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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는 어떤 종교였나요?

긴 긴 시간 2013. 12. 7. 17:05

사목정보 6월호 원고

가톨릭교회는 어떤 종교였나요?

송용민 신부

(삼산동 성당주임/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세기 근대주의(modernism)가 세상을 휩쓸고 있을 때 종교와 종교적 가치들은 심각한 의문에 처했었다. 인간 이성의 합리성과 자율성이 잣대가 되어 종교나 신앙을 미성숙한 인간이 지닌 지식의 결핍현상정도로 치부하던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종교가 인간의 성숙한 자기발전에 방해가 되고, 계몽되지 못한 인간들의 영혼의 안식처처럼 여겨지면서 종교의 무용론 혹은 무신론적 사조들이 인류 역사를 뒤덮었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이 시기는 인류역사에서도 정신사적으로 가장 큰 격동기였다.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이 당연시 여겨져 왔던 중세의 패러다임이 끝나고, 근대적 정신이 태동하던 시기에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제거되거나 삶의 주변으로 밀려났고, 신의 권위에 의존하던 신앙 세계 역시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서구 유럽 사회를 지배해온 그리스도교가 이 시기에 치명적인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인간 이성의 잣대로 본다면 중세 이래 가장 강력한 사회적 통합의 가치였던 그리스도교 교리가 의문에 처하게 되었고, 성경의 무오성(無誤性)과 절대성이 인문학과 고전해석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계몽주의가들은 미성숙한 인간 이성의 자주성을 회복하라고 요청했고, 신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신의 권위를 통해 사회통합의 중심이었던 교회의 권위와 성직자의 지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종교적 가치들 역시 인간 이성의 합리성과 기술혁명의 유토피아에 휘말리며 삶의 이면으로 밀려났다. 하느님 없는 세상, 신의 개입 없이 인간이 낙원을 만들 수 있다는 바벨탑의 요청이 이 시기에 서구 유럽 사회를 지배했다.

하느님의 계시 사건에 토대를 두고 신앙 세계를 형성해온 그리스도교가 위기에 빠지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근대주의의 열풍 속에서 교회는 철저하게 자기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다. 세상과 교회는 엄연히 구분되었고, 교회는 구원의 방주처럼 선택된 이들이 머무는 곳이고 세상은 교회로 초대되지 않고서는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 악의 세계로 비춰졌다. 성과 속의 이분법적 구분이 가장 강력한 종교적 이상이 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초기 교회에서 배교한 이들에게 교회품으로 돌아올 것을 요청한 치쁘리아누스가 했던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말을 빌려 로마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명시적인 구원이 없음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세상이 추구하는 완전한 사회체’(societas perfecta)이며, 구원된 공동체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라의 가시적인 현실체임을 분명히 했다.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데에는 교회가 처한 위기의식이 한 몫을 했다. 계몽주의로 시작된 근대주의의 열풍은 당시 초자연적 은총과 하느님 계시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성장했던 교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 결과 교회는 과학, 문학, 신학 분야에서 근대주의의 학문적 진보였던 진화론, 계몽주의, 실증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물론 성경연구, 시민학교, 교회일치운동, 표현의 자유와 다른 종교들에 대한 관용적 태도에 이르는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근대적 사조들을 전통적인 신앙적 가치들에 혼란을 일으키는 반교회적이고 세속주의적 사조라고 규정하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교황 비오 9세는 1864년에 근대주의의 오류목록(syllaus)’을 발표하면서 근대주의는 모든 이단의 총집합이라고 단죄하고 그 위험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 시기에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회를 쇄신하기 보다는 신앙 위기를 조장하는 근대주의적 사조들로부터 흔들리는 신자들의 신앙을 지켜주고, 어떠한 시대의 도전에도 꿈적하지 않는 철옹성 같은 교회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교회는 인간 이성을 절대화하는 근대주의의 사조에 맞서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신앙의 가치를 강조하고, 신자들이 교회가 이어받은 하느님의 절대 권위에 의존하여 오류에 빠지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의 길임을 가르쳤다. 영웅적인 성인들의 삶을 강조하면서 순교의 정신이 강조되었고, 근대주의의 오류에 맞서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을 북돋아주는 새로운 신심형태들이 교회 안에서 확산되었다.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 성모님에 대한 신심, 성체 신심 등 가톨릭교회가 신성시 여기는 요소들을 강조하여 신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영적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특히 당시 국가주의에 대한 자유주의가들의 비판과 개인주의의 흐름에 맞서 가톨릭의 제도교회를 공고히 해주는 교황권이 신성시되면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황이 베드로좌에서 선언한 교리와 윤리적 결정은 어떠한 오류도 범하지 않는다는 무류권교리가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교회가 세상과 벽을 쌓고 다른 종교적 신념과 형태들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비춰 볼 때 일면 타당한 면도 없지 않다. 호교론적 전통이 강했던 로마 가톨릭교회가 혼란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흔들리지 않을 신앙의 중심을 잡아주고, 교회의 가시적인 기초를 든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가톨릭(catholic)이 지닌 보편성을 상실할 위험에 처한 셈이었다.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이라는 가치들이 역사 속의 현실로서 교회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들은 교회의 제도 안에서 그 생명력을 상실한 면도 없지 않다.

물론 가톨릭교회만이 이런 위기를 겪은 것은 아니다. 당시 근대주의의 도전은 서구의 모든 종교적 신념에 대한 도전이었고, 프로테스탄트 신앙 역시 이를 피해나가지 못하였다. 가톨릭교회와는 달리 서구의 개신교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취했는데, 그 하나는 종교와 신앙을 예리하게 구분하여 그리스도교의 계시 신앙을 일반 종교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종교적 욕구에 대한 피난처와 엄연히 다르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사상과 근대주의의 정신을 수용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성의 지성적 요구로부터 외면 받지 않으면서도 종교적 체험이라는 고유한 종교적 가치로 재정립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은 점이다. 전자는 이른바 변증신학이란 이름으로 하느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죄성을 가장 극대화시켜 신앙적 가치의 우위를 강조한 것이고, 후자는 거룩함혹은 성스러움이라는 인간 본연의 종교적 체험이 하느님의 계시를 수용할 수 있는 본질적인 요소임을 강조한 것이다. 흔히 개신교 신앙이 감성적인 면에 치우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를 강조해온 개신교의 이러한 정서적인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인류는 또 다른 시대적 흐름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근대주의의 유산들이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그 가치들을 잃고, 인간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인간 실존(實存)에 대한 자각이었다. 19세기 사상적 논쟁의 중심이었던 올바른 이념과 가치에 대한 규정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인간의 생생한 삶과 죽음의 실존적 문제와 부딪히게 되었고, 인간의 종교적 체험이 인간 이성의 모순을 넘어서는 신앙 문제의 본질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가톨릭교회는 단순히 호교적 입장에서 교회의 신적 권위를 내세우는 종교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여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표징을 올바로 읽고 이를 복음적 빛으로 해석해내려는 새로운 입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 이르러서였다. 이른바 사목공의회으로 불릴 정도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과거 로마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이단단죄나 교리결정이 아닌 현대 사회 속에서 가톨릭교회가 처한 위치를 확인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쇄신현대세계의 적응(aggornamento)’을 시도하였다.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적 신념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종교성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섭리를 읽어내며,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과 공존하면서도 그들 안에 있는 옳고 성스러운 요소들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들을 재발견한 것도 가톨릭교회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되찾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분명히 가톨릭교회는 19세기 근대주의 사조와 맞선 이후 20세기 실존주의 사상과 해후하면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소명을 되찾았다. 물론 여전히 공의회 정신의 생활화는 진행 중이긴 하지만, 우리가 찾는 세상과의 소통, 교회의 제도의 한계를 넘는 보편성은 분명히 우리 교회가 어떤 종교적 색깔을 갖고 있는 지 엿보게 한다.

클레의 그림.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죠.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