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목사 : 한국가정사역 연구소 소장
1. 흔들리는 성과 크리스천
" 위기의 카톨릭 ,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 미국에서 사제들의 성 추행 사건이
폭로되면서 카톨릭교회가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고 미국 주요 언론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
시사주간 < 타임 > 은 최신 호에서 미국의 카톨릭 성직자 2 천 여 명이 어린이
성 학대에 연루돼 있다고 전했다 . 교회가 이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쓴 돈만 해도
10 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 ....... 카톨릭 신자들은 성직자의 어린이 성학대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는 사실 못지않게 카톨릭교회가 지금까지 이런 사실들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왔다는 데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 .....
<US & World Report> 와 < 타임 > 은 카톨릭 신자들이 “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카톨릭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기다리고 있다 ”
고 지적했다. 2002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 A11면,
"美, 흔들리는 聖" 美 가톨릭 , 기부 · 헌금 ' 뚝 ' 재정난 부메랑 . 자선 단체 등 지원액 잇달아 삭감 .
사제 성 추행이 미국의 카톨릭교회를 심각한 재정난으로 몰아넣고 있다 .
천문학적인 액수의 합의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데다 성 추행 파문으로
헌금과 기부금 등이 뚝 끊기면서 교회 살림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
성 추행만큼이나 깊이 숨겨져 왔던 교회 재정의 폐쇄성도 도마에 올랐다 . .....
더 심각한 문제는 성 추행에 따른 도덕성 실추로 카톨릭교회를 지탱해 왔던 재정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 ..... 지난달 27 일 갤럽 조사에 따르면
카톨릭 신자의 3 명 중 1 명 꼴 (30%) 로 헌금 액수를 줄일 생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
"2002년 4월 9일자 한국일보 14면, 美 카톨릭 성 추행 파문 이후...."
미국 카톨릭의 이러한 일이 과연 남의 일인가 " 한국 교회는 성이라는 괴물로부터 과연 안전한가
" 한국교회를 말하기 전에 먼저 미국교회 안의 성문제를 살펴보자 .
미국인들의 성에 대한 태도 중 1/3 정도만이 전통적인 성의식을 지지하며 나머지는
자유로운 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런데 보수적인 크리스천의 경우
절반 정도만이 전통적인 성의식을 지지하며 , 덜 보수적인 크리스천의 경우는 31% 만이
전통적 성의식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또 , " 지난 한 해 성 관계를 가진 대상자가
배우자인가 "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의 68% 가 " 그렇다 " 라고 대답했는데
보수적인 크리스천의 70% 만이 " 그렇다 " 라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Robert Moeller, 'America's morality report card', Christian Reader (Nov/Dec 1995), pp. 97-100
. 빌 하이벨스 목사는 " 크리스천 중에 부부가 만족할만한 성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불과 30% 에도 미치지 못할 것 " 이라고 말하면서 "70% 이상의 크리스천들이
적잖은 성적 욕구불만을 겪고 있다 " 고 지적한 바 있다. Bill Hybels, 'Preaching that oh-sp-delicate subject', Leadership(Summer 1995), pp. 42-48
. Newsweek 지의 보도에 따르면 Kenneth L. Woodward, 'Sex, Morality and the Protestant Minister', Newsweek(Autumn 6, 1997), p.86
각종 여론조사 결과 미국 개신교 남자 성직자의 30% 정도가 아내 이외의 여자와 성 관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 이러한 영향일지는 모르나 미국장로교회 총회에서는
결혼생활에서의 정절과 미혼인 경우 순결을 교회 내 전 종사원에게 의무화하는
규정을 정하려 했으나 반대가 너무 많아 포기했다고 밝혔다 .
목회자의 경우 , 자위행위도 72% 가까이가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
음란물을 이용한 경우도 77% 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8년 무디수양회 170명,
기타 수양회 109명, 합27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임.
목회와 신학 (2000년 6월), pp. 126-129에서 재인용.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럴 정도면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
기독인의 성 가치관을 조사한 자료 경기도 시흥시와 부천시 거주 기독인 1,211명을
대상으로 1999년 가을에 실시한 조사임. 1999년 11월 8일 크리스찬신문 9면에서 인용.
에 의하면 " 음란물을 접해 본적이 있는가 " 하는 질문에 대해 " 없다 " 는 26% 에 불과했다 .
한국컴퓨터선교회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불과 24% 만이 음란물을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찬뉴스위크 1999년 12월 4일자 4면 한국가정사역연구소의 경우
크리스천의 성문제에 관련된 상담이 매년 60% 이상을 넘고 있으며
해마다 그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 더불어 성상담 관련 내용도 갈수록 다양화 ,
음란화되어 가고 있다 . 각종 언론에 도배하다시피 보도되는 크리스천의 성 문제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낯부끄러울 정도이다 . 급기야는 교회 안의 성폭력 문제도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 . 소돔성이 과연 이 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과장된 표현일까 ?
2. 교회와 성
(1) 침묵하는 교회
교회는 21 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 그 침묵이 그리스도인들을 어떠한 상황으로
몰고 있는지 전혀 그 책임을 느끼지도 못한다 .
1) 성교육 부재의 교회
세상이 " 더렵혀진 성 " 으로 뒤덮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 성 ( 性 )" 을 외면하고 있다 .
하나의 예이지만 " 성경공부시 성에 대해 공부해 본적이 있는가 "?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불과 6% 만이 있다고 대답했다. 경기도 시흥시와 부천시 거주 기독인 1,211명을
대상으로 1999년 가을에 실시한 조사임. 1999년 11월 8일 크리스찬신문 9면에서 인용.
. 교인들 , 심지어 교회 청소년들조차도 음란 비디오를 보고 있을 정도인데도
교회는 여전히 성문제에 침묵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
실제로 성교육을 하거나 성에 관련된 성경공부를 하는데도 거의 없다
. 어떤 교회는 성교육을 실시할 때 그 내용을 미리 검열하기까지 한다 .
심지어 순결서약 운동이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빌미를 제공한다고 해서 교회를 빌려주는 것을 거부하는 교회도 있다고 한다
. 이혜자, "교회와 성", 크리스찬신문 1999년 11월 8일자 12면
.
교회가 침묵하니 세상이 떠들 수밖에 없다 .
세상은 쾌락을 외친다 .
세상은 이기적 성을 요구한다 . Casual Sex, Easy Sex 가 판을 치는 세상에 대해
교회는 눈을 부릅뜨지 못하고 , 외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왜 그럴까 ? 교회는 과연 성에 있어서 치외 ( 治外 ) 지대인가 ?
아니면 외치지 않아도 성도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배짱인가 ?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부재는 물론이고 성인에 대한 성교육 역시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정사역을 통해 부부의 성문제가 거론되고는 있으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2) 사회단체와 이단들의 성교육 활기
더욱 심각한 것 중의 하나는 성인들과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의 부재의 틈을 이단들과
일반 사회단체들이 비집고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 이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통일교의 순결서약운동은 전국적인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 심지어 기독교계열 학교에서마저도
통일교의 그 운동을 실시할 정도가 되었다 . 성인대상으로도 비기독교단체들이 성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 당연히 흥미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
(2) " 이원론 " 에 묻혀있는 교회
교회가 성에 대해 외치지 못하도록 막는 그 기저에는 이원론이 자리 잡고 있다 .
즉 , " 영의 일 " 과 " 육의 일 " 을 구분하는 것이다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등은 거룩한 일이지만 배우자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거나 ,
외식을 하는 등의 것은 거룩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물론 이러한 이원론은 어제오늘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 그 동안 性에 대한 인식이
그토록 부정적이었던 것은 초기 기독교로부터 기인한다 .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사상가였던 " 어거스틴 " 은 성적 탈선으로부터 회심한 자답게
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 " 어거스틴 " 은 심지어 " 섹스란 원죄를 후손에게 전하는
전달매체 " 라 말하면서 " 성은 부정한 것 " 이라고 믿었다.
Bill Hybels & Rob Wilkins, 'Sex and God', Tender Love(Moody Press), pp. 13-29.
두란노목회시사정보 1996년 6월 1호(p.4)에서 재인용.
. 교황 그레고리 1 세도 성적 쾌락은 죄와 무관할 수 없다고 믿었으며 섹스를 하는
유일한 목적은 종족생산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3 세기에서 10 세기까지의 교회는
부활절 전 40 일간의 금식기간과 성탄절 , 성령강림절 등 모든 종교 절기뿐 아니라
토요일 , 수요일 , 금요일에도 섹스를 금지했다. 목요일은 그리스도가 잡히신 날이므로,
금요일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므로, 토요일은 동정녀 마리아의 영광을
위하여, 주일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하며, 월요일에는 박해받고 숨져간 모든
영혼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성행위를 금지시켰다는 문헌도 남아 있다.
여기에다가 각종 축일들 그리고 여성의 부정한 기간 등을 합치면,
한 역사가의 추정에 의하면, 1년 중에서 부부간의 섹스가 허용되는
기간은 44일에 불과했다.
Philip Yancey, 'Not Naked Enough', Christianity Today, 19 Feb. 1990. p.48.
두란노목회시사정보 1996년 6월 1호(p.4)에서 재인용.
. 오죽했으면 " 출산을 위해 성 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성관계가 있으면 성령은 떠날 것이다 "
( 롬바드와 그라티엔 ) 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 종교개혁자들인 " 존 캘빈 " 이나 " 마르틴 루터 ",
" 토마스 아퀴나스 " 도 섹스는 단지 자손을 얻는 목적 이외에는 사용해서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Bill Hybels & Rob Wilkins, 'Sex and God', Tender Love(Moody Press), pp. 13-29. 두란노목회시사정보 1996년 6월 1호(p.4)에서 재인용.
여기에 헬라인이나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은 힘을 얻게 된다 .
한국교회는 거기에다가 유교적인 전통까지 덧입혀져 성은 어두운 곳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 하기야 욕구불만의 교수 부인이 가출했다는 것이
줄거리인 " 자유부인 " 이 대단한 화제를 모으면서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이
불과 40 여 년 전인데 , 그 시대의 성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지금의 시대를 바라본다면
" 성 " 이라는 말조차도 꺼낸다는 것이 " 불경건 " 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의 바다에서 눈감고도 " 섹스 " 를 건질 수 있는 시대이다 .
성도들은 날마다 " 성 " 이라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와 힘겹게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으나
그 성도들을 이끌어야 할 장수들이 그것에 관한 한 모른 채하고 덮어둔다면
이것은 대단한 직무유기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 " 나만 경건한 척 "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 성 " 문제를 이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교회가 이렇게 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인가 ?
그렇지 않다 . 오히려 교회가 적극적으로 성에 대해
외치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적이다 . 그 이유를 살펴보자 .
3. 교회는 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1) 하나님과 성 ( 性 )
" 기독교 역사상 참으로 비극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는 성과 영성이 나뉘어진 것이다 .
이 점은 성경이 인간의 성에 관하여 그토록 이나 커다란 축복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인 현상이다 .
"( 리차드 포스터 )Richard J. Foster, Money, Sex & Power(돈, 섹스,권력),
김영호 역(서울:두란노,1989),p. 105
" 성은 영성의 적이 아니고 친구이다 ."( 도날드 괴르겐 )Foster, p. 105
분명한 것은 性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
그러한 성을 속되다고 말할 수는 없다 ( 행 10:15) 행10: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 특별히 性은 하나님께서 엄청난 의도를 가지고 창조하셨다 .
성은 친밀한 부부의 교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부부가 사랑의 표현으로 하나가 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
그러기에 성경에서 " 둘이 하나가 될지니라 " 는
말씀이 네 번 ( 창 2:24, 마 19:5, 막 10:8, 엡 5:31) 이나 기록되어 있다 .
이런 관점에서 性은 남편과 아내가 육체적 , 정신적 , 영적 ,
즉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극치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특별히 창세기 4 장 1 절의 히브리어 yada([d"y ) 는 " 안다 (knew)' 는 뜻으로 "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다 " 할 때 쓰는 단어인데 ,
이 단어를 " 성교 ( 性交 )" 에도 함께 쓰고 있다 .
물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 남편과 아내 " 의 관계로 비유하며 , "
간음 " 이라는 단어는 다른 신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묘사하는데
쓰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yada 는 성의 신비를 말씀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
즉 ,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인 교회와 영적으로 하나됨을 나타내는
지상적 형상으로 주신 것이 性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그 기쁨이나 감격을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는가 ?
그러나 그 극치의 미세한 일부라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 부부간의 性交라는 의미이다 .
그만큼 하나됨의 의미가 너무나도 신비스러운 것이며 ,
소중하다는 것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性을 봐야 한다 .
성경적인 性은 이렇게 聖스러운 것이라는 견지에서 출발한다 .
그렇기에 세상과는 성에 대해 보는 가치관이 너무나도 다를 수밖에 없다 .
" 찰스 콜슨 " 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성경적인 기독교 가치관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Gap 이 있다고 말한다.
Bill Hybels & Rob Wilkins, 'The Two Designs', Tender Love(Moody Press), pp. 31-53. 두란노목회시사정보 1996년 3월 2호(p.13)에서 재인용
* 세상의 관점 :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상대적 사상(상대주의)에 의해 형성된다.
기독교적 관점 :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객관적인 성경 진리 위에 기초를 둔다.
* 세상의 관점 : 일시적이다.
기독교적 관점 : 영원하다.
* 세상의 관점 : 자연주의적이다.
기독교적 관점 : 초자연주의적이다.
* 세상의 관점 : 실용주의적이어서 효과적인 것을 행한다.
기독교적 관점 : 이상주의적이어서 옳은 것을 행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性에 대해 바라보는 것도 다르다. ibid, pp. 13-14에서 재인용
* 세상의 관점 : 대부분 성적 욕구를 부추겨서 경계선 없이 탐닉하게 만든다.
기독교적 관점 : 오직 결혼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
* 세상의 관점 : 종종 물리적 행동으로 축소시키며 간혹 보살핌의 관계에서 본다.
기독교적 관점 : 영적인 면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바라본다.
* 세상의 관점 : 성은 간편한 (casual) 것이며 개인적인 희열과 욕구충족에 강조점을 둔다.
기독교적 관점 : 바람직한 성관계는 한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자기 희생, 그리고 정직함이라는 일평생의 헌신이 뒤따라야 함을 강조한다.
* 세상의 관점 : 자기 탐닉
기독교적 관점 : 자기 희생
이렇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인 성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도도히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2) 性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
1) 생명의 창조를 위한 종족 생산 ( 출산 ) 의 목적이 있다 ( 창 1:27-28, 9:1, 시 127:3)
하나님은 性을 통해 창조사역을 위임해 주셨다 . " 복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 는 명령과 동시에 축복을 해 주셨는데
性은 바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
2) 예방의 목적이 있다 ( 고전 7:1-2)
性은 분명히 예방의 목적이 있다 . 인간의 아킬레스건은 성적인 유혹에 약하다는 점이다 .
사단은 이것을 노린다 . 그래서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부간에 있어서
性은 풍성해야 하는 것이다 .
3) 부부의 하나됨을 위한 목적이 있다 ( 창 2:24, 마 19:5, 막 10:8, 엡 5:31)
성관계에서 삽입이 수반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성의 수학은 1+1=1 이다
. 性은 영혼의 친밀성을 위해 , 육체적인 연합을 위해 , 관계의 연합을 위해 ,
영적 연합을 위해 계획되어졌다 . 그렇기에 성은 배타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
만큼 性이 엄청나게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
4) 삶의 풍성함과 즐거움을 위함이다 ( 신 24:5)
전도서 9 장 9 절에 보면 "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인 네 아내와 즐겁게 살라 " 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어느 장기 하나 쓸모 없이 만드신 바가 없는데
여성에 있어서 " 음핵 " 은 쾌락을 느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만 봐도
性은 즐거움을 위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당연히 성욕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
문제는 그러한 성을 남용할 때 생기는 것이지 부부 관계 안에서 사용할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5) 치료를 위한 목적도 있다 ( 삼하 12:24, 창 24:67)
부부간의 性은 외로움을 없애주며 , 내면의 고독을 없애준다 . 더불어 풍성한 성생활은
자존감을 높여두며 , 삶에 활력을 가져다준다 . 그래서 性은 부부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 성경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
사무엘 하 " 에 보면 다윗의 아들이 죽었을 때 아내와 동침하는 장면이라든지 ,
" 창세기 " 에 보면 이삭이 모친 상사 뒤에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
이렇듯 중요한 목적을 가진 性 . 그리스도인들이 性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질 때 이 시대의 성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
4. 한국교회의 과제
그렇다면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 性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창조된 聖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교회는 입을 열어야만 한다 .
교회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 침묵은 교인들의 성적인 타락을 방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교회가 침묵하면 할수록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성담론이 득세하게 될 것이고 ,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성적 담론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당연히 성적인 타락이 그리스도인들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1) 교회 연합 차원의 성교육 전문기관의 필요성 대두
성문제에 대해 한국교회가 연합으로 대처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것이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 " 성 개방 " 이라는 적군은 이미 우리의 영토에 진입해 왔고 그리스도인들을 집단적으로 ,
으로 제압해 오고 있는데 이제는 교회도 연합적인 선전포고를 통해 적극적 대응을
해야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 그 동안 교회 일부에서 있었던 성폭력 상담기관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그야말로 헌신적인 노력을 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
러나 이제는 피해 구제 차원이 아닌 예방 차원으로 적극적 선제 공격을 가할 필요가 있다 .
이를 위해 한기총 등의 연합 차원이나 교단 차원의 " 성교육 기관 " 이 설립되어야만 한다 .
그러한 공적 기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일들이 행해져야 한다 .
① 성교육 전문가의 양성 ;
이제까지는 성교육 전문가들을 산발적으로 양성해 왔다 . 특별히 보건 ,
복지에 관련된 정부기관에서 성교육이나 성상담 전문가를 양성해 왔다 .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을 다룰 수 있는 " 기독교 성 상담사 ",
" 기독교 성 전문 사역자 " 를 양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그것도 지역별로 ,
교단별로 안배하여 분명한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전문 사역자들을 양성해 가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일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②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실시
지금의 청소년대상 성교육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
물론 기윤실 등에서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이단이나
여타의 사회 기관들의 활동에 비하면 아직까지도 미흡하다 .
이제는 먼저 교회의 청소년들을 위한 적극적인 순결운동 , 즉 ,
바른 성교육을 실시해야만 한다 . 이들에게 성경적인 성의 관점을 가지게 하고 ,
정자와 난자의 만남을 통한 생명 창조의 신비 ,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가로막는 낙태 ,
수음의 문제 등 성 전반에 걸친 교육이 필요하다 . 여기에 필요한 강사는
연합 차원의 성교육기관에서 양성된 전문사역자들이 영상 자료와 교재 등으로
실감나면서도 현실적인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
③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실시
이미 청년만 되어도 성에 대해 다 아는 척하나 그들이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일상적인 것이고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 . 심지어 중년 이후의 성인들도
성에 대해 무지하다 .
이제 교회가 직접 나서서 청년들을 대상으로는 데이트의 방법부터 시작하여
촉의 한계 , 순결 문제 , 임신 문제 , 낙태 등에 대해 적극적인 교육을 해야 하며 ,
결혼한 성인들에 대해서도 성경적인 개념의 성 , 즐거운 부부의 성을 위한 성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 이 역시 교회 연합의 성교육 기관이 주도해야 효율적일 것이다 .
더불어 성인에 대한 성교육에서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청소년들의 성문제가 결국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
부모와의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수록 성적인 문제는 그만큼 줄어든다 .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 .
④ 이를 위한 성교육 교재 편찬
성교육은 그저 이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 실감나면서도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 .
그러기 위해 영상 교재를 비롯하여 연령별 , 생활 주기별로 성에 대한 교재를 만들어서
공급할 필요가 있다 . 이를 위해 Life Cycle 별로 올바른 성에 대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목표를 정하고 이에 따라 교재들이 편찬되어야 할 것이다 .
(2) 교회에서의 적극적인 성교육 실시의 필요성 대두
교회 또는 교단 연합 차원의 성교육과는 별개로 개교회에서도 성에 대한 적극적인
문호 개방이 필요하다 . 성경적인 성교육은 결국 이 사회의 타락을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수 있다 . 그런 의미에서 각 교회는 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성교육의 센터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 이를 위해 교회가 하여야 할 일들은 다음과 같다 .
① 적극적인 성교육 실시
개교회에서 준비하기 어려운 교재들이 연합차원에서 마련된다면 교회는 이를 적극 수용하여
성교육 과정을 개설하여야 한다 . 교회만큼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기 좋은 여건은 없다 .
특별히 타락된 이 사회를 정화시키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교회라는 점에서 이러한 운동은
더욱 필요하다 . 그래서 " 타락된 영과의 전쟁 " 이라는 개념에서 " 소금 " 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성교육을 적극 도입해야 할 것이다 .
그렇다고 주일날 설교에서 성문제를 다루기는 힘들다 . 전반적인 문제는 언급할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주일 설교보다는 주일 오후 세미나나 주간 특별 세미나 등의 방법으로 도
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
② 지역사회를 위한 " 열린 성교육 " 실시
당연히 해당 교회 성도들이 교육의 1 차 수강 대상이지만 교인들만으로 국한하지 말고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간다는 관점에서 " 기독교판 성교육 " 을 변형한 " 열린 성교육 "
여기서 열린 성교육이란 전체적인 내용은 당연히 성경적인 성에 관한 것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거부감을 고려하여 성경구절 등을 다 빼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변형한 성교육을 말한다.
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 결국 교회가 그 지역사회의 성교육 센터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대상 층도 청소년 층 , 청년층 , 신혼 부부층 , 중년 부부층 , 실버층 등 다양하게 나눌 필요가 있다 .
③ 확대된 성교육인 임신과 출산 교실 개설
성교육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의 욕구는 당연히 임신과 출산으로 모아진다 . 그
래서 바른 태교를 중심으로 바른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역시 " 열린 방식 " 으로
(3) 목회자들을 위한 교단 차원의 성교육 필요성 대두
이러한 성교육의 성패는 결국 목회자들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 .
따라서 교회 연합 또는 교단 차원의 목회자 성교육이 필요하다 .
특별히 목회자들의 성적 타락이나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 특별히 성교육에 있어서는
사모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부부 동반을 하게 하여 교육을 받도록 하며 ,
먼저 목회자들의 성생활부터 풍성해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
필자의 경험으로는 목회자 부부들이 성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며 "
거룩한 삶 " 과 " 성 " 을 대치 관계에 놓는 경우가 많았다 . 이를 극복해야 한다 .
물론 성도들에 대한 성교육을 목회자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성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사역자들을 적극적으로
세울 수가 있기 때문에 목회자들에 대한 성교육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
(4) 싱글과 실버들을 위한 특수 성교육 필요성 대두
가정에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 항상 소외되는 층이 싱글과 실버층이다 .
그렇다고 이 층이 성과 무관하지도 않다 . 특별히 싱글들의 성문제는 심각하다 . 그들에게 어떻게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것인지에 대해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따라서 이들
에게 성경적인 성의 방향과 함께 독신으로서의 성문제 해결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 당연히 일반 그룹들과는 별개로 진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
더불어 노인들의 성문제도 심각하다 . 그래도 부부 실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별 또는 이혼 등으로 홀로된 실버들의 성적 문제는 사회 문제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
일반 사회단체에서는 그 대안으로 결혼은 하지 않데 동거함으로써
성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 놓는다 .
그러나 이것이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따라서 실버 싱글들에게 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영적인 삶을 위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또 , 부부 실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성은 죽을 때까지임을 알려서
노년의 때이기는 하지만 풍성한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도
중요한 성교육 과제가 될 것이다 .
5. 결론
한국사회의 성적 타락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 이를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해야 한다 .
그만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다는 것이다 . 소금이 있었음에도 짜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에 눈을 감아야 하며 , 또 ,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
가슴을 치며 통곡해야만 마땅하다 . 더불어 그러한 도도한 흐름이 이미 교회 안에까지
들어 와 넘실대고 있음을 더욱 부끄럽게 여겨야만 한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 이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했던가 " 성적인 타락과의 영적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영적 전쟁에 나서야 한다 .
먼저 스스로를 타락으로부터 절연하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한다 ( 히 12:15).
그들이 더 이상 악의 세력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돌아보아야만 한다 .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책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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