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적 대결을 벌이는 숱한 충돌이 있을뿐더러, 그러한 집단적 대결의 폐해만큼이나 수많은 사람이 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행되는 끔찍한 사건과 사고에 희생되고 있다.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세계관이 다양할 수는 있겠지만, 특히나 믿음과 신념을 바탕으로 배타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왜곡된 종교관에 의해 빚어지는 잔혹한 일을 접할 때마다, 종교는 곧 권력의 다른 이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며, 그런 연유로 인간의 삶을 옥죄는 종교에 회의감이 들곤 한다.
우리는 보수니, 수구니 하는 단어를 그리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그것은 곧 인간과 사회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시각의 문제이자, 인간의 삶과 사회의 구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환경적 요건이 변화함에도 겉으로는 그 변화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낡고 그릇된 과거에 집착하고 함몰되어있다면, 어떠한 정당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낡고 그릇된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극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영화 '신의 소녀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고립된 섬과 같은 수도원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심보다 비뚤어진 믿음을 앞세운 종교인들에 의해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고 만 참극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두 소녀,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 Cosmina Stratan)와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 Cristina Flutur)가 오랜만에 만나면서 시작한다. 영화상에서 구체적인 장면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두 소녀를 담은 장면 안에서 그들이 단순한 친구 관계 이상의 감정으로 이어진 사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알리나는 루마니아를 떠나서 독일로 갔다가 수녀가 된 보이치타를 찾아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온 것이다.
알리나는 보이치타에게 자기와 함께 독일로 가자고 말하지만, 이미 수도원 생활을 하고 있는 보이치타는 종교적 교리와 신앙심의 영향으로 갈등하며 선뜻 알리나를 따라나서지 못한다. 더군다나 수도원의 신부(발레리우 안드리우타, Valeriu Andriuta)는 보이치타가 수도원을 떠나는 것에 종교적인 이유를 결부해서 반대하고 나서니, 신부의 뜻을 신봉하는 보이치타는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그런 보이치타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알리나는 이렇게 동굴 같은 곳에서 남은 인생을 지낼 거야? 라고 설득하려고 애써보지만, 보이치타는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보다 신에게 의지하며 사는 게 진정으로 외롭지 않은 삶이라면서 거절하기에 이른다.
알리나의 눈에 비친 수도원은 너무나도 답답하고 숨 막히는 삶의 모습이다. 신부를 위시해서 수녀들은 종교적 신앙심에 바탕을 두고서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세상과 동떨어진 채로 폐쇄적인 생활을 하며, 가부장적인 권위를 휘두르는 신부에게 맹목적으로 이끌리는 그들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아끼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그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나서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수녀원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발작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신경질적인 모습의 알리나에게 불안감을 느끼며 술렁이던 신부와 수녀들은 알리나가 발작 증세를 보이자, 알리나의 영혼에 악마가 깃들었다며 알리나를 꽁꽁 묶은 채로 퇴마 의식을 벌인다.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신부와 멍청할 만큼 맹목적으로 신부를 따르는 수녀들은 마치 십자가와 같은 틀에 알리나를 쇠사슬로 묶어 놓고 그 앞에서 기도문을 읽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보이치타는 그들의 행동을 말리지도 못하고, 알리나를 풀어주지도 못하며 괴로움에 고통스러워 한다.
(주의! 아래부터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
영화는 알리나와 수도원 사람들의 대립,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갈등하는 보이치타의 모습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며 차분하게 그린다. 딱히 어느 쪽에 더 감정이입의 무게를 싣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뭔가 폭발하듯이 드러내지 못하는 알리나의 모습이나 주체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보이치타의 모습이 한없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결국 알리나를 죽음으로 내몬 신부와 수녀들의 모습에서도 어떤 광신도들의 광기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도록 묘사되어 있다.
물론 수녀들이 신부를 따르며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비이성적이고 무지몽매함이 보이지만, 그들의 모습은 어떤 악의가 배어 있다기보다 오히려 너무 과할 만큼 순진무구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진심으로 알리나의 몸에 악령이 스며들어있다고 믿으며, 온몸을 쇠사슬로 묶어놓은 알리나의 앞에서 신에게 기도한다. 무지한 사람이 신념까지 가졌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하는 광경이다. 그들은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요새화한 성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이 신과 교감하며 제대로 산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고립된다는 것은 물리적인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과 경계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도 함께 일컫는 의미이다. 변화에 대한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는 사람들은, 자신은 물론 타인도 고립시킨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만이 유일하고 옳다고 믿을 때, 다른 사람의 믿음은 배제되고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의 신념은 곧 독단이자 독선의 세상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낳을 뿐이다.
다분히 종교적 외형을 띤 영화지만, 비단 종교영화로 분리해서 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는 수도원이라는 폐쇄적 사회와 신부라는 권력을 통해 우리 사회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특히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수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한폭탄을 150분가량 짊어지고 가면서도,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행동을 여러 각도로 담아서,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지치지 않게 이끄는 감독의 연출력이 참 대단하게 느껴지는 영화이자, 인간의 자유의지와 배치되는 믿음을 강요하는 그 어떤 종교나 권력도 결국 사람들에게 폭군으로 군림한다는 생각을 안겨주는 묵직한 주제의식의 작품이다.
Dupa dealuri, Beyond the Hills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Cristian Mungiu)
* 영화는 2005년 루마니아 몰도바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뤘는데, 타티아나 니큘레스큐 브랜(Tatiana Niculescu Bran)의 논픽션 소설 '죽음의 고백(Deadly Confession)'을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 201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두 명의 배우(크리스티나 플루터, 코스미나 스트라탄)가 함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에 담긴 수도원이라는 공간과 그 주변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풍경스러운 느낌으로 가득 차있어서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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