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보수 모두 헛발질을 하고 있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8월 14일 한국을 방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남미의 예수회 출신 교황, 즉 비주류 출신의 교황으로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인 행보로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조셉 라칭거)가 사망도 하지 않은 상태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파격이었지만 신임 교황이 보여준 행동은 전임 교황의 보수적 색채가 교회를 향한 대중들의 외면을 가져온다고 판단해 생존중 사임이라는 파격수를 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선택에 충분히 부응하고도 남았다.
박근혜 정권이 교황 방문을 두려워 한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가톨릭 정의구현 사제단(이하 사제단)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사제단은 국정원 선거 개입이라는 당연한 문제 제기 뿐 아니라 ‘개표 부정’이라는 민감한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제단의 시청 앞 미사에서부터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발언까지 계속해서 정부와 사제단은 갈등을 키워 왔다. 반면 가톨릭의 교권을 쥐고 있는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사제단을 압박하고 있다. 가톨릭의 교직 체계상 사제단이 추기경과 끝까지 맞설 가능성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공식 기구인 주교회의를 제쳐 놓고 비공식 기구인 사제단의 편을 들어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교회의 수장인 동시에 바티칸이라는 나라의 대표다. 이번 방한은 종교적 방한이 아니라 정치적 방한이다. 물론 방한중에 시복식이라는 종교적 행위가 있지만 국가 대 국가라는 공식적 만남에서 현정권을 부정하는 사제단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은 외교 결례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로서는 교황 방한이 '신의 한수'다. 가톨릭의 교직 제도를 잘 아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번이 사제단의 기를 꺾어 놓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서민적 행보를 보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박근혜 정부에 조금이라도 압력을 가하지 않을까 낙관하는 진보세력의 전망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불편한 역사
신사참배, 적극적 친일 등으로 일제하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개신교 목사들은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지만 가톨릭 사제들의 이름은 찾기 어렵다(노기남 대주교 정도). 일제하에서 가톨릭 교회는 친일 반일의 범주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입장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바티칸이 하나의 시국(市國)으로 인정받은 것은 1925년 이탈리아의 권력을 잡은 무솔리니 덕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해 교황청과 협상을 벌여 1929년 2월 11일 라테란 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에서 교황청은 이탈리아로부터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바티칸 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어 1936년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맺은 우호 조약으로 이들 나라는 2차 대전의 추축국(Axis Powers)이 되었다. 그러므로 전범국의 혜택을 입은 일제하 가톨릭 교회가 태평양 전쟁을 적극 지지한 것은 반일 친일의 틀로는 분석될 수 없는 심각한 사건이다.
▲ 학병을 탈출한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왼쪽부터)의 독립군 복장과 김수환의 일본 장교 복장이 대비된다. © <뉴스 M> |
고 김수환 추기경은 2차 대전 말기 일본 학병 장교로 징집된다. 이 부분에서 강제 징집이었다는 주장과 자원입대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데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신문)에 따르면 그는 일본 상지대에서 유학(1941~1943)하던 당시, 일본의 강요에 시달려온 대구 교구장이 ‘학병에 지원하라’고 보낸 전보를 받았다. ‘주교에 순명하라’는 교리 법을 거역할 수 없었던 그는 “학병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록을 통해 고백했다. 자원임을 고백하되 그것이 종교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궁색한 변명으로 과거를 인정했다.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흥미있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출신지는 경상북도 군위와 선산, 거의 동향이나 다름없으며 1917년 동갑에,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에게 일제하의 기억은 지우고 싶은 과거였겠지만 박정희에게는 호감가는 공통분모였을 수도 있다. 독립군 토벌의 경험이 있는 박정희로서는 당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애국적 개신교인들을 많이 보아왔으므로 가톨릭을 대화 상대로 삼았을 수도 있다. 내각 책임제이던 4.19 이후 민주당 정권의 수반인 장면 총리(친일 사전에 수록된 몇 안되는 가톨릭 신자 중 하나)는 혁명 소식에 놀라 명륜동 소재의 가르멜 수도원으로 도망한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본 박정희는 개신교인 장준하와 함석헌에 비해 가톨릭을 손쉬운 상대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박정희는 현 박근혜 대통령을 가톨릭계 성심 여중고에 진학시켰으며 대학은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에 보냈다. 1960년에 설립되어 비교적 역사가 짧은 서강대학교가 명문으로 성장한 데는 박정희 정권의 도움을 부정할 수 없다. 남덕우 전총리로 대표되는 서강학파의 경제 정책은 개발지상주의자 박정희와 죽이 잘 맞았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자랑스러운 역사
지금은 개신교 보다 가톨릭이 불의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종교가 되었지만 1960년대부터 박정희 정권에 대항해 싸웠던 것은 한국기독교 교회 협의회 (NCCK) 소속의 개신교 목사들이었다. 반면 가톨릭이 본격적으로 반정부 운동에 뛰어 든 것은 1970년대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부터였다. 박정희를 비판하던 지학순 주교의 투옥은 정의 구현 사제단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 주교는 시인 김지하의 구명을 위해서도 백방으로 노력했다.
가톨릭 농민회 오원춘 사건도 가톨릭 운동의 한 획이었다. 1978년 경상북도 영양에서 농협으로부터 받은 씨감자로 농사를 지은 농민들이 썩은 씨감자로 인해 농사를 망치자 가톨릭 농민회 소속의 오원춘씨를 중심으로 피해 보상을 요청하는데 정보 기관은 오원춘을 납치 고문끝에 풀어 준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들이 들고 일어 났지만 오원춘이 다방 여종업원과 밀월여행을 갔다는 허위 증언에 의해 그는 파렴치범으로 몰리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오원춘을 긴급조치 위반 사범으로 구속해 파렴치범이 아니라 정치사범임을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다. 가톨릭 농민회와 개신교의 도시 산업선교회가 농촌과 도시의 인권운동을 대변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이후 가톨릭은 광주항쟁, 6월 항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정의를 대변하는 종교로 우뚝 섰기에 박정희 정권 말기에 대립각을 세운 사제단으로서는 박근혜 정권을 더더욱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방문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주기 쉽다.
보수 개신교의 헛발질
여의도 순복음 교회 계열의 국민일보는 최근 난데없이 종교 개혁 특집기사까지 실으며 가톨릭을 폄하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보도가 헛발질인 것은 평소 친정부적인 국민일보의 보도 성향과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교황 방한을 신의 한수로 여기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기사로 궁지에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조선 중앙 동아의 교황 방한 환영 논조에 비한다면 ‘이등 신문’임을 자인하는 형국이다. 조선 중앙 동아는 교황 방한이 결코 박근혜 정부에 불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비해 ‘국민’에게 그 생각은 아직 무리다. 그들의 기사 속에 대통령이 관례상 교황 방한을 허락했지만 혹시라도 방한이 박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중동을 따라 가기에는 한참 멀었다.
한국 교회 언론회라는 수상한 단체(홈페이지 접속을 시도했으나 되지 않고 있다)는 교황 방한에 따른 시복식의 거리 행사가 종교 편향이라는 ‘반정부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비해 보수 개신교 목사들의 두려움은 본능적이다. 일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인해 개신교 교인수의 하락을 염려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교황이라는 제도가 부럽고 언감생심 그들의 권위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가 교직 체계 상의 한계를 벗고 대중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과 달리 한국 개신교는 중세의 가톨릭이 되지 못해 안달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때 교황의 방한은 진정한 권위가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그의 삶으로부터 직접 보여주고 있어 억지 권위에 편승하려는 대형 교회 목사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에 종교계 대표로 부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교황과 대통령의 동등한 위치에서의 만남 또한 배아픈 장면 중 하나다.
종교개혁을 통해 이룩하고자 했던 것을 이미 오래 전 잊은 한국 개신교는 가톨릭의 교직 체계가 부러울 뿐이고 그 부러움이 개신교의 위기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교황 방한이 정말 두려운 이유는
프란치스코 교황 © 뉴스 M |
언론에 발표된 교황 방한 일정을 보면 사제단과의 공식적인 만남도 없고, 세월호 유가족을 대전 지역의 미사로 초대할 뿐 그들의 단식 농성장을, 아직도 아이를 기다리는 진도의 체육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부모를 찾아가려는 계획도 없다. 강정마을도, 송전탑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밀양도 방문할 계획이 없다. 교황이 나서서 뭔가를 해주기를 바랬던 진보세력이나 혹시라도 정말 뭐를 할까 두려워하는 보수 세력도 모두 헛발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점이 정말 두렵다. 혹시라도 그분의 선한 품성으로 인해,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원론적인 강론으로 인해 아직도 싸워야 할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주저앉게 될까 그것이 두렵다. 화해라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하는 것인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한 사람에게만 세상 죄를 뒤집어 씌워 죽게 만든) 상황에서 선포되는 화해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그것 봐라. 교황님도 말씀하셨잖아. 그만하자!”로 귀결되어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또한번 도려놓을까 두렵다. 용서라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인데 국민 모두가 가해자로 여기고 있는 권력자들이 뻔뻔하게 “교황님 말씀하시기를” 하는 상황이 나는 두렵다. 남북의 화해를 말하면서 이쪽 말만 듣고 저쪽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교황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을까 두렵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 오던 개신교 운동은 1980년대부터 등장한 대형교회들의 세련된 프로그램 속에 묻혀 버렸다. 젊은 세대들은 거리 운동보다 세련된, 그러면서도 뭔가 의미있어 보이는 듯한 대형교회의 제자훈련 따위로 흡수되어 버리면서 개신교 운동의 전통은 축소된다. 거대한 건물보다도, 목사들의 몰지각한 언사보다도 내가 대형교회를 뼈속깊이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신교의 역동적인 사회 운동은 이후 가톨릭으로 넘어가는데 사회 개혁의 주체가 누가 되면 어떤가? 개신교의 동력을 넘겨 받은 가톨릭이 고마웠는데 이번 교황 방한이 1980년대 대형교회가 보여주었던 몰역사적인 역할을 재현할까 두렵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거대한 축제를 준비하는 가톨릭의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고맙다.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가톨릭이 참모들을 통해 국빈 방문이라는 외교적 특수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교황께서 아픈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일을 위해 애쓰는 사제단을 격려할 수 있도록 행보를 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개신교도 마냥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할 것만 아니라 살아 있는 교황까지 교체한 이유가 주는 메시지와 그 자리를 이어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성에 환호하는 대중들의 염원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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