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병이었는데 이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 병이 되어버렸다. 2003년 사스가 발생했을 때 중국에선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선 잠잠했기에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흘려버렸었는데 막상 우리나라에 전염병이 들어와 일파만파 확산되니 너무 공포스럽다.
국내 메르스 최초 감염자는 바레인에서 체류하다가 5월 4일 국내로 입국했고, 이후 11일에 최초 증상이 발생한 뒤로 무려 네 개의 병원을 전전하며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12일에 첫 번째 병원을 방문한 뒤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15-17일엔 B병원 2인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그럼에도 낫지 않자 C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 등 기본적 처치를 받은 후 17일 D병원에 들른 후 18~20일까지 입원했다고 한다.
A병원은 동네 의원급이라 진단을 내리기 힘들었다고 치고, B병원에서도 아직 우리나라에 메르스 환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진단하지 못했다고 치자. C병원은 엑스레이만 찍었을 테니 몰랐을 테고, 이렇게 환자는 병원을 이곳저곳 전전하는 동안 혼자서 거의 2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메르스를 전파시켰다. D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17일에야 의사가 드디어 환자의 메르스 감염여부를 의심하게 된다. 의사는 환자가 중동지역인 바레인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질병관리본부에 18일 오전에 확진 검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바레인이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라며 검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 요청을 한 병원에 12가지 다른 호흡기 검사를 해봐라 차일피일 일을 미루었다. 병원 측은 12가지 검사를 다 해봤지만, 아닌 것으로 나오자 질병관리본부에 메르스 검사를 다시 요청했다. 그럼에도 질병관리 본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틀동안 검사가 미뤄지는 과정에서 환자 가족들은 “검사를 안 해주면 정부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본부는 병원 측에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는 단서를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질병관리본부의 관료주의가 메르스의 확진을 이틀이나 늦췄고, 그 사이에 슈퍼 전파자가 아무런 격리 조치 없이 돌아다니고 그 전에 같은 병실에 입원했서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도 아무런 제재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3차 감염을 부르고 일파만파 확산된 것이다. 그 외에도 메르스 의심환자를 격리는 커녕 중국 출장을 가도록 방치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대처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보건당국과 정부는 메르스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이후로부터 사회 혼란을 가중시킬 것을 두려워 하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은폐하고 축소시키려는 경향만 보이고 있다. '3차 감염자는 없을 것' 이라며 안심하라고 확신을 했지만 3차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과 지역을 공개하기는 커녕 그것들을 공개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은 강력처벌할 것이라고 하며 메르스의 확산 방지 보다는 국민 여론과 사회 혼란만을 진정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그 때문에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던 환자가 다른 병원에까지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녀도 아무도 몰라 의료진과 그 병원의 환자들까지 전염된 형국이다.
어제부로 의료진에는 병원목록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사망자 두 명에 감염의심자는 벌써 398명, 격리자는 1364명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민간인에게는 아직도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는 에볼라 환자가 단 1명 발생했을 당시 외부 일정을 취소한 채 백악관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등 사태 해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또한 지난해 3월 미국에 첫 메르스 환자가 유입되었을 때 미국 검역 당국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미국에 도착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만큼 메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내 확산을 막기 위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환자는 바로 격리조치되어 11일만에 퇴원했고, 메르스 추가 감염자는 없었다고 한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사망자가 2명 나온 어제에도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을 위해 여수를 방문했다. 비상 상황이 닥쳤는데도 평상시 잡아놓은 일정을 소화한 것이다. 메르스에 대해선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보건 역량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보건당국 또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날 당일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전부터 준비했던 체육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하던 일도 접어두고 총력을 기울여야 할 비상사태에 대체 뭐하는 짓거리듯인지 모르겠다.
메르스 같은 전염병은 개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방과 확산에 주의를 기울이고 힘을 써야만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메르스 걸리는 게 왜 정부의 탓이냐, 종북이냐,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토록 무조건적으로 정부를 수호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팩트'란 과연 무엇인가?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박근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정부를 심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년 전과 똑같은 방식의 비극이 이번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메르스의 확산만큼이나 변치 않는 정부의 대응방식이 무섭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럼에도 정부를 굳건히 믿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공포스럽다.
대체 피해가 어디까지 커질 것인지 두렵다.
[출처] 메르스, 국가, 정부있는 무정부상태, 시민의식의 구조|작성자 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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