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아침] 한국의 다문화, 그 부끄러운 야만성의 고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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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안에 있는 ‘야만성’을 발견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때론 부정하고 싶고 때론 외면하고 싶다. 필자가 전라북도 대외협력국장으로 재직할 당시부터 관심을 갖고 살펴본 다문화 문제는 심각함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참담하게까지 만들었다. 대한민국 사회 일원이라면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슬픈 자화상이기도 했다. 서두에 인용한 판결문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남편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이다. 4년 전, 19살의 베트남 신부가 46살의 한국인 남편에 의해 살해되었다. 한국에 온 지 한 달 만이었다. 꽃다운 운명이 늑골 18개가 부러지면서 처참한 운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재판부는 우리들의 핏속에 흐르는 ‘야만의 DNA’를 도려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야만의 DNA는 더 깊은 골수 속으로 파고들어 급기야 괴물로 번식했다. 올해 2011년 5월, 한 엄마가 칼로 난자당한 채 죽어갔다. 엄마의 사체 옆에 태어난 지 19일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살려는 본능으로 발버둥치는 아이.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엄마의 잔영이 흐늘거린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엄마, 분노에 치를 떠는 엄마, 후회스러움에 가슴을 찢는 엄마. 아이는 까만 눈에 엄마를 묻고, 작은 심장에 대한민국을 묻었다. 아이는 며칠 뒤, 야만의 땅 대한민국을 뒤로 하고 엄마의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대한민국의 일탈되고 왜곡된 다문화, 그것은 어쩌면 100년의 한 맺힌 해외이주민들의 환생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해외이주는 어둡고 긴 터널과도 같았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최초의 공식 이주가 시작되었다. 1905년에는 멕시코 유타칸 반도의 선인장 농장으로 몰려갔다. 낮에는 주인의 채찍으로 살이 찢겨나갔고, 밤에는 전갈에 물려 목숨이 날아갔다. 일제강점기는 노동자로, 학도병으로, 군대위안부로 일본에 끌려가야 했다. 6.25가 끝나고 미군과 결혼한 여성이 미국 본토로 이주했고 전쟁고아들이 입양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되었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와 깊은 먼지 구덩이 속에서,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떠난 해외동포가 680만이다. 그들을 떠난 보낸 것은 가난이었다. 나가서 돈 벌어 오라고 내몬 것은 힘없는 국가였다. 그러나 이제 100년이 된 지금, 우리는 경제대국과 문명국이라는 허울 속에 이주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길고 긴 이주행렬을 좇아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린다. 거대한 괴물이다. 자신이 당한 것을 앙갚음하기 위해 먹이를 찾는 괴물. 우리에게 다문화는 ‘운명’이다. 들어오는 사람도 운명이고 받아들이는 우리도 운명이다. 유럽과 미국의 다문화는 노동력이 필요해 이주를 받아들인 ‘정책적 다문화’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을 매개로 한 독특한 ‘운명적 다문화’다. 정책은 멈추면 그만이지만 결혼은 국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적과 민족, 인종과 문화들이 충돌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좀 더 흐르면 계층이 대립할 것이다. 그 밀려오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문화적 사대주의가, 인종적 우월주의가 거대한 먹구름으로 드리워져 있다. 빛이 새어 나올 틈이 없다. 돈이 되면 사람도 사고판다. 때로는 중매로, 때로는 거간으로, 때로는 포주로 사람을 사고판다. 그 탐욕의 비수는 한 여인의 ‘코리안 드림’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구조적 살인이자 사회적 타살이다. 야만에 젖게 되면 야만이 야만인 줄 모르고, 운명 앞에서 체념하면 그것이 일생인 줄 알고 살아간다. 이제 우리의 야만성에 대한 진정한 고백과 야만의 DNA를 도려내는 뼈아픈 수술이 필요하다. 세상 빛을 본 지 19일 째 되던 날, 엄마의 죽음을 지켜본 아이는 그 비운을 혼으로 기억할 것이다. 눈으로, 가슴으로 묻었던 분노를 살려낼 것이다. 핏발선 눈으로 터지는 가슴으로 증오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할 것이다. “우리 엄마를 당신들 대한민국이 죽였다”고. /김승수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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