de
1) 카니시우스 학교는 독일 예수회가 운영하는 중등고등과정의 사립학교이다. 2010년 1월, 이 학교 교장을 맡고 있던 클라우스 메르테스(Klaus Mertes) 신부는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이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 600여명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에 사제들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고 그 사건들이 학교와 예수회에 의해 은폐되었음을 알리고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이 편지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성직자와 교육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폭로가 줄을 이었고, 예수회 진상 조사 위원회가 확인한 예수회 운영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만도 205건이 되었다.
2)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0년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독일을 공식 방문했다.
3) 독일에서는 가톨릭 신자를 시청 등의 관청에서 관리하며, 교회를 떠나고 싶거나 종교세를 더 이상 내기 싫은 신자들은 관청에 탈퇴 신고를 해야 한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서 약 18만명이 가톨릭교회를 떠났는데, 이는 2009년보다 6만 명이 늘어난 숫자이고, 1992년 이후 가장 많은 탈퇴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