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역풍과 IMF의 반성이 주는 교훈
- 정필모 KBS 연구위원
최근 들어 ‘세계화’에 대한 역풍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촉발제 역할을 한 것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이른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다.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2011년의 반(反)세계화 시위와는 다소 차원이 다르다. 당시 빈부격차 심화와 금융기관의 부도덕성에 반발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던 주체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다. 반면, 최근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곳은 세계화의 이념을 앞장서서 설파했던 IMF(국제통화기금) 등 주류 기관들이다.
IMF는 지난 5월 27일 펴낸 ‘신자유주의: 과대평가되었나?(Neoliberalism: Oversold?)’라는 보고서에서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일부 정책이 기대만큼 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첫째, “자본자유화가 자원을 좀 더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장을 촉진시켰지만, 동시에 위험도 증대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둘째,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한 지나친 재정긴축이 경제에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고 꼬집었다. 셋째, “자본자유화와 재정긴축이 불평등을 확대시킴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재분배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IMF의 뒤늦은 반성은 그동안 30년 가까이 지구촌을 휩쓴 세계화에 대한 성찰에 다름 아니다.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consensus)’의 토대가 된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그 핵심은 금융 자유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진행된 세계화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계기로 위기에 빠졌던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진 이익은 다수에게 돌아간 게 아니었다. 주로 특혜를 누린 건 자본가들과 금융가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계층이었다.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 등 시민들은 고용불안과 상대적인 저임금에 시달려왔다. 그 결과 계층 간, 부문 간, 지역 간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게 세계화 비판론자들의 시각이다.
때마침 지난 7월 13일 발표된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MGI) 보고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주요 선진국에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이 정체되거나 줄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25개 선진국에서 가구 소득이 같거나 낮아진 비율이 평균 65~70%에 이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2008년 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간 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심각한 결과를 보여준 이탈리아의 경우 재정위기로 인한 성장률 하락이 주된 이유다. 미국과 영국 역시 눈여겨봐야 할 나라들이다. 이들 두 나라는 세계화를 주도해왔다. 그런 만큼 세계화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두 나라의 경우에도 소득이 정체되거나 낮아진 가구의 비율이 평균보다 높다.
이는 앞서 지적한 대로 세계화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적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1년 반(反)세계화 시위가 미국에서 촉발되고, 급기야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 민주 양당 진영이 모두 정강정책에서 보호무역주의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6월 23일 실시된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 당초 예상과는 달리 브렉시트 찬성률이 높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세계화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미국과 영국에서 반(反)세계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분별없는 세계화’가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컬럼비아대 교수다. 그는 2012년 ‘불평등의 대가: 오늘날의 분열된 사회는 어떻게 우리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는가(The Price of Inequality: How Today's Divided Society Endangers Our Future)’라는 저서에서 “현재와 같은 세계화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화로 이득을 보는 승자는 상위 계층이고, 손해를 보는 패자는 대부분 하위 계층이다. 패자 가운데 중위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를 반대하는 운동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계화가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보호무역주의나 ‘이웃 나라 가난하게 만들기’와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높은 수준의 세계화’는 그 자체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것을 정확히 간파한 사람이 하버드대의 대니 로드릭(Dani Rodrik) 교수다. 그는 2011년 출간된 ‘세계화의 역설: 민주주의와 세계 경제의 미래(The Globalization Paradox: Democracy and the Future of the World Economy)’라는 저서에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Hyperglobalization)과 국민국가(Nation state), 그리고 민주정치(Democratic politics) 사이에 트릴레마(trilemma)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즉, 이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가 때때로 세계화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사회적 반발을 무력화하고 국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국내에 민주적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세계화를 제한하거나, 국가 주권을 희생하면서 세계화된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로드릭 교수의 생각이다. EU 가입 이후 영국이 직면했던 문제, 그리고 최근 영국민 절반 이상이 브렉시트에 찬성한 것도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딜레마에서 보듯이 한 나라가 세계화의 조류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시장개방과 자본자유화가 무조건 나쁜 것만도 아니다. 그 정도와 내용이 문제다. 일부 특정 계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세계화는 위험하다. 분별없는 세계화는 되레 반(反)세계화를 부추기게 된다. 그건 파국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역사가 그걸 증명한다. 19세기 말 이후 자유방임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추진된 세계화를 상기해보자. 고삐 풀린 세계화로 인한 소득 불평등은 이후 1929년 대공황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혼란을 전후해 상당수 국가에서 극좌·극우 정권이 탄생하고, 2차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세계화에 대한 성찰과 개선이 시급하다. 그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류가 공존하고 공영할 수 있는 ‘분별 있는 세계화’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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