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휴머니스트가입의 변

긴 긴 시간 2021. 8. 31. 18:51
고등학생 때 매일 머리가 깨질 것처럼 두통에 시달렸다.
너무 두통이 심해서 토하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왜인지 모르지만 매일 갈등에 시달렸다.
남들은 청춘을 만끽하느라 미팅하느라 바쁜 시간에
오전이면 마음하나 가득 고통에 시달리다 오후가 되면 괜찮아졌다.
마치 술꾼처럼 오전 내내 술생각이 나는 것처럼 괴롭다가
제 풀에 지쳐서 오후가 되면 괜찮아 졌다.
사람들이 왜 수학과를 갔냐는 물음에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내면에서 생각하고 있는 거창한 질문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였다.
사람의 영혼이나 감정이 인체의 물리적인 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이하학의 완벽한 추구 위에서만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문과가 아니라
이과를 택하게 했었다.
내가 대학 들어갈 1970년대에는
비인간화가 사회적인 이슈였던
거 같다.
신문을 열심히 읽었는 데 문화면이나 사회면에
휴머니즘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와서
신문을 열심히 스크랩하면서 읽었다.
이대 정문을 들어가면 왼쪽에 커다란 게시판이 있었다.
한참 신입생을 유혹하는 카페
가입 안내문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중에 휴머니스트대학생회 회원 모집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보자 마자 바로 회원 가입했다.
첫번째 신입회원 환영회에는 선배 회원들이
많이 와서 격려해 주었다.
커다란 타원을 그리며 둘러 앉았는 데
회원 수가 많은 큰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봉사는 어촌으로 갔다.
무슨 봉사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겨우 1년 선배가 굉장히 어른처럼
모든걸 솔선 수범하고 1학년 생들은 그저
시키는 거나 할 수 밖에 없었다.
2학년이 되면서 슬그머니 카페에 소홀하게 되었다.
사실 2학년이 되면서 카페를 이끌어 가는 시간이 되었는 데
선배들 대신 선거를 해서 부회장이 되었었다.
정태성 선배가 이런 선거 분위기는 처음이라는 말을 했었다.
별로 경쟁할 필요가 없이 당선 되어서 인 것 같다.
그 당시 신입회원도 별로 없고 분위기가 처지는 상태였다.
나는 따로 인맥도 없고 해서
휴머니스트 회원 모집 벽보를 붙였다.
내용은
제목이
시지프의 회의
이제 시지프는 돌을 굴리지 않는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로 나서라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다음 문장은 생각이 안난다.
모이는 날 강당이 미어지도록 학생들이 왔었다.
이대 지도교수님께서 모집문구에서
좀 반골의 기질을 느낀 듯이 뭐라고 한마디 하셨는 데
내용은 생각이 안난다.
지도교수님도 많은 학생이 모인 데 놀라셨다.
나는 그날 모인 사람들을 잘 흡수한 거 같지는 않다.
그 후 카페를 안나가고 숨어버렸었다.
왜 그랬는 지 잘 모르겠다.
무책임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제 몇십년이 흘러서 다시 카페에 오니
몇년 후배들이 잘가꾸고 이어가고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카페를 잘 지키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건강하게 좋은 추억 나누며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이 다 알고 있다  (0) 2022.04.17
사랑하는 어머니  (0) 2022.01.23
1월2일 벽초지 수목원에 갔다가 마장호수 보고 왔다.  (0) 2021.01.05
그들의 사랑  (0) 2020.04.26
페이스북이 이상하다  (0) 2020.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