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본 한국의 종교 <2>가톨릭의 독신제도 시비 | ||
지난 50년간 미국의 가톨릭사제 1200여명이 어린이 성추문에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말 자체조사 결과 4268명이 사제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공개 주장했거나 법적 소송 중이었다고 1월 12일 보도했다. 법원기록과 언론보도, 교회서류 등을 종합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50∼2001년 서품을 받은 사제 중 1.8%에 달하는 1205명에게 어린이 성추행 의혹이 드러났다. 타임스에 따르면, 성추행은 1970∼8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작년 1월 사제 성추문문제가 불거진 뒤 사제 400여명이 사임했거나 은퇴했다. 지난해 12월 보스턴의 가톨릭 대교구장인 버나드 로(72) 추기경이 성추문 피해자들의 피해보상요구와 그동안 문제 신부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대교구장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스턴 교구는 여러명의 신부들이 10여년 이상 성직자의 지위를 이용해 어린이를 성추행해 왔다는 스캔들에 휘말려 있으며, 피해자들이 제기한 450여건의 소송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가톨릭 사상 최초로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히 불거진 것은 신부의 독신문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최근 칼럼에서 "성직자의 독신 서약이 때로는 동성애나 소아애로 번지는 경우가 있다"며 "독신주의를 폐지하고 여성사제 임명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성직자들의 독신주의나 순결문제에 대한 교황의 입장은 단호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해 4월 20일 "주교들은 신과 교회에 자아를 완전하게 맡기는 육체적 순결은 신중하게 지켜야 하고 금욕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9월에도 교황은 독신주의가 불필요한 의무가 아닌 사제가 신에게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전통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여겨져야만 한다며 다시 한번 독신주의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규정을 확인했다. CNN은 9월 연이어 터진 성추행 사건으로 독신주의에 관한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성추행 스캔들의 근본 원인은 독신주의 때문이라는 비판과 함께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이와 관련해 활발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독신주의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독신주의와 어린이에 대한 성적 편향증을 연결시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가톨릭 성직자의 독신시비= 가톨릭 성직자의 독신제도를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1500년 동안 계속돼온 쟁점이다. 기독교의 모든 신앙생활과 그에 따른 갖가지 규범은 성서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의 독신론에 관한 최종적인 판단 역시 성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신구교도간의, 또 신학자와 성직자들 사이의 성경 해석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려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독신제도를 둘러싼 대표적 논쟁은 기독교문서선교회 대표를 지낸 이창윤(李昌潤)씨와 '가톨릭교회사'등을 펴낸 김창수(金昌洙)씨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이창윤씨는 '독신제도 비판'('사조'.1958년 7월호)이란 글에서 독신제도가 잘못된 제도임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강제적으로 이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씨는 "동정(童貞)과 동정녀(童貞女)에 대한 신비사상이, 그리고 성생활을 멸시 내지 죄악시하는 금욕관념이 성직자의 독신제를 이룩한 것"이라고 서두를 꺼낸 뒤 "그것이 불교에 있어서는 근본원리에 가까운 철칙이었고 대처(帶妻)제도는 확실히 비구제도의 타락에서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곧 기독교의 신구교제도에 적용시켜 해석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몰각한 근본 오류인 것이다"고 못박았다. 그는 "물질을 죄악의 근원으로 보고 불순부정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불교성직자가 순정한 실체아(實體我)를 찾는 도정에서 물질아(我)의 성적 생활인 결혼을 부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마땅한 일"이라면서 "이러한 이교사상과 기독교의 성경계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3대축복(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과 하나님이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에 내린 약속(창세기 17장 4, 6, 17절;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게 하리니)을 들었다. 특히 그는 "성경은 성직자의 독신론을 결코 주장하지 않을뿐더러, 혼인을 금하는 독신론이 도리어 적그리스도의 표적이라고까지 말씀하셨던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독신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성직자의 독신제도를 하나의 규율로서 제정하려던 노력이 325년 니케야공회의에서 실패한 이후 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도화됐고 레오 9세(1048∼1054)에서 그레고리 7세(1073∼1083)에 이르는 개혁교황들에 의해 겨우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제도가 처음 논의될 4세기말 경에는 남자수도원 옆에 수녀원이 많이 생겨나면서 수도원이 '부도덕한 생활에 심윤(沈倫)한 자들'의 집단으로 화하면서 이를 규제할 방안으로 독신제도를 규율화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더구나 중세 암흑기에 기독교에 여러 이교사상과 제도가 침입함에 따라 확고한 제도로 자리잡게 됐지만 교황령이 지역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등 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틴 루터는 그의 '훈계록'과 '식탁담화집'에서 성직자의 독신론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배반되는 교황의 고안물'이라고 갈파했다"면서 "우리는 성직자의 독신은 적어도 어디까지나 자기가 맡은 은사에 따라 할 것이요, 그 어떤 강제적인 제도로써 이룰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고 결론지었다. ◇독신은 신에 대한 불타는 사랑= 보통 '가톨릭'하면 독신의 신부와 수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커다란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성경상의 쟁점은 이 독신문제가 포함돼 있으며, 특히 가톨릭에서는 신자와 성직자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되어 있다. 가톨릭 성직자들에게는 독신이 중요한 전통과 의식이 돼 왔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나 혹은 성서를 근거로 삼거나 그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삼가고 있다. 그러나 이창윤씨도 그런 점에서 성서나 역사 등 여러 사례를 들어 조심스럽게 독신문제를 짚고 있지만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김창수씨는 "이창윤씨의 '독신제도비판'을 비판함"이란 부제를 달고 '성직자의 독신제도'란 글을 '신태양'(1958년 8월호)에 실었다. 김씨는 이씨의 논문이 "성서의 곡해, 사회법에 대한 무지, 오역성서의 인용, 문헌법령에 대한 오독 등으로 그릇된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면서 그 예를 여러 가지로 들고 있다. 특히 김씨는 이씨의 글이 "첫째 독신론, 독신제는 이교사상의 것으로, 성경적이 아니며,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어긋나는 것이며, 둘째 혼인을 금하는 독신론은 일종의 자유를 무시한 강요제도이며 적그리스도의 표시라고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요약하며 비판에 나섰다. 우선 둘째번 문제에 대해 김씨는 "이씨가 '성생활을 멸시 내지 죄악시하는 금욕관념이 성직의 독신제도를 이룩한 것이다'고 했지만, 가톨릭에서는 부부사이의 성생활이란 완전히 합자연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녀의 생육은 창조의지에의 순응, 참여인 만큼 신성한 것으로, 따라서 결혼은 칠성사(七聖事)의 하나로 높여 있을 정도이다"고 주장했다. 또 "가톨릭 성직자의 독신제는 그것이 의무이긴 할망정 강제.강요의 제도일 수 없으며, 그들로 하여금 강력한 성의 쾌락을 버리게 하는 것은 신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며 예수께서 지적하신 대로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자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씨는 또 "성서기록에 독신제를 시인하는 말이 있고 권고하는 말이 있을 때 그것이 이교사상의 잔재이다, 또는 반그리스도교적이다 하는 하나의 오류임이 밝혀진다"면서 성서(고린도 전서 7장 35절, 마태복음 19장 12절 등)의 사례를 들고 있다. 김씨는 "성직자란 그리스도 사업의 계승자, 그리스도께서 12종도에게 맡기신 일을 종도들에게 계승받아 하는 자들이다"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상의 사랑을 단념하는 그들 성직자의 독신생활이 어찌 적그리스도적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마무리했다. 가톨릭에서는 사제와 수도자의 독신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수도 생활은 그 생활양식의 본질상 독신을 지키는 것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만, 사제의 독신은 더 잘 봉사하기 위하여 교회가 법으로 정한 것이며 그것이 엄격하게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500년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제의 독신은 복음 성서의 권고 말씀을 따라 인간이 정한 법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이다. 현 교회법상에는 스스로가 독신을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성품 성사를 받게 되어 있다. 가톨릭에서는 마태복음 19장 12절(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을 독신제도의 성서적인 근거로 들고 있다.
/권오문 세계일보 문화부장
<사진>가톨릭 신부의 독신문제가 일부 성직자의 성추행사건으로 또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가톨릭의 사제 서품장면. |
( 2003/01/22 15: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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