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이창근은 우리 사회를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불안정한 사회”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실업은 높아지고, 대졸 취업자 가운데 85%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규직 기득권이 십자포화를 맞으면서 그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가 채워가는 것이다. 이는 자본 입장에서는 개별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한정 착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 확산은 바이러스처럼 노동자들의 삶을 무참하게 누르고 있다. 과연 한국사회를 ‘반(反) 노동자 사회’라고 부를 만하다. 더구나 교회기관에서도 비용절감 차원에서 꾸준히 계약직과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관행의 배후에는 ‘자본’이 ‘노동’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있다. 노동자의 처지보다 자본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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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공철탑 농성 ⓒ한상봉 기자 |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그리스도교를 ‘노예들의 종교’라 했다. 그리스도교는 불행의 낙인이 찍힌 자들과 피압박자들의 종교이며, 이들의 갈망으로 세워졌다고 말한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마저도 그리스도교를 ‘바닥에서 기는 자들이 높은 자들에게 저항하는 종교’라고 했다. 실상 그리스도교의 모태가 되었던 이스라엘의 신앙선조들은 이집트의 노예 출신이었고, 예수조차도 목수의 아들로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그래서 노예들의 종교는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는다. 사랑은 십자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사랑은 급기야 십자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스팔타쿠스의 지휘 아래 봉기를 일으켰던 노예들이 십자가에 매달렸듯이, 예수의 십자가 역시 노예들의 종교 안에서 기억되고 부활에 대한 희망 안에서 경축된다. 우리네 노동현장에서도 십자가는 즐비하다. 어떤 이유로든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4년 동안 2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견주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노동이 멸시되는 세상에서 사랑은 언제나 죽음으로 내몰린다.
한편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 많은 이들은 ‘노동’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동은 필요하지만 일부 천민들의 일이며, 기득권자들은 자본을 매개로 그 노동의 열매를 따먹을 마땅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게 자본주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아버지(하느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서, 인간을 아름답게 하고, 이웃을 섬기는 도구이며, 피조세계를 돌보는 행위로 ‘노동’을 성화시킨다.
엘리트의 신을 폐위시킨 히브리 노예노동자의 신앙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나라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은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한다. 일차적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라는 소명을 받았다. 바빌론 창조신화인 <에뉴마 엘리쉬>에 따르면, 마르둑과 티아마트라는 신이 혈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마르둑은 티아마트를 죽이고 그 시체를 두 토막 내어 상반신으로는 하늘을 만들고, 하반신으로는 땅을 만들었다. 그리고 티아마트와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킨 킹구의 피로 인간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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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빌론의 에뉴마 엘리쉬 신화 | 그러므로 피조세계는 원수의 육신이요, 인간은 원수의 피다. 당연히 피조세계와 인간은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다. 여기서 땅의 존귀함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도리가 없다. 게다가 싸움에서 패한 다른 신들은 지위가 강등되어 뼈가 부서지게 하찮은 일을 해야 했는데, 나중에 이 일을 대신할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만든 게 인간이라고 하니, 인간의 처지는 가련할 지경이다. 그래서 신성을 비추고 있는 거울인 왕과 사제와 귀족이 있지만, 노예인 인간을 비추어 주는 거울에는 ‘바빌론에 정복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짓밟힌 이스라엘 사람’만이 나타난다.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희망을 담아’ 창조 이야기를 다시 쓰고, 그 이야기를 자신들의 예배 중에 다시 선포했다. 이는 ‘철저하게 기존 체제를 뒤집어엎는 행위’였다. 창세기 1장에서는 참된 왕이며 주권자이며 창조자이신 분은 ‘추방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뿐’이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참된 형상은 바빌론에서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엘리트, 곧 신성한 열쇠를 쥐고 있거나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남녀로 하느님과 협력하는 이들이라고 전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의 창조설화를 통해 거짓 신인 마르둑을 폐위시키고, 모든 인간, 특히 노예노동자들마저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어진’ 거룩한 자리로 올려놓으며, 이들의 노동을 야훼 하느님의 노동에 견주어 축성한다.
우리 신앙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 역시 귀족이나 랍비나 사제의 자식이 아니라 ‘장인(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예수 탄생시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포리스에 대도시로 건설하느라 혈안이었으니, 인근 나자렛에서 살던 건축노동자 요셉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요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역시 고귀한 숙녀가 아닌 시골 처녀였으며, 복음서는 이 마리아의 입을 통해 ‘혁명적인 마리아 찬가(마니피캇)’를 노래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고” “그분의 자비가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친다”고 한다. 그 자비의 내용이란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통치자를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셨고,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내치셨다”는 것이다.
가톨릭 사회교리, ‘노동’의 재발견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용인한 이후 제국교회로 넘어가면서 ‘갈릴래아의 예수’에 대한 기억에서 멀어졌다. 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기쁜 소식을 전했으나, 이후 교회에서 기뻐할만한 이들은 고위성직자들과 황제와 귀족들과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제국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가련한 라자로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대성당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부자의 문간에 앉아 동정을 구걸해야 했다. 이따금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이들이 온기를 전해주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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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13세 교황 | 물론 외부의 충격 때문이었지만, 뒤늦게라도 교회가 ‘맨발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이 <새로운 사태(노동헌장)>를 반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당시 노동자들은 <공산당선언> 이후에 급속도로 교회를 떠나고 있었으며, 교회가 유산자들의 편이라는 이유로 적대감을 표시했다. 이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가톨릭노동청년회를 만든 조셉 까르딘 추기경의 경험이다.
조셉 까르딘은 신학교 생활을 하면서 방학이면 집에 돌아왔지만, 이미 노동자가 된 그의 친구들은 그를 벗으로 대하지 않았다. 가톨릭 사제와 신학생(예비 사제)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조셉 까르딘은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회심’의 과정을 밟는다. 그가 교계의 극심한 반대에 무릅쓰고 노동사제가 될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교회 안에 노동청년의 세계를 구축해, 등을 돌렸던 ‘선한’ 벗들을 다시 동지로 불러들이고자 갈망했다.
결국 교회는 20세기 초 산업사회 안에서 섬처럼 떠돌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어적 차원에서 ‘노동자에 대한 배려’를 회칙을 통해 선포하기 시작했다. 부자들의 탐욕을 경계하고 부자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도우라고 호소했다. 이 회칙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단결권(노조 설립)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레오 13세 교황의 뜻은 적절히 관철되지 못했으며, 독일의 케틀러 주교 등 일부 고위성직자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세상 안에서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과 일체감을 표명했던 가장 극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공의회는 이제 가난한 이들의 슬픔과 고통, 기쁨과 희망을 제 것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던 요한 23세 교황이 역대 교황 가운데 유일하게 농부 출신이며, 사제서품 후 첫 소임이 노동운동을 지원하던 이탈리아 베르가모 교구의 테데스키 주교의 비서였다는 점은 퍽 다행스런 일이었다.
테데스키 주교와 론칼리 비서신부(후에 교황 요한 23세)가 라니카 제련소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고 성금을 모으자, 우익신문들은 “주교의 자선금은 파업에 대한 축성이며 공공연한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강복”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론칼리 신부는 반박문을 통해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를 인용하며 노조 활동을 옹호하고,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은 권리를 박탈당한 힘없고 박해받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에 주교와 본당 신부들은 ‘정의의 문제’를 위해 일해야 하며, 고통당하는 사람을 마땅히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가 교황이 되어 <지상의 평화>를 발표하고, 공의회를 소집해 ‘교회의 비전’을 다시 제시했다. 요한 23세 교황이 베르가모 신학교 시절, 교회사를 전공하고 ‘근대주의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 일부 주교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사회참여에 나서는 사제들에게도 희망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사회교리와 복음의 급진성을 결합해서 발생한 ‘해방신학’이 출현하면서 교회 내 갈등이 증폭되었다. 여전히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는 주교들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후 등장한 전통주의적 관점이 결합해서 ‘해방신학’을 단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군사독재 상황에서 출현한 해방신학은 1968년 메델린 주교회의와 1979년의 푸에블라 주교회의를 통해 중남미의 공식적 신학으로 자리잡았으나, 교황청의 입장은 달랐다. 결국 68혁명을 ‘혼란’으로 경험한 라칭거 추기경이 주도하여 <자유의 전갈>(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신앙교리성 훈령, 1984) 등을 통해 해방신학이 ‘계급투쟁’을 선도하거나 ‘마르크시즘’에 경도되는 것을 비판했지만, 해방신학이 발전시킨 많은 급진적 사상이 교회 안에 정착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
다행스럽게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해방신학의 대표적인 입장 역시 철회되지 않았으며, 이 원칙이 해방신학자들에 대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교회 전통 안에 자리잡았다. 2004년에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에서 출간한 <간추린 사회교리>는 수많은 사회회칙들을 요약하는 가운데 비교적 급진적인 내용은 빼버렸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원칙은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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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추린 사회교리,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 실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어놓은 개방과 사회참여에 대한 촉구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노동, 노동자, 노동문제와 관련해 기념비적 사회회칙을 제시한 교황은 역설적이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방적 태도에 대해 비교적 비판적 입장에 서 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었다. 교황은 1981년에 <노동하는 인간>을 발표해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노동’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 내용 역시 <간추린 사회교리>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시어 지상생활의 대부분을 목수의 작업대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보내시고, 요셉의 작업실에서 일하시며 요셉에게 순종하셨다”(259항)며 예수가 노동자였음이 ‘노동의 품위’를 높여주었다고 밝힌다. 따라서 노동은 “하느님 아드님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는 것”이고, 매일의 노동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 점에서 노동은 ‘성화’의 수단’(263항)이라고 말한다. 한편 노동조합은 ‘계급투쟁’을 대변한다기보다,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과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을 촉진하며, “정의로운 선을 위한 정당한 노력”(306항)으로 인정했다. 한편 교회는 “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 없이 있을 수 없다”(277항)고 전제하면서, 어느 한편이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밝히고 있지만, “노동은 사람이 행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이 생산수단인 자본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조차도 사업장과 기관에서 노동자를 고용할 때 ‘기업주’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는 데 있다. ‘선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고용된 직원들을 ‘선교사’로 축성하면서, 비용절감과 이윤창출을 위해 이들도 생계를 돕는 ‘생활인이자 노동자’임을 애써 부인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노동이 인간을 성화한다면, 노동자가 자기 노동을 통해 자기 가족을 돌보고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의무는 교회에 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