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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 - 자유화하라/푼글

긴 긴 시간 2013. 6. 9. 10:47

이산가족상봉 - 자유화하라


남북 각각 100명씩이니까 합해서 200명, 그리고 한사람이 평균 5명씩 만났다 고 치면 총 1000명의 이산가족이 생이별 50-55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살붙이를 만나는 벅찬 감격과 기쁨을 얻었다. 또 그 엄청난 광경의 전개를 지켜보는 7천만도 하나같이 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념과 제도의 대립에서 오는 마찰도 없어서 진행이 순조로웠다 한다. 그러니 1985년에 있었던 이산가족 교환방문 때 보다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흘 후 다시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은 여전히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북의 저명한 국문학자인 유열씨는 "아버님 산소를 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떠나야 했다. 통일돼서 또 만나자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통일될 때까지 내가 살수 있겠는가"고 대답했다. 또 다른 어머니는 "가지 말아. 날 두고 어디 가냐. 그냥 여기서 같이 살자"고 울부짖었는데 그래도 아들은 눈물 범벅이 된 채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여류소설가 공지영씨는 이번의 남북 간 이산가족상호방문을 보고 중앙일보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끓여주는 된장국도 못 먹고 어린 시절 놀던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도 못 만져보고 새로 풀먹인 이불 홑청에 누워 불을 끈 채로 두런두런 이야기도 못하는 그런 만남. 더욱이 늙은 어머니가 쓰러진 병원에도 못 가고 돌아가신 부모 산소에 술 한잔 올리지 못하는 이 비인간적이고 이상한 상봉을 우리는 과연 만남이라고 불러도 될까."

무릇 사람에게는 천부불가양의 권리라는 것이 있다. 하늘이 사람에게 준 권리, 따라서 사람으로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근대 민권사상의 근본개념이다. 그 첫째는 물론 사는 권리이다. 즉 생명권 혹은 생존권이다. 또 자유권이라는 것이 있다.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살붙이 들 끼리 같이 모여 사는 것, 한 핏줄끼리 서로 찾아가고 만나는 것, 이것은 자유권보다도 더 기본적인 권리에 속한다. 이 권리는 근대 민권 사상 이전에 이미 확립된 권리이다. 그래서 이 권리에 대해서는 법률상의 용어가 따로 없다. 굳이 법률용어를 따로 만들거나 법에 규정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권리를 우리의 조상들은 "혈육이 없어지면 방을 붙이고 전국을 누비며 찾아다니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혹은 "한 식구끼리는 먹으나 굶으나 같이 살아야 한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남북에 있는 두 정부는 지난 50년 동안 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우리들로부터 빼앗아 갔다. 그리고 그것을 담보로 잡고 남북 정부간에 정치흥정 노름을 해왔다. 이 얼마나 치졸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인 처사인가? 이산가족의 한은 실로 남북의 두 분단정부가 자기민족에게 씌운 멍에이다.

도대체 핏줄이 서로 찾아가고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이를 꺼리고 막아야 하는 그런 정부가 우리들에게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남북이 서로 상대방정부의 처사를 핑계삼지만 사람의 생명권과 버금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막아야하는 정부는 아무리 그럴듯한 구실을 대더라도 그것은 벌써 정부로서의 자격이 없는 정부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독일인들은 분단시절에도 동서독간에 일정한 절차만 밟으면 서로 내왕할 수 있었다. 월남인들은 남북 간에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관혼상제 등 인륜대사 때는 남북 간에 서로 왕래할 수 있었다. 중국과 대만간에는 지난 87년 이후 친척간의 내왕의 길이 트여 작년만 해도 총 185만 건의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의 눈물바다를 이룬 우리들의 상봉광경을 본 외국인들은 도대체 그 동안에 무엇을 했기에 이런 일이 왜 5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일어나느냐고 반문하였다고 한다.

남북 양 정부의 지도자들은 이번의 이산가족상호방문을 무슨 큰 업적으로 생각하고 만족해한다는데 당치도 않는 소리이다. 이번에 두 정부가 허가함으로써 상호방문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 동안에는 두 정부가 막았기 때문에 방문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남북에서 각각 100명씩 합계 200명만 방문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그 나머지 몇 백만 명은 아직도 정부가 막고 있기 때문에 그리운 살붙이를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90을 넘어 앞날이 얼마 안 남은 노모가 "가지 말아. 날 두고 어디 가냐", "그냥 여기서 같이 살자"고 눈물로 애원하는데, 50년 간 저지른 불효에 뼈가 사무치는 70노경의 아들이 왜 그대로 주저앉아 같이 살고 싶은 충동을 안 느꼈겠는가? 그러나 남북 두 정부가 빈틈없이 짜놓은 체제와 법규는 그렇게 했다가는 집에 두고 온 처자식이 무사할 수 없고 또 다음 차례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회를 박살낸다는 우려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도록 묶어놓고 있으니, 모두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뿌리치고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남북 합해서 겨우 200명을 골라서 그것도 몹시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가족상봉을 허락해 준 것으로 남북의 두 분단정부가 민족에게 지은 죄를 사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죄는 남북 간의 가족상봉에 장애가 되고 있는 모든 금지와 제약을 풀어 완전히 자유화하기 전에는 면죄될 수 없다. 현실적인 조건상 당장에 완전자유화하기가 어려운 줄은 안다. 그러나 생사확인과 상호통신은 당장에 라도 실현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상호방문 및 재결합은 순서에 따라 최단시일 내에 완전 자유화하는 계획을 남북 간에 화급히 작성하고 그것을 전 국민에게 지체 없이 밝혀야 할 것이다.

체제나 질서유지를 핑계로 지연 책을 쓰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다소의 혼란과 무리가 있더라도 가족이 가족을 자유로이 찾아가 만날 수 있게 해주고 그런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대세에 따라 이루어지는 질서와 체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받들고 가꾸어 나갈 질서와 체제이다. (2000년 8월 20일 "민족통신" 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