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령아동' 5억명 넘는다

출생신고 않고 사는 아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70%인신매매 등 범죄에 노출..교육·의료 혜택도 못 받아경향신문 | 김세훈 기자 | 입력 2015.11.01. 22:39

중국 베이징 남부에 사는 여성 리쉬에(22)는 ‘투명인간’이다. 여덟 살 위인 언니는 학교도 다녔고 직장도 잡았으나 리쉬에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부모가 둘째 자녀를 출생신고할 때 내야 하는 벌금 5000위안(약 90만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쉬에는 법률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고, 직업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31일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만들어낸 리쉬에 같은 ‘유령인간’들의 사연을 전했다. 중국 공산당이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기로 했지만, 리쉬에가 당장 존재를 인정받을 길은 없다. 그는 “정부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지구상 인구가 73억명이 넘지만 그중 수억명은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미등록 인구’ 혹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 부르는 이런 이들은 법의 보호도,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리쉬에처럼 강압적인 인구통제로 유령인간이 된 사람도 있고, 분쟁과 빈곤 때문에 그렇게 된 이들도 있다.

중국에서는 호적이 없는 사람들을 ‘헤이후(黑戶)’라고 부른다. 지난해 정부 조사에 따르면 헤이후는 650만명에서 1300만명이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한 자녀 정책 폐지를 선언하면서 “인구 4억명의 증가를 억제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출생신고가 된 아이들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리쉬에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구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유니세프의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이들은 약 5억명이다.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가 2억2500만명으로 가장 많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 70%가 출생신고 없이 살아간다. 유니세프 발표 수치는 지금으로부터 15년이다. 당시 5억명은 5세 이하 아동이었다. 지금은 유령인구가 더 많을 게 분명하다.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은 세계에서 매년 신생아 5100만명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세계 어린이 3명 중 1명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유니세프 통계도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올 초 ‘출생신고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여권’이라는 기사에서 “소말리아 출생신고 비율은 3%”라고 전했다. 나라마다 출생신고 제도가 있지만 물리적 거리, 행정력 부재, 사회·문화적 풍습,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저개발국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이들은 교육, 의료, 취업, 결혼, 치안, 투표 등에서 권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은행 계좌조차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노동력 착취, 인신매매 범죄에 몹시 취약하다. 몇 해 전 우간다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10대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풀려났다. 아이티, 필리핀에서처럼 미등록 아이들이 재난으로 가족을 잃으면 범죄에 희생될 위험성이 더욱 높다. 기타 라오 굽타 유니세프 사무총장은 “출생신고는 인간의 기본적 삶을 위한 기반”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