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마이클 세스의 `한국사개요` 고대사 부분

긴 긴 시간 2009. 1. 27. 07:49

20세기 중반에 영어로 된 한국사 관련 서적이 발간된 이후 오래간만에 미국의 동양사 전문가 마이클 세스 교수에 의해 '한국사개요(A concise history of Korea)'라는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이 책을 냉큼 주문했다. 그런데 ... 한국사의 기원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왜 이리 우울한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한국사 전문가라는 사람이 쓴 책이라는데, 고대사부분만 보면 완전 일제식민사학의 영문 번역본 같다. 사설은 그만두고, 책 본문을 조금씩 살펴보기로 하자.

 

'제1장 한국사의 기원'을 보면, 한국에는 약 40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대략 기원전 2000~1500년 사이에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청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원전 700년 무렵 한국에서 청동기문명이 시작되었다. (중략)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한국에서는 청동기의 사용이 국가 형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기원전 2000~1500년 무렵의 청동기 유적은 싸그리 무시하고) 한 마디로 기원전 700년 이후에야 청동기문명이 시작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개한 한국인들은 아직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조선은 당연히 무시된다.

 

"후세의 일부 한국 역사가들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주장하지만, (고)조선이라는 정치집단이 분명하게 기록에 나타난 가장 이른 시기는 기원전 109년이다. (중략) 현대 한국인들은 고조선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생각하지만, 고조선을 특정 민족이나 문화와 연결지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전혀 없다."

 

고조선은 실체가 불분명하고, 기원전 109년에 중국에 의해 망했으며, 고조선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은 단지 한국땅에 중국을 직접 개입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뿐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가 고조선 이래로 중국과 분명히 차별화된 언어와 문화, 의식주 양식을 유지해왔음에도 말이다.) 그 다음은 한사군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사군의 설치는 한국역사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반도의 주민들(이것은 사실 일본인들이 만든 매우 경멸적인 표현이다)은 중국의 선진문명을 직접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한국인들의 중국화에 기여했다. (중략) 그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는 보다 넓은 동아시아 역사의 일부분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요동지방에 있었던) 한사군을 한반도 한복판에 설치됐다고 주장하면서 세스는 한사군 덕분에 한국이 중국의 선진문명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일본 학자들의 논리와 똑같다. 다음으로 한사군 북쪽의 부여와 고구려, 남쪽의 삼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데, 이 나라들도 제대로 된 국가를 못 이룬 채 몇몇 힘있는 '추장'들이 이끄는 부족집단 정도로 취급된다. 저자는 서기 4세기에 중국이 혼란한 틈에 낙랑군과 대방군이 축출된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할줄 아는 토착국가들이 등장했다"면서 '제1장 한국사의 기원'을 끝맺는다. 결국 '한국사의 기원'을 다룬 제1장을 보면 서기 4세기 초까지 이 미개한 한국인들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도 성립시키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찬란했던 5천년 역사의 빛이 완전히 바래는 순간이다.

 

제2장으로 넘어가 보자. 제목은 '(서기) 4세기와 세 왕조의 등장'이다. 세스에 의하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연대는 '신화'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을 수는 없고, 다만 고구려의 경우에는 듕국 역사기록에 기원전 75~서기 12년 사이에 등장하기 때문에 기원전 37년 기원설이 비교적 타당하다고 한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의 주장과 같다.

 

"4세기 후반 들어 실체가 분명한 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들은 상당한 영토와 함께 또 한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바로 문자활용능력이었다. 4세기 양자강 이북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 상실로 인한 혼란의 시기에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은 이들 "야만적인" 국가들의 왕실로 진출했다.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주인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중국식 학문을 보급했다."

 

이 대목에서는 완전 어이 상실. 더 이상 말이 안 나온다. 고구려 초기에 유기 100권을 지어 역사기록을 남겼고, 고조선 시대에도 한자와 이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4세기에 중국인들이 한국땅에 와서 한국의 왕들에게 한자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니... 아마 세스는 4세기에 배운 한자 실력으로 고구려인들이 414년에 광개토왕릉비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영어로 한국통사를 써준 건 참 고맙지만, 이쯤 되면 차라리 일본학자들이 쓴 한국사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이다. 우리가 아무리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부르짖어 봤자 외국인들은 사대주의자들과 중국과 일본에 의해 축소 왜곡된 한국의 모습과 역사를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국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한국의 역사는 언젠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 마이클 세스의 `한국사개요` 고대사 부분
글쓴이 : kogure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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