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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창조적 자본주의와 가난한 사람들

긴 긴 시간 2016. 6. 13. 18:53

창조적 자본주의와 가난한 사람들

 

2008년 스위스에서 세계 최고 갑부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가진 자들의 잔치라 불리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약자를 돕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촉구했다고 합니다. 모든 언론에서 이 기사를 대서특필하고 있고, 인터넷 뉴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부유한 사람들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도 만족시키는 길을 찾아야한다.”“21세기의 창조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6월 회장직에서 물러나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빌 앤 멜린다 재단일에 더욱 매달리게 되면 창조적 자본주의 확산에 전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하는 아프리카 빈민들을 돕는 일에 기업과 부유한 나라 정부들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윤을 창출하면서 가난을 줄일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길이 그 요체다. 게이츠는 기부를 뛰어넘어, 기업이 고급 인재를 빈곤구제 문제에 배치하고, 정부는 인센티브로 지원하는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친절한 자본주의라는 용어도 썼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날 컴퓨터업체 델과 함께 PC 판매대금에서 50~80달러를 에이즈 퇴치기금으로 지원하는 레드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했다.

 

자본주의가 최선의 경제체제라는 신념은 여전하다고 밝힌 게이츠는 현 자본주의 시스템이 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에만 주목하고 인간의 이타성(利他性)을 보는 데 실패했다는 견해를 보였다. 게이츠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앞서 쓴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존재라고 규정한 대목을 읽고 창조적 자본주의론을 착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이는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의 자본주의는 인간성의 이윤추구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미완의 체제라는 견해와 비슷한 맥락이다. 빈부와 노사 불평등 심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다보스에 모인 일부 석학과 경제계 인사도 새 패러다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씨앗을 보고 있다.”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평등 문제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주장이 나에게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왜 헛소리로 들리는지 내 마음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사랑의 나눔을 시작한다고 하여도 세상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사순절 담화에서 사랑의 실천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순절동안의 나눔을 통해서라도 정말 소외 받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10%의 신자들만이라도 그 말씀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가난해지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먼 산의 불구경일지도 모릅니다. 또 가난했다가 부자가 되었어도 옛날 생각을 해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이라면 우리나라의 부자들이 솔선수범해서 창조적 자본주의의 실천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인지 의문이 갑니다.

 

빌게이츠의 얘기는 결국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일지도 모릅니다. <먼 곳의 물은 가까운 불에는 소용이 없다.>는 말이 될까 먼저 겁을 먹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데 세상이 몰라주기 때문은 아닌지 말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총선에만 관심이 많고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니 이런 사조를 어찌 먼 곳의 물은 가까운 불에는 소용이 없다는 말과 같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단식의 참된 의미를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리석은 내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