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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 레미제라블 - 영상 언어에서도 유효하게 살아난 음악과 이야기의 힘, 오랜만에 보는 대작 뮤지컬의 여운

긴 긴 시간 2012. 12. 2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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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는 문화계 전반적으로 [레미제라블]열풍이다. 한꺼번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독서계,영화계,음반계,공연계까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침투했다. 어딜 가도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분야도 제 각각이다. 입맛에 맞게 취사 선택하여 각자의 [레미제라블]을 선택하는게 용이해졌는데 이왕 [레미제라블]을 즐기는거 전부 흡수하여 각각의 [레미제라블]을 여유있게 비교 분석하는것이 시대를 초월한 명작 [레미제라블]의 진액을 빨아들이는데 있어 가장 멋진 방법이 아닐까 싶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출판계,영화계,공연계,음반계가 약속이나 한듯이 [레미제라블]과 관련된 내용물을 기획했는데 다행이 악어와 악어새 관계처럼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1862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국내에선 어처구니없게도 [장발장]이란 제목의 아동용 축약본이 제일 보편적으로 퍼졌고 [레미제라블]은 몰라도 [장발장]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게 됐다. 이 방대한 구성의 작품이 한 토막만 달랑 떼어져서 지난 수십년간 전래 동화처럼 소비된 바람에 아직까지도 [레미제라블]과 [장발장]이 별개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에 공연과 영화와 소설이 비슷한 시점에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공개됐으니 [장발장]이 [레미제라블] 속의 주인공 이름이라는것과 불어인 [레미제라블]의 뜻이 비참한 사람들 혹은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란것을 대중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다. 간단한 방법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지만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으면 끝끝내 무지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 다음으로 유명한 변환물은 웨스트엔드에서 1985년 초연된 카메론 매킨토시 제작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이다. 웨스트엔드 최장수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고 브로드웨이에선 [오페라의 유령] 다음으로 높은 공연 기록 횟수를 보유하고 있는 그 유명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정식 한국어 공연이 드디어 올해 성사됐다. 27년 만의 첫 라이센스 공연은 일단 트라이아웃 개념으로 지방 공연지부터 돌고 있는데 첫 포문을 연 용인 포은아트홀에서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내년 4월 서울에서의 본 공연에 앞서 지난 11월 용인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각 지역을 순회하고 있으며 그 사이를 톰 후퍼가 감독한 영화버전이 전 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호들갑스러운 문구와 함께 국내 극장가를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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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을 준비하는데 있어 출판계도 부지런했다. 공연의 개막 시점에 맞춰 민음사가 첫 주자로 완역본 출간에 나섰다. 그리하여 [레미제라블]은 국내 세계문학전집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포함되어 다섯권짜리 완역본으로 제본됐다. 민음사판 [레미제라블] 1권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시리즈 넘버 301번을 부여받았다. [레미제라블] 5번째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5번이다. 국내에서 한군데 출판사가 지속적으로 기획하여 발간한 세계문학전집의 순번이 300번대를 넘긴건 민음사가 유일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지금까지 100번대, 200번대에도 순번을 기념할만한 작품을 엄선했었는데 300번대에 이르러 [레미제라블] 완역본을 기획했고 그것도 무려 다섯권으로 분책하면서 의미를 남달리 새겼다. [레미제라블]완역본은 민음사가 지금까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내놓은 작품 중 가장 권수가 많은 작품이다.

 

민음사에 이어 펭귄 한국 지사에서도 펭귄클래식 코리아 명목으로 다섯권짜리 [레미제라블] 완역본 세트를 지난 11월 말경에 출판시켰고 이달 초순에는 더클래식에서 영문판 완역본까지 더해 총 10권짜리로 경쟁력을 높여 [레미제라블]완역본 기획에 공력을 기울였다. 정식 완역본 출판을 애타게 기다릴 땐 그렇게도 발간 소식이 감감무소식이더니만 상업적인 공연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너나할것없이 완역본 기획에 뛰어 들어 이제는 아동용 축약본으로 나온 [장발장]만큼이나 [레미제라블]원작 소설을 골라 정독할 수 있게 됐다.

 

더디게 진행된 원작 소설 완역본 발간과 달리 뮤지컬 버전과 관련된 상품은 정식 라이센스 공연이 올려지기 전에도 활발하게 유입됐다. 이미 10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물, 25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물을 비롯하여 각종 기념 음반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그중에서 후발주자로 제작된 영화 버전은 마침 국내에서 라이센스 공연이 기획된 시기와 완전하게 겹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가장 크게 일조했다. 영화와 공연 때문에 거의 언급이 안 된채 묻히고 있긴 하지만 연극 [레미제라블]도 아르코 예술극장 송년 공연으로 올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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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영화가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것이기 때문에 개봉 일정은 당연히 순탄하게 풀릴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뮤지컬 영화는 아직까지도 변방 장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타국 작품이다 하더라도 배급망을 원활하게 뚫고 극장가에 선보인다는것을 보장하기는 힘들다. 영화판 [레미제라블]이 개봉에 앞서 한참 전부터 각종 전시물과 선전물이 각 영화관의 보기 좋은 위치에 세워지고 걸려있었지만 정작 정식 개봉일이 정해진건 휴 잭맨 방한 뒤였다. 이 작품은 일찌감치 2012년 12월 국내 개봉 예정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정확히 12월 언제쯤에 볼 수 있는지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휴 잭맨의 3번째 내한 소식이 들리고 예고편과 한국판 포스터도 다 제작됐지만 도통 개봉 일정이 잡히지 않아 지난 11월 말까지 개봉일은 미정 상태였다.

 

까딱했다간 개봉일이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올해 12월은 그야말로 배급 전쟁이다. [레미제라블]이 밀리지 않고 예정대로 미국보다 일주일 앞서 12월 셋째주에 개봉했는데 앞 뒤로 [호빗]과 [타워]가 있다. [반창꼬]같은 한국 멜로 영화도 막강한 배급망을 탈것이고 롯데에서 제작한 [가문의 영광5]도 무시할 수 없는 영화다. [타워]는 극장 배급망을 선점하고 있는 CJ제작의 대작이다. 설사 예매율이 저조하다 하더라도 CJ 제작의 기대작이기 때문에 최소 2주 이상은 압도적인 상영회차로 도배할것이 분명하다. 성탄 연휴 기간을 노리고 개봉하는 만화 영화는 디즈니의 [주먹왕 랄프]외에도 몇 작품 더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시간에 육박하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휴 잭맨의 성공적인 방한이 아니었다면 해를 넘겨 개봉할 위험이 컸다.

 

선전물 비치에 개봉 일정까지 다 받아 놓고도 극장 개봉이 무산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였기 때문에 제 때에 개봉하는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대규모 배급망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원래 예정일보다 하루 앞당겨 개봉하는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일주일 반짝 상영을 각오했고 큰 관을 잡지 못할것이라 예상했다. 예매는 일찌감치 풀렸는데 동네 상영관의 큰 관에서 보기는 글렀다고 판단하고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보기로 결정했다. 400석이 넘는 메가박스 코엑스점 2관,3관에서 상영 예정이길래 미리 예매를 해놨었다. 좋은 자리가 쑥쑥 빠져나가서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귀퉁이 자리에서 봐야 했다. 그런데 각 극장의 상영 일정표가 전부 공개된 이번 주 월요일에 혹시나 하고 재확인을 해보니 예상을 깨고 대부분의 멀티플랙스에서 상영 일정이 잡혀 있었고 전주에 [호빗]이 그랬던것처럼 각 극장의 가장 큰 관에서 [레미제라블]볼 수 있게 됐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우려를 했던 교차 상영은 일체 없었고 7개관 이상 보유한 극장에선 두군데 이상의 상영관에서 전회차로 [레미제라블]의 상영 일정표를 공지했다.

 

영화관에서 [레미제라블]을 보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굳이 코엑스까지 가서 [레미제라블]을 관람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코엑스 관람 일정을 취소하고 편하게 동네에서 봤다. 당초 개봉 예정일보다 하루 앞당겨 12월 18일 오후부터 개봉했는데 개봉 이틀째에 이르자 예매율이 높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홍보성 문구는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평일 낮에 동네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관 들어가서 약간 놀랐다. 평상시엔 아무리 인기 있는 영화라도 평일 낮에 객석의 절반 이상이 차는 일이 드문 극장인데 관객이 많았다. 현재 개봉 3일 만에 50만명 이상을 돌파했는데 이 같은 추세라면 개봉 첫주에 전국 관객 100만 돌파가 확실하다. 첫주 100만 돌파하면 전국관객200만명은 보장하는 수치다. 영화로 제작된 [오페라의 유령]이나 [맘마미아!]의 성공을 재현할듯싶다.  

 

원작 뮤지컬이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대중적으로 확산된것인지, 아니면 고전의 힘인지, 대선 분위기를 탄건지, 휴 잭맨의 적극적인 홍보 자세가 높은 관객 유입으로 연결된건지, 아니면 [지젤]이 그랬던것처럼 이번에도 김연아 덕을 보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컬 영화를 영화관에서 이렇게 많은 관객 속에 섞여 관람한건 [시카고]이후 처음이다. 2003년 3월에 강변CGV에서 [시카고]를 봤었는데 관객이 정말 많았다. 희열감을 못잊고 이후 영통 키넥스에서 한번 더 봤었는데 그 때도 관객이 꽉 찼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개봉 첫주에 종로 피카디리에서 관람했었는데 객석이 텅텅 비었었다. 이후 박스오피스 선점 소식을 듣고 의아했었다. 현재 [레미제라블]과 관련된 여러 화제 요소가 합쳐져 직접적인 예매율로 증명된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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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뮤지컬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은 아직도 일반 관객들은 뮤지컬 영화 화법에 적응을 못한다는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상업 뮤지컬 영화가 일반 영화관에서 개봉을 하고 있고 종종 [맘마미아!][오페라의 유령]처럼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는데 여전히 호불호가 명확한 영화 장르가 뮤지컬 영화다. 이만하면 적응할만한데도 관람 분위기를 보면 뮤지컬 장르가 주류 장르로 올라오려면 아직 멀었다. 현재 [레미제라블]역시 개봉 첫주부터 범상치 않은 관객 동원을 하고 있지만 관람 후 풍경은 노래만 주구장창 나온다며 뜨악해 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레미제라블]같은 경우는 캐스팅이 화려해서 배우 때문에 보는 관객들도 많을것이다.   

 

영화판 [레미제라블]은 국내 개봉이 세계 최초가 맞다. 영화가 개봉했는데 사운드트랙은 예약판매 중이다. 보통 영화 사운드트랙은 먼저 발매되는 편인데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인데도 사운드트랙 발매 속도가 느리다. 아직 해외에선 정식으로 개봉하진 않았고 시사회만 가졌는데 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호평에 정신 못차리고 있다. 시사회 전부터 작품성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완성된 영화에 대한 소식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던 초기 때만 해도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작품상 수상감으로 점쳐지기도 했지만 [링컨]이 나오고 [제로 다크 서티]가 나오면서 유력한 후보감이긴 해도 수상감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변이 없는 한 팡틴 역의 앤 해서웨이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것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아직 후보도 발표하지 않았지만 수상할 분위기다. 전보다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게 쉬워진 아카데미 시상식이기도 하지만 완성도나 현재 쏟아지고 있는 호평에 기대 보자면 작품상 후보 정도는 무난하게 오를것이다. [시카고]이후 10년 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뮤지컬 영화가 작품상을 타는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재 비평상을 거의 다 휩쓴 [제로 다크 서티]의 기록이 워낙에 막강해서 [레미제라블]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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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레미제라블]은 근래 보기 드물게 잘 만들어진 고전적인 형식의 대작 뮤지컬 영화이다. 이 같이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시선을 사로 잡는 뮤지컬 영화는 1960년대 이후 맥이 끊어진듯했다. 3시간에 육박하는 긴 상영 시간, 막대한 제작비, 큰 규모, 스타캐스팅, 스튜디오의 막강한 배급망을 타고 전략적으로 제작된 대형 뮤지컬 영화 말이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오페라의 유령]이 그러한 영화를 꿈꾸었으나 애석하게도 그 영화는 실패작이었다. 21세기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시카고]이후에도 [레미제라블]과 같은 대작 뮤지컬은 시도되지 않았다. [나인]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고 쫄딱 망해버린 작품도 스타캐스팅과 쇼맨쉽게 기댔지 1950~1960년대에 볼 수 있었던 대형 뮤지컬은 과거의 영화였다.

 

톰 후퍼의 [레미제라블]은 우리가 그 옛날 한번쯤 봤음직한 고전적인 형식의 대형 뮤지컬 화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의 관객들이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세련되게 조직된 장대한 뮤지컬 영화이다. 이번에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드디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대작 뮤지컬 영화의 화법을 터득했구나 싶었다. [시카고]가 21세기 뮤지컬 영화의 화두를 제시했다면 [레미제라블]은 [시카고]이후 지난 10년간 깨지고 부딪히면서 갈고 닦아 만들어진, 현대 뮤지컬 영화의 이정표로 세울만한 작품이다. [시카고]의 성공에 고무되어 지난 10년간 우후죽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들은 뭔가 하나 빠진듯한 결과물이 많았다. 무대의 제한된 공간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 이상의 재해석이 부족한 채 무대의 부순물에 그친 경우가 태반이었다. [레미제라블]은 원작 뮤지컬과 별개로 분리해도 크게 어색할게 없는 독립성을 획득했다. 영화 매체 고유의 매력을 아름답게 살려낸 연출이 역동적으로 구현됐으며 원작 공연에 대한 예의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영화는 소문대로 괜찮고 잘 만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특이점은 알려진대로 동시 녹음이다. 대사 뿐만 아니라 노래까지 전부 현장에서 배우들이 직접 부른것을 동시 녹음했다. 그런데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송스루 형식이다. 그러니까 뮤지컬 영화 기준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를 한것이다. 콘서트 실황물에서도 보정을 하는 마당인데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임에도 현장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최대한 살려냈다. 영화사 홍보 자료와 달리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 사상 최초로 노래 연기를 동시 녹음한 작품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가 현장에서 배우들이 직접 부른 노래를 동시 녹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레미제라블]의 시도는 굉장히 보기 드문 결과를 낳았다. 노래를 직접 부르기는 커녕 미리 녹음한 노래를 틀어 놓고 입맛 벙긋거리며 연기하는것이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의 연기하는 방식인데 톰 후퍼의 [레미제라블]은 무대용 뮤지컬보다도 더 까다로운 조건에서 비전문 뮤지컬 배우들이 뮤지컬 연기를 한것이다. 결과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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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은 40곡이 넘게 나오는 송스루 뮤지컬이기 때문에 노래의 비중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원작 뮤지컬은 오페라타 형식을 띄고 있다. 영화판에선 필요에 따라 짧은 마디의 곡들은 줄이고 대사로 대신 전개시키기도 했지만 거의 송수르 형식으로 진행된다. 곡 수는 무대극보단 줄었지만 나올 만한 노래는 전부 다 나온다. 배우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른 노래를 동시 녹음하긴 했지만 영화판 [레미제라블]에서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은 무대극 배우들처럼 마이크의 도움을 받지도 못한다. 뮤지컬 연기하는데 있어 유사 도그마 선언처럼 진행된 촬영 덕분에 배우들은 현장에서 생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했고 반주는 간단한 피아노 연주 정도가 다였다. 배경으로 나오는 음악은 후반 작업에서 덧입혀진것이다. 

 

배우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른 노래를 동시 녹음한 방식은 분명한 장단점이 있다. 어느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단점 만큼이나 장점이 두드러졌고 그로 인한 만족감이 상당해서 영화만의 독창성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다른 뮤지컬 영화와 달리 촬영 현장에서도 노래를 직접 불렀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가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와 달리 가공된 느낌이 없으며 보다 섬세해졌다. 배우들의 연기는 확실히 돋보인다. 감정이입도 잘 된다. 노래를 부를 땐 편집도 자제하기 때문에 감정의 연결도 진솔하게 와닿는다.  

 

아무리 감정을 잡고 연기하는거라해도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연기하는것과 직접 부른 노래를 녹음해 놓을것을 틀어놓고 입모양을 맞춰 연기하는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발생할것이다. 이제껏 우리가 보아왔던 뮤지컬 영화들의 연기가 모두 그런 식으로 계산된 것이었는데 톰 후퍼의 [레미제라블]은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 연기의 틀을 깼다. 그 결과물을 보는것이 제법 신선하고 산뜻하다. 이런 연기는 무대용 뮤지컬 연기에서도 볼 수가 없는것이었다. 무대용 뮤지컬 연기에선 마이크로 한번 목소리 변환을 거치고 나오지만 [레미제라블]은 개인별 마이크 착용 없이 생목소리로 부른 노래를 배경 음악을 덧입혀서 만든것이라 날것의 느낌이 생생하다. 인물 중심으로 각색된 뮤지컬판 [레미제라블]의 구성에서 동시 녹음한 뮤지컬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각 배역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 크나큰 장점이 됐다.

 

그 때문에 단점도 극명해졌다. 마이크도 착용하지 않고 동시녹음 원칙으로 제작되는 뮤지컬 영화에서 노래를 불러야 배우들의 육성을 담기 위해 영화는 지나친 클로즈업 남발로 카메라 워킹을 가둬 놓는다. 합창이 나올 땐 그나마 낫지만 독창이 나올 땐 얼굴 중심의 촬영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인물에게서 카메라가 많이 떨어져봤자 전신 촬영이다. 현재 정확한 제작비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영화판 [레미제라블]의 제작 규모는 한눈에 봐도 막대한 물량이 투입된다는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대극과 달리 공간 설정과 이동이 자유로운 영화에서 [레미제라블]같은 격동기 시대상을 배경으로 깔고 가는 작품이라면 영상 언어가 보여줄 수 있는 웅자한 장면 연출에 대한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영화판 [레미제라블]은 동시 녹음에 대한 고집 때문에 스스로 제약을 많이 뒀고 그만큼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풍경 효과를 놓쳤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불만과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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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의 전환 속도와 인물들의 동선을 잡아내는 속도감, 무대에서 담지 못한 배경의 묘사를 풍성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었음에도 극중 인물들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어김없이 카메라의 움직임은 정체돼 있으니 인물에 대한 설명은 무대극보다도 더 갑갑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배경 연출에 꼼꼼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는것이 화면 곳곳에 보인다는것이다. 이렇게 시대 배경를 세밀하고 규모있게 준비해놓고도 동시 녹음 원칙에 발목 잡혀서 [레미제라블]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민초들의 처참한 삶의 이면이 지나친 클로즈업 연출에 가려졌다. [레미제라블]의 화면 비율은 와이드스크린이다. 규모를 생각해보면 시네마스코프 비율이 더 어울려 보이지만 인물 중심으로 촬영이 된 덕분에 와이드스크린 비율이 영화에 더 적합했다. 마음같아선 스탠다드 비율을 쓰고 싶었을것이다.

 

배우들이 노래를 부를 때면 영화용 뮤직비디오를 위해 별도로 추려낸 영상 클립을 보는것같다. 영화의 중간 정도를 지나고 나면 비슷한 형식의 블루레이 부가 영상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도 든다.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한차원 높게 숙성시킨 공은 인정하지만 이 방법이 뮤지컬 영화 연출에 있어 최선의 방식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장면에 걸맞게 어느 정도 멜로디를 차단하고 대사로 대신 처리한 각색은 마음에 들었다. 거듭되는 노래 연발 때문에 두통을 일으키는 송스루 뮤지컬 관람의 피로를 상쇄시켜줬다는 점에서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2막 전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리케이드 장면은 확실히 영화가 원작 무대극을 압도한다. 이 부분은 영화의 공개 전에도 영화가 더 나을것이란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는데 격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일수록 대규모 군중 장면에선 아무리 무대극 연출이 용을 쓴다 해도 영상 언어를 따라잡을 순 없는것같다. [에비타]도 다른건 몰라도 군중 장면 하나는 영화가 무대를 넘어섰다. 바리케이드 장면만으로도 영화판 [레미제라블]의 관람 가치를 생성시켜 준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원작 무대극과는 다른 갈래의 전율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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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잭맨은 [엑스맨]이후 주춤했던 본인의 경력에서 드디어 대표작을 하나 남긴듯하다. [레미제라블]에서 휴 잭맨은 지금까지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 단연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앤 해서웨이도 짧은 출연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가운데 에디 레드메인이 기대 이상의 노래 실력을 들려주고 있고 원작보다 비중이 작아진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비중에 대한 아쉬움을 빼어난 외모로 해소시켜준다. [스위니 토드]에서도 같이 출연하여 악역을 전담했었던 헬레나 본햄 카터와 샤차 바론 코헨이 이번 [레미제라블]에서도 감초이자 악역인 테나르디에 부부를 연기하고 있는데 존재감은 무대극보단 떨어지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배우들 연기는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러셀 크로우는 조금 아쉽다. 집요하고 냉철한 자베르란 인물에 어울리지 않게 보여지는 분위기가 너무 중후하고 우수에 차 있는데다 음역대가 낮아서 배역에 대한 존재감도 떨어지고 다른 인물간의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러셀 크로우의 자베르는 필요 이상으로 고독해 보인다. 자베르의 최후에서도 장엄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밍숭밍숭하다. 노래를 못하는건 아니지만 음역대가 어느 정도 받쳐주는 배우가 했다면 이보단 효과적으로 분출됐을것이다. [레미제라블]은 송스루 뮤지컬인 동시에 오페라타 뮤지컬 작품이다. 가창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면이 큰 작품이라서 러셀 크로우가 연기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뮤지컬 영화로 [레미제라블]을 기다리진 않았다. 언젠가 기필코 만들어질 작품이었다. 다만 시기를 조율한것뿐이다. 25주년 기념 공연까지 한 마당이니 지금쯤 영화로 변환시키는것이 적절했을터이다. 기록 갱신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쉽지 않을 만큼 오래 공연했다. 과연 언제까지 장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종연돼서 약발 떨어지고 난 다음 영화로 만들어서 뒷북치는것보단 적당한 시점에 영화로 만들어 상품 가치를 올리는게 체면 유지에 훨씬 나은 방법이다. 그리고 다행이 우려와 기대 속에 기우를 말끔히 털어내고 완성된 영화판 [레미제라블]은 만족스럽다. 이 작품은 톰 후퍼가 [킹스 스피치]로 반짝 성공한 감독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했으며 지난 몇년간 헐리우드에서 생산된 뮤지컬 중 단연 으뜸인 작품으로 남았다. 톰 후퍼는 연극 [킹스 스피치]를 영화로 만들어 대성공시킨것에 이어 연출한다는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작품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영화 변환도 성공적으로 이식시키면서 또 한명의 거물 감독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출처 : 뮤지컬매니아
글쓴이 : 시카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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