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의식과 생활 방식을 결정하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요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때 광고에 자주 등장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말처럼 '부자'라는 단어가 우리의 입과 귀에 자주 오르는 까닭도 이러한 사회 인식을 보여 준다. 인간이 누리는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경제적인 것은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지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명예, 사랑, 우정, 공경, 자애 같은 것들은 이 시대의 냉정한 경제 원리에서 보면, 한낱 도덕적 이슈로 언제든 경제적인 이해 앞에서 버려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 에서 종종 보도되는 천인공노할 반인륜적인 행위들과 사건들이 사람들로부터 신랄한 비판과 지적을 받는 것을 보면 도덕적인 가치는 여전히 중요한 듯 보인다. 다만, 그것은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는 어떤 사안 이상은 못 되는 듯하다.
자본주의의 속성은 공산주의가 이상으로 삼는 모든 원리의 대척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선과 도덕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며, 이것에 반하는 것은 악덕이 된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빈한한 삶으로 되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며, 그가 부자였다는 전제조건 아래서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그가 자기의 소유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지닌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의 일화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위로이자 도덕적인 담론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자본과 자본가를 미술사 속에서 정의하고, 그렇게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와 미술의 관계를 파악해 보자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재산 혹은 자본의 소유는 인간의 사회적인 위치를 결정해 주며, 타인에게 그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징표가 된다. 징표가 된다는 것은 소유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부는 드러남으로써 타인에게 선호된다. 큰 저택을 소유한다든지,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것이 오늘날 자주 떠올려지는 부자들의 모습일 텐데, 그 증표 중에 하나가 미술이다. 미술이 소유되는 것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르네상스 이후에 이미 천명된 일이다. 미술 후원자들은 르네상스 미술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미술은 몇몇 후원자들에 의해 촉진되었지만, 그 꾸준한 발전은 다수의 수집가들에 의해서였다.
고대에도 수집가들은 미술을 후원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풍요롭고 화려한 생활을 위해 미술품을 소유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도 성화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르네상스에 들어오면서는 농경 위주의 산업 구조에서 점차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자, 이를 통하여 자본을 축적한 자산계급이 나타났고 이들에게 미술은 본격적인 수집 대상이 되었다. 미술품의 수집을 단지 고결하고 사적인 취미 활동이라고만 본다면 이것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미술 수집은 수집가들의 사회적 신분과 정신적 가치를 증명해 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용 가치가 있다. 즉 미술은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17세기에 자본주의가 발달한 네덜란드에서 미술 수집이 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살펴보면, 수집과 미술품 생산이 불가분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는 루벤스(Rubens)와 렘브란트(Rembrandt),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베르메르(Vermeer)를 중심으로 회화의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이미 15세기 중반에 발명되어 서구회화를 주도하던 유화를 이 시대 회화의 기술적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들은 형식적으로 벽화나 다른 종류의 그림들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미술품이 지닌 경제적인 가치의 변화를 보여 준다. 벽화로 그려진 그림은 부동산이다. 반면, 유화는 동산에 가깝다. 유화로 그려진 그림은 이동성이 있어서 어디든 쉽게 운반되는데, 이것은 쉽게 사고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상품은 고정된 자산이 아니라 투자 가치를 가지고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그 당시에 투기 대상으로 매매되었다. 즉 되팔면 살 때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자유로운 미술 시장이 처음 생긴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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