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있는 이야기

<푼글>"우리 사회 전문 직업인의 도덕적 이중성과 기독 지성의 책임"

긴 긴 시간 2014. 4. 23. 09:01
  • "우리 사회 전문 직업인의 도덕적 이중성과 기독 지성의 책임"
  • 얼마 전 한 신문사에서 한국의 교수 사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교수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지식인의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응답자들은 교수사회가 한국사회의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전문성의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도덕성의 면에서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교수 사회의 도덕적 이중성을 심각한 문제로 간주하였다.

  • 이러한 이중성은 교수 사회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의약분업 사태 때에도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전문성과 도덕성의 심각한 균열 현상을 마주해야만 했었다. 의사 집단이나 약사 집단이나 자신들의 전문가적 권위만 내세우고 현실적 이익을 지키는 일에만 매달렸지 공익에는 너무나 인색한 것을 우리는 경험하였던 것이다. 조금만 길게 보면 당장의 사적인 이익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공익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자신과 자녀를 위한 길임은 너무나도 명백한데도 말이다.

  • 우리 사회의 교육받은 집단, 전문직업 집단 일반에 만연해 있는 무책임성 내지는 도덕적 이중성의 예는 이 외에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문민정권 시절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법조인의 양성 및 충원제도를 개혁하고자 하였을 때 그 저항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 사회 법조계의 현실과 선진 외국의 여러 제도를 볼 때 개혁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였으나 현실적 이해관계에 집착한 당시 법조계의 저항으로 그 시도가 유야무야 되었던 것이다. 현재 쟁점으로 되어 있는 언론개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이처럼 우리사회 대부분의 전문 직업 집단을 보면 평소에는 천사처럼 온갖 고상한 주장을 다 하다가도 자신들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부딪히면 여우로 혹은 사자로 돌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 직업인의 도덕적 이중성에 대한 이러한 비난으로부터 과연 우리 기독인은 자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 작년 의약분업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필자를 안타깝게 만든 것은 기독 의사들의 침묵이었다. 아니 어떤 전문 직업 집단보다도 의사들 가운데 기독인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던 필자에게는 의사 단체의 목소리가 곧 기독의사들의 목소리로 들리기까지 하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서 누가회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필자는 그 안타까움을 일부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전문 직업집단의 경우에는 구별되는 기독인들의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이들 집단 속에 일부 혹은 다수의 기독 신앙은 있지만 기독 지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며 설혹 기독 지성이 존재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 물론 이는 필자 스스로를 향한 고발이기도 하다. 필자가 속한 대학사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앞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자녀 유학에 대한 교수들의 의지 및 인식에 관한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큰 현실적 고통을 주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교육 문제이다. 공교육 붕괴, 교실 붕괴, 대학 위기 등의 말이 빈번하게 들린다. 한 나라 공교육의 붕괴란 곧 그 나라 장래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 이 모든 교육의 위기는 얽혀 있어서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없지만 상당한 부분이 대학교육과 관련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대학교육의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이 스스로 발 딛고 있는 현장을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에는 자녀를 유학 보냈거나 보낼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사람보다 많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응답자의 62.3퍼센트나 되는 교수는 자신의 주위 동료가 자녀를 유학 보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유학 자체가 잘못 된 일은 결코 아니며 때로는 권장할 필요도 있다. 다만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한국의 교육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한국의 공교육 바깥에서 자신의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위기의 공교육 현장을 도피하는 데 앞장서기 보다는 마땅히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야만 할 위치에 있지 않은가.

  • 그렇다면 기독 지성을 추구한다는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실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기독 학자뿐 아니라 오늘날 교계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분들에게도 이 문제는 하나의 상징적인 도전일 것이며 오늘날 우리 교계의 수준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오랜 독일 유학 시절 독일의 교회가 그 사회의 양심이자 횃불로서 확고히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비록 독일 교회에도 나름대로의 고민과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실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 시급히 요구되는 점이 바로 이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바로 교계 지도자의 책임과 역할이며 교육받은 기독 전문직업인의 책임과 역할이기도 하다. 특별히 기독 지성의 훈련을 받고 사명감을 가진 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 앞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종교계의 교권 세습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응답자가 3/4나 되는데 이는 재벌기업의 경영 세습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북한 정치권력의 세습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보다 더 높은 비율이다. 이는 사회가 기독인에 대해서 기대하고 요구하는 도덕성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이처럼 높은 기대와 요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여긴다. 다음으로 우리가 할 일은 이러한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기독 지성인이 각자의 몫을 감당하는 것일 게다.

  • (기학연 소식지 2001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